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 Take : 우리의 관계는 얼마나 서로 진실한 ‘주고 받음’ 속에 있는가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는 만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환상인지를 알게 됩니다. 결코 주는 만큼 받을 수 없는 게 인간관계이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가 주지도 않았는데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 식의 사고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내면화해 온 현대인들은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내가 이렇게 많이 주었는데, 왜 내게 돌아오는 것은 이것뿐이지?’ ‘나는 그에게 그토록 잘해주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를 홀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생각 때문에 수없이 상처받고, 수없이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런 상처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 나아가 남에게 절대로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결과입니다.

누군가에게 아직 줄 것이 남아있다는 것은 사실 행복한 것입니다. 게다가 인간은 받은 것은 잊어버리고 준 것만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우리는 분명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어떤 곳에서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누군가에게 무엇이라도 받았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 잘 기억나지 않는 호의,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브 앤 테이크의 계산형 관계가 아닌,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은 관계, 주면 줄수록 오히려 더 내 자신이 크고 깊은 존재가 되는 그런 관계를 꿈꿀 수는 없는 것일까요?

*편집자 주 : 이번 달부터 <정여울의 관계학개론>은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질문으로 그 내용이 구성됩니다. LG럽젠 페이스북을 통해 수시로 정여울 작가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받고 있으며, 질문을 해 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선물도 드리고 있답니다. LG럽젠 페이스북을 늘 주목해 주세요!

흑백의 일러스트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퍼즐처럼 되어 있다.
주어야 할 것과 받아야 할 것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상대방 앞에서 자연스레 무언가를 계산하는 버릇부터 생길지도 모른다.

럽젠 Q 인간관계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요즈음 궁금한 건 상대방을 배려할 때 어느 선까지 배려하고 양보하는 건가요? 마냥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항상 좋진 않더라고요. (장두석 님)
과연 인간관계에서 양보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까요? 때로는 정말 양보해주기 싫을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도 있답니다. 저는 늘 양보하는 편인데, 과연 어느 정도까지 양보를 해야할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루나양 님)

내가 생각하는 배려가 상대방에게는 때로 무관심처럼 비칠 때도 있고, 나는 충분히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우리의 관계에 비춰볼 때 너무 부족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진짜 문제는 ‘얼마나 양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관계의 깊이’가 아닐까요. 나에게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세요.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가’를 하나하나 생각해야 하는 관계라면, 어쩌면 그만큼 친밀함이 부족한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배려가 과도하면 오히려 ‘친밀감’이 적게 느껴지고, 배려가 부족하면 그에게 ‘관심’ 자체가 적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어느 선까지 양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내 마음에 진실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 같습니다.

럽젠 Q 인간관계에 있어서 물건이든 감정이든 늘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사람은 은근히 얄미운데요. 서로가 만족할 만한 좋은 관계 유지법은 없을까요? (이현성 님)

어떤 관계도 서로 완벽하게 ‘우리는 만족한다’는 경지에 오르기는 어렵습니다. 행복한 관계들의 특징은 ‘현재 우리는 만족한다’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만족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는 상태’, 끊임없이 서로에게 노력을 퍼부어도 아깝거나 억울하지 않은 상태가 정말 서로를 많이 배려하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특히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정말 저 사람과 친하고 싶지도 않고, 친할 가능성도 없는데, 잘해줘야 하는 경우’이지요. 우리 마음속에서 ‘손익을 계산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 때입니다.

이 경우도 정말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향한 친절’은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손해이거나 아까운 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향한 순수한 친절이야말로 이 험난한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게 만드는 인간의 따뜻함이니까요. 반대로 내가 ‘별로 친해지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럽게 대했다’고 가정해보세요. 그 불편한 마음은 우선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을까요. 때로는 타인이 얄밉더라도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내가 정말로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에게 양보해준 것이 아까워서인가요. 아니면 내가 그에게 그것을 양보할 만큼 그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정말 많이 힘이 들 땐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보세요. 때로는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보물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가운데에 하트 모양이 있고, 한 손이 왼쪽에서 나와 이를 쥐고 있으며 다른 한 쪽에서는 다른 손이 나와 이를 잡으려 하고 있다.
주기만 하는 사람, 그리고 받기만 하는 사람.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럽젠 Q 모든 인간관계에서 착하면 손해본다는 말, 착하면 바보 같다거나 어리석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정말 착하게 사는 게 정말 옳지 않은 걸까요? (권소영 님)

요새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되는 걸 보니, 사람들이 정말 ‘착하게 사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지는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나의 이익보다는 ‘선함’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착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안에는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 또한 들어있습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우선 가장 좋은 점은 ‘나 자신을 향해 진실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니까요. 게다가 현대사회에서는 ‘착한 것=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나쁜 남자=매력적인 남자’라는 괴상한 이미지가 암암리에 유통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 나쁜 것들이 좋은 것들을 몰아내는 잘못된 세상의 풍토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착하게 사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면, 고민은 아주 단순해집니다. 나쁘게 말하고 나쁘게 행동한 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좋게 말하고 조금 손해보는 것이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한 것’임을 알게 되면, 우리는 ‘착하게 산다는 것=손해본다는 것’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착하게 사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자기 자신과 제대로 관계맺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제대로 관계맺기가 어렵지요.

럽젠 Q 저는 평소에는 언니들과 잘 지내는데, 공적인 자리, 회사에서의 선배 언니들은 너무 대하기 어렵더라고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너무 무서워요. (하유리 님)

친분으로 맺어진 관계와 사회적 필요로 인해 맺어진 관계는 많이 다르지요.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은 주로 같은 동네이거나 같은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맺어지기 때문에 서로에게 특별히 계산적인 관계가 필요 없지요. 하지만 회사에서 만난 관계는 처음부터 따뜻한 호의로 시작되기는 어렵습니다. 서로를 경쟁관계로 보거나,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일단 경계를 하는 분들이 많지요. 그리고 후배를 무섭게 대하는 선배들은 자신도 후배일 때 많은 상처를 받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종의 방어본능인 것이지요. 너무 ‘무섭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 보세요.

물질이나 노동으로 마음을 표현하려 하지 말고, 그냥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따뜻하게 표현해보세요. 물질과 노동으로 마음을 표현하려 하면, 나이가 어린 쪽이나 사회적 약자 쪽이 상처받을 일이 생기곤 합니다. 그냥 담백하게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보세요. 일단 반갑게 인사하고, 먼저 자연스럽게 웃고, 점심 맛있게 드셨냐고 묻는 것처럼, 아주 작은 말과 몸짓만으로도 관계는 부드러워질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가 불편해지면 일 또한 힘들어집니다. 업무보다도 인간관계가 더 어렵고 힘겹다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감정노동만큼 아무 보람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노동도 없을 겁니다. 밝게 인사하고, 밝게 웃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 봅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그것은 우선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일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혹시 관계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더 중요한 일, 더 소중한 관계에 마음을 돌리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내 가장 따뜻한 진심’을 보여주는 것은 나를 위한 최고의 선(善)이라는 점입니다. 그건 결코 손해가 아니지요.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니까요.

럽젠 Q 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놓는 사람들이 손해를 봐야만 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손해를 보고 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의견을 솔직히 말해달래서 솔직한 저의 감정과 생각을 말해주었는데, 저에게 도리어 화를 냅니다. 그래서 전 사람들이 저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서,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쳐서 제 스스로가 바보 같아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솔직하게 답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해줘야 하는 걸까요? (허지선 님)

상처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가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과 어떤 발언들 때문에 양쪽 다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 감정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그 순간에도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게 외면하고는 하지요. ‘솔직한 저의 감정과 생각을 말해주었다’고 하셨지요? 아마 상대방은 바로 그 ‘솔직한 감정과 생각’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솔직한 감정과 생각은 어느 정도 무의식적으로라도 공격성을 띠게 마련이지요. ‘솔직하다’고할 때 우리는 부정적인 표현을 거리낌없이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태도’를 생략할 때가 많지요.

솔직한 것이 꼭 정답은 아닌 관계도 많습니다. 솔직함 30%에 정중함 50%, 그리고 20% 정도는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요. 정말 멋진 사람이라면 솔직함 100%를 표현하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의 대범함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정말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떨까요. ‘상대방이 솔직하지 않다’고 화만 낼 것이 아니라요. 솔직함은 누가 뭐래도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함을 드러내는 태도의 기술이 필요하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마음챙김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는 동안 느낀 쾌감만큼이나 상대는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럽젠 Q 인간관계에서 밀당은 필요한가요? (Stella Shin 님)

저는 밀당에 전혀 소질이 없기 때문에 이 질문에 잘 대답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하지만 밀당이 없이도 잘 지내왔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무기는 항상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밀당으로 꾸미거나 계산할 필요가 없는, 그저 해맑은 진심 말이지요. 누구나 밀당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밀당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요. 그런데 의도적으로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밀당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일 때문에 만나는 사이이거나 가족 관계에서도 밀고 당기기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나올까?’하고 실험해보는 순간이지요. 그것이 정말 관계를 유쾌하게 만들기 위한 장난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까’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것은 상대를 시험에 빠뜨리는 것이지요. 결코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밀당 없이도 사랑하고, 밀당 없이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않지요. 그런 것들을 자꾸만 생각하다가는 우리의 정신건강은 위태로워지겠지요.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계산하고 불안해하지 마세요. 밀당 없이도 사랑하는 법, 밀당 없이도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진정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두 사람이 등을 대고 뒤돌아서 있으며, 그들을 둘러싼 화살표와 ‘us’, ‘me’, ‘you’, ‘?’ 등의 글자가 화살표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럽젠 Q 인간관계에서 무조건 잘해주면 유지가 되는지 궁금해요. 나는 잘해주는 편인데, 상대방이 오히려 저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어떤 기준이 있는 걸까요? (박정선 님)

‘잘 해준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겠지요. 그런데 잘해주는 것에 어떤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상대는 부담스러워 하게 됩니다. 사귀기 위해 잘해준다든지, 어떤 이익을 위해 잘해준다든지 하면 상대는 부담을 느낄 수 있지요. ‘잘 해준다’는 말 자체가 ‘이쪽에서 무언가를 베푼다’는 느낌이 있기 마련이지요. 상대에 대한 호의를 표현하는 것이 꼭 잘 해주는 것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정말 잘 지내고 싶다면, 일방적으로 잘해주기보다는 그 사람과 다양한 관심사를 나누거나 함께 있을 때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것을 준다’는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지금 이것을 함께 하고 있구나’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내가 일방적으로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느낌을 주면 상대는 움츠러들 수 있지요. 내가 왜 상대방에게 잘해주고 싶어하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본능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인지, 그 사람이 정말 좋아서인지, 다른 사람의 이목이나 평판을 생각해서인지, 혹은 다른 분명한 목적이 있는지. 그런 자신을 돌아보면 더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상대에게 잘 해주기만 하는 것은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의외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저쪽에서 뭘 원하는지를, 저쪽에서 나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지요.

럽젠 Q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정중하게 또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적당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유린 님)

‘선을 긋는다’는 말은 참 매정한 표현이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런 경우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상대방은 나와 더 친해지고 싶어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데, 나는 그가 원하는 만큼 다가갈 수 없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관계에서는 선을 그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도 그렇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지요. 선을 아무리 그으려 해도 그을 수 없는 관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도 하고 관계도 유지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별로 없습니다. 두 가지 모두의 이점을 다 가지려 하면 두 가지 모두 잃을 수도 있지요. 선을 그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자신이 ‘적당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정말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노!’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진심도 없이 적당한 관계만 유지하려 하는 것은 상대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됩니다. 나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키는 길은 우선 나에게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이고 싶은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내가 아니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심이 없는 관계는 ‘적당한 관계’도 될 수가 없습니다. 아주 가끔 만나더라도, 특별히 ‘친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좋은 지인’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꼭 친구나 선배라는 명칭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내가 그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알고만 있어도 좋은 그런 지인일까요. 나도 그에게 좋은 사람일까요. 남에게 물어볼 때보다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더 정확한 대답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적당한 관계’를 맺으려 하기보다는 아주 가끔 만나더라도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럴 수 없다면, 그러기 위해서 내가 나다움을 포기해야 한다면, 과감하게 ‘노!’라고 대답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관계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지요. ‘나다움’ 속에 ‘진정한 관계’를 향한 해답도 있습니다. 진정한 나다움을 조금씩 깊고 넓게 확장해가는 것이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Writer | 정여울
작가.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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