[키워드로본 사회]제3강 여가화 시대의 마인드웨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에 등장하는 이 문구는 현대 도시인의 욕망을 간명하게 담아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여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포착한 카피로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를 마음껏 호흡하고 싶은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들을 보면 월급은 조금 적더라도 휴가를 많이 주는 직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젊은 직장인일수록 돈보다 시간적 여유를 더 원한다. 이러한 추세는 1990년대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여가 산업들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의 출범은 이러한 사회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 시간의 지속적인 단축, 고령화 등과 맞물려 앞으로 여가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 사회적, 산업적, 정책적 차원에서 급속하게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인가? 우리는 여가를 제대로 즐기는가?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 해도 그다지 유쾌하게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다가도 막상 그 때가 되면 빈둥빈둥 시간을 무료하게 허비할 때가 많다. 모처럼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도 텔레비전과 화투와 음식 이외에 컨텐츠가 없다. 이런 현상은 한국처럼 숨가쁘게 경제가 성장한 나라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오로지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리고 더욱 잘 살기 위해 혹독한 경쟁을 끊임없이 치르느라 마음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5일제의 시행은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여가화’ – 그것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국제화와 정보화 등에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여가 쇼크’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러한 쇼크를 개인적,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여가를 제대로 향유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공간 및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소양을 키워야 한다. 그 두 가지 모두에서 한국은 매우 빈곤한 실정이다.


여가화 시대에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돈이나 외부의 자극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닐까. 지금 실업자가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락자(失樂者)가 늘어나는 것도 위기다. 즉 생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권태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인류가 당면하는 중대한 문제로서 ‘권태’ 라는 것을 꼽는다.- 그런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행태를 보면 즐거운 체험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려 있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많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기계처럼 혹사당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발산하고자 하는 충동, 무미건조한 인간관계와 따분하게 반복되는 생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 거기에다가 여가를 통해 자기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소비사회의 풍조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들을 적절하게 채워주기에는 한국 사회의 소프트웨어가 너무 빈곤하다. 과시적 소비와 퇴폐적 향락으로 찌들어 있는 것이 우리 여가 문화의 자화상이다.

놀이 문화의 빈곤함은 청소년들에게 더욱 심각한 현실로 드러난다. 문화 자체의 고갈과 과중한 입시 부담이 맞물려 악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방학은 더욱 괴로운 시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학습의 즐거움을 상실한 것과 맞물려 있다. 학습과 놀이는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school’ 의 어원을 보더라도 라틴어 schola, 고대 그리스어 schole에서 온 것인데, 그 뜻은 ‘한가로움’ 이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학교는 그러한 여유를 잃어버렸고 그 결과, 정신의 활력이 사라져간다. 아이들은 왕성한 호기심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다. 자유 시간을 유쾌한 만남과 창조적인 기쁨으로 채울 능력을 키우지 못한 채 양적 발전을 위해 허겁지겁 내달려 온 우리에게 여가는 또 다른 짐인 것이다.


현대인에게 여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핵심은 번잡한 사회 속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아닐까. 우주 정거장을 개척하고 유전자와 나노 과학의 미시 세계를 파고드는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 인간의 마음은 아직도 그 신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광활한 대지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불안, 분노, 질투, 권태 등의 정서가 사물을 바로 보는 눈을 가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소통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한 오류들은 단순히 사적인 번뇌와 갈등에 머물지 않고 공적 조직의 효율과 도덕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여름 휴가를 ‘템플 스테이’ 로 보내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휴식의 본원적인 의미를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휴가 문화는 궁극적으로 대안적 생활양식의 모색과 자연스럽게 조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매일 겪는 삶의 불균형과 마음의 괴로움을 넘어 그 이면에 깔려있는 원대한 심성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중심에 자기를 다시 세우는 명상, 마음의 잡초를 뽑아 거름으로 삼으며 비옥한 생활에의 의지를 충전하는 수련, 비움으로써 오히려 가득 채워지는 여백의 역설이 거기에 있다.

늘어나는 여가 시간이 권태로움이나 요란한 유흥의 무덤이 되느냐, 아니면 유쾌한 만남과 배움의 보람으로 채워지느냐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신의 삶을 정성과 애정으로 가꾸면서 잔잔한 기쁨을 일궈낼 수 있는 마인드웨어가 그 핵심이다. 주5일 근무제와 주5일 수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가족과 함께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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