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인간관계의 딜레마들

환한 불빛 속에서 홀로 걷는 것보다는 어둠 속에서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좋다.
-헬렌 켈러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나는 당신을 안내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나는 당신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 옆에서 함께 걸으며 친구가 되어 달라.

-알베르 카뮈

*편집자 주 : 이번 달부터 <정여울의 관계학개론>은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질문으로 그 내용이 구성됩니다. LG럽젠 페이스북을 통해 수시로 정여울 작가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받고 있으며, 질문을 해 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선물도 드리고 있답니다. LG럽젠 페이스북을 늘 주목해 주세요!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서로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큰 바위로, 바위는 서로 떨어져 있어 두 사람의 거리가 더욱 멀어 보인다.

럽젠 Q <관계학개론>에서 정여울 작가님은 우정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평등한 관계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릴 때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우정을 유지하기 힘든 시대가 와 버렸습니다. 몇 달 전 개봉한 <좋은 친구들>이란 영화를 보면, 친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사회적•경제적인 능력의 차이로 인해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들의 우정이 씁쓸한 느낌을 줍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좋은 친구였는데, 커갈수록,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친구의 우정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우정을 지켜갈 수 있을까요.(박재우 님)

친구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을 겪을 수 있죠. 한 친구가 꿈을 이루고 있을 때, 다른 친구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에서 가슴 아픈 차이를 느낄 수 있지요. 그런데 그런 차이와 갈등에 가장 예민할 때가 바로 20대인 것 같아요. 친구 사이라도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받을 수 있죠. 저쪽에서 의도한 상처가 아니라도 말이지요. 나에게 없는 걸 친구가 가지고 있을 때도 있고, 친구에게 없는 걸 내가 누리고 있을 때도 있지요. 그런 면에서 완전히 똑같은 처지의 사람이 만날 수는 없어요.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아마 우리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되겠지요. 그 다름과 차이 속에서 서로에게 호기심도 느끼고, 상처도 주고받고, 그러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과 맞서기도 합니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위로해주는 친구는 많지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는 드물지요. 내가 행복할 때 나와 함께 웃어주는 친구가 정말로 오래갈 수 있는 친구가 아닐까 해요. 힘들 때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배우며 자라는 진실이지만, 누군가가 행복할 때 ‘함께 축하해주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법’은 잘 배우질 못하지요. 이건 정말 훈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우리는 ‘슬퍼하는 법’은 본능적으로 깨닫지만, ‘기뻐하는 법’은 잘 몰라 허둥댈 때가 많지요. 친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해주고, 친구가 기뻐할 때 질투심과 부러움을 살짝 누르고 함께 기뻐해보는 건 어떨까요. 열정이 큰 만큼 질투와 시기심도 큰 20대를 보내고 나면, 점점 ‘기뻐할 일’ 자체보다도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할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힘들 때보다도 더 뼛속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게 인간이지요. 질투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거나 열등감에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는, 진심으로 친구의 성취를, 친구의 행복을 기뻐할 줄 아는 멋진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우정을 더 오래 더 깊이 지속시킬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화면이 매우 어둡다.
우정을 변함없이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좋은 친구들> 스틸컷)

럽젠 Q 가까운 사람일 수록 더 상처주기 쉽다는 말이 있잖아요. 부부 사이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박선희 님)

우리는 ‘그들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간단한 문장을 해피엔딩의 대명사로 기억하고 있지요. 동화 속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지만, 실제 삶에서는 ‘결혼 후의 산전수전’이 더욱 더 힘겹고 서러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결혼 후의 어려움에 대해 그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지요. 어떤 집에 살 것인지, 어디로 신혼여행을 갈 것인지, 어떤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면서 토론을 하지만, ‘결혼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서로의 생각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토론 자체가 지겨워질 때까지 갑론을박을 해도, 실제로 살아가다 보면 서로의 깊은 차이를 인식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결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결혼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가 사실은 더욱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갑니다. 부부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공통의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신혼 때 잠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생 지속해야 할 삶의 숙제이지요.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세밀한 에티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저 사람의 꿈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을 충분히 알고 있는가’가 아닐까요. 연애할 때는 서로에 대한 설렘과 긴장감 때문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상대방의 뿌리 깊은 가치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세계관에 충격을 받고 뒤늦게 성급한 결혼을 후회하는 커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상대방이 동의해주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지요. 그러나 사랑이 남아 있는 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바꿈으로써 내 목적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한 남자가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옆에는 그녀의 아내를 찾는 Missing 포스터와 그녀의 사진이 서 있다.
결혼생활에 대한 허와 실을 이야기한 영화 <나를 찾아줘>.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무엇보다 ‘극단적인 표현’을 삼가는 것이 부부관계에서는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야’, ‘다신 말도 꺼내지 마’, ‘이제 우리 그만하자’라는 식의 ‘끝’을 암시하는 말들은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줍니다. 서로의 가족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도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죠. 서로의 가족을 둘러싼 크고 작은 문제 때문에 심각한 불화를 겪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결혼은 ‘한 사람’과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 모든 주변사람들과 함께 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지나치게 비판적인 언급은 상대에게 상처가 되니 좀 더 세련되고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해내는 ‘깨알같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도,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더 가볍게, 상처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수 있겠지요. 때로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보다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까’가 훨씬 중요합니다.

럽젠 Q 톡톡 쏘는 듯이 자기 생각을 모두 얘기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게 좋을까요?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박영인 님)

아무리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해봐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말에 독침을 담아 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에는 마치 화살이나 칼이 박힌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을 찌릅니다. 안 그래도 내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충고를 하는 사람들, 친분은 얕은데 충고의 강도는 높은 사람들, 책임지지 못할 수준의 명령과 조언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차라리 그 순간에는 귀를 막고 싶을 정도지요. 가족 간에도 그런 상처를 주는 일이 많습니다. 자식에게 지나치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들, 돈이나 성공에 대한 세속적인 가치를 마치 위대한 진리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 ‘나는 할 수 있는데 왜 너는 못하느냐’는 식의 어법으로 나와 자신을 비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공격적인 발언 때문에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상처를 받습니다.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제는 어디서나 아주 가까운 사이에도 원치 않는 감정노동이 일어나고 있지요.

이럴 땐 최대한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여 전혀 상관없이 엉뚱한 사람에게 공격의 화살이 날아갈 수도 있거든요. “그런 말은 듣기가 좀 거북하네요.” 정도의 불쾌감의 표시는 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는 법도 있지만, 화제만 돌리면 상대방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순간 조금 힘들더라도, ‘당신의 부주의한 말 때문에 내가 상처 입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느낄 수 있게 암시를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견딜 수 없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점점 한 사람씩 소극적으로 멀리하다가 결국에는 그 당시에 교류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도 제가 왜 힘들어하는지를 알지 못했던 거지요. 내가 왜 상처를 받았는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결과였지요.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오해를 하게 되고, 오해가 커지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한 여자가 한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펴 보이고 있다. 거절의 의사처럼 보인다.
불쾌하다면, 불쾌하다고 표현해야 한다. 참는 것은 더 이상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것, 화제를 바꾸는 것,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포커페이스를 만드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가장 예의바르고 정중한 표현으로, 그러나 당당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런 부당한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요. 아주 친한 사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친하다고 해서 눈감아주고, 이해하는 척 져주고, 떨떠름한 마음으로 감싸주다 보면, 나중에 갈등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이 되어 바로 나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게 됩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불쾌감과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셔야 합니다. 비록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지는 않더라도,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상처받은 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표현하는 것이 훨씬 낫지요.

럽젠 Q 인간관계가 저마다 모두 어렵지만 가족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고 풀기 힘든 숙제인것 같아요. 친구나 직장동료라면 싫으면 안 볼 수 있지만 가족은 싫다고 안 보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 가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하게 되고 작은 말에도 더 크게 상처받고 자존심을 세우게 되는 경우들이 많은데요. 상처 받지 않고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정은하 님)
왜 가족과의 관계가 더 힘들까요?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과는 오히려 친해지면 솔직하게 가슴 속의 말을 할 수 있는데, 혈연관계인 가족과는 좋은 말만 하게 되고 대화도 줄어들게 됩니다. 가족과의 관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나요?(최순임 님)

가족이라는 이유로 쉬쉬하는 갈등들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냥 덮어두고, 서로의 잘못을 묻어두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데 어떤 문제도 그런 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침묵하고, 은폐하고, 간과하는 것은 더욱 문제를 키우는 지름길이지요. 게다가 가족 간에도 권력관계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너무 무섭다는 이유로’,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신다는 이유로’, ‘동생의 신경이 너무 예민하다는 이유로’ 아예 문제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서야 사람들은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우선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이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 어디인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가족은 싫다고 안 보고 살 순 없으니까’라고까지 말하게 된 깊은 갈등이 무엇인지, 우선 그 원인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처받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모두가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는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문제를 덮어두기만 해서 생기는 상처에 비하면, ‘치유의 과정 속에서 생기는 상처’는 견딜 만한 가치가 있는 상처이지요. 이때 아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세 사람의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 왼쪽에 앉은 여자의 표정은 어둡고, 가운데에 앉은 엄마는 천진난만하게 라면 가닥을 들어올리고 있으며 남자는 왼쪽에 앉은 여자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가족으로 인해 상처를 입지만, 결국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 또한 가족이다.(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가족의 탄생> 스틸컷)

우선 자신에게 선물을 주세요. 저 같은 경우는 여행이 우선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내가 나를 정비하기 위한 에너지 충전의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당일치기라도 잠시나마 여행을 다녀오면 낯선 곳에서 일출이나 일몰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에 기쁨의 저수지를 그득히 채워놓는 것처럼 충만한 기분이 됩니다. 매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오히려 그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풍경화가 마음속에 제대로 그려질 때까지, 좀 더 자신에게 방황할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저도 가족의 문제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가상의 도주’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정말 나에게 가족이 없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며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어보니 비로소 제 자신의 상처가,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겪고 있는 저마다의 상처가 잘 보였습니다. 가족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상처가, 가족이 없다면 겪어야 할 외로움보다 훨씬 견딜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힘든 일은 내가 맡아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물론 모든 걸 내가 도맡아 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서로의 어깨에 놓여 있는 짐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누군가 시작하면 가족들도 그것을 언젠가는 이해해줍니다. 가족 사이에도 진심 어린 우정이 필요합니다.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은 무모한 모험이다. 사랑이 커질수록, 잃어버리는 것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교환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위험을 끌어안겠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가족을 만들고 꾸려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기도 하지요.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은 상실감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두려움도, 아픔도, 안타까움도 커지지요. 하지만 사랑이 없는 세상, 가족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본다면, 이 아픔은 내게 꼭 필요한 내 몸의 장기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모든 위험을 끌어안겠다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받을 위험조차 끌어안겠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지요.

럽젠 Q 인간관계가 살면 살수록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어른이 된 후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나, 어떻게 하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Mihe Yu 님)
모든 인간관계가 어렵지만, 특히 회사에서 만난 분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모르겠어요.(유성범 님)
일단 누구한테 인사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네요. 후배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왠지 두려운 요즘입니다.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워낙 오래 되어 어색한 느낌도 있어요. 말주변이 없어서 제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저에겐 항상 어렵고 부담스러운 문제입니다. 더 이상 이대로 살기 싫어 학교에 있는 상담센터에 심리테스트를 받으려고 예약까지 해놓았습니다. 인간관계, 도대체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요?(김누리 님)

친밀감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더 깊고 따뜻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그런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미디어가 최첨단으로 발전해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의 외로움은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는 쉽게 ‘좋아요’, ‘멋져요’, ‘대단하세요’라는 칭찬을 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렇게 우호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지요. 인터넷 세상에서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거나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마음껏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는 일도 잦아집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몸’으로 움직이고 소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몸’이 만나 직접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표정을 보고, 몸짓을 바라보고, 눈빛을 교환하며 소통하는 법은 경험을 통해서만 나아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에서 쉽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만들어가는 소통은 훨씬 쉬운 것입니다. 뭔가를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항상 ‘편안함’을 주는 대신에 본래의 목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많은 공적인 만남을 전화나 이메일로 대신하다 보니, 직접 사람을 만나면 괜히 어색해지고 할 말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우리는 ‘미디어’에 익숙해지는 대신 ‘몸과 몸’이 만나 직접 교감하는 생생한 소통에 둔감해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나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남은 결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진정한 친밀감을 대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몸과 몸의 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인사만으로도 우리는 훌쩍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날씨 이야기 같은 쉬운 화제로 시작해서,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도 저는 인사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는데요. 반갑게, 그리고 환하고 밝게 인사를 잘 하는 아이들이 많은 수업일수록 더 ‘시작하는 마음’이 가볍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아이들의 인사가 심드렁할 때는 제가 먼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주말 잘 지냈어요? 주말엔 뭘 하고 지냈어요? 이런 아주 간단한 인사부터 시작하면 화제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아직 친하지도 않은데, 인사까지 대충하는 관계가 좋아질 수는 없지요. 정성껏 반갑게 인사하는 아주 사소한 몸짓을 통해서 따뜻한 관계 맺기는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의 고민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지요. 그 사람을 좋아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지만, 또 거꾸로 누군가의 고민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더욱 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내가 어떻게 남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겠어’라고 부담을 갖기 보다는, 어떤 고민인지 살짝 물어보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그 사람 곁에 다만 함께 있음으로써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웠는데, 성인이 되니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비관적인 생각이 점점 커져서 이 모든 솔직한 감정표현들이 어려워지지요.

피카소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열다섯 살에 이미 벨라스케스처럼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처럼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80년이 걸렸다.” 천재 화가 피카소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기술보다도 ‘아이들처럼 그리는 것’, 즉 아이의 마음이 되어 누군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 안의 영감을 따라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고 토로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맺기의 기술’ 같은 말은 믿지 마세요. 그런 비결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비결이나 지름길은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는 스킬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린애처럼 솔직해지는 것, 꼬마들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것, 말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기들처럼 천진난만해지는 것이 가장 어렵지요. 그런데 그 사람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면, 어느 순간 자존심조차 놓아버리게 됩니다. 연인관계뿐만이 아니라 친구관계도 그렇지요. 나이차이가 나더라도, 살아온 배경이 많이 다르더라도, 결코 친해질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을 지라도, 누군가에게 매혹을 느낀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 한구석의 방어벽이 허물어지는 일입니다. 관계에 대한 부담과 공포 때문에 꼭꼭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때 더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세요. 혹은 밤새도록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도 좋지요. 마음을 여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어려워진 지금, 우리는 어디서나 마음을 열고 자신의 마음을 꾸밈없이 보여줄 따뜻한 친구를 필요로 합니다.

Writer | 정여울
작가.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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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이어지는 관계의 흐름속에서 그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나가는 것두요!
  • 김종오

    친구, 가족, 부모, 연인, 배우자, 어쩌면 인생은 관계맺기의 연속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글 덕분에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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