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황재헌 연출가

“쉽지 않아요.” 공연예술 직업을 가진 대다수 인터뷰이의 공통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그 자리에서 끝없이 물질하는가?

황재헌 연출가는 <아트>와 <달콤한 나의 도시>, <썸걸즈> 등, 보는 이의 공감을 듬뿍 자아내는 보편적 인간사를 담아왔다. 이미 창 밖이 깜깜해진 시각에도, 퇴근할 시간을 늦게 잡아둔 그는 은은한 여유를 단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의 원천을 찾았더니, 바로 그의 일상 그 자체였다.

럽젠Q : 연출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교 때 연극반 동아리에서 연출을 맡았어요. 처음 입학했을 때는 그냥 재미 삼아 했어요. 그런데 점점 흥미를 붙이면서 졸업 후 한예종 연극원에 들어갔죠. 그 뒤 재학 중에 <아트>라는 작품으로 입봉을 하게 됐고요. 태국여행 중 서점에서 읽은 희곡 <아트>가 재미있을 것 같아 제작사에 찾아가서 연출하고 싶다고 졸랐어요. 일명 ‘정신줄’을 놨던 거죠.(웃음)

럽젠Q :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특이한 케이스가 아닌가요?

전 사실 경제학도 좋아했어요. 지금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뽑아내는 경제학적 마인드의 도움을 많이 받죠. 특히 연출은 선택이 중요할 때가 많거든요. 감각에만 의존해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연출이란 직업 자체가 아티스트와는 조금 다르니까요. 연출의 결과물만 봐서는 예술적인 작업이지만, 그 이면의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기회비용이나 미래 효과 등 여러 현실적인 것을 생각해야 해요.

럽젠Q : 연출가를 정의하면 어떤 직업이라 할 수 있나요?

공연 요소를 조직하고 관리하며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죠. 매니지먼트에 관련된 일도 많이 하고, 이에 더해 아티스트 같은 면도 필요해요.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한 단체의 리더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연출가는 크리에이티브한 감각과 예술적 성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직접 실현시키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리더십이나 협상 능력도 있어야 할 거고, 때로는 추진력도 있어야 하고••• 음, 술도 마실 수 있어야 해요.


럽젠Q : 연출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나요?

대부분 그래요. 프리랜서처럼 활동하면서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받아들이는 식이죠. 연출이 맘에 드는 작품을 공연화하겠다고 생각한 뒤 직접 기획 단계부터 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제작사에서 결정한 후 그 공연에 맞는 연출을 찾아요. 연출가 개인이 공연화를 추진하는 경우가 희박한 이유는 원작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거든요. 아무래도 저작권은 개인보다는 회사가 해결하기 용이하니까요.

럽젠Q : 연출가의 전반적인 업무가 무엇인가요?

크게 세 가지 파트로 나뉘죠. 사전 제작하는 기간은 구상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글과 디자인, 작품 전체를 예측하고 공연의 전반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과정이죠. 이때는 저 혼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요. 그다음이 실제 제작하는 연습 단계인데, 이때는 정해진 시간 동안 배우들과 연습한 뒤 디자이너들과 회의해요.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 때죠. 배우 파트와 디자인 파트를 모두 관리해야 하니까요. 공연이 무대에 오른 후에는 모니터링을 하면서 공연의 퀄리티가 유지되도록 관리해요. 연습한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도록 제어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게 생각나면 수정도 하고요.

럽젠Q : 대본 작업도 연출가가 관여하나요?

네. 작가가 없으면 대본 쓰는 일부터 시작하고, 작가가 있을 때도 대본에 관여해요. 대본을 쓸 때는 작가와 연출가 사이의 협업이라고 표현되는, 보이지 않는 전투가 발생하죠.(웃음)

럽젠Q : 영화 쪽에선 대본 작업 역시 감독의 영향력이 더 큰데, 연출가도 마찬가지인가요?

영화는 편집이라는 강력한 툴이 있기 때문에 감독의 예술일 수밖에 없지만, 공연은 굳이 따지면 배우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아직까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연출가에게 전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가 연출가의 영향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책임도 커지는 거죠.

럽젠Q : 기술 감독이나 무대 감독 등 다른 파트와 연출가의 관계는 어떤가요?

연출은 총괄의 역할이에요. 모든 세부적인 파트와 연결되어 있죠. 디자인이나 다른 모든 기술적인 사항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연출가의 손길을 거치게 되죠. 연출가와 기술 감독이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충돌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팀의 구성이 중요하죠. 대부분 제작사에 의해 연출이 먼저 섭외된 후 그를 주축으로 팀을 하나하나 꾸리게 되죠.

럽젠Q : 사람을 향하는 공연을 많이 연출하고 있는 듯한데, 어떤 작품을 추구하나요?

우리 공연계를 굳이 구분하자면, 볼거리나 들을 거리 위주의 미학을 추구하는 공연과 이야기를 추구하는 공연이 있는데, 전 후자 쪽에 가깝죠. 설치 조형적인 미학, 아름다운 무대, 충격적인 조명과 같은 것이 분명 의미가 있는 거지만, 전 그보다 내러티브가 탄탄한 작품을 좋아해요. 이 말인즉, 주인공의 속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죠. 보통 좋은 작품일수록 인물의 겉과 속이 많이 달라요. 그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인물이 오해를 사는 경우를 보며 그게 아니란 것을 말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느끼곤 해요. 제게 다가오는 그런 경우가 참 좋아요. 일이 잘 풀리죠.

럽젠Q : 그렇게 인물을 이해하려면 경험이 정말 중요하겠네요?

아주 중요하죠. 제 경험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작품을 했던 경험이 인생에서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연출을 정서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을 이해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하는 일을 일종의 카운셀러라고 생각합니다. 이 캐릭터가 저한테 먼저 이해가 되어야 제가 남한테 설득할 수 있거든요. 캐릭터를 이해하다 보면 어느새 교감이 되어서 마치 그 캐릭터처럼 감정이 변화되기도 해요.

럽젠Q : 작품과 캐릭터를 잘 이해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인 것 같아요. 평소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게 사실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리 하지 못하는 거죠. 같이 일하는 동료를 보면서 왜 저러는지 관심을 갖는 게 좋아요. 전 호기심 때문인지 그런 욕심이 좀 있었어요. 지하철을 타도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누굴까’, ‘왜 저럴까’, ‘어딜 가고 있을까’ 계속 생각했죠. 그게 저한테는 일종의 유희였는데, 그런 훈련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인물을 이해하는 기술 같은 게 생겼어요.

럽젠Q : 어떤 경우에 일의 보람을 최대로 느끼나요?

배우라고도 부를 수 없었던 사람을 훈련해 공연에 올렸는데••• 그가 늠름한 배우가 되었을 때 눈물겹죠. 사실 연출가의 일에서 예술적인 면엔 조력자가 많아요. 그런데 배우와의 작업은 도와줄 사람이 없거든요. 연기를 코치하는 역할도 제가 같이 하니까요. 연기자가 연기를 잘할 때 가장 행복하고, 못할 땐 가장 괴롭죠.

럽젠Q : 마지막으로 연출가를 꿈꾸는 대학생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연출은 장기전이에요. 직업의 수명도 길고 스스로 연출할 수 있는 기회도 굉장히 늦게 오고, 완성되기까지도 오래 걸리죠. 완성이란 게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해요. 기업은 나이에 따른 직급이 따로 있지만, 연출은 그런 룰이란 게 없거든요. 그래서 세상이나 사람에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출을 꿈꾼다면 현장으로 바로 들어갈 것인지, 학교를 거칠 것인지를 먼저 선택해야 해요. 제가 현재 학생이라면, 아주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현장이 낫지 않을까 싶네요. 학교는 나중에라도 갈 수 있는 거고, 스스로 찾아가 두드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이에요.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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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관련 종사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 공통적인 애기는 인간에 대한 이해. 소통을 하는 직업인 만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안될 것 같네요. 마지막 황재헌 연출가님의 조심스러운 조언도 좋았어요. 기사 잘 보고 갑니다^^
  • 이소연

    진짜 재밌겠네요! 같이 갑시다 상영기자님. 경신기자님 글 재밌게 잘봤습니다 ^0^
  • 박상영

    기사를 읽으니 달나도 연극도 보고싶네요 ^_^ 기사 잘봤습니다 경신 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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