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환┃사람 우물 속의 구수함

오늘도 무사히 퇴근한 구수환 PD. 그에겐 친구가 없다. 그는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협박 전화 때문에 휴대폰을 보는 것조차 불편하고, 그를 향한 소송은 민사와 형사를 가릴 것 없이 끊이질 않는다. 시시때때로 진실을 듣고, 또다시 그것이 진실인지 사실을 찾는 사이, 개인 생활은 땅에 묻은 지 오래였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생활이 햇수로 25년. <추적 60분>, 등을 담당하며 수많은 사회적 이슈를 광장으로 이끌어낸 구수환 PD는 사람 없이 살 수 없는, 쉰 세가 훌쩍 넘은 영원한 청춘이었다.

이상을 위해 소진한 젊음의 가치

그가 처음 언론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80년대였다. 누구나 직장을 가지던 시대였고 막연한 마음이 잡은 일이 바로 PD였다.

30년 전, 20대의 저는 언론관 없는 언론인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땐 어떤 언론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어떤 직장인이 되겠다는 고민을 많이 했죠. 특별히 신문 방송학을 전공했거나 프로듀싱에 관련된 공부를 해본 적은 없었어요. 다만, 보고 듣고 읽은 매체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막연하게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죠.

당시 그가 지망했던 KBS는 코끼리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직장이 아니었다. 국가는 언론을 통제하고 그 속에서 글을 쓰고 찍고 내보내는 이른바 ‘관언유착’이라는 말까지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화 항쟁과 더불어 언론에도 민주화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죠. 저는 특별한 ‘언론관’, ‘보도철학’이 없이 번지르르한 그들의 모습만 보고 방송사에 들어왔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매일 밤을 새우고 집에 들어갔고, 집에 들어가도 진실이 무엇인지,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런 청년 시절의 고민은, 의외의 부분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먼저 말을 걸어온 시민으로부터 말이다.

어느 날, PD실에 있는데 제보가 왔어요. 강원도 태백 모처의 병원에서 여 간호사들이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대요. 도움을 주는 곳이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했던 거였어요. 한걸음에 달려가 취재하고 보도했습니다. 얼마 후 보란 듯이 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더군요. 하지만, 취재 당시부터 모든 정황에 대한 물증과 심증을 갖고 있어 당연히 기각됐죠.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담당 병원장이 사퇴를 ‘당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깜짝 놀랐죠.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언론이란 사회 속에서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사권 없이 여기저기 취재하러 다니는 일이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쉬는 날을 반납하는 것은 물론 때때로 경찰이나 조직에 쫓기기도 했다. 심지어 영상과 멘트, 편집까지 모두 직접 작업하기도 했던 그는 사람들로 인해 스스로 깨닫고 언론인으로서 단단해졌다. 그의 젊음은, 바로 세워진 언론관에 의해 남을 위해 쓰인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로, 배움은 계속된다

그가 일반인에게 유명세를 탄 것은 지난 해를 뜨겁게 달궜던 <울지마 톤즈(이하 톤즈)> 때문이다. <톤즈>는 지난 해 KBS에서 방영된 이후 극장에 상영되며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4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는 설 특집으로 황금 시간대에 방영, 1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사고발 다큐멘터리를 찍던 PD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 국민을 울린 감독으로의 탈바꿈, 그러나 그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작업은 평소 생각해온 일의 연장 선상이었어요. 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사람들이 울길 바라지 않았어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특히 지도자들이 반성하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잘사는 사람들만 잘살게 되는 세상이잖아요. 우리가 꿈꾸면서도 우리 사회 안에서 만들 수 없다고 하는 모습을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나누고 헌신하자고 종일 외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죠. 일종의 현실 고발인 셈이었어요.

이외에도 그의 기억에 사무치는 취재는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손꼽는다면, 2003년에 방영된 KBS 스페셜 <종군기자, 그들이 말한다>였다.

전쟁 중인 바그다드 일대였습니다. 어떤 기자는 카메라에 총알이 박히고, 어떤 기자는 입술과 뺨이 불에 타 돌아가 버리기도 했었죠. 하루가 멀다고 죽은 기자도 많았고요. 하지만, 그들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남들이 가지 않는 이곳의 소식을 누군가는 전해야 한다는 사명 의식으로 무장되어 그 생지옥에서도 표정들이 밝았죠. 충격이었습니다. 스스로 정체성에 대해서 의심했고, 전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었죠. ‘나도 진짜 저널리스트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느슨해질 무렵, 좋은 각성이 된 것 같습니다.

그에게 사람은 생을 함께 나누는 친구이자 인생의 선생님이고, 저널리스트로서의 각성제였다. <추적 60분>의 취재를 자청하면서 5년간 위험 전선에 뛰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프로듀싱의 교육을 받고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다면 더 잘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작정 카메라만 들이밀고 멋진 편집이 다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희망을 줄 수 있는 PD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강조했다.

큰 걸음으로 앞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담대하고 활기찼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내외 사건과 사고에 그는 속옷 두 벌과 노트북, 6mm 카메라를 들고 또 어디로 떠날지 모른다고 했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올지 잠시 생각하다가 얼른 따라가 내미는 그의 악수에 응했다. “알겠죠? 결국 사람입니다.”

구수환 PD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황 기자의 블로그(http://d.isloco.com/7)에서 이어집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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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정식 기자 저도 그 점에서 깜짝 놀랐었답니다. 좋은 말마디 감사합니다!
    @코리아나 사람마다, 시대마다, 순간마다 다르게 들리는게 저마다의 말인 듯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언젠가 '아무것도 몰라 순수한 사람이 있고, 모든 걸 다 알아 순수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게 생각이 나네요. 어쩌면 한국 사회의 가장 부패하고 아픈 곳들만 찾아 다녔던 25년의 세월 후에, 결국 '사랑과 헌신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남겨주실수 있을까요. 클리셰처럼 보이는 말이라도, 구수환 PD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그 울림이 참 깊습니다.
  • 엄PD

    컵 하나를 보더라도 그 속에 포함된 사회적 관계들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각은 정말 인상 깊네요. 사회학적인 상상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 속 깊이 새겨집니다. 특히 빈부격차, 양극화, 배타적인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고통받고 있을 소수자, 약자에 대한 배려가 PD님 말 속에 녹아있네요.^^ 많은 생각들을 하고 갑니다. ^^기사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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