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주 l 꿈틀꿈틀 즐거운 미동

학교에서 책 읽기만 시켜도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고개를 푹 숙이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던가. 찬란한 조명 아래 국내 최고의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녀,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 댄스 안무가 홍영주다. 아마존 같다는 방송계에서 여성 백업 댄서에서 안무 감독으로 자리하기까지, 10년 넘게 정상의 자리를 지킨 그녀였다. 그 사실 때문에 긴장했던 몸도 어느새 그녀의 손짓에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사진 _ 이도영(프리랜서)

최초가 곧 최고를 만든다

‘최초의 여성 댄스 안무가’, ‘국내 최초의 댄스 학원’, 안무가 홍영주를 수식하는 단어에는 항상 최초가 따라붙는다.
가수 박진영의 백댄서 당시 일명 ‘엘리베이터 걸’로 유명해진 그녀, 가요 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홍영주의 HOW TO DANCE> 코너를 진행하며 역대 가수의 춤을 공개했다. 이후 A-PRO 단장에서부터 국내 첫 댄스 영화 <댄스 댄스>의 안무 감독을 역임하는 것은 물론 방송 안무를 가르치는 최초의 교수에 이르기까지, 웬만하면 그녀의 꼬리표엔 ‘first’가 붙었다.

음, 글쎄요. 최초여서 자부심을 느낀다기보다••• 방송 댄스 쪽에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항상 처음부터 최고가 될 순 없지만, 누가 처음 하느냐가 중요하죠. 어느 분야든 시작만 제대로 하면, 최고가 되는 건 시간문제니까요. 그러고 보니 현재까지 자리 잡는데 햇수로만 10년의 세월이 걸렸네요. 예전엔 춤춘다고 하면, 그저 혀를 끌끌 차며 ‘딴따라’라고 여기던 인식도 이젠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도움이 된 점에서 기분은 좋네요.(웃음)

먹고 살기 힘들다는 춤판과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던 당시 방송계에서 그녀가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꽤 묵직했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이끌기 위해 밤업소 사람들과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시절만 생각하면 아찔해 보였다.

당시엔 제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부분이 많았어요. 여자 백댄서로 팀을 이끄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죠. 지금은 나아진 편이지만, 예전에는 질이 안 좋은 관계자가 많아 환경상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아직도 짠하죠. 참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제 현 위치와 더불어 댄서의 미래를 고려하면, 결코 제 어깨가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경험해야 했던 그 무게감을 후배들에게선 좀 덜어줬으면 해요.

어느덧 국내 댄스 가요계의 대모가 된 그녀,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시작점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압구정동에 있는 안무 연습실에서 울리는 음악과 연습생의 구슬 진 땀방울 사이로 그녀가 영롱하게 보였다.

20대, 재탄생할 수 있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는 나이트클럽,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모두가 상대방을 주시하는 순간에 현란한 불빛 사이로 홍영주가 마주한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아, 정말 신세계였어요. 그 깜깜한 곳에서 번쩍이는 조명과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는 마치 제가 번데기에서 튀어나오는 걸 축하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요? 웬만한 ‘죽돌이’, ‘죽순이’보다 더 잘 노는 저를 보면서 ‘아 나 정말 천부적이다!’라고 느꼈죠. 그것이 착각이라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지만요.(웃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걸스카우트에 들어간 그녀는 제대로 활동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후 ‘백합’이라는 교회 중창단에서 찬조 공연하러 다니며 무대 맛을 보기 시작했고, 이런 경험들은 그녀가 스무 살에 눈을 뜰 소중한 지원군이 되었다. 운명적으로 그녀가 춤에 눈을 뜬 20대는 댄스음악이 본격적으로 꿈틀대던 90년대였다. 시대와 그녀는 함께 리듬을 타며 역동하기 시작했다.

요새 아이돌 그룹을 마주하는 세대들을 보면 끼도 많고 다양한 데다가 TV에 노출이 쉽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세대들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다양한 경험을 빨리 받아들이는 건 물론, 그만큼 기회도 많으니까요. 그러니, 당신들도 지금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 적어도 이것이 있다면 우린 절망적이지 않다.

나만의 마약에 빠져라

그녀는 꿈과 현실 사이의 불안정한 저울질을 하는 청춘에 스스로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구분 지을 것을 못 박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키워드’에 욕심을 가지고 중독되라는 것이었다.

나만의 것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만이 잘 아는 키워드를 가지고 잘하는 것을 찾고 나서, 그걸로 인해 즐기고 미쳐야죠. 마치 마약처럼 말이죠.

무용단을 나와 낮에는 치어리더를 하고 생계를 위해 밤무대에 서던 시절, 그녀는 한번 시작하면 30분 내내 쉬지 않고 춤을 췄다. 당시 네 군데 이상의 무대를 전전하며 2시간 넘게 춤을 췄을 때, 그녀는 느꼈다. “아, 내가 여기에 완전히 빠졌구나.”

굉장히 불안정했지만, 즐거운 시기였어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그거 하나였기 때문이었죠. 2002년 학원을 차린 10년 전까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빴어요. 미쳤던 그만큼 좋은 경험은 할 수 있었죠.

돌아봤을 때 혹은 하고 있을 때 ‘행복하다.’라는 감정, 그 순간을 열망하며 찾는 것이 현재 청춘의 가장 중요한 ‘할 일’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다양한 연예인을 가르치면서, 특히 자우림의 김윤아 씨가 기억에 남아요. 레슨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열의를 보이시더군요. 대부분 그렇지 않은데, 배움에 대한 욕심이 정말 많았어요. 그러면 저도 최대한 더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결국 최고의 효과가 나오게 되죠. 그런 경험을 되돌아보면, 청춘도 뭔가 욕심을 갖기를 바라요. 열망과 욕심 없이 뭔가를 이루기란 어렵잖아요.

즐기는 투자가, 늦는 법은 없다


올해 40세를 갓 넘긴 그녀의 입에는 교정기가 자리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면서 길게 보려는 그녀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남편과 함께 비전 노트를 쓴다는 그녀, 한 아이의 엄마임에도 아직 인생의 중심인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인생의 최종 목표를 30년 후로 잡고 있어요. 그의 10년, 20년 안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죠. 결국, 1년 한 달 하루의 몇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요. 참,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 부디 젊은 친구들은 당장 돈벌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지난 영화 <댄스 댄스>의 흥행 참패를 오히려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했다. 삶을 즐기면서 큰 그림으로 투자하라는 그녀의 말이 지나가는 말로만 들리진 않았다.

앞으로 댄서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걸 위한 한국 최고의 댄스회사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전국의 춤쟁이들이 모여 빚어낼 그 짜릿한 드라마는 이미 시작되었다.

춤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시죠. 여긴 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니까요.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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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태진

    @야구박사신박사 하하, 인터뷰 하면서 뻣뻣한 제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줄 동작들을 배웠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흑흑 개인적으로 인터뷰 하던 저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하하
  • 황태진

    @박상영 기자 그러게요, 함께 갔더라면 상영 기자님의 춤추는 콧구멍도 함께 볼 수 있었을텐데요, 아쉽습니다..............
  • 황태진

    @블로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 저도 정말 짜릿하게 다가왔어요,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의지만 있다면 인생은 다시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 ^^
  • 야구박사신박사

    황기자님 부럽습니다~ ^^
  • 박상영

    인생을 큰 그림으로 보기 때문에 실패를 딛고 설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나 싶네요ㅋ 여러번 읽어도 좋네요, 이 기사. 이 때 다른 일 땜에 따라가지 못한게 한이 됩니다 ㅠ 기사 잘봤어요 황군
  •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 이 말이 무척 와닿네요^^. 좋은 인터뷰 읽고 갑니다~
  • 황태진

    @이소룡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뭔지 알고, 그것을 적절하게 살려냈기에 단단한 그녀만의 내공이 되지 않았을 까요, 확실한 뭔가가 있다는게 부러워요,,!
  • 황태진

    @김형진 기자 숏컷이 잘 어울리시더라고요 ! 춤 분야에서 리더로서 확실한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홍영주씨의 앞으로도 기대해봅시다 하하
  • 삼다

    예전에도 댄스 가수들에게 선생님 같은 이미지였던걸로 기억하는데, 한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정말 뭔가 내적으로 단단함이 생기는거 같아요.
  • 으헣

    홍영주 쌤 많이 세련되지셨네요. ㅋㅋ 예전에는 그저 댄스 같았는데 지금은 정말 리더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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