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세상읽기] 창조적 천재에 대한 네 가지 신화

   
   
 
“내 사랑에게. 나는 다시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것 같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 들리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올해 아카데미상의 작품상 수상 후보로 오르내리는 영화 의 첫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f)는 위의 편지를 쓰고 4일 만에 자살했다. 그녀는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조울증(manic depression)에 시달렸지만, 병을 앓지 않을 때는 놀라운 글을 써냈고 매력적인 성격을 나타냈다.
실제로 정신병력이 있는 천재는 예술과 문학 쪽에 많다. 미술가 중에는 고흐, 칸딘스키, 르네상스 시기 독일의 화가 뒤러, 작곡가 중에는 슈만, 작가에서는 횔더린, 에드가 알렌 포우, 찰스 램, 에밀 졸라, 톨스토이, 모파상, 에즈라 파운드, T.S. 엘리옷, 버지니아 울프, 조나단 스위프트, 루이스 캐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헤밍웨이, 프랑스 시인 보들리에르, 그리고 철학자 중에는 쇼펜하우어, 니체 등이 널리 알려진 예이다.

창조적인 천재와 정신병의 관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론이 있다. 우선 천재의 업적은 “‘원자’의 배열을 흩트리고 이를 재배열하는 것”처럼 세상의 질서를 교란하고, 자신을 낳은 세상에 대해 반기(反旗)를 드는 것인데, 광인의 속성이 바로 이렇게 세상과 대립하고 이를 교란시키는 천재의 속성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달리, 자신의 내면 세계를 통찰력있게 응시해야 하는 예술적 천재성을 놓고 볼 때, 미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이러한 내면적 응시에 더 소질이 있다는 설명도 있다. 한 심리학자는 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마치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야생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예술적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것 이외에도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을 앓는 사람들의 사고에 보통 사람들은 관련을 맺기 힘든 단어나 개념 사이에 관련을 맺는 식의 “과다포괄”(over-inclusiveness)의 경향이 발견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속성이 창조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사고방식과 흡사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창조적 천재와 정신병을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더 많다. ‘영국 국민 전기'(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에 실린 1,030명의 영국의 창조적 천재를 분석한 연구는 이들 중 단지 4%의 사람만이 정신질환을 앓았고, 이 수치는 평균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650년부터 300년간 수백 명의 독일 천재를 분석한 또 다른 연구는 이들 중 평균보다 조금 높은 4.8%의 예술가와 4%의 과학자만이 정신질환(psychosis)을 앓았다고 분석했다. 천재성과 정신병의 관련을 부정하는 심리학자들은 천재 중에 정신병환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한가지 이유가, 천재들의 삶이 후대 사람들에 의해 샅샅이 연구되었고 따라서 보통 사람 같으면 주위의 눈에 띄지도 않을 작은 정신적 이상도 다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창조적 예술가와 과학자를 대상으로 창조성을 연구해온 정신과 의사 로텐버그(Albert Rothenberg)는 천재들의 사고와 광인의 사고에 표면적인 유사성이 존재하지만, 천재들의 건강하고 정열적인 사고는 ‘논리를 초월하는'(translogical) 것이고, 정신병자의 사고는 비논리적(illogical)인 것이라고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일축하고 있다. “중력장 속에서 떨어지는 사과는 가속 운동을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정지한 것이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력은 천재의 그것이지만, “나는 사람이자 동시에 사람이 아니다”는 정신분열환자의 진술은 (비록 전자와의 표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광인의 주절거림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반 고흐가 정신병을 앓았지만 병에 시달릴 때는 창조적이지 못했다는 사실, 뉴튼이 정신질환을 보였을 때 과학자로서 그는 아무런 업적도 못 남겼다는 사실, 슈만이 정신병에 시달릴 때에는 작곡에도 전념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창조의 과정이 건강하고, 의식적이며, 동기로 가득 찬 과정이고 정신 질환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예이다.

창조적인 천재들의 IQ는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얘기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이 주장은 프랑스 과학자 비네의 IQ를 미국에 도입해서 이를 일반적인 지적 능력과 창조성의 잣대로 만든 미국의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Lewis Terman)과 그의 학생 콕스(Catherine Cox)에 의해 1920년대에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콕스는 과거의 위인 300명을 선정해서, 이들이 만들어 낸 창조적인 업적을 가지고 이들의 IQ를 역산한 다음에, 이 평균이 160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문호 괴테의 IQ가 210으로 가장 높았고, 뉴튼의 IQ가 190에 달했다. 위인이나 천재가 되려면 IQ가 150은 넘어야 한다는 속설이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콕스의 연구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사망한지 오래 된 창조적인 위인의 IQ가 그들의 창조성을 기반으로 역으로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콕스의 연구를 지도한 터먼은 IQ 140이 넘는 미국의 청소년 1500명을 뽑아서 20년이 넘게 관찰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연구는 이들 1500명의 대상 중 단 한 명도 ‘창조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역설적인 결과를 보여주면서 IQ와 창조성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반도체를 발명해서 노벨 물리학상을 탄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소년이었을 때 IQ 140이 안 된다고 터먼의 관찰 그룹에 끼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미국의 저명한 창조적 과학자들 130명을 조사한 결과는 이들의 평균 IQ가 126임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지능과 창조성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요즈음의 연구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에 동의한다. 우선 IQ로 측정되는 능력이 수업을 잘 따라가고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지적 능력이라면, 창조성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이를 찾아내서 해결하는 능력에 가까우며, 따라서 IQ 테스트는 개개인의 창조성을 충분히 측정하지 못한다. 두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사람들 대부분은 평균보다 높은 IQ를(120 이상)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IQ가 120을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IQ와 창조성 사이에 단선적인 비례나 인과 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IQ가 150인 학생이 IQ가 120인 학생보다 더 창조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리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과는 IQ 테스트로 모든 학생의 능력과 창조성을 재단하려하는 우리의 교육 풍토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버림받은 천재의 전형적인 모델은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서술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에 고아가 된 레오나르도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어머니라는 여성의 사랑을 찾아 헤매다가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바로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라고 주장했다.

심리학자 더빈(Daniel Dervin)도 서양 근대 역사에서 ‘버려진 천재’의 놀랄 만한 목록을 제공한다. 13개월 되던 때 동생을 낳던 어머니가 죽은 후 재혼한 아버지와 새엄마의 무관심 속에서 병약하게 자란 데카르트는 결국 세상에 믿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불신과 의심에 바탕한 ‘고독함의 철학’의 창시자가 되었고, 유복자로 태어나 세살 때 어머니마저 재혼한 뒤에 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진 뉴튼은 사람들보다 텅 빈 무한우주를 더 사랑했으며,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네살 때부터 가족을 떠나 학교에서 생활하게 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역시 ‘보편적 공포’에 기반한 사회철학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더빈의 리스트는 계속 이어진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을 피해서 워즈워드의 시에서 행복을 찾았던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어린아이로서 한번도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 버나드 쇼(Bernard Shaw), 다섯 살에 아버지가 죽은 후 형제들과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아버지 자리를 놓고 경쟁한 니체, 자신이 방기되었던 경험을 ‘이방인’으로 표현한 카뮈(Albert Camus), 어릴 적 전쟁에서 죽은 아버지와 방기된 가족에 대한 좌절을 “작가의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왜 어릴 적에 버림받은 경험을 한 사람이 창조적인가? 더빈은 그 이유로 이러한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1) 세상에 대한 불신과 자신의 정신적 작업에 대한 강한 신뢰를 동시에 발전시킴.
   2) 자신과 타인에 대한 좌절과 만족을 번갈아가며 경험하면서 종종 상호 대립적인 카테       고리를 (예를 들어 정신과 육체, 자아와 타자 등) 창조적으로 종합하는 능력을 개발함.
   3) 타인보다 자기 혼자의 지적 능력에만 의존하는 독립성을 일찍부터 개발함.
   4) 지적 작업을 통해 어릴 적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려 함.

이러한 프로이트적인 설명은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지만, 더빈의 설명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로, 여기에는 어릴 적에 방기된 수많은 아이들 가운데 왜 이러한 극소수만이 창조적인 업적을 내는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창조적인 업적을 낸 사람들 중에 이렇게 방기를 경험한 사람들의 비율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 정도로 두드러지는가라는 것이다.
더빈과는 반대로 20세기 문학, 예술, 과학의 각분야에서 독창적인 업적을 낸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등 7명의 거장의 삶과 성격을 추적한 한 심리학자는 이들이 모두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은 지적인 활동에 높은 관심이 있었고, 그쪽으로 자식을 고무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어릴 적에 가족으로부터 적절한 자극을 받는 것이 창조적인 사람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창조성이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에서 출발하여 결국은 전통을 깨고 새로운 혁신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감정은 일종의 ‘주변성'(marginality)의 느낌을 제공하고 이러한 주변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해 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어릴 적에 충족하지 못한 부모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오이디푸스적인 구현이 아니라, 교육과 자기 훈련을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개발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심성의 개발이다.

창조적인 사람은 뇌가 크다, 천재는 뇌의 주름이 많다는 주장 등은 19세기의 사이비과학이었던 골상학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하나도 입증된 것이 없다. 아인슈타인의 뇌와 보통 사람의 뇌도 무게나 생김생김은 통계적 오차의 범위 내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창조성이 정신 노동을 담당하는 기관인 두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최근 쥐를 대상으로 한 신경생리학의 실험적 연구는, 쥐가 “머리를 쓰면 쓸수록” 쥐의 소뇌(cerebellum)의 신경세포의 시냅스의 수가 증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 번째로 30년간 바이올린을 켠 사람의 소뇌는 30년간 축구를 한 사람의 소뇌와는 그 뉴론의 네트웍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창조적인 업적을 내는 사람들의 활동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왜 항상 작은 전문분야에 국한되어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이유는 이들이 한 가지 분야에서 수십 년간 한 쪽으로 머리를 쓰다보면 소뇌의 뉴런의 네트웍이 한 가지 방식으로 형성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본적으로 복잡계(complex system)인 두뇌를 두고 생각할 때, 소뇌 뉴런 구조의 유전적인 작은 차이는 그것의 차별적인 발달로 인해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로 증폭될 수 있다. 제 3세계와 서구 빈민지역의 아동에 대한 연구는 두뇌발달의 결정적인 단계에서 영양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두뇌에 평생 고칠 수 없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를 야기함을 보여주고 있다. 두뇌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태어난 대로 가만히 있어도 천재는 천재로 큰다는 얘기가 아니라 좋은 자극, 제대로 된 교육, 환경 등이 작은 차이를 큰 차이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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