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본 사회]제2강 학교 교육에서 평생 학습으로

 

한국의 교육열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0여 년 전쯤 영국의 어느 텔레비전에서 공부에 혹사당하는 한국 청소년들의 생활을 취재하여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방송 프로그램의 이름은 <믿거나 말거나 (Believe Or Not)>였다고 한다. 보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수험 경쟁이 벌어지는 나라, 0교시를 폐지하지 말라고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항의하고 야간 ‘자율’ 학습을 ‘강요’ 하는 희한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러한 향학열은 한국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을 90%로 끌어올려 단연 세계 최고가 되었다.

그런데, 위의 현실과 다소 상반되는 통계가 있다. 통계청과 OECD의 자료에 따르면 성인의 평생 학습 참여율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것이다. 덴마크나 미국 등이 50%를 넘어서는데 비해 한국은 17%로 회원국 평균인 3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폴란드와 포르투갈 2개국 뿐이다.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문서 해독 능력’ 에서도 끝에서 5번째라는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문맹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 문장의 해독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특히 대졸자들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들에게는 공부하라고 닦달하지만 정작 어른들의 지적 수준은 형편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공부=학교 교육=청소년기> 라는 등식이 있다. 즉 공부는 학교에 다니면서 하는 것이고, 학교란 청소년기에만 다니는 것으로 여긴다. 이는 근대사회의 전형적인 라이프코스에 상응하는 관념이다. 일정한 연령에 이르기까지 표준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그 실력에 따라 사회적인 입지가 부여되는 것이 근대 산업사회의 시스템이다. 한국은 급속한 스피드로 산업화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좋은 대학 졸업장=인생의 행복’ 이라는 도식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십대들은 사춘기의 행복을 모두 보류한 채 입시에 처절하게 전력투구하는 현실이 되었다.

문제는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그 관성이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정보사회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버틸 수 없다. 지식의 혁신이 숨 가쁘게 일어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워야만 한다. 그러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성인의 학습이 저조하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 및 기업 생산성에 있어서도 치명적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일까?

우선 여유가 없다. 직장 생활이 빡빡하기도 하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주부의 경우에도 자녀들의 공부를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적, 시간적,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원인은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한국의 학교 교육이 낳은 가장 큰 폐해는 학습 의욕을 거세시킨다는 점이다. 타율적인 체제 속에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에 대한 혐오증만 생긴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소진된 사회는 그 자체로 위기다.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진단하면서 ‘평생 학습’ (lifelong learning)이 강조되고 있다. 정책적인 뒷받침이 이뤄지고 전국 곳곳에 ‘평생 학습도시’ 를 모토로 내걸은 지자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뤄지는 평생 학습은 두 가지 흐름이 주를 이룬다. 하나는 취미 교양이고 다른 하나는 자격증이나 승진을 겨냥한 공부이다. 인간의 성숙과 시민 사회의 발전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기엔 매우 빈약한 것이다.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는 풍부한 가능성들을 일깨우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이 평생 학습을 통해 배양되어야 한다.

그리고, 평생 학습에 관해 한 가지 수정되어야 할 통념이 있다. ‘평생 학습=성인 교육’ 이라는 등식이다. 지금으로서는 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이 주어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추세이겠지만, 개념의 속뜻을 근본적으로 따져보자면 특정 연령대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 학습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청소년의 공부부터 그 존재 방식이 달라진다. 핵심은 생애를 통해 지속된다(lifelong)는 것, 인생의 긴 항로를 설계하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배움을 능동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다. ‘교육’ 이 아니라 ‘학습’ 이다. 그리고 학교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와 욕구에 따라 유연하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한 공부의 즐거움을 아는 어른들이 많아져야 한다. 대학 진학도 일정한 나이에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무모하고도 자기 파괴적인 입시 게임으로부터 모든 세대가 자유로워지면서 배움 그 자체의 기쁨을 삶의 보람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인생의 풍요로움과 경제적인 생산성을 함께 증진시키는 길은 곧 ‘학습 사회’ (learning society)의 확장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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