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 강기향 l 폭풍 다이어트 생활 일기

내로라하는 미국 대학교의 영재들은 뭘 먹고, 뭘 입고, 뭘 하면서 지낼까? 재학생의 신랄한 사생활 및 대학 문화가 기록된, 가상 캠퍼스 다이어리 대 개봉!

사진 이윤애/제17기 학생 기자(서강대학교 사학과)

뉴욕에서 산다는 것은, 살인적인 집세와 물가와 동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맨해튼의 집세와 물가는 많은 유학생을 브루클린이나 퀸즈와 같은 땅값이 싼 동네로 내몰고 있다. 덕분에 맨해튼에 있는 FIT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는 동시에, <스티브 매든Steve Madden> 본사에서 인턴십을 이수 중인 강기향 씨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할 운명이다. ‘쭉쭉빵빵한’ 뉴요커 사이에서 인턴십이 부른 살로 인해 고민의 나락에 빠져 있는 것도 물론이다. 누구든 뉴요커로서의 삶에 동경할 법하지만, 실상 그녀는 살과 물가와의 끊임없는 다이어트 싸움에서 생존해야 하는 삶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리자마자, 학교 근처의 홀 바디WHOLE BODY에 들어간다. 우리 학교에서 잘나가는 모델 피트의 언니들은 모두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이곳엔 샐러드나 요거트 같은 다이어트 건강식이 선반에 그득하다. 일반적인 가공식품보다 다소 가격이 비싸지만,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샐러드와 요거트를 먹고 나온 뒤 뱃속에서 성토하는 듯한 꾸르륵 소리가 계속 되어 옆에 있는 생과일 건강 주스 전문점 잠바 주스Jamba Juice에 들어가 토마토 생과일 주스로 배를 채운다. 비타민과 프로틴을 추가하면, 피부도 좋아지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오늘은 눈에 아이라인으로 잔뜩 힘을 준 날. 드로잉 클래스에 들어서는 순간 친구들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Oh, my god, G! Finally you have your eyes! I can tell your nose!” 해석하자면, “드디어 네 이목구비를 보는 날이 오는 구나.” 정도. 하루에 12시간이나 동고동락하는 친구들인지라, 서로 못 볼 꼴을 많이 봤다. 어차피 패션 전공 수업에는 여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그나마 있는 남학생은 대부분 게이이기 때문에 잘 보일 사람이 없지 않는가! 재빨리 두꺼운 뿔테 안경을 뒤집어 쓰자, 친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드디어 자신이 알던 강기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친구인가, 적인가! 연일 이어지는 크리틱Critic 시간 땐 그들의 정체가 정말 의심스럽다. 크리틱이란 각자 만든 작품을 교수님과 학생이 빙 둘러 감상하고 품평하는 것. 오늘은 지난 시간에 그린 드로잉을 평가하는데 살벌한 기운은 여느 때와 똑같다. 모두 제 잘난 맛에 사는 친구들은, 교수님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 인정할 수 없다고 달려드는 것은 물론 남의 작품을 보고 1억을 줘도 안 입겠다느니, 포대자루를 걸쳐 놓은 것 같다느니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오늘 드로잉은 다행히 크리틱의 무덤에서 살아남았다. 친구들과 교수님 모두 그럭저럭 칭찬해준다.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끼니를 넘기기 일쑤다. 평소 같으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쳤겠지만,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할 요량이어서 한 끼 정도 넘기는 건 스스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심지어 밥 먹을 시간이 없기도 하다. 오후 수업에 쓸 소재를 사러 학교 앞 재료상으로 달려갔다. 역시 평소에 애용하던 차이나타운의 소재상에 피해서 턱없이 비싸다. 거의 반값 이상 차이가 난다. 차이나타운까지 갈 시간도 없고••• 눈 딱 감고 손을 벌벌 덜며 필요한 소재를 구매한다. 상단에 있는 소재를 꺼내다 보니, 근력 운동은 제대로 했다.



우리 학교에는 상설 전시를 하는 박물관이 있다. 캠퍼스를 오가다가 가끔 들리곤 하는데, 이곳에선 왠지 교양있고 문화적인 여대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공짜다. 오늘은 바빠서 휙 지나치려는데,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사진이 이미 전시관 안으로 날 서게 한다. 사진을 전공하는 한국인 학생의 포트폴리오였다. 비빔밥과 전을 주제로 한 포트폴리오로, 한참을 향수에 젖어 침을 삼킨다. 집에 가는 길에 한인 마트에 들려 밀가루와 파를 사다가 전을 구워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아, 이런 공상할 때가 아니지. 수업에 늦기 전에, 강의실까지 미친 듯이 뛰어야겠다.

오후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이 지하철에 갇혀서 휴강한다는 소식이다. 뉴욕 지하철은 갑자기 멈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별로 놀랍지도 않다. 아마 선로에 커다란 쥐가 뛰어들었거나, 노숙자가 자는 것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간만에 꿀 같은 휴식을 얻은 나와 친구들은 다음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가기로 했다. 공원에 앉아 마약을 타놓은 듯 중독성이 있는 버거 계의 왕자, 쉑쉑 버거Shake shack burger를 먹기로 결정했다. 오늘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지 않았으니, 이대로 괜찮겠지?


그나마 20분 밖에(보통 1시간이 넘게 줄 서기도 한다) 안 기다리고, 쉐이크와 버거를 받아 든다. 아, 치즈가 녹아 내리는 모습을 보자 정신이 혼미해진다. 한 입 깊게 베어 문다. 이것이 천국이다! 풍부하고 깊은 지방의 맛, 반나절 동안 잊었던 삶의 즐거움을 찾는 기분이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뒷담화에 열을 올린 우리. 이후 두 개의 버거를 테이크 아웃해 야간 작업을 위한 야식으로 챙긴다.


낮에 부랴부랴 사온 소재로, 정신 없이 소재 구성 과제를 한다. 아침에 곱게 단장하고 온 머리는 온데 간데 없고, 유관순처럼 5:5 가르마로 머리를 질끈 묶었다. 아이라인도 정체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작업실에 남은 21세의 난, 평소 친구들이 사랑하던 모습 그대로다.
오늘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서바이벌은 시작됐고, 또 시작된다. 왠지 슬림한 보디로부터도, 아껴야 산다는 진리에서도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기분이다. 다이어트 생활에 난 언제 익숙해지려나.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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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영

    @혬, 감사합니다 ^_^)
  • 박상영

    @주전자, 저도 기향씨랑 같이 먹었는데 혓바닥이 녹아내릴 것 같은 맛이었습니다. <요리왕 비룡>에서처럼 주변이 페이드아웃되고 갑자기 징치는 소리가 쨍쩅 울리고 아무튼 초 맛있어요. ㅋㅋㅋㅋㅋ덕분에 저도 뉴욕에서 무려 4키로가 쪄오는 행운을 ^^
  • 기사 잘 읽었어용 ㅎㅎ
  • 주전자안의녹차

    와 크리틱 시간 겪고 나면 정말 세상의 어떤 지탄에도 자기 스스로를 믿고 사는 용기가 솟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뉴욕에는 살찔수밖에 없는 음식이 너무 많은거 같으네요.... shake shake 버거......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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