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의 젊은 논리] 장상 총리 임명 부결의 주범은 혹시 ‘가부장제의 최면’?

   
마 전 최초의 여성 총리를
꿈꾸었던 장상 총리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심지어는 술자리에서 여성들에게
봉변(?)을 당한 남성들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은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어느 술자리에서 이 얘기가
나왔기에 국회의 결정을 두둔하면서, 이제 인사청문회 제도가 무언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별 생각 없이 말했다가,
평소에 온화하고 자애로웠던 여자 후배에게 집요한 추궁과 공격을 받은 것이다. 술기운에 막 내뱉은 말이겠지만,
그 친구는 나중에는 급기야 “지놈들은 뭐가 더 깨끗하다고 반대를 해! 장상이 안 된다면 지놈들도 국회의원직에서
당연히 쫓겨나야지. 그 시절에 부동산투기 안 한 사람이 있고, 아들 군대 안 보내려고 힘써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냐?” 면서 거의 악을 쓰듯이 고함쳤다. 취중진담으로 인해 빚어진 이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하려는
필자의 약삭빠른 사과와 이에 동의하는 남성동지들의 음흉한 후원에 힘입어서 그 사태는 다행히 진정되었지만 필자에게는
반성을 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론 그 후배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이 과연 장상씨 보다 더 깨끗한가 하는
반론은 형평성을 주장하는 측면에서는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장상씨도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비판자나 반대자가 문제 있다는 것을 들어서 비판받는
사람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이른바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차라리 장상씨를 부결시킨
자격요건을 국회의원에게도 엄격히 적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나아가서 그런 기준을 적용해서
사람을 제대로 뽑지 못한 유권자들을 원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렇다고 물론 자기 허물에는 관대하고 남의 티에만 공명정대한
듯 행동하는 일부 의원들을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예수처럼 양면 전략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성서에 보면 간음한 여인이 붙잡혀 나와서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할 때 예수가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고 말하지 않는가. 얼굴 두꺼운 사람이 많은 요즘 같으면 아마
사람들이 “그래 나 죄 있다, 어쩔래”하면서 돌을 던질지 모르지만 순진했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고 한다.

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물러난 다음에 예수가 간음한
여인에게 “그렇다고 당신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니 가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따끔한
한 마디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자칫 양비론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양비론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고 양쪽이 다 문제가 있을 때는 양비론이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음으로 ‘그 시절에는
대부분 그 정도는 다 했다’ 식의 주장도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이런 식의 논증은 우리가 특히 일제 하
친일 지식인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보는 익숙한 논증이다. 대부분 다 그렇게 했다면 모두 잘못한 것이지, 대부분
다 그랬다는 것이 그 행동을 변호하고 정당화할 근거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주장은 다수의 의견이나
행동을 근거로 어떤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대중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고, 혹은 누구나 그러는 것이
관례였다는 점을 들어 잘못된 관행을 합리화하려는 ‘관례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러나 필자는 그런 후배의
주장이 가진 문제보다 그 문제에 접근하는 필자의 시각이 혹시 ‘가부장제의 무의식적 최면’에 걸려있지는 않는가
하는 반성을 다시 해 보았다. 그리고 표결이후 양 정당에서 부결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한결같이 당황해하고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대다수가 남자인 의원들도 ‘가부장제의 최면’에 혹 영향 받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도 가져보았다.

실 오늘날 남성 우월적인 사고나 담론이 의식적 차원에서는
지탱되기 힘들다. 남성 우월을 의식적 차원에서 종교적으로, 혹은 생물학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정당화해보려는
노력을 역사적으로 많이 해왔지만 오늘날 계몽된 비판 이성의 잣대 앞에서는 다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구체화되는 제도의 차원에서도 역시 내어놓고 남성 중심적인 제도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러나 문화의 차원,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욕망과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아직도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는 가부장제의 유령이 강하게 꿈틀거리고 있고, 남성우월주의는
‘가부장제의 최면’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부터 ‘나가서는 민주투사, 집에서는 독재자’
식의 천박한 가부장적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은폐되고 세련된 형태로 ‘가부장적 최면’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섬뜩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이 가부장제의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초인이 되고자 노력을 해보지만 아직까지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긴 영화 ‘매트릭스’ 마저 ‘가부장제의 최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메시아 네오는 남자고 여자인 트리니티는 그를 메시아로 부활시키는 사랑의 매개물로만 그려지고 있으니,
과연 이 그물을 벗어날 수 있을지 한숨만 나온다.

부장제의 최면을 제공하는 매트릭스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아직은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진 않지만, 우리를 해방시켜줄 ‘네오’를 무턱대고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남자 동지들은 바로 가까이의 여성동지들을 ‘네오’로 삼아 욕먹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여성 동지들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머뭇거리지 말고 욕하기를 주저말기를. 단 여성 자신 안의 <가부장적 최면>과도
끊임없이 싸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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