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자

많은 예술가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장에서 전시를 하고 있을 것이다.그러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전시장을 전전하다 보면 문득 제한된 공간속의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다. 캠퍼스 위에 무한의 상상력이 펼쳐지고 또 우리는 그것을 감상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말한다면 결국 그것은 제한된 공간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캠퍼스에 갇히고 그것은 또 갤러리에 갇히고 갤러리 입장권 속에 갇히고 그것은 다시 지갑 속에 갇히고,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사명 중에 하나는 그러한 틀을 깨고 나아가는 것일 것이다.
1917년 “마지막 제작품보다는 이념에 더 관심이 있다”고 단언한 젊은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은 평범한 소변기 하나를 선택하여 라고 서명한 뒤에, 뉴욕의 한 전시회에 ‘샘’ 이라고 제목을 붙여 출품하였다.

예술가가 만든 아름다움에 대해 예술가 자신이 느낀 어떤 것보다도 예술가의 의도에 더 관련되어 있다는 뒤샹의 주장은 1960년대 중반기를 기점으로 누구나 참가 할 수 있는 경향의 예술로 확산되었다.

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개념론적(Conceptual)이거나 이념(Idea)또는 정보(Information)예술로 알려져 있는 폭넓고 지극히 다양한 범주의 행위들은 그 유일하고, 영원하면서도 들고 다닐 수 있는 (그래서 끝없이 판매가 가능한) 호화물품,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예술품의 전면적인 포기에 속하는 것이었다.

예술과 그 밖의 다른 모든 것 안에서, 그 둘레에서 그리고 그에 대한 이념들, 방대하고 통제할 수 없는 범주의 정보, 단 하나의 물체 안에는 쉽사리 포함될 수 없는 주제들과 관심사들이 글로 만들어진 제안들, 사진들, 자료들, 괘도들, 영화와 비디오, 그리고 예술가 자신들의 신체를 이용함에 의해서 전달되었다.

그것들은 그것이 취하는(혹은 취하지 않은) 형태와는 상관없이 예술가들과 청중들의 정신 속에서 가장 충만하고 가장 복합적인 실존을 지닌 일종의 예술이었다.

이러한 개념적인 예술은 60년대의 특징이었던, 정치적 불안과 커져가는 사회의식 역시 예술과 예술가들의 전통적인 엘리트적인 위치를 피하려는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개념주의의 아이디어가 서서히 떠오른 것은 물질적, 대상적 형태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학이나 기록물, 그 진행과정 중의 여러 가지 계획 등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즉, 개념미술에서 자연스럽게 ‘과정미술’이 등장하면서 미니 멀 아트의 형태들을 환경이나 중력과 같은 자연의 조건에 부속시킴으로써 그 형태가 훼손되기를 바랬다. 여기에서 이들은 무형식주의에 반기를 든 상황으로서 재료들을 전시장의 바닥에 여기저기 뿌려놓는 ‘늘어놓기’와 아틀리에나 화랑의 제한된 공간을 포기하고 야외의 자연물에 형태를 부과하는 ‘대지미술’로 관심을 돌렸다.

그들은 사진으로 행위를 기록해 놓는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작품은 지워질 것이다. 작품들은 일시적인 것이며 판매될 수도 없다. 그러나 작업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판매되는 사진들이 작품으로 인정된다. 작가들은 필요하면 기계와 노동력을 이용하여 지구 표면의 광대한 부분을 재구성한다.

흙더미를 옮겨서 일시적인 조각적 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얼어붙은 강 표면을 깎아 내거나 새로 일군 밭에 갈퀴질을 하여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한다. 그들은 화랑에 비옥한 흙을 무릎까지 채우기도 하고, 뉴욕의 주차장에 소금을 뿌려 놓기도 하며, 공공미술관의 바닥에 자연석을 동심원 형태로 배열하기도 한다. 이것은 원시인이 만든 제의적 형태를 연상시키며, 미술관과 같은 기술공학적 환경 속에 놓임으로써 어김없이 문화적, 시대적 충격을 유발한다.

이러한 미술의 특징은 비 실용성이나 무용(無用)성 이라기보다는 명백한 비합리성이다. 명백한 의미도 없는 일시적인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사고(思考), 노동, 재료 등이 소모되고 있다는 것이 그 점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은 20세기 도시들에 나타나는 가속화 되어 가는 건성과 파괴의 리듬에 대항하는, 그리고 자연과 시간 앞에서의 인간의 거만함에 대항하는 내용을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사막에 도랑을 파거나, 나무 밑에 나뭇가지 모양을 만들어 놓는 작업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외교술과 상술을 발휘하여 작업을 진행한다.
어떤 작가는 포장된 사물을 전시한다는 행위에 내재된 신비감을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 차용하여서 커다란 기념물이나 풍경에 적용함으로써 이와 같은 방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계획들 중 일부는 계획으로서만 그친 것도 있는 반면, 어떤 기획은 치밀한 설계와 교섭을 통하여 실현되기도 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긴 해변이 포장되었으며 광대한 주황색 커튼이 캘리포니아의 풍경 속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매혹적으로 만들어진 드로잉과 콜라주들은 기획의 설명도가 되는 동시에, 실행된 작업에 대한 영구적인 기록이 된다. 또한 이것을 팔아서 남은 수익금은 다음 작업의 경비로 사용된다. 이러한 착상들은 작품이 갖는 초현실주의적인 속성보다 더 주요한 측면으로서 작품이 주제자체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주제는, 간혹 실현되는 예들을 통하여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일도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므로, 더욱 관심을 끌게 된다.

마이클 하이져는 숨 막히는 화랑에서 다닥다닥 작품을 붙인 작가들의 상거래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작품을 담을 수 있는 참된 공간으로 네바다 사막을 택하였고, 24만 톤이 넘는 흙과 바위를 파헤쳐 자연의 지형에 의해 형태가 결정되는 방법으로 <이중부정doble negative> 이란 작품을 보여줬는데 이것은 결국 자연의 자생능력에 의해 언젠가는 소멸될 것이다. 그 외에 크리스토, 로버트 스미슨, 리차드 롱 등 많은 작가들이 대지, 지구자체를 예술의 장으로 사용하는 대지예술가 들인데 그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표현해 보고 그 한계를 지으며 결국 우주 속의 한낱 먼지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가식과 오만한 모습을 상대적으로 가늠케 해준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모든 것을 그들의 꿈과 상상력을 이루기 위해서 다 털어 놓는다(그들이 바라는 엄청난 스케일을 위해선 상상초월의 제정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절대자 앞에서의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자신만의 한계 속에 갇혀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틀 속에 있어야 한다고 우기는 일상적인 인간들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구체적인 형상으로 보여주는 그들을, 삶의 가치 척도를 옆집보다 더 많은 물질적 풍요에 두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편으로 허탈한 느낌마저도 저버릴 수 없는 대지예술을 바라보며 우리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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