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제4강 문학치료의 세번째 사례_시치료

 
수동적이고 인지적인 독서치료, 능동적이고 인지적인 드라마/연극/영화치료와는 달리 능동적이고도 감성적인 치료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치료일 것이다. 보통 미국에서는 ‘Poetry Therapy’ 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치료는 시의 발생기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가 포이에티케(poietike)라는 말을 시작(詩作:시 쓰기)이란 뜻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만들다’ 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차츰 정서를 동반한 포에지(poesie)라는 말로, 즉 ‘시’ 라는 말로 바뀐다. 근대 이후에는 포에지가 산문(prosa)에 비해 감정이입의 상황을 표현하는 시문학으로 이해되며 전근대성으로 인해 그 왕관을 산문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감성적 접근과 신화적, 마법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나 소설, 영화 같은 장르보다 정서를 표출하기에 훨씬 좋은 장르이다. 그래서 치료 수단으로 곧잘 이용된다.
시의 언어가 말하는 영역은 상징적이고 비의적인 영역이다. 상징적이고 비의적인 영역이란 사라지고 없는 신이나 마법, 영혼이 그 안에서 자연스럽고도 아름답게 살아 숨쉬는 공간을 말한다. 이런 공간에서 영혼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주변의 세계에 대해서 깊은 가르침을 주곤 한다.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선하고도 온전하고 아름다운 것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상처 받은 우리의 영혼이 역동적인 감성과 언어의 아름다움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 ‘병리(병의 원인·발생·결과 및 원리)’ 라는 것이 리듬에 장애가 오는 것이고 이미지가 왜곡되는 것이며 세계가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이고 마음의 고향을 잃는 것이라면, 리듬이 있고 언어가 맥락을 찾고, 이미지가 순수하게 그려지는 시는 분명 치유할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선 시작품을 하나 읽으면서 치료를 시작해보자


이 시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감정이입하기에 시간이 걸리지만 이해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여 독자/내담자가 이 시의 분위기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이런 시는 우울증이 있는 경우에 좋을 듯하다. 그 이유는 이 시에는 긍정적인 부분이 한 구절, ‘당신이 /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는 우울한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언어들만이 가득하다. 부정적이고 우울한 언어들, 고향을 잃은 언어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유비추리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치료에 상응하는 것은 나 이외에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내 안에 집을 짓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나는 이미 시인이 그것을 겪은 것처럼 그와 어떤 고통을 분담하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치료사가 있다면 이 시를 선택한 이유를 제시하겠지만 자가치유일 경우, 시를 천천히 그리고 내면적으로 읽어본다. 두 번, 세 번 읽어서 시의 상황, 즉 이미지, 리듬이나 음악성에 적응해본다.

그러면 독자는 시에 적응하게 되어 산만한 생각을 버리고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조용하게 심상을 떠올릴 수 있고 그것을 관조할 수 있다. 선을 하듯, 요가를 하듯 자연의 세계로 여행을 한다. 고요한 산 속에 서있는 나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이것이 시를 통한 치유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할 길목이다.

그러면 우선 불안하거나 우울한 기분을 차분하게 하고 또 자신을 솔직하게 만들어 시의 시각적 장면을 떠올리고 그것과 대화할 수 있게 한다. 아마 어떤 말 한마디가 (예를 들어 나뭇가지 같은..) 떠올려질지도 모른다.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단순히 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나뭇가지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을 것이고 스스로 (또는 치료자가) 그것에 대답하면 된다.

그러나 이때는 정답이 아니라 가능한 답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가능성 있는 대답, 그리고 이 가능성 있는 해석에서 독자/내담자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또는 하지 않든지) 들어주고 받아줘야 하며 판단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류시화의 시가 비록 운율은 없을지라도 리듬은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산문인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파악하기 힘든 것일지라도 반드시 리듬을 찾는 것이다. 리듬 속에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아래의 시를 읽으면 그런 반복된 리듬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리듬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우울한 시의 리듬은 하행종지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 혼잡한 내적, 외적 사건들을 단순한 내적 경험에 통합한다. 만약 위의 시가 가진 내용이나 리듬을 상행종지로, 즉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을 (치료사는 내담자나 독자를)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안에 내재한 우울함이나 고통, 스트레스, 거부감 같은 것은 앞의 두 시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리듬을 개인적으로든 그룹에서든 반복함으로써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다. 리듬은 단어의 액센트, 박자, 셈-여림, 흐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는 글이라 실제 음성으로 시연할 수 없지만, 이때 반복되는 리듬이 곧 최면효과를 가져온다.

프로이트가 분석치료에서 최면 대신에 연상을 치료수단으로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 반복의 효과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담자의 분석치료 시에 내담자가 억압된 자료를 기억하는 대신, 동시대의 경험으로서 그것을 반복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담자가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그의 상처가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시를 통해 비밀스런 장소인 내면으로 들어가는 데 큰 성공을 한 셈이다. 이것은 무의식으로 연결된 다리이며 여기에서 영혼이 만져지며 시적 정서가 솟아난다. 동시에 우리는 (그것이 시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직접적인 우리가 아니며 훌륭한 시인의 못난 모습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에서 보는 것과 시의 의미를 말하게 된다.

리듬은 아이들의 고유한 언어이다. 동시에 어른들이 어릴 때 체험한 고유한 언어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는 인류의 시조인 원시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말해도 된다. 그런 만큼 그 즐거움은 인류에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을 보라. 언제나 리듬으로 말을 한다. 리듬으로 공을 차고 리듬으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소리의 반복을 한다. 엄마 엄마, 까까 까까, 이이이이 이이이이, 딱딱딱딱, 푸루루 푸루루, 까꿍 까꿍 하면서 말이다. 조금 더 크면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하거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면서 놀이를 한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되면 손바닥을 치면서 ‘푸른 하늘 은하수’ 라는 리듬을 반복하면서 손동작을 한다. 말하자면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시의 리듬과 반복 기능은 인류 생존의 원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치료사는 늘 자신들/내담자들에게 마음을 열게 한 비밀인 리듬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게)해야 한다. 리듬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어린 아이로 돌아가게 한다. 나는 참으로 외로움을 많이 탔던 적이 있다. 잠시도 혼자 못 있고 늘 불안하고 외로웠다. 그러니 누가 나를 떠난다면 불안하게 되고 불안을 감추기 위해 강박행위를 하였다.

화를 자주 내고 누가 헤어지자고 하거나 나를 무시하면 죽일 것처럼 덤벼들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그저 날 엄마처럼 보살펴주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아이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는가. 시에서처럼 누구나 다 그런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를 반복하고 있다면 이 반복으로 아이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불안, 우울, 분노는 위로 받지 못한 아이가 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리듬은 다른 치료에 비해 시치료가 갖는 중요한 장점이다.

이렇게 동일시의 과정을 통한 해소단계가 끝났으니 치료단계로 넘어가자. 그러자면 우선 류시화의 시를 조금 다르게 작업할 필요가 있다. ‘고요한 산 속’ 이라는 단어로 시작해보자. 그리고 ‘나뭇가지 하나가 흔들린다’ 라는 문제를 내자. 그리고 ‘왜일까요?’ 라고 질문을 한다. 예상되는 답은 “그 위에 새가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말로 해보자. 내 마음이 흔들린다.

그 이유는_____________ 때문이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새가 나뭇가지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계속 흔들리는 것은 _______________ 까닭이다. 이런 반복의 구조는 일정한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형식은 혼란함에서 정돈을, 부조화에서 조화를,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낸다. 설령 격렬한 감정일지라도 이런 형식 안에서는 순치된다. 그러면 감정이 치유되고 시인과 함께하는/그룹의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발생될 것이다. 그래서 차츰 균형감각이 만들어진다.

이때 우리는 미술치료처럼 나뭇가지를 그려 그 안에 새란 말을 써넣을 수도 있고 ‘흔들린다’ 란 말을 써넣을 수도 있고 ‘조용하다’ 란 말을 써넣을 수도 있다. ‘춤추는 나무’ 라고 쓸 수도 있고 ‘뽀뽀하는 새’ 라고 써 넣을 수도 있다. 마치 놀이를 하듯 시가 만들어지면서 감정이 자연스레 치유되는 것이다. 집단치료에서는 이 시에서처럼 ‘흔들린다’ 란 말을 가지고 시를 쓸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흔들린다.” 그러면 옆의 사람은 “나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 흔들린다” 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치료사는 “나는 당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당신의 마음에 집을 짓겠다” 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집을 허물어 다시 흔들리게 한다면?” 하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누군가 “다시 흔들린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면 다시 “새로 집을 지으려면 흔들어서 집을 무너뜨려야겠지?” 등으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인식과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감정을 표출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게 한다.

시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 우울한 상태로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다. (당신이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시는 변형되어야 하고 통찰 또한 새로워야 한다. 이때 치료사는 감정만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새로운 통찰을 얻고 승화의 상태가 되도록 치료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이다. 류시화의 시가 환유적이라면 정호승의 시는 좀더 은유적이다. 그래서 이 시로는 괄호 안에 등가물 넣기 방식으로 세팅을 해볼 수 있다.


먼저 온전한 시를 읽어주고 듣고 기억에 남는 것을 괄호 안에 가능한 한 그대로 넣도록 유도해보자. 그리고 자기 맘대로 아무 단어나 채워 넣기를 해보자/하도록 유도하자. 그러면 그 사람을 우울하게 한 대상이 전면에 드러날 것이다. 외롭게 보이는 대상을 전부 괄호 안에 넣어본다면 삼라만상이 외롭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외롭다면 자기 혼자만 외롭거나 우울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란 말은 시적 진리가 된다. 시적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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