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제5강 문학치료의 그마지막_외로움과 <책 읽어주는 남자>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있다. 그리고 실지로 주변에는 친구도 많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지만 ‘나는 외롭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정호승의 시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일” 수도 있다. 많은 현대인들은 옆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움을 심하게 느낀다고 한다. 외로운 아파트나 양로원, 초라한 방에 있는 독거노인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20대의 대학생들, 그리고 기성세대 또한 우울을 느끼는데 그 모두가 이 외로움 때문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던 심리학자들은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 대개 자신을 표현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데도 끊임없이 자신에게만 집중된 말을 하므로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사교의 기술도 없다.

무릇 인간의 심리가 어떤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부수현상을 동반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외로움은 실어증과도 흡사하다. 구조주의 문학자 야콥슨은 실어증 환자를 연구하면서 실어증 환자들은 반드시 환유적(통합적) 축이든지, 은유적(계열적) 축이든지 어느 한 쪽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우리가 보통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라면 말을 잘 하지 않는 경우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외견상으로만 관찰한다면 ‘저 사람은 사교성이 많아, 그래서 외롭지는 않을 거야’ 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이 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외로움의 언어학이라는 말로 풀어 설명해보자. ‘이번 성적 거의 에이뿔 받았거든…그리고 울 아빠는 이번에 주식 상종가 쳐서 나한테 차 하나 뽑아준댔어…’ 이런 이야기를 곧잘 하는 사람 또한 외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환유적 축으로 재미있게 이야기했지만 인생의 의미를 말하는 은유적 축이 제로 상태에 가까운 대화다. ‘너 그거 얼마 주고 샀니? 머리 하는 데 얼마 들었는데? 어학연수 가고 싶은데 돈이 많이 들 것 같애…’ 등등의 대화 또한 외로움의 상태다.

그것이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를테면 실연을 한다든가 실패를 할 경우 곧바로 외로움과 우울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자기 헤어 스타일이 어떤지, 어떻게 어울리는지 말해주길 기다리는데 계속 얼마 들었느냐 하는 데만 관심이 있으니 대화가 될 리 없고 상대방으로부터 차츰 멀어지게 마련이다. 무릇 대화의 기술이 그렇듯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동의하고, 반응을 보이고, 부정할 때는 부정하고, 적절하게 침묵할 때 대화는 풍부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 삼 년쯤 되었을까. 경북대학교에서 ‘독일문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할 때의 일이었다. 20여 편의 독일 문학 목록 중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김재혁 옮김, 세계사 1999)라는 책이 세미나 토론의 대상이 되었고 J라는 학생이 이 소설에 대해 발표하게 되었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그야말로 강의실 밖은 추일서정에 물들어 있었고 강의실 안은 외로움의 그림자로 가득하였다.

<책 읽어주는 남자>란 소설은 미하엘 베르크라는 15살 먹은 아이가 한나 슈미츠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 겪은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열 다섯인 미하엘은 서른 여섯의 한나를 만나 서로에게 이끌리어 한나의 집에서 자주 만난다. 미하엘은 엄마보다 다정하게 해주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한나는 이 아이를 목욕시켜주고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미하엘은 한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한나가 책을 읽어 주면 좋아한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렇게 안개 속 같으면서도 깊은 관계를 지속해온 두 사람의 관계는 미하엘의 질투로 무너지고 한나가 떠남으로써 끝이 나고 만다. 이제 시간이 지나 미하엘은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어 법대에 진학한 대학생이 된다. 마침 법학강의 실습 시간에 법원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우연히 한나를 만나게 된다. 거기에 놀랍게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나치 감시원을 했다는 이유로 한나가 피고인으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또한 그녀가 감시원 생활을 하면서 어린 여자들과 동성애를 나누었다는 혐의, 미필적 유대인 학살 혐의 등의 죄목을 가지고 있음을 안 미하엘은 충격을 받는다.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법대생 미하엘은 이러한 한나의 모든 혐의가 사실은 그녀가 문맹이기 때문에 뒤집어 쓴 죄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늘 도망치고 죄를 뒤집어 쓰는 형국이었다. 자기가 문맹이라는 사실만 인정하면 그녀는 모든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유대인을 학살하지도 않았고 다른 피고인들이 말을 듣지 않는 한나에게 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맹을 감추기 위해 끝까지 필적 감정을 거부하고 종신형을 언도 받게 된다. 이런 한나를 보면서 미하엘은 갈등을 하게 된다. 과연 이 사실을 알려 한나를 무죄로 석방하게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말대로 그녀의 존엄과 자유를 중시해 그대로 둘 것인가. 결국 미하엘은 후자를 택한다.

이제 그녀는 감옥으로 가게 되고, 미하엘은 자기와 같은 길을 걷다 만난 게르트루트라는 사법시보관과 결혼하여 딸을 낳는다. 하지만 미하엘은 한나를 잊을 수 없다. 게르트루트는 영리하고 유능한 아내이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한나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게르트루트를 껴안을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길이나 감촉, 그녀의 냄새와 그녀의 맛, 그것은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 나는 한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206쪽) 게르트루트는 그야말로 한나 같은 손길도 감촉도 아니었다.

그녀 같은 향기도 없었고 그녀의 맛도 아니었다. 결국 미하엘은 이혼하고 법관의 직업을 떠나 교수라는 직업으로 바꾸고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감옥에 보내준다. 한나도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고 둘 사이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한나가 석방되는 날 찾아간 미하엘을 두고 그녀는 자살하고 만다.

우리가 꺼낸 J라는 학생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한나와 게르트루트 부분을 이야기하던 J는 갑자기 말이 없었고 잠시 후에 훌쩍거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코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계속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감동이구나, 하며 나는 여유를 가지고 한 일 이분 정도 기다렸다. 하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혹시 왜 눈물을 보이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대답을 하지 않던 학생이 조금 있다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J는 이 부분을 읽다 문득 자기의 남자 친구가 생각나서 울컥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남자친구는 첫사랑과 헤어지고 만난 사람이고 그 남자 친구도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자기와 대화를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나 자기를 자기로 보지 않고 다른 누구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가 그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는 것이다. 말끝마다 행동마다 첫사랑을 생각하고 자기를 첫사랑의 그 여자에게 대입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J는 그 친구와 헤어지고 현재는 혼자 있지만 그 일이 생각나서 울음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동안 수업 시간은 숙연해졌다. 한나의 향기와 맛은 어떤 것이었을까. 인간을 외롭지 않게 하는 손길과 감촉이란 어떤 것일까?

근본적으로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한나 슈미츠는 이제 글을 깨우쳤다. 하지만 이제 감옥 밖으로 나가면 미하엘 베르크가 필요 없게 된다. 그러면 이제 그녀는 외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절망적이었고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다. 괴테는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감정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한나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바로 문맹 콤플렉스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나는 그 문맹에서 벗어나자 자살을 한다. 문맹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동안 문맹의 상태에 익숙해진 것이다. 자기는 얻기만 했지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글을 모르기 때문에 한나는 수용소 감시원으로서 아이들이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였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미하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한나가 글자를 배워 미하엘에게 편지를 보낸 부분을 읽어보면 한나가 새로운 삶, 즉 혼자서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한나가 스스로 미하엘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녀는 외롭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가 필요한 물질, 친구, 건강 모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점이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나 집, 직장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현대인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힘이 필요 없이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병에 걸리기가 쉽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할텐데 같이 살면 미움과 다툼이 생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친밀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기를 원한다면 나 또한 그를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상호적일 때 우리는 정신적인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함도 유지할 수 있다. 듀크 대학 메디컬 센터는 천 명이 넘는 심장병 환자를 연구한 끝에 배우자나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장병에 걸린 후 5년 안에 죽을 확률이 세배나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타인과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면역력이 높아지며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는 사실, 사망률과 암 발생률도 낮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알다시피 유아기에 다른 사람과 떨어지는 경험을 한 사람은 평생 동안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친밀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아이처럼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에로틱한 포옹을 해주고 옆에서 늘 심부름만 하고 붙어 있어야 할까? 아니면 플라토닉한 사랑처럼 별이나 나무, 동물, 사물 같은 것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보면 아마도 친밀도란 말만큼 불분명한 말도 없을 것이다.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른 것이 이 친밀도란 말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는 더 육체적 접촉이 많을 것이고 개인적인 느낌도 더할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 사람은 사회적인 것에 더 애착을 느낄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애무하는 것보다 이렇게 상대방의 눈길을 들여다보며 더 애정을 느낄 것이다.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관계에서 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대상이 없을 때는 매우 비참하고 불행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우리와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느끼면서 생각의 폭을 넓힌다면 새로운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J라는 학생은 나하고 지금 알 수도 없는 자리에 있겠지만 그때 문학을 매개로 만난 친밀감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친구로 남을 수 있다.

한나 슈미츠의 모성, 미하엘 베르크의 따뜻함은 비록 문학작품에서, 게다가 비도덕적인 만남이고 현실에서 불가능할지라도 오래 기억된다. 그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열어갈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은 외롭다. 자신의 말만 하고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외롭다.

자신의 콤플렉스, 다시 말해 그것 없으면 불안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자신을 외롭게 만든다. 육체적인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외로워진다. 인간의 인간됨, 즉 타인을 위한 배려와 이해만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위의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하나의 친밀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 혹은 <책 읽어주는 여자>가 되라. 그러면 당신은 외로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도 안 되거든 그냥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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