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의 젊은 논리] 월드컵 後

   
   
월드컵에 열광하던 나날도 지나가고 있다. 지구촌의 축제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광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킬 줄은 나는 예상하지 못 했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보자. 우선 근대화라는 것이 적어도 축구에서는 달성된 느낌이 들었다. 근대화란 어디에 있어도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즉 장소의 제약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 전통적·관습적인 것 즉 시간 밑에 퇴적되어
있는 것을 의심하고 합리적으로 검토하는 것 그리고 시간과 공간적인 거리를 단축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는
주장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세계화란 근대화의 극한의 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옳다면 축구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즉 세계화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예전에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의
대결이었고 남미 선수에게 유럽은 낯선 땅이었고 무대였다. 물론 유럽 선수가 남미에서 월드컵을 치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남미의 유명한 선수들은 거의 다 유럽 클럽에서 뛰고 있다. 유럽은 남미 선수에게
어웨이 경기를 하는 낯선 곳이 아니라 홈이나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아프리카 선수들도 대부분 유럽에서 뛰고 있다.
세네갈 팀은 주전 10명이나 프랑스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프랑스 팀과 세네갈 팀의 대결은
프랑스와 세네갈의 대결이 아니라 프랑스 리그 팀간의 대결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오히려 프랑스 팀의 주전 선수들이
이탈리아나 영국에서 뛰고 있으므로 세네갈 팀이 더 프랑스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세계화이다. 이제 더
이상 신비의 팀은 없다. 1966년 북한 팀이 영국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북한은 신비의 팀이었다. 어느 누구도
세계 무대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런 팀일수록 촌스럽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한국도 그런 팀에 속하는데
해외에서 뛰는 선수는 몇몇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축구에서 아직 세계화의 물결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프랑스의 지단, 포르투갈의 피구, 브라질의 카를로스가 함께 뛰고
있다. 일년 아닌 몇 년 내내 같이 뛰는 동료들인데 4년에 한 번 팀을 달리하여 시합을 한다. 이것이 지금의
월드컵이다. 우리는 아직 세계 축구의 변방에 있는 것이다. 16강에 오른다고 해서 세계 축구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우리 프로 리그에서 뛰거나 우리 선수들이 유럽 리그에서 뛰게 된다면 좋은 의미든
아니든 세계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응원 열기는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생각해 볼 점도 있다. 붉은 악마는 축구를 좋아하여
생긴 자발적인 집단이다. 즉 축구사랑이란 공통의 취미를 근간으로 하여 결성된 모임인 것이다. 이런 모임은 세계화
시대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학자들은 분석한다. 즉 축구를 사랑한다는 것에 완고하게 집착함으로써 다른 여러 차이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화 시대에는 모든 것이 보편적으로 변해 간다. 의식주 모두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민족 고유의 것은 사라지거나 무시되어 간다. 이에 대한 민족적인 차이의 중 하나에
집착함으로써 다른 것들의 보편성을 눈 감아버리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사를
떠올려보자.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머리 때리는 것만은 못 참아” 머리에 완고하게 집착함으로써
여타의 것에 무관심하게 되는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영어 사용 등 여러 가지에서 보편성을
강요받고 있다. 어떻게든 대응해야 하는데 과제가 너무 무겁고 크다. 이때 축구라는 것에 집착함으로써 다른 것은
무관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축구사랑이라는 애초의 취지에서 벗어나 붉은 악마를 비롯한 온 국민의 구호가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그냥 축구를 사랑하면 족할 것인데 이제는 국가 차원의 애국심으로 비화하였고 그
열기 내지 광기가 전 국토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눈 감아버리고 싶은 보편적인 세계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맨눈으로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을 ‘대한민국’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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