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고려인 외교관 충남대학교 기계.기계설계.메카트로닉스 공학부 08학번 유이고르


나는야! 고려인 외교관

안녕하세요. 성은 유, 이름은 이고르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네는 그. 아직까지 그와의 첫만남에서 오갔던 인사가 
강하게 기억이 되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밀려온다. 
'왜 외국인이 한국인 성과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곧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기자는 더욱 반가웠다. 앞으로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를 다 이뤄야 하는 욕심쟁이 '유이고르'를 
만나보자.

글, 사진_고병현 / 14기 학생기자 충남대학교 기계설계학과 04학번

카자흐스탄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통하여 한국에 첫 발을 내딛는 유이고르. 그가 한국에 와서 처음 간 곳은 대학교가 아닌 한국의 고등학교
였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를 다시 다녔다는 것. 도대체 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2004년 10월에 와서 3개월 동안 처음 한국어를 배우고 그 이듬해인 2005년부터 한국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몽골에서 받은 졸업장과는 상관없이 한국 교육청의 추천에 의해 다시 고등학교부터 다녔죠. 약간은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이 시간 동안 말도 많이 익히고 친구들을 많이 만들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한국 친구들과 같이 운동하고 공부하고 술(?)도 마시며 빨리 적응할 수 있었죠.”


또래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친구들의 고민상담도 해주며 담임 선생님을 도와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점을 들어주다 보니 자신의 한국생활의 어려움 점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됐다고 한다. 보통 음식도 안 맞고 친구가 없어 심적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법인데, 이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타파해버린 그다.

카작어,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까지. 유이고르는 5개 국어를 섭렵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5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공부한 것일까?!

“제가 본래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카작어는 본래 언어이고, 소련에서 해체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공통언어로 쓰고 있어 자연스럽게 2가지 언어를 익혔죠. 영어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데 한국처럼 의무교육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할 기회를 잡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죠. 아무래도 좋아하게 되니깐 공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요즘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번역이나 통역업무도 가끔 한답니다. 그리고 중국어는 학교에 중국인 유학생 친구들이 많아 배우고 있고, 곧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에 여행 갈 생각입니다.”

그런 유이고르가 가장 어려웠던 언어는 역시 한국어. 자음과 모음의 알 수 없는 결합법칙에 의해 ‘해돋이’를 ‘해도지’로 ‘태권도’를 ‘택원도’로 바꿔 쓰면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는 그. 언어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묻자,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로 대신한다.

어느 덧 한국에 온지도 4년이 다 되어가는 그의 모습은 토종 한국인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내적인 모습까지 비슷할 수 있을까? 정답은 ‘Yes’이다. 분명 그는 우리와 확실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인의 핏줄!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한국이름을 갖고 있는 것도 그의 몸 속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940년,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에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며 남, 녀를 불문하고 징용해 갔던 암울한 시기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때에 다른 한쪽에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슬픈 역사가 있었다. 스탈린의 ‘대숙청’(스탈린 정권의 중기인 1930∼38년 단행된 반(反)스탈린파 공산당원 · 군인 · 지식인 · 대중에 대한 대대적인 제명과 투옥 및 숙청사건) 당시 연해지방에서 살고 있던 한국인의 후손들이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42일 동안 실려 아무 이유 없이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바로 고려인(高麗人). 우리에겐 ‘까레이스키’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민족이다.

그 후 50년의 세월이 흘러 1991년 12월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 C I S 국가들이 독립하고, 독립 국가 고유의 언어를 쓰는 정책과 소수 민족에 대한 회교 민족주의로 인하여 상당수의 고려인이 C I S(독립국가연합)를 떠나고 있으며 대부분 원 거주지였던 극동 러시아, 그 중에서도 연해주로 돌아가는 실정이라고 한다.

“저희와 처지가 비슷한 독일인, 유태인, 폴란드인, 그리스인 등 대부분은 공공연한 차별과 배척을 피해 자국민에게 정착지원금까지 주면서 반겨주는 모국으로 이주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모국이 둘이 있어도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예요. 저희는 카자흐스탄 안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고, 한국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죠. 어디에서도 정착하기 힘든 상황이죠. 앞으로 저는 카자흐스탄 안의 고려인을 위해, 더 넓게는 전 세계의 고려인을 위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낼 거예요.”

그의 좌우명은 ‘자기자신을 믿자!’이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경험 속에 비춰진 말인 듯하다. 그의 ‘해결사’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사진_고병현 / 14기 학생기자
충남대학교 기계설계공학과 0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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