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세상읽기]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와 데카르트

 
 
   
지금부터 약 400여년 전, 유럽에서는 고대의 회의주의
철학이 부활하면서 회의주의(懷疑主義)가 풍미했었다. 이 회의주의자들은 참된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했다. 인간의 감각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감각에 기초한 과학과 철학 역시
믿을 수 없고, 기하학과 같은 수학은 검증되지 않은 공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고, 논리학에서 사용되는 삼단논법도 전제의 참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회의주의에 맞서서 절대적으로 참인 지식, 혹은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수학으로 표현되고 실제 세상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은 믿을만한 지식”이라고 주장했지만, 믿을만한 지식을 가지고 회의주의를
당해낼 수 없음은 자명했다. 지식의 근거를 부정하는 회의주의자들을 논박하기 위해서는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지식을 발견해야 했던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
Descartes, 1596-1650)는 절대적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을
찾기 위해서 회의주의자들의 방법을 빌었다.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감각을 부정했고, 외부 세상의 존재를 부정했고, 자신의 육체의
존재를 부정했고, 하물며 신의 존재까지도 부정했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이거나
환상이거나 악마의 장난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끊임없는 의심의
과정에서 그는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나왔다. 이 명제는 거짓일 수 없는
명징한(clear and distinct) 것이었다. 이 명제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진리의 지식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때의 내가 육체로서의
내가 아니라, 생각하는 어떤 것, 즉 순수한 정신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육체의 존재는
외부 세상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쉽게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었지만, 생각하는 정신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는 나는 순수한 ‘정신’이자 ‘영혼’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육체는 무엇인가? 데카르트에게 그것은 복잡한
시계나 자동인형과 같은 기계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운동을 모두 복잡한
기계적 작동으로 설명했다. 인간이 자동인형과 다른 것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데카르트는 1629년부터 『세계』라는 야심찬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은 원래 우주와 빛의
본질에 대한 1부와 인간의 몸에 대한 2부, 그리고 영혼에 대한 3부로 구성되었다. 1부와
2부의 집필을 끝냈을 무렵에 데카르트는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았다는 얘기를 접하고 책의
집필과 출판을 포기했다. 1부와 2부는 그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지만 영혼에 대한 3부는
결국 씌어지지 않았다. 그가 군데군데에서 영혼에 대해서 언급한 것 중에는, 영혼이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할 것이라는 얘기와 동물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계와 다름없다는
얘기도 있었다.

2029년의 미래의 세상을 배경으로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에는
두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공안 9과에서 특수 임무에 종사하는 사이보그 쿠사나기
소령과 공안 6과에서 첩보를 위해 만들어진 ‘인형사'(Puppet Master)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사이보그 쿠사나기는 몸을 가지고 있고 ‘고스트'(ghost)를 부여받았지만,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자신이 대체 무엇인지, 자신이
살아있는지, 자신이 인간과 같은 생명체인지, 자신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반면 인형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자신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체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정치적 망명이라니!

육체가 있지만 영혼의 존재를 의심하는 쿠사나기와 정신의 존재와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신하지만 육체가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 인형사. 이 두 캐릭터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영화의 말미에서 이 둘은 합일해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광대한
네트 속에서 살고, 자손을 번식하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새로운 생명체로.

인간이 물질적인 육체와 정신적인 영혼이라는 서로 다른 개체로
이루어졌다는 “심신이원론”은 데카르트이래 오랫동안 서구 사상을 지배했다.
육체와 영혼은 마치 열차 속의 말(horse)처럼, 배 속에 있는 선원처럼 서로 다른
것이었다. 육체는 복잡한 기계에 불과했으며, 영혼은 그 기계를 사람이 되게 하는 인간성의
중핵이었다. 육체는 껍질(shell)이었으며, 영혼은 그 껍질 속에 어딘가 존재하는 ‘고스트’였다.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스스로 작동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사이보그를 만들면, 우리는 그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사이보그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주제는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테마가 되었는데, 『공각기동대』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블레이드러너』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이를 뛰어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지금은 거의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는 정신이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것에서 발현되거나 수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각기동대』 『블레이드러너』 『매트릭스』 『AI』와 같은 공상과학 영화들은 하나같이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을 골격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몸이 없는 프로그램이 생각을 하고,
육체를 가진 사이보그가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회의하는 식이다. 이 영화들은 미래의 사회와
삶을 묘사하지만, 수백년 전의 철학에 기반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인간이 진정으로
생각하는 기계나 인간과 똑같은 사이보그를 만들 때, 인간은 다시 데카르트가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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