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세상읽기] 잡종 = 발명

   
   
 

20세기에 탄생한 발명품 중에 그 중요성에서 1-2위를 다투는 것이 1949년
벨연구소의 쇼클리(William Schokley) 연구팀이 발명한 반도체 트랜지스터이다.
벨소리가
나오는 생일카드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트랜지스터 없는 세상은 이제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
반도체 트랜지스터는 당시 전기제품에 널리 사용되던 3극 진공관을 대체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 끝에 만들어졌다.
트랜지스터는 3극 진공관과 기능이 같았지만, 훨씬 더 작고 간편했으며 전력 소모가 적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나중에 집적회로(IC)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천-수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작은 칩에 집어넣을 수 있게 됨에 따라 트랜지스터는
극소전자 혁명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한 개의 칩에 넣고 있다.
 
그럼 트랜지스터의 모체가 됐던 ‘3극 진공관’은 어디서
왔을까? ‘3극 진공관’은 미국의 기술자 드포리스트(Lee de Forest)가 1906년에 발명한 것이었다. 드 포리스트는 마르코니의 과학 자문을 맡고 있던 플레밍(J.A. Fleming)의 2극 진공관에서
힌트를 얻어, 2극 진공관의 음극과 양극 사이에 그리드(grid)를 하나 더 집어넣음으로써 진공관 속에서 움직이는
전자의 흐름을 통제하는 3극 진공관을 만들었다. 플레밍은 생각하지 못했던, 이 그리드에 대한 아이디어는 당시
물리학자들이 음극선관(cathode-ray tube)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음극선(즉 전자)의 흐름을 통제하던
실험으로부터 얻어졌다. 드 포리스트의 발명은 기존에
존재하던 2극 진공관과 물리학자들의
실험의 잡종으로 가능했던 것인데, 이는 드 포리스트 자신이 1900년에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학자
출신의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플레밍의 2극 진공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극 진공관은 전구에서 나타나는 ‘에디슨 효과’라는
독특한 현상을 연구하다가 만들어졌다. 에디슨 효과에 대해서 오래 전에 연구를 한 적이 있었던 플레밍은, 마르코니의
과학 고문으로 임명된 다음에 에디슨 효과가 무선전신에서 수신기에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닫고 2극 진공관을 발명했던
것이다. 즉, 2극 진공관은 에디슨 효과에 대한 플레밍의 과학적 연구 경험과 무선전신에 대한 관심이 합쳐지면서
발명되었다.

에디슨 효과가 나타났던 전구는 ‘에디슨 전력 시스템’의 일부였다. 에디슨 전력 시스템은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에디슨이 전기(electricity)라는 비교적 새로운 현상에 이미 존재하던 가스
시스템(천연 가스를 집집마다 공급해서 불을 밝히던 기술)의 원리를 적용해서 만들어 낸 발명이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서로 다른 요소들이 창조적으로 결합하면 새로운 발명품이 만들어진다.
물론 발명가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도토리 세 알에 장미꽃 한 송이’를 넣어서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치면 뚝딱 새로운 발명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선호한다. 창조성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이 아닌 이상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하늘 아래 도깨비 방망이 식의 새로운 것이라곤 없다. 모든 기술적 발명, 과학적 발견, 철학적 사상은 이미
존재하던 기술, 이론과 실험,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공상 속에서 만들어냈던 가상적인 동물인 용(龍)이나
봉황조차, 자연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특징들을 합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일부 사람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UFO가 19세기 말엽에는 배 모양을 하고 있었다가, 20세기에는 접시 모양을 하게 된 데에도 다 이유가 있다.

전신을 처음으로 발명한 미국인 모스(Samuel Morse)는 부호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연명하던 화가였다.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전신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미국에 돌아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한 끝에

전신을 발명했는데, 그가 발명한 첫
전신은 화가가 화실에서 쓰는 캔버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마르코니는 세계 최초로 무선전신을 만든 발명가였다.
그가 만든 무선전신은 유선전신의 키, 유도 코일, 모스 부호기, 리기(Righi) 송신기, 코히어러 수신기,
안테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중 마르코니가 처음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안테나 하나밖에 없었다.
모스와 마르코니의 독창성은 무에서 전신, 무선전신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기존의
기술을 결합해서 쓸모 있는 발명품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기존의 기술들을 얼마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섞는가에 달려있다. 창조적인 이론, 사상, 발명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기존의 이론, 사상, 발명을 섞었을 때, 아니 보통 사람들은 섞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혼합하는 데 성공했을 때 만들어진다. 창조성은 보통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다.

   
산업혁명의 동력이 되었던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은 광산에서 물을 퍼내는 데 사용되던 뉴커멘(Newcomen) 증기기관을 개량한 것이었다.
뉴커멘 기관에는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피스톤을 끝까지 밀어 올리기 위해서는 실린더를 최대한 뜨겁게
해야했고, 그리고는 피스톤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실린더를 가능한 한 차게 식혀야 했다는 것이었다. 즉, 실린더를
가열해서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을 들어올린 뒤에, 실린더 안에 물을 분사해서 이를 식힘으로써 피스톤을 떨어뜨리고,
이 식은 기관을 다시 가열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열의 낭비가 심했고 효율이 낮았다. 과학 기기 제작자였던 와트는
이 문제를 놓고 몇 년을 씨름했다. 어떻게 증기기관의 실린더를 차갑지만 뜨겁게, 뜨겁지만 차게 유지할 것인가?
그러다 그는 1767년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 그것은 피스톤이 움직이는 실린더와 더운 증기를 빼내서
식히는 콘덴서를 두개로 분리해서, 실린더는 항상 덥게 반면에 콘덴서를 항상 차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기관의 효율이 증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트의 증기기관은 광산과 공장에 쓰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기차와 기선에도 사용되었다. 산업시대의 첫 발을 연 발명품은 이렇게 ‘두개의 양립 불가능해 보였던
조건을 한 기술에 융합함으로써’ 가능했다.

마르코니가 무선전신을 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출원했던 두개의 특허 때문이었다. 그 중 하나는 무선전신에
대한 첫 특허였고(1897년), 두 번째는 1900년에 승인이 된 ‘7777 특허’였다. (우연히 특허 번호가
7777번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르코니의 7777 특허는 소위 닫힌 회로와 열린 회로의 장점을
합친 것이었다. 당시 무선전신에서 쓰이던 닫힌 회로는 공조(tuning)가 좋지만 송신거리가 짧았고, 열린
회로는 멀리 송신할 수 있었지만 공조에 약했다. 멀리 송신하면서도 공조가 좋은 회로를 만들 수는 없을까? 당시
마르코니만이 아니라 무선전신에 뛰어든 기술자들, 당대의 최고 물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연구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 둘의 결합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마르코니는 오랜 노력 끝에
자신이 발명한 ‘지거(jigger)’라는 코일을 사용해서 이 두 회로를 결합함으로써 둘의 장점만을 가진 새로운
회로를 만드는 데 멋지게 성공했던 것이다.
   

발명만이 아니라 새롭고 독창적인 지식도 이미 존재하던 지식들을 새롭게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발명가도 학자도 이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들은, 자신의 발명이나 지식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자기가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더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고 하면, 마치 ‘짜집기’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창조성’이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에 우리는 진정한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마저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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