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으로서의 미술]제1강 그림 읽기

   
 
 
어릴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서(누구든지 어릴 때 미술을 한다.) 이제껏 미술 속에서 생활하고, 늘
미술을 대하면서도 여전히 미술은 어렵다고 느껴진다. 알면 알수록 어렵고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있다. 어렵고 귀찮고 때로는 괴로우면서도 미술이 좋고 재미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끔 ‘마약과 같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조차 가지 않는다’고 할 때, 나는 ‘작품을 대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해라’라고 이야기해 준다. ‘눈에 보이는 하나의 시각물이 아닌, 생각과 의미를 담고 있는 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림에서 아주 많은 것을 발견하고 얻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 진정한 그를 알려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그 사람의 성장 과정과 배경 지식, 성격을 공부하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고 가까워 질 수도 없듯, 미술도 그렇다.
미술사적, 미학적 지식이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그렇다고 지식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을 만날때도
그렇듯 ‘느낌(feel)’이 중요하다. 상대가 이성적으로 훌륭해도 느낌이 없으면 그만인 것처럼,
미술을 대할 때 그 느낌이 어떻게 오느냐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제껏 그림을 봐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림을 그만큼 많이 보지 못했거나 자신에게 맞는 그림을 못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독 관심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주는 것 없이 끌리는 사람도 있고, 생김새를
떠나 호감이 가는 경우도 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나 느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림감상은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선 많은 그림을 대하다 보면 그 속에 분명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만나게 된다. 취향이 맞으면 작가나 기법이 궁금해 질 테고, 그런 작품이 나오게 된 경위를 알고
싶어질 것이며, 그렇게 재미는 시작되는 것이다.

작품에도 물론 수준이 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주관적이고 작가들의 작품에 저마다의 노력과 노고가
들어갔음에도, 분명 좋은 작품과 훌륭한 작품이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좋은 작품에는 그만한 이유와
미학적인 가치가 담겨 있다. 때로는 일반인들의 그림감상에 이러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장애가 될 수
있다. 남들의 평가에 의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워진다. 자신의
취향과 느낌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작품을 대하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 내가
좋아하는 주제, 내가 좋아하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그림을 만나는 과정이다.

 
언제부턴가 ‘그림 읽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듣고 있다. 그림은 보는 것인데, 읽다니…?!?!?

그림을 읽는다는 말은 주로 동양화에서 쓰던 말이다. 색채의 사용이 일체 배제된 수묵화나 문인화풍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림이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읽을 수 밖에 없다. 요즈음의 ‘그림
읽기’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이를테면 그림에서 목단은 부귀영화를 상징하고,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한다는 식의 사물의 상징적인 의미를 대치시키는 것이 아닌, 작가의 생각과 그것을 감상하는 감상자가
생각하는 것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감상자가 내 그림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제안을 그림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요즘같이 사진과 영상이 발달하고 풍부한 시대에 미술인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에 여전히 감탄하지만, 이제는 화가가
아니어도 그러한 그림이 가능한 시대이다. 사진 이미지를 수채화처럼 바꿀 수도 있고 유화처럼 만들
수도 있다. 아름답고 예쁜 것으로 치자면 사진 이미지가 그림보다 훨씬 더 많다. 인쇄물도 넘쳐나는
시대이다.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이미지는 화가의 그림이 아니어도 다른 많은 것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작가들은 변하고 또 새로운 것을 찾고 제시한다.
요즘 미술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비디오, 영상, 디지털 매체, 설치 미술 등 생활이 바뀜과 동시에
작업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자신도 시대에 맞추어 변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무엇인가는 바뀌지 말고 그대로 있기를 사람들은 바란다. 그래서 가끔은 쉽게 다가와야할
컴퓨터 아트나 매체 미술이 어렵게 인식되곤 한다.


그래서 기존의 상식선상의 ‘그림’이면서도 조금 다르게 관객에게 접근하고 있는 그림 몇
점을 소개한다. 우선 이광호의 작품 ‘침묵의 세계’를 보자. 이 그림은 얼핏 모델을 놓고
그린 인물화로 보여진다. 그저 그런 인물화로 지나치기 쉽다. 그렇지만 한 번만 더 자세히
작품을 한 사람을 대하듯이 만나려고 한다면 다른 점들이 보여질 것이다. 이것은 거울을
그린 것이다. 그림 오른쪽 끝에 있는 포스터 글씨를 보면 알 수 있다. 인터뷰라는 글씨가
거꾸로 보인다.
    그림 속의 인물은 작가의 부인이다. 손거울에 비친 인물은 작가 자신이다.
부인은 결국 거울 속에 비친 거울의 모습이고, 작가는 그것을 또 거울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고 표현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작가는 관객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 들이는데 성공했다.
 
요즘 미술의 화두는 ‘소통’이다. ‘읽는’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소통’에는 유통구조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작품이 그저 벽에 걸려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적극적으로 보고 느껴주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을 담는 것이다. 미술을 통한 ‘소통’은 관객에게는 지적 즐거움을 부여하고, 감각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작품을 만나는 것은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다른
작품들을 대하는 것도 한결 흥미로울 것이다.
 

홍경택의 ‘개와 식탁’이라는 그림이 있다. 아, 이 그림은 실제로 볼 때 더 느낌이 온다.
화면은 약간 광택이 있는 느끼한 화면이다. 욕망을 연상하게 하는 서양식 과일들, 식탁과
의자가 주는 부유함 , 그리고 금방이라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짖어댈 듯한 개의
    모습이 그림의 재질과도 묘하게 어울린다. 맛있는 과일들이 탐스럽게
그려졌음에도 맛있게 보이기 보다는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이러한 장치들을 생각해보면 작가의 의도나
생각이 읽혀진다. 관객 혼자만의 생각이어도 좋고 작가와 생각이 달라도 소통은 소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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