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세상읽기] 대학 교수가 월드컵에서 배울것은?

   
   
한달 동안의 월드컵 게임이 막을 내렸다. 그 동안 태극전사들 정말 잘 싸웠고,
4700만의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연호하면서 하나가 됐다. 나처럼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지 않던 사람들마저 거리로 내몰았던 열기는 월드컵 4위라는 경이적인 기록과 함께 당분간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히딩크 리더쉽
이번 월드컵의 경이로운 기록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히딩크 감독의 리더쉽을 극찬한다. 기업인은 물론 정치인까지도 히딩크 감독의 리더쉽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나도 히딩크 감독의 역량을 높게 산다. 그렇지만 히딩크 감독이 ‘국제적인'(global) 축구와
과학적인 훈련을 강조했다면, 이러한 감독의 의도가 120% 관철된 데에는 그것이 우리 선수들의 ‘한국적인'(local)
정서와 절묘하게 궁합이 맞았다는 이유가 있었다.
 
허를 찌른 히딩크의 분석
지금은 상식과도 같은 얘기가 되었지만, 한국 선수팀에 대한 히딩크 감독의 분석은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체력과 정신력은 좋지만, 개인기가 부족하다”는 기존관념을
뒤집고,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개인기에서 크게 뒤지지 않지만, 체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1년 6개월 동안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한 강훈련이 계속됐다. 히딩크 감독이 오기 전에 한국
선수들은 4백 미터 운동장을 도는 구보로 체력을 다졌지만, 히딩크의 훈련 방식은 색달랐다. 축구 선수들은 4백
미터를 계속 뛰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20미터를 전력으로 뛰고, 5초 쉬었다가 또 20미터를
뛰는 “셔틀런”을 120회 반복했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아닌 축구선수에 적합한 체력을
연마한 것이었다.
 
토탈 축구
히딩크 감독은 “토탈 축구”를 내세웠다. 때에 따라 공격수도
수비에 가담하고 수비수도 공격에 가담하는 것은 물론, 포지션을 바꾸어도 새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선수 개개인을
전천후 플레이어로 탈바꿈시켰다. 여기에 맡은 포지션을 잘 수행하는 전문성이 가세되었다. 이번 월드컵 게임에서
히딩크의 용병술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이러한 용병술은 선수 개개인이 한 포지션을 잡았을 때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기초와, 작전이 바뀌면서 포지션을 이동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합쳐진 결과였다. 작전훈련은
선수 개개인이 전체 경기의 흐름을 볼 수 있도록 선수들의 시야를 넓혀 주는 데 주력했다. 무리한 슛보다는 패스를,
무조건 밀고 들어가기보다는 후방을 잘 활용하다 공간을 만드는 등, 한국 축구는 훌쩍 자랐다.
 
 
LOCAL
히딩크가 한국 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했던 것이 선수들 사이의 위계와 대화의
부재였다. 이는 한국적인(local) 문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열 살도 더
차이나는 이질적인 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에서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고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고, 선수들
사이의 대화는 “명령-복종”의 군대식이었지 수평적이고 평등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감독의
명령이나 자신의 판단과 무관하게, 그라운드에서 나이 어린 선수들은 “형님”들의 말을 듣고
눈치를 보아야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점심 식사를 할 때, 나이 많은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어린 선수들은 어린
선수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식사 도중에 서로 대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히딩크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능력과 팀웍, 대화와 소통이 가장 중요한 국가대표팀이 엄격한 위계로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이 많은 선수와 나이 어린 선수를 섞어서 밥을 먹게 하고, 밥을 다 먹은 후 적어도 한시간 동안은 자리에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게 한 것은 소통을 방해하는 위계를 깨고, 대화의 네트웍을 만들기 위한 술책이었다.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연공서열이 없었다. “경기장에서 존댓말을 쓰지 말고 ‘형’이라고
부르지 마라”는 감독의 명령은 우리의 정서와는 한참 어긋난 것이었지만, 점차 선수들에게 수용되었다.
이러면서 나이와 관계없이 경쟁이 자연스럽게 유발되었다.

 
GLOBAL+ LOCAL
과학적인 훈련과 수평적인 경쟁은 국제적인(global)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 팀을 4강에 올려놓기 힘들었을 것이다. 4강 진출이라는 기적에는 또 다른 한국적인(local)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한국 선수들의 투혼, 열정, 헌신, 강훈련을 참고 이겨내는 인내심이었다. 히딩크가 한국
팀을 분석한 후 선수들간의 대화에 100점 만점에 20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준 데 반해서, 선수들의 내적
동기부여에는 100점, 헌신도에는 9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 선수들은 소위
‘헝그리(hungry)’ 정신과 투지가 넘치던 선수들이었고, 감독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히딩크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백억대의 연봉을 받는 유럽의 스타 군단에 이런 강훈련을 요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안타까운…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는 한국 학생들을 만나보면 그들의 정열과 헌신, 학구열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새벽에 나와서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고 책을 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가끔은 이들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 성과를 잘 엮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자기 것으로 하고, 또 더 나아가 이를 발전시켜서 논문의 형태로 학계에 기여해야 하는데, 투입된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누구보다 본인 자신이 좌절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이 사실과 이론을 외우게 하고, 문제를 주고 풀게 하는 데까지는 학생들을 잘 훈련시키지만,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이에 대한 해답을 끈질기게 추구하고, 그 문제와 해답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가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
같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는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선수와 감독, 학생과 선생
월드컵을 관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한국 선수들의 동기부여, 헌신도,
투지가 높은 것처럼 학문을 꿈꾸는 한국 학생들의 동기부여와 투지도 만만치 않다. 한국 선수들은 한국적인 것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한 감독과 만나서, 기초와 유연성을 키우고 여기에 경기 전체를 보는 감각을 개발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학생들도 이들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한 좋은 선생과 만나서, 튼튼한 학문적 기초와 이에
기반한 외연을 넓히고, 이를 토대로 지금 학문의 세계에서 의미있는 문제에 대해 좋은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는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월드컵에서 배운 교훈
이번 월드컵을 위해 선수 훈련, 원정 경기와 대표팀을 위한 인프라에만 300억이
넘는 돈이 씌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7백만 거리 응원단의 환호와 전국민의 기(氣)가 모였다. 월드컵 4강도
짜릿했지만, 노벨 물리학상, 세계 각개국어로 번역되는 저서를 내는 국내 철학자들도 우리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다. 이에 근접하려면 대학 교육과 이를 담당하는 선생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동시에 사회의 관심과 물적·문화적
후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나같은 대학인이 월드컵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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