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학 ‘과잠’ 진단서

지하철을 타면 일명 ‘과잠’ 패밀리를 익히 볼 수 있다.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한 학번생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려주는 ‘과잠’의 진실. 조선 시대 호패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학벌 논란부터 ‘과잠’ 베스트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과잠’에 관한 꽤 총체적이고 그럴듯한 브리핑.

조선시대 호패의 일환인가? ‘과잠’ 학벌 논란

‘과잠’Varsity jackets의 역사는 꽤 굵직하다. 지난 186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야구팀에서 시작된 이후 한국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3~4년 전부터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과잠’은 명문대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기에, 초반엔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당시 자신이 명문대생이란 걸 알리는 것은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잠’ 논란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려대 다니는 사촌 형의 과잠을 빌려서 입고 수능을 보러 간’ 재수생의 이야기는 대표적인 일화라고 볼 수 있다. 소위 SKY라고 불리는 대학의 ‘과잠’은 ‘설잠’, ‘연잠’, ‘고잠’ 등 약칭으로 불리면서 인터넷 중고 시장에서 인기리에 거래되기도 한다. 심지어 온라인 입시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대학까지 ‘과잠’을 입을 수 있느냐’란 이야기가 횡행하고 있다. Y 씨(H대, 23세)는 “실제로 자부심이 있는 학교 학생들은 ‘과잠’을 잘 입지만, 그 외의 학교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과잠’을 입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그대

매 학기 학교 게시판에는 ‘과잠’ 단체 구입 안내문이 붙는다. 한 벌의 ‘과잠’은 낮게는 4만원, 높게는 9만원 대로 책정된다. 대학생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대다수 학생은 ‘과잠’을 자발적으로 구입하는 편이다. 대학 소속감을 부여하니까, 갓 입학한 새내기에겐 일종의 자부심이 되는 것.

그러나 일부 학과는 새내기에게 ‘과잠’을 강요하기도 한다. 은근히 혹은 반드시 형태도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신입생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때아닌 논란을 빚기도 한다. 작년 3월, 경기도 수원의 모 대학 단과대학 학생회에서는 ‘과잠’ 가격을 포함해 4년 치 학생회비를 36만원으로 책정한 바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지방 모 사립대 12학번이라고 밝히면서 “과잠도 사고 싶지는 않지만, 사야 한다니까 참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내기의 의사는 완전히 무시됐다. 아예 의사 표출조차 할 수 없다.”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과잠’은 패션 테러리스트의 구세주가 될까?

2013년 ‘과잠’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캠퍼스룩의 대명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과잠’을 입는 학생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면서 학교별, 학과별, 동아리 별 개성 넘치는 ‘과잠’ 배틀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각 학생은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타 학교와의 차별성을 위해 호피나 얼룩 패턴을 도입하거나 금장 장식 같은 다른 디테일로 승부수를 걸었다.

때론 학교별 특징을 살려 ‘과잠’을 제작하기도 한다. 한국외대는 전공학과별 언어를 사용해 과잠에 새기기도 한다. 학내 다양한 외국어 전공 학과가 있다는 점을 ‘과잠’에 응용한 것. 반면, 여대에서는 공학과 달리 핑크나 민트 등 파스텔톤 컬러를 사용하기도 한다. 남학생이 없어 여자들이 선호하는 화사하고 밝은 컬러를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학생은 왜 ‘과잠’에 열광할까? H 씨(S대, 23세)는 과잠을 입는 첫 번째 이유로 ‘실용성’을 꼽았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편리하고 보온성이 뛰어난 데다가 4년 내내 입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입을 옷이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대학생은 ‘과잠’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과잠은 빈곤하고 귀찮고 게으르기 마지않는 대학생의 ‘잉여생활’을 보완하는 만능 교복인 셈이다.

‘과잠’은 본래 베이스볼 점퍼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아이템과 매치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스니커즈나 팬츠와 함께 심플한 캐주얼 룩을 완성할 수 있고, 스커트나 구두와 어울려도 믹스앤매치 룩의 표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교복의 강점인 자신의 스타일 수준을 감출 수 있으니, 이변이 없는 한 ‘과잠’의 인기는 뜨겁든 미지근하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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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여행 갔을때 아이비리그 투어하면서 하버드 과잠 사려고 줄섰던 부끄러운 기억이...ㅋㅋㅋ
    다음 기사엔 학교별/학과별 과잠배틀 패션쑈 한번해보면 어떨까욤?
  • 안지섭

    역시 홍대다운 과잠이네요~ 저희 학교는 과 한복을 한번 추진해봐야될 것 같아요!!
  • 과잠 입고 싶은데 차마 입고 다닐 수가 없어요... ㅋㅋㅋ
  • 오 색다른 과잠!!
    요새 과잠들이 너무 비슷해서 백팩 매고 지나가면 음 어느 학교지? 싶을 정돈데.. 개성 있네요!!
    저런 과잠은 그냥 패션 야구점퍼 같기도 하구 ~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던 게 과잠이었을 수도 있겠어요^^
  • 힘내

    요샌 정말 신기하고 예쁜 과잠리 많더라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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