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세상읽기]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얼마 전에 <미래의 얼굴> 10월호에 실린 이어령 교수의 대학시절 회고담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10년도 넘게 연락이 두절되었던 옛 대학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지금 몬트리올에
와 있고 내일 토론토에 잠깐 들리는데, 토론토에서 전화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그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토론토의
한 맥주집에서 새벽이 오는 것도 모르고 얘기를 나누었다. 나나 내 친구나 소위 학교의 모범생들은 결코 아니었고, 또 우리
주변에는 전공과는 관계없이 철학, 과학, 문학, 사회, (그리고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논하면서 술마시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다들 잘 자리잡고, 열심히, 그렇지만 넉넉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친구가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즐거웠다.
  대학을 다니면서 전공과는 무관한 책도 많이 보고, 친구들과 토론도 자주 했다. 지금은 그때
읽었던 책의 내용은커녕 제목도 가물가물하고, 당시 어린 나이에 혼자서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다 짊어진 양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학사로 전공을 바꾸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학원을 다니다가 학문을 업으로 삼는 학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돌이켜보니, 책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독서와 토론을 통해 대학 시절에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서 이런 문제들을 나름대로 조금씩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않았나 생각이 들곤 한다.
  대학 시절 들었던 강의 중에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도 몇 있다. 그렇지만, 교수의
이름은 물론 내가 그런 강의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수업이 더 많다. 내가 좋아하던 주제에 대한
강의가 더 깊은 인상을 남겼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수업시간이나 세미나 시간에 교수와 학생 사이에 (또는 학생들 사이에)
질의응답이나 토론이 활발했던 수업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수업시간에 강의를 통해서 20%를 배우고 질의응답과 토론을 통해서
80%를 배운다는 얘기가 있는데, 내 경험으로 이 얘기는 참이다.(의심이 가면 지난 학기에 열심히 듣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했던 강의 내용을 지금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길…)
  나는 성격이 좀 소심한 편이어서 수업시간에 질문을 활발히 하던 학생은 아니었다. 그리고
질문을 독려하는 교수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내가 청강을 하던 인문학 수업 시간에 이런 적도 있었다.
한 학생이 “교수님, 지금 말씀하신 … 중 …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무슨 뜻인지 다시 설명해 주십시오”라는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교수의 답이 ‘걸작’이었다.

“야, 그건 학부생은 몰라도 돼. 네가 대학원가면 알게 되니까 그런 거 수업시간에 질문하지마.”

나도 다른 학생들도 그 이후에는 열심히 받아 적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수업이 무엇에 대한 수업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다만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그 때 “내가 나중에 혹시라도 교수가 되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먹었다는 것이다. 자화자찬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학생들이 마음놓고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수업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수의 강의는 동영상으로 대체될 수도 있지만, 질문을 유도하거나, 질문에 대해 적절하고 사려 깊은
답을 얘기해주거나, 질문을 토론 주제로 돌려서 짧은 토론을 만들거나, 좋은 의견을 바로 칭찬하고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은
“실시간(real-time)”의 면대면(face-to-face) 수업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면대면 상호작용과 토론이 가미된 좋은 수업은 학생들로 하여금 창조적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예전에 썼던 글에서 나는 한국의 인문학이 지금까지 이런 사유능력을 키워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학부제 실시 이후에 학생들을 다 ‘실용적’인 분야로 뺏기고 위기를 맞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내 얘기는 ‘신자유주의의 음모론’을 선호하는 인문학자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대학이 창조적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일할 수 있는 시민을 키우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는 그 자체가 충분히 ‘실용적’이라고 본다.
  창조적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남의 글이나 말에서 꼬투리를 잡는 것과는 다르다.
이는 일종의 ‘정신의 훈련’인데, 효과적인 훈련을 위해서는 대학교에서의 수업, 독서, 토론이 지식의 전수나 암기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유 능력의 형성과 발전을 목표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강의는 교수가 던진 질문을 수업을
통해 함께 해결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소그룹 세미나를 통해서 교수는 동일한 텍스트를 읽고도 그것을 훨씬 더
깊이 있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1) 텍스트의 내적 일관성에
주목하면서 독서를 한다.
  앞에서 한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부합되는지, 주장들이 증거에 의해서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지, 주장을 하기 위해 엉뚱하거나 설득력 없는 비유를 드는 것은 아닌지, 과도한 일반화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충분히 주의하면서 텍스트를 읽는다.

2) 저자가 얘기하는 데이터(data)나 사실(fact)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데이터나 사실을 비교해본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판명이 나면, 이 기회를
내 지식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는다. 텍스트를 쓴 저자의 잘못이 자꾸 드러나거나 결정적인 사실을
잘못 전달하고 있다면, 그 텍스트의 주장 자체도 의심을 가지고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항상 질문을 던져가면서 읽는다.
왜 저자는 여기서 이런 얘길 했을까? 이 챕터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이 개념은 흥미로운가?
새로운가?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새롭게 배웠나?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큼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지식에 바탕해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저자의 주장이나 해석에 그 사람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포함된
것은 아닌지 따져본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무척 조심스러워야 하는데, 그렇게 따지는 과정에
내 선입견이나 편견이 역시 포함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저자의 주장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느껴지지만 내가 설득되지
못할 때,
우선 저자와 내 사이의 차이가 세계관이나 취향의 차이인지 살펴본다.

그리고 다시 이 차이가 논리적인 추론과 토론을 통해서 좁혀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경험’,
‘의미(meaning)’, ‘취향’의 차이라도 서로 소통하고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6)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기 힘들거나 뚜렷한
이유나 근거 없이 텍스트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 때에는 일단 조금 시간을 가져본다.
더 많이
알게 되었을 때, 이런 문제가 봄눈 녹듯이 쉽게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럴 때
꼭 자세한 메모를 해 둔다. 인간의 기억처럼 신뢰하기 힘든 것도 없다.

7) 텍스트를 통해서 무엇이 새롭고 무엇을 배웠나를 항상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새롭게 읽고 새롭게 배운 것과 이미 알던 것 사이에 “잡종적인 연관”을 만들어본다.
그럴 경우에 뜻하지 않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이 축적될 때, 창조적인 사유가 싹틀
수 있는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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