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강필수 제작무대 감독

“쉽지 않아요.” 공연예술 직업을 가진 대다수 인터뷰이의 공통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그 자리에서 끝없이 물질하는가?

공연 계의 젊은 피로 손꼽히는 강필수 무대감독. 그는 무대감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수많은 스태프를 모두 아울러야 하는 위치답게, 그 또한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생생한 패기가 전달되는 인재였다.

럽젠Q : 무대 감독이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왔고,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우연히 대학 선배의 권유로 무대전환 크루(극 진행을 위해 무대를 전환하는 일)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죠. 무대의 백 스테이지는 굉장히 어두워요. 스태프는 관객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 모두 검은 옷만 입고 움직이죠. 그 깜깜한 곳에서 유일하게 빛이 있는 공간이 바로 무대 감독이 앉는 SM 데스크예요. 그때 SM 데스크에 앉아 공연을 진행하는 제 스승님의 뒷모습이 막연하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 뒤로 무대 감독이 꿈이 되었죠.

럽젠Q : 무대감독의 역할을 설명해 주세요.

무대감독은 지휘자라고 할 수 있어요. 조명 감독, 음향 감독, 미술 감독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고 서로 완전히 별개의 파트라고 보면 돼요. 무대 감독은 그런 각기 다른 파트를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이죠. 공연을 올릴 때 세트 담당은 자기 세트가 무대에서 더욱 돋보이길, 조명 담당은 자기 조명이 더 빛나길 원하죠. 각자 욕심이 많아서 공연이 조화롭지 않은 부분이 생기는데, 무대 감독이 그를 중재하고 조율하는 거죠.

럽젠Q : 무대 감독의 업무 중 가장 주된 게 무엇인가요?

‘콜링(calling)’이라고 공연을 진행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큐를 날리는 일이에요. 조명, 음향, 세트, 배우가 딱딱 맞는 타이밍에 진행할 수 있게 총괄하는 것이죠. 무대 감독의 말 한마디에 모든 세트가 움직이고 막이 올라가고 조명이 꺼지고 켜져요. <빌리 엘리어트>는 3시간의 공연에 8백개 정도의 큐가 있어요. 저는 무대를 뒤로 하고 SM 데스크에 앉아서, 7대의 모니터만 들여다보면서 큐를 날리죠. 저는 무대를 못 보지만, 뒤에서 뛰어다니는 조감독들이 제 눈이 되어줘요. 재미있고 멋있는 작업이지만, 상당한 책임도 뒤따르죠. 1, 2분이라도 딴생각을 하면 저 때문에 사람이 다칠 수도,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럽젠Q : 무대 감독은 뭔가를 창조하는 역할이라기보단 관리자인 건가요?

그렇죠. 연출가가 그림을 그리고 무대 위에서 구현하면, 무대 감독은 그 그림을 유지하고 보수해요. 공연이 크리에이티브팀이 추구하는 컨셉트와 방향에 맞게 진행되도록 하죠. 영화 <김종욱 찾기>를 보면 연출가가 무대 감독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어요. 다들 각자 독립된 역할이 있는 수평적 관계이기 때문이죠. 예전에 제 선배님 세대에는 무대 감독들이 나이를 먹으면 무대 설치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는 기술 감독이 됐어요. 하지만 요새는 바뀌어서 나이와 상관없이 말 그대로 기술적인 사항만을 담당하는 사람이 기술 감독이에요. 각자 맡은 파트가 확실해진 거죠.

럽젠Q : 공연을 준비하는 사전제작 기간에는 어떤 일을 하나요?

연습실에 상주하면서 연습을 진행해요. 크리에이티브팀(연출, 음악감독, 안무가)이 집중할 수 있는 연습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죠. 그밖에 일정을 정리하고 공지하고, 배우들이 연습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요. 소품 준비부터 배우를 위한 물 관리까지 사소한 사항도 모두 관여하죠. 보통 연습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는데, 무대 감독들은 1, 2시간 전부터 나와서 연습실 정리를 해요. 연습이 끝나면 그날의 리포트를 작성하죠. 연습실에 상주하지 않는 소품이나 의상 디자이너에게 오늘 연습실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고 무엇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요.

럽젠Q :배우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힘들겠죠?

어렵죠. 특히 <빌리 엘리어트>는 주연이 다 아이들이라서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썼어요. 워낙 예상치 못한 사건이 좀 많았어요. 멀쩡했던 애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던가••• 아무래도 아이들이라 기분이 들쭉날쭉할 때도 많고요. 주연 아이들이 급격히 인기를 얻으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도 과제였어요. 제가 미혼이라 아이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힘든 면이 있었죠.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웃으며 달래는 순간도 있었고.(웃음) 항상 어떤 배우냐에 따라 무대 감독의 일이 편해질 수도 있고 굉장히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럽젠Q : 공연이 올라간 후에도 연습은 계속되나요?

공연이 올라간 후에는 좀 편하죠. 보통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와서 준비해요.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는 인정받은 작품이라 사전제작 기간에도 오후 10시까지 연습했어요. 이후에도 연습을 많이 하죠. 작년 8월에 처음 무대가 올라갔는데, 지금까지 연습 안 한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아요.

럽젠Q :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전 26세 때 처음 콜링을 하며 무대 감독으로 입봉했어요. 작품이 <오페라의 유령>이었는데, 원래 제 스승님이 무대 감독이었고 저는 조감독이었죠. 스승님이 해외에서 갑자기 맹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저한테 기회가 돌아왔던 거였어요. <오페라의 유령>은 60인조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연주하는 뮤지컬이에요. 그런데 전 당시 악보도 전혀 볼 줄 몰랐거든요. 심지어 학창 시절에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음악이었어요. 음악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모르는 무대 감독은 반쪽 짜리 감독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열흘 간의 공연이 이뤄지는 동안, 매일 겨우 한 시간 정도 자면서 전 막을 외웠어요. 사람이 한계에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고생했지만 그 경험 덕에 ‘마술피리’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작품이 됐고, 그 이후로도 그 작품을 20번 이상 다뤘어죠. 그 이후 음악의 중요성을 깨닫고 피아노 학원도 다녔어요.(웃음)


럽젠Q : 무대 감독은 음악을 비롯해서 여러 기술도 잘 알아야 하는 거죠?

너무 깊고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얕은 지식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파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이 알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파트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고 월권을 행할 수도 있거든요. 어느 정도는 알아야 진행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으면 그만큼 조율이 힘들어지죠.

럽젠Q : 무대 감독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자질은 무엇인가요?

그건 팀마다 달라요. 무대 감독의 팀마다 일에 임하는 태도도, 하는 일도, 성향도 전부 다르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엔 특별히 갖추어야 하는 자질은 없는 것 같아요. 저희 팀을 기준으로 말하면, 인성을 가장 중요시하는 편이에요. 무대 감독은 모두를 말로서 아우르는 소통의 귀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좋아해야 해요. 영어나 전문지식 같은 특정한 능력은 적정한 타이밍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 자체가 무대 감독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아닌 것 같아요. 음악 같은 건 현장에서 차차 터득하고 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 할 수 있거든요.

럽젠Q : 역시 소통이 핵심인 건가요?

네. 제가 일하면서도 새로운 배우와 스태프를 만나는 것,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운 부분이에요. 한편 소통이 어렵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죠. 저는 조율을 하는 역할인데, 사람마다 원하는 바와 생각이 워낙 판이하니까요. 그 속에서 말을 조리 있게 해서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가기 어렵죠. 배우와 스태프, 회사 사이에서 항상 중립을 지켜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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