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그 치명적인 유혹] 제1강 책을 고르고 읽는 방법에 대하여

   
 
  신문 북리뷰, 방송의 책 프로그램, 잡지의 책 소개 코너, 인터넷
웹사이트, 심지어 입 소문에 이르기까지, 실로 책에 관한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이렇게
넘쳐나는 책 정보는 양면성을 지닌다. 정보량이 많다는 점이 일단 긍정적이지만 책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도 쉽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지만 ‘친구 따라 책 읽는’ 처지, 그러니까
독서의 주체성을 상실할 위험이 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고를 것인가? 책 고르는데
왕도는 없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책 고르는 눈이 밝아진다는 말이 결론 아닌 결론이다. 결론이 무책임해
보인다고? 바로 이거다 싶어 구입한 책이 읽으면서 점점 실망만 커지고 급기야 던져버리고 싶어 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많이 읽다보면 책 고르는 눈이 밝아진다니 정말 무책임해 보인다.

하지만 책 고르는데 실패한 경험이 쌓이다보면 실패가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요컨대 실패의 경험
자체가 책 고르는 감식안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시설 좋은 수영장에서 강사의 지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수영을 익히는 사람도 있다. 반면, 무작정 물에 뛰어들어 배가 부를 정도로 물도 마셔가며 허우적거리다가
자연스럽게 수영을 익히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책 고르는
일에서는 후자의 방법, 책 값이라는 수업료를 내고 책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종횡서해(縱橫書海)가
지름길 아닌 지름길이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는데 인색하다면, 책 고르기의 실패를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길은 그만큼 멀어진다.

결국 넘쳐나는 책 정보는 책 선택의 보조 수단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
나름의 감식안을 자연스럽게 길러나가는 것이다. 유명한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이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가장 좋아합니까?” 암스트롱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들어서 좋은 음악을 좋아합니다.” 요컨대 책 고르기에서도 어떤 절대적인 기준 같은 것은
없다. “니들이 책맛을 알어?”라고 자신 있게 외치며 미소지을 수 있으려면, 험하기
짝이 없는 책의 바다에서 치른 무수한 책과의 씨름이 필요하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대해서도 ‘좋으실 대로’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하고 싶다.
책의 성격이나 읽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책 읽는 방법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좋으실
대로’에도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우선 어떤 책이든 책 읽기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사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요컨대 독서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에 가깝다.
“어이 이봐! 나하고
한번 사귀어 보지 않을래?” 내 앞에 놓인 무수한 책과 저자들은 바로 위와 같은 제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사귐의 방식은 책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저자와의 사귐은 상대적으로 진지할 것이다. 반면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책과의 사귐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유쾌할 것이다. 물론 사귐의 방식이나 태도는
전적으로 책이나 저자에 달려 있지는 않다. 예컨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분석적인 태도로 매우 진지하게 읽어낼 수도 있다. 요컨대 읽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읽기의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손 한 번 잡지 않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곱게 사귀는 연인들도 있다. 열정적인 포옹과 키스로 뜨겁게
사귀는 연인들도 있다. 책이라는 상대도 마찬가지여서 밑줄을 긋고 포스트?堧? 붙이고 책에 메모도 하고
심지어 책 일부를 뜯어놓는 사귐도 가능하다. 반면에 종이에 때라도 탈까 조심조심 책을 모시는 사귐도
가능하다. 각자의 취향에 달려 있는 문제지만, 가능한 한 열정적으로 사귀는 것이 좋다.

책과의 사귐은 연인과의 사귐에서와는 달리 배신이나 변심이 무죄임은 물론,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와 관련한 다른 책들을 겹쳐 읽는 것, 즉 양다리 걸치기나 여러 다리 걸치기,
동시다발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미 읽었던 책과 상반되는 논지를 담고 있는 다른 책을 향해 ‘고무신
거꾸로 신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배신과 변심에 능한 바람둥이가
책을 잘 읽는 사람이다.

적어도 책 읽기에 관한 한 일편단심의 태도는 버려야 하며, 그러자면 지금 사귀고 있는 책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른 책에 한 눈을 파는 불온한(?) 태도가 필수적이다. 책 일부를 뜯어 놓기까지 하는
열정적인 사귐도 역설적으로 의심, 배신, 변심, 한눈 팔기를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더구나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그 책과 상관 있거나 배경을 이루는 다양한 다른 책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책 읽기는 본질적으로 상호 참조적이며 맥락적이고(contextual) 하이퍼링크적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모든 책을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문과 목차,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부분만을 읽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일단 책의 주제와 논지를 파악해 둔 뒤, 언제든 읽을
필요가 생겼거나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읽으면 된다. 이렇게 하다보면 책꽂이는 한약방의 약장과
비슷해진다. 약재(책)의 효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합한 약재를 꺼내
처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한 권을 읽었으면 그걸로 끝이 아닐까? 읽은 다음에 특별히 할
일이라도 있는가? 물론 읽은 책마다 독후감을 쓴다든지, 독서 일기 같은 것을 적는다든지, 아니면
읽은 책 목록 같은 것을 작성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부지런을 떠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부지런
떠는 사람들을 위해 외국에는 개인용 책·독서 관리 소프트웨어도 많다.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그런 부지런함을 권할 수는 없다.

다만 책을 읽은 다음의 생각과 느낌을 발설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필요는 있다.
발설의 방식은 다양하다. 인터넷 서점에 독자 서평을 올릴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읽은 책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권하거나, 무자비하게 난도질
치며 비판할 수도 있다.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중이라면 게시판 형태로라도 자신의 독서 체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메이지 대학 교수로서 저명한 저술가이기도 한 사이토 다카시는, 최근 나온 <독서력(讀書力)>이라는
책에서 이른바 ‘요약력·코멘트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책을 읽고 그 핵심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정리하는 능력, 그리고 책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이토는
그런 능력을 스스로 시험해보라고 권한다. 자신이 읽은 책 10권의 내용을 1-2시간 안에 얼마나
정확하고 충실하게 요약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면, 자신의 독서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이토의 권고를 따르는 것은 각자가 선택할 사항이다. 하지만 읽은 내용을 정리, 전달하는 능력이
한 사람의 독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책 내용을 자기 것으로 철저하게
소화했는지 여부는, 책에 대한 칭찬이든 비판이든 객관적인 내용 전달이든, 그 어떤 성격 어떤 방식이든
발설에서 판가름난다. 바꾸어 말하면 책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야말로 책을 ‘읽은 다음’의 내가
읽기 전의 나와 달라졌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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