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현미경]제1강 ‘황산벌’이 우리에게 남긴 것

 


대전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논산으로 접어들어 조금 더 가면 너른 들이 나타난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이른바 ‘황산벌’이다.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싸움터’, ‘계백이 이끄는 백제의 결사대가 신라군을 맞아서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이로부터 276년 후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은 다시 이곳 황산벌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우리는 ‘황산벌’이라는 이름을 학교 수업시간에 들어서 안다.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진 황산벌의 이미지는 ‘충성’이다. ‘나라를 위한 일에는 목숨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교훈이 황산벌의 이미지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먼저 신라의 화랑인 관창을 통해 전해졌다. 우세한 병력으로도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백제군에게 고전하던 신라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15살 나이의 관창은 홀로 백제군의 진영으로 돌격한다. 사로잡혔다가 풀려난 다음에도 다시 백제군 진영으로 돌진한 끝에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용기를 얻은 신라군은 마침내 백제군을 격파한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관창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황산벌’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충분하였다. 이러한 이미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다음, 계백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미 패할 것을 각오한 계백은 처자를 죽이고 전투에 임한다. 적의 노비가 되어 수모를 당하느니 장군의 가족답게 죽으라는 것이 계백의 말이었고, 처와 자식들은 기꺼이 계백의 말을 따른다. 계백 자신도 5000의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황산벌’의 이미지는 동일한 것이었다.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 ‘황산벌’의 컨셉이었다.

작년 10월 개봉된 영화 <황산벌>은 황산벌에서 벌어진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싸움을 퓨전코미디 형식으로 만들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황산벌>의 내용은 비교적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였으며, 그동안 ‘황산벌’이 가지고 있는 교훈적 이미지도 계백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물론 <황산벌>은 그 나름의 역사해석을 드러내려 하기도 한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코미디가 아니라 지역감정, 현재의 정치인들, 전쟁에 희생되는 힘없는 백성들, 전쟁의 의미,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문제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였다는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이 이를 말해준다. 실제 영화에서는 이런 의도가 반영된 장면들도 나온다. 가야 출신인 반골의 아버지 흠순에 대해 신라 진골 출신인 관창의 아버지 품일이 가지고 있는 우월의식, “전쟁은 미친 짓이다.”라는 김유신의 말, 영화 전체에 걸쳐서 나오는 이름없는 병사들인 ‘거시기’의 존재가 그것이다.

그러나 김유신의 독백 정도로 전쟁이 가지고 있는 비인간성이나 파괴성을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영화에는 전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웅적인 인간상이 느껴진다. ‘거시기’의 존재를 통해 전쟁에 희생되는 힘없는 백성들을 나타내려고 하지만, 그 메시지는 영화 전체에서 양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는 지역감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으로 평가받는 신라군과 백제군 사이의 “욕싸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지역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지역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 차이가 단지 영화의 흥행만을 위해 이용된다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것은 ‘황산벌’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나라의 통합과 지역의 차별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를 끌어들였으며, 대동강 이남만을 차지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북쪽에 발해가 세워져 ‘남북국 시대’라고 불리는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완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나라의 통합, 문화의 통합을 통해 현재 한국의 원형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황산벌 전투는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황산벌 전투 이후의 역사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커다란 문제점을 안은 채 흘러갔다. 나라는 통합되었으나 지역은 통합되지 않았다. 황산벌의 승자는 겉으로는 ‘통합’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지만, 패자를 통합하려는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견제하고 차별하였다. 그 결과 백제가 무너지고 수백 년이 지난 다음에도 백제 문화는 신라 문화와 제대로 융합되지 못했다. 전라도와 특별한 연고가 없는 견훤이 ‘백제의 부활’을 내세우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선뜻 호응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역에 대한 차별과 견제는 고려로 이어졌다. 황산벌에서 후백제의 항복을 받은 고려 태조 왕건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개태사라는 절을 세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백제의 힘이 되살아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자손들에게 내린 ‘훈요10조’에서는 차현 이남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고까지 하였다.

정말로 커다란 문제는 이러한 지역차별의 구조가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점이다. 훈요10조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만해도 구체화되지 않던 지역차별의 논리는, 정작 조선에 들어와서 오히려 정교해졌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데 쉽게 움직이며,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만을 좇는다.’고 이 지역의 인심을 평가절하 하고 있다. 대표적인 실학자요 개혁사상가로 손꼽히는 이익조차도 전라도는 ‘물길이 머리를 풀어헤치는 형상(散髮四河)’이라든가, ‘강물이 서울로 향해서 머리를 들고 역류하는 형세(反弓水)’라는 등의 말을 만들어내면서, 이 지역이 지리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황산벌의 승자에 의해 형상화된 패자의 이미지는 시대가 지나면서 그렇게 구체화되었으며, 이루어지지 못한 지역의 통합은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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