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우리를 옥죄는 어떤 것에 대하여

썸네일
짐이 무거워지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프롤로그

집착은 가장 끊어내기 힘든 감정이지요. 본래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집착은 그 뿌리는 긍정적인 감정이지만 주변 환경과 자신의 심리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집착이라는 고통이 예술의 열정으로 승화되어 매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가수 데미안 라이스는 오래 전 여자친구를 잊을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이후 <클로저>의 주제가가 된 ‘블로우어스 도터Blower’s Daughter’를 작곡하여 그녀 앞에서 부른 후 그녀에 대한 모든 집착을 끊어냈다고 하지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전까지는 ‘고통’이었던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이, 노래를 만들어 부른 후에는 ‘아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랑의 아픔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끊어낼 수 없는 집착 때문에 아파하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가장 힘들게 하는 원인, 집착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쇠사슬에 손이 묶여 있다.

럽젠 Q 집착과 사랑의 가장 확실한 구별법은 무엇일까요. 어떤 기준으로 두 가지를 명쾌하게 나눌 수 있을까요. 집착의 시발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랑이기도 하고 강박관념하기도 한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 집착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것에 더 가까운 것인지, 어떻게 집착이 시작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상대방이 뭔가 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자꾸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집착하고 있을 때가 있었거든요. 지나고 나면 왜 그랬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느꼈을 정도예요.

사랑과 집착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지요. 집착은 본래 사랑에서 나오는 감정이긴 하지만, 그 뿌리가 사랑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소유욕이 유난히 강한 사람들은 사랑과 집착을 거의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식의 성취를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이의 행복보다는 아이의 성공에 더 큰 가치를 두죠. 남편의 성공을 자신의 자존감의 근거로 생각하는 부인은 ‘남편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보다는 ‘남편이 얼마나 빨리 승진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내 마음에 드는가’에 따라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은 그 사람의 안부를 걱정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되곤 하지만 집착은 ‘그 사람이 내가 없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는 통제의 욕망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자존감의 결핍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 결점투성이인데, 과연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까’하는 의심이 사랑을 멍들게 합니다. ‘나는 불행하다. 그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므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착이 심화되기도 합니다.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비교의 감정 또한 집착의 원인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지,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사람이 나 없는 곳에서 나를 얼마나 생각할까’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은 너무도 강력한 감정이라서 다른 감각을 마비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냉철한 이성을 흐리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안부에는 무관심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그 한 사람 또한, 누군가에게 더없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요. 그리고 마음속에 ‘집착’이라는 빨간불이 켜질 때마다 우리는 그 빨간 불의 색채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이성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집착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감정이니까요.

드라마 ‘스토커’ 이미지. 사람의 눈동자가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고 그 안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 그리고 사진 전체에 STALKER라는 타이틀이 쓰여져 있다.
집착이 범죄로 변하는 하나의 사례, 스토킹. (이미지 출처 : CBS 드라마 <스토커> 공식 홈페이지)

천둥 치듯 이별을 통보받더라도, 번개처럼 연인이 떠나더라도 아무것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번 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누렸고 큰 성장을 맛보았습니다. 사랑에서 이별까지, 그 모든 과정의 행복감과 불행감을 풀코스 정식으로 골고루 섭취하게 해준 연인에게 감사하고, 그의 행운을 빌어주세요. 그런 다음 한층 업그레이드된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맞으시면 됩니다. 다음 사랑은 더 충만하고 안정될 것입니다.
-김형경, <천 개의 공감> 중

럽젠 Q 그 대상이 사물이건 사람이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요. 한 마디로 집착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현명한 방법이 있을까요?

어린 시절에 집착했던 장난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지요. 부모님께 한 번 물어보세요. 여러분이 유난히 빼앗기기 싫어했던 장난감이나 선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께 그 물건이 아직도 남아 있나요. 남아 있더라도 그때와 같은 집착의 온도를 보이지는 않겠지요. 집착이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인형의 집을 그토록 사고 싶어했지만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았는데, 그에 대한 섭섭함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지요. 이십대 후반까지만 해도 마트에서 인형의 집을 보면 남몰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리 아름다운 인형의 집을 봐도 왠지 답답해 보이고 슬퍼졌습니다. 아직도 인형의 집이 사랑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이제 ‘인형의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요.

그런데 인형의 집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는 작은 미니어쳐들을 사 모으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미니어쳐들은 고성(古城)이나 성당, 저택처럼 하나같이 ‘집’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저의 집착은 어떤 ‘협상의 지점’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인형의 집은 너무 크고 관리하기가 불편할 뿐 아니라 ‘어른의 취미’로 삼기엔 여러 모로 곤란하기에, 미니어처 수집이라는 ‘변형된 욕망, 통제 가능한 욕망’으로 전치된 것이지요. 이렇듯 집착은 완전히 없어지기보다는 그 모습을 바꾸어 어느 정도 치유적인 형태로 마음에 남게 됩니다.

저는 지금도 힘들 때마다 여행의 추억이 담긴 미니어쳐를 행운의 부적처럼 만지작거리며 추억에 젖습니다. 인형의 집과 수많은 인형들을 거느린 채 드레스자락을 날리는 공주 같은 소녀는 될 수 없었지만, 여행의 추억이 담긴 소박한 미니어처를 수집하며 여행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될 수 있었던 거지요. 만약 인형의 집에 대한 집착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유지했다면 제 집은 발 디딜 틈도 없는 ‘인형의 왕국’이 되어버리고 말았겠지요. 지나친 집착을 조금 더 창조적인 방향으로, 조금 더 큰 그림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방향으로 바꿔보세요. 그러면 집착은 더 이상 삶을 질식시키는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심리적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단 한 번 위험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렇게 큰 불행을 초래하는 걸까요? 그 누가 전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이라도 모두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누가 딸에게 말을 걸면 바로 경각심을 가졌을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일이 터진 후에 오는 법이지요.
– 쇼데를로 라클로, <위험한 관계> 중

럽젠 Q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온갖 상상에 기뻐하고 행복하게 되면서 뭔가를 점점 더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점점 빠지게 되고 집착하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기 위한 방법은 정말 없는 건가요. 저는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맺고 끊는 걸 잘못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살짝 겁부터 집어먹게 됩니다. 한 번 사람을 좋아하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집착 증세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그러한 것들이 점점 문제가 되고 그로 인하여 헤어지게 되면 자책을 하게 되는데요. 어떤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나 환상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어요. 감정이란 게 통제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거든요. 감정과 조금씩 협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감정의 뿌리를 잘라내는 억지스런 과정을 거치면 그 억압된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분노의 출구를 찾게 되거든요. 욕망의 근절이 아니라 욕망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 무조건적인 절제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입니다. 저는 집착이라는 감정 때문에 힘들 때마다 ‘나보다 더 집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곤 하는데요.

예를 들면 쇼데를로 라클로의 소설이자 수많은 영화 리메이크로도 잘 알려진 <위험한 관계>를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보기도 합니다. 가히 ‘집착의 끝’을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집착을 통해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되기도 하고, 결국 상대방은 물론 자신의 삶을 파괴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집착의 극단까지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신기한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제 마음을 그들의 이야기에 실어 보내는 것이지요. 제 집착의 리비도를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투사함으로써 내가 그 감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위험한 관계’의 두 주인공이 소파에 앉아 무언가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나보다 더 한 집착’을 보며 신기하게도 치유를 찾을 수도 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위험한 관계> 중)

집착의 가장 비극적인 결과는 결국 상대방이 ‘집착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철회한다는 점이지요. 집착은 본래 그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집착을 할수록 그 사람은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위한 집착’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게 되지만, 사실 사랑의 가장 무서운 적이 집착이지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는 여성의 내밀한 욕망에 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댈러웨이 부인은 젊은 시절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합니다. 사랑의 열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피터가 훨씬 강력한 상대였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에게 ‘숨 쉴 공간’을 주는 차분하고 너그러운 남자 리처드에게 가지요.

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 뭔가 ‘낌새’를 눈치채는 피터에게 염증을 느낍니다. 그를 사랑했지만, 그의 곁에서는 ‘숨 쉴 자유’가 없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자유로운 생각을 할 권리, 가끔은 엉뚱한 상상에도 빠져볼 수 있는 권리, 가정이나 여자라는 울타리를 넘어 전혀 다른 꿈을 꿀 수도 있는 권리를, 그녀는 원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자보다는 자신에게 ‘다른 생각을 할 자유’를 주는 남자를 택하지요. 상대방에게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럽젠 Q 한 번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정말 간과 쓸개까지도 모두 빼주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착을 하게 될까봐 사람을 좋아하는 것 자체도 두려워져 버렸습니다. 저는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의 예고 없이 곧바로 좋아하는 마음을 들켜버리는데요. 아직 서로의 마음도 모르고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여부가 정확한 것도 아닌데, 저는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기승전결의 과정도 없이 곧바로 직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법, 천천히 가는 법을 잘 모르겠어요. 집착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천천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문제는 저 역시 서툴렀던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대답하기가 쑥스럽네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뒤늦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의심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입니다. 관심과 호감이 꼭 남녀 간의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이해하고 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는 일은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일이거든요.

좀 더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머리를 자르거나 옷을 입는 스타일을 바꾸는 등 외모를 바꾸는 것이 가장 자주 쓰이는 방법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일’에 마음을 던져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다른 생물에 관심을 가져보는 일, 다른 장소로 떠나 보는 일(떠나는 일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더 그리워지고, 홀로 남겨진 나 자신이 더 외롭고 처량하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작은 취미를 가져보는 일 모두가 도움이 됩니다.

그 사람에게 곧바로 달려가려는 마음을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로 추슬러보는 것이 좋지요. 항상 관계에서는 ‘매개’가 소중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읽고 싶은 책, 그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은 영화,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음식, 그런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라는 의심에 집착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기다림과 다가감’의 방식일 것입니다.

럽젠 Q 저는 아빠와 친구처럼 잘 지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빠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어디서 누구와 만나서 놀다 오는지 항상 신경이 쓰이네요. 이렇게 특이한 저에게 저희 아빠는 ‘네가 내 애인이라도 되는 거냐’며 핀잔을 주시곤 해요. 하지만 아빠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만큼 가족으로서 아빠를 챙기는 장남인 만큼 집착하는 마음이 더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은 지나친 거겠지요? 하지만 아빠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쉽게 버릴 수가 없네요.

가족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삶에서 가장 보편적인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을 ‘다 널 위해서야’, ‘널 사랑해서야’라는 변명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집착의 뿌리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나이 어린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 정도의 관심을 갖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계속 갖는다면,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소유욕으로 변할 수 있겠지요. 사랑한다는 감정은 곧 ‘저 사람과 떨어져 지낸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아버지가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을 때, 즉 자신의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지내시는지에 대한 관심이 집착으로 느껴진다고 하셨지요.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 그것이 사랑의 다른 형태이지요. 하지만 그런 감정을 계속 가지고 가면 아버지도 언젠가는 피곤해 하실 거예요. 아버지에게 가지는 관심을 자기 자신이나 친구들, 그리고 자신이 시간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다른 대상들로 돌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친밀하고 마음 편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그에게 집착한다면, 그 소중함은 어느새 왜곡된 소유욕으로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아무 문제없이 평화롭게,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매우 닮은 유전자를 지녔지만, 매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바로 그렇게 ‘가깝고, 닮았고, 잘 안다’는 이유로 서로가 지닌 뜻밖의 고민을 가장 털어놓기 어려운 상대도 바로 부모님이지요. 제 경우에는 반대로 부모님이 저에게 집착을 하시는 편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어떻게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칠까’라는 문제가 곧 ‘어른이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 보니 부모님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닌 분이신지 깨닫게 되더군요. 저는 부모님과 닮은 구석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과 비슷한 점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새를 훈련시켜 마침내 절벽으로 밀어버리며 ‘날 수 있으면 날아봐! 아니면 절벽으로 떨어져도, 난 몰라!’하는 독수리의 가혹한 사랑이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주 절벽으로 추락하여 온몸을 다치는, 아주 어설프고 서툰 어린 새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때로는 자신들도 모르게 저를 인생이라는 거대한 절벽으로 내모셨지요.

그것이 처음에는 많이 야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절벽에서의 추락’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람이 되어 있었겠지요. ‘절벽에서의 추락’을 ‘절벽으로부터의 비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집착을 사랑으로 바꾸는 마음의 연금술이 아닐까요. 언젠가 부모님은 여러분을 세상이라는 절벽 바깥으로 내쫓으실 것입니다. 그때 반드시 날아가세요. 추락하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입더라도, 절대로 부모님의 따뜻한 품안으로 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게 되니까요. 그러면 다시는 ‘다른 새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유와 용기를 얻을 수 없으니까요. 사랑은 ‘어미 품에 안긴 새끼새들끼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어미 품을 벗어나 절벽으로 추락하고, 마침내 비상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에필로그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옳은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미국의 작가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는 ‘집착’이 인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잘 알고 있었지요. 그는 <아메리칸 웨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집착은 인간의 활동 중 가장 소모적인 행위다. 왜냐하면 집착을 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또, 또, 다시 또 하게 되고, 결국은 그 질문에 대한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집착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지요. 하지만 ‘내가 왜 그것을 가질 수 없을까, 내가 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할수록, 우리는 집착의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같은 질문을 얼마나 많이, 여러 번, 집요하게 하는가가 해답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지요. 제대로 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 자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왜 그것을 얻어낼 수 없는가, 나는 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그것을 열망하는가, 내가 정말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왜 원하는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없이 같은 질문의 구렁텅이에 빠져 집착의 바다를 표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Writer | 정여울
작가.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등이 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버리기보다 수집하기, 덕후들이 사는 법 3탄 – 감자칩 ‘프링글스’ 덕후 박유술

버리기보다 수집하기, 덕후들이 사는 법 2탄 – 패션 ‘생활한복’ 덕후 이혜연

버리기보다 수집하기, 덕후들이 사는 법 1탄 – 캐릭터 ‘브라운’ 덕후 정은서

대학교들만의, 특색있는 시그니처 축제

일러스트레이터 익킨 | “안주가 될 그림을 그려요.”

유튜버 킴닥스(KIMDAX) |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현지통이 수군수군, 홋카이도 숨은 맛집

소채리의 식용곤충 체험기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