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이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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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두 사람이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든, 어떤 사람이든, 어디 살고 있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진실로 함께 할 운명이라면
그 어떤 장애물도 그 어떤 장벽도 힘을 쓸 수 없다고 믿어요.

– 줄리아 로버츠

여러 손들이 알파벳을 하나씩 들고 있고, 이들이 완성시킨 단어는 붉은 색의 ‘Farewell’이다.

*편집자 주 : <정여울의 관계학개론>은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질문으로 그 내용이 구성됩니다. LG럽젠 페이스북을 통해 수시로 정여울 작가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받고 있으며, 질문을 해 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선물도 드리고 있답니다. LG럽젠 페이스북을 늘 주목해 주세요!
럽젠 Q 그 사람과의 이별이 남긴 상처를 이미 다 극복한 줄 알았는데,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쑥불쑥 난데없이 그 이별의 상처가 저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한 사람들의 체험담, 영화, 소설을 아무리 뒤져봐도 저를 위한 해답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이별의 상처도 있는 걸까요.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이별’이라는 대목을 읽는 순간, 무언가 가슴 한쪽의 견고한 방어벽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처를 남몰래 품어 안고 살고 있지요. 자존심이 센 사람일수록, 이별의 아픔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도 몰랐지요. ‘아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이별은 나에게 절대로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어우러져, 저는 이별의 아픔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조차도 이별의 기억을 저 멀리 떨쳐내려 애쓰기도 했지요. 아무데서나 불쑥 솟아오르는 추억과 아픔들을 마치 날카로운 낫으로 잡초를 베듯 가차 없이 제거해버리려고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하다 보면 정말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되지 않을까, 그런 바보 같은 기대감에 휩싸여 이별의 상처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 강박적인 행동 자체가 그를 잊지 못하는 증거라는 점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진짜 아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아픔을 굳이 통제할 필요를 못 느낄 무렵, ‘이젠 너무도 무감각해져 아픔조차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너무 늦어버린 가슴앓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무 소용이 없는 순간이 되자, 만날 수도 없고 부질없는 미련조차 다 사라져버린 순간에, 나 스스로 억압해왔던 기억의 마그마가 폭발해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어처구니없는 애도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있지만, 그와 내가 함께 했던 시간은 죽어버렸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토록 소중한 기억,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자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아무 데서나 그의 환영을 보았고, 아무 데서나 그와 닮은 사람을 보기 시작했지요. 이러다가 미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들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나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기뻤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별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어’라고 나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좋아지기 시작했지요. ‘나는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어’라는 오만을 떨쳐낼 수 있게 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나는 혼자서는 잘 해낼 수가 없구나, 그 사람 없이는 안 되겠구나, 그와 함께 할 때 내 삶은 가장 아름다웠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던 모든 노력은 다 물거품이었구나. 이렇게 심장을 찌르는 엄연한 진실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게 되자 비로소 그 이별의 아픔조차 그 사람이 나에게 남겨준 소중한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을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진실’로 인정하게 되자 그토록 요동치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편안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로 한 여자가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여자가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어 우는 것임이 드러난다. 이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별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별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나의 PS파트너> 스틸컷)

여전히 아프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상처 입은 나 자신’의 마음의 무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뜯기고, 찢어지고, 피 흘리고, 삐뚤빼뚤 꿰맨 상처로 가득한 내 가여운 마음의 무늬가 보이기 시작했지요. 내 마음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기자 신기하게도 아픔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처 입은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폐가처럼 가련하게 버려져 있는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혹시나 다시 상처를 받게 될까 봐 진실한 사랑이 다가오는 것을 회피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떠난 후 견딜 수가 없게 될까 봐 자신이 얼마나 사랑에 빠져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숨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 나약한 자기기만의 대가를 스스로 치러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맙니다. 그 자기기만은 우선 이별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 그 눈속임이 우리의 무의식을 분열시키고, 더 커다란 아픔으로 우리 자신을 이끌게 됩니다. 우리는 이별을 경험하는 순간, 그 충격에 스스로의 영혼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별 때문에 슬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요.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마음껏 아파해야 합니다.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순간, 치유는 시작되니까요.

우정은 가끔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결코 우정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 바이런
럽젠 Q 헤어진 그 사람은 아주 밝고 환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 헤어진 이후에도 친구로 지내자고 합니다.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만큼 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그와 친구로라도 지낼 수 없다면 다시 만날 수도 없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힙니다. 나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그 사람은 나에 대한 작은 미련조차 없어 보이니 그 또한 저를 아프게 합니다.

“우정은 가끔 사랑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결코 우정으로 추락하지 않는다”는 바이런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저도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격의 없는 친구로도 변할 수 있다고, 그것이 ‘쿨하고 멋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우정은 우정을 넘어설 수 없고, 사랑은 사랑 이외에 그 무엇도 될 수 없는데, 양쪽의 감정이 늘 같을 수가 없기에 사랑과 우정 사이에 아슬아슬 줄을 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해갈 수는 있지만, 사랑이 우정으로 퇴보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한쪽의 감정이 아직 식지 않았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저는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는 경우도, 사실 처음부터 사랑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깨닫지 못했을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격의 없이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설렘이나 떨림을 느끼는 것조차 죄스러운, 그런 우정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외적으로 정말 헤어진 두 남녀 사이에 전혀 다른 사랑이 각자 싹터서, 각자의 길을 잘 걸어간 후 오랜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이 우정으로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서로에게 어떤 티끌만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면요. 미련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 섭섭한 감정조차 전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남녀로서의 끌림’은 완전히 끝났다면요. 이혼을 한 후에도 계속 자녀 때문에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수 있지요. 양쪽이 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자녀 때문에 전남편이나 전처를 만나는 일은 ‘우정’이나 ‘의리’로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 다른 변수가 있지요. 새롭게 만난 배우자나 파트너가 전처나 전남편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만남은 우정으로도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현재의 인연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지속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정말 티끌만한 미련이나 연민조차 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과거의 커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때로는 현재의 열정에 달린 날개를 과거의 추억이라는 장애물이 꺾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직 ‘나’에게 아주 작은 미련이나마 남아 있다면, ‘우리 헤어져도 좋은 친구로 남아있자’는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는 ‘친구’라는 이름의 덫으로 당신을 영원히 구속할지도 모르니까요. 우리는 ‘친구’라는 일말의 가능성에 매달려 ‘아직도 그를 생각하는 나’의 관성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한 남자와 여자가 소파의 양쪽에 떨어져 앉아 있다. 여자는 화가 난 듯 팔짱을 끼고 있고 남자가 그녀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친구? 아니면 다시 연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브레이크업> 스틸컷)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순수한 감정을 지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적에게는 마음에 드는 부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게 마련이니까.

– 예이츠, <켈트의 여명> 중에서
럽젠 Q 가장 친한 친구와 사소한 오해 때문에 멀어지게 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아프지만, 가장 친했던 친구와 만나지 못하는 아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다툼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멀어져 버린 친구에게 다시 연락한다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요. 저는 때로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헤어진 그 친구가 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친구가 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때 받게 될 상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은 아니지요. 친구와의 우정도, 더없이 친하게 지내던 선후배 관계도,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에도, 가족만큼이나, 때로는 가족보다 더 끈끈한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실연’의 이미지에 비해, 친구나 지인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아픔은 자주 조명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경우보다는 친구나 지인, 선배나 후배와 헤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도 말이지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뼈아픈 독백은 연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매일매일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짧은 인생에 대한 애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며 점차 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과 조금씩 멀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은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알고 지낼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업무가 끝나 이제 더 이상 ‘일 때문에’ 보는 일은 없게 되는 경우가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이별의 종류인데요. ‘일 때문에’ 만났지만 그 일이 끝난 후에도 계속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고, 일이 끝나면 만날 일조차 없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그것을 넘어 더 깊은 우정으로 이어지는 인연은 극히 드물지요. 하지만 그 모든 ‘지인과의 이별들’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것입니다. 친구와의 사귐은 처음부터 어떤 이해관계도 개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합니다.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내가 꿈꾸어온 세상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지요. 그런데 연인과의 이별이 칼에 찔린 자상(刺傷)처럼 날카롭고 아픈 것이라면, 친구와의 이별은 자신도 모르게 몸 속에 깊이 난 내상(內傷)처럼 아픔이 즉각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구와의 이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천천히 번져가는 아픔이 됩니다.

‘친구가 내 뒤늦은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 뒤에는 아직 ‘오래 전 친구와 헤어질 때 내가 받았던 상처’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 친구에게 또 한 번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 내가 다시 우정을 시작하려고 해도 그 친구가 원하지 않는다면 애써 연락을 한 내 용기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그 공포 뒤에는 ‘아직 그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무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내 아픔만 계속 생각한다면, 내가 또 다시 받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상처만을 두려워한다면, 헤어진 친구와는 영원히 다시 만날 수가 없겠지요. 연락이 끊어진 친구에게 선뜻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 밑바닥에는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깔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 언제나 내가 먼저 사과하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지?’ 하는 억울한 마음이 깔려 있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런 피해의식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관계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먼저 연락하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떤 관계도 회복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또 다른 길은 무엇일까요. 더 성숙한 길은 ‘상처받았던 나’를 앞세우는 대신, 그때 나만큼이나, 또는 나보다 더 많이 상처받았을 친구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만, ‘내가 남에게 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인지자체를 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상처가 아닙니다. 내 상처만 생각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상대방의 상처지요. “정말 미안해, 그때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이렇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우정은 이미 다시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설령 그가 다시 우정을 되찾고픈 내 마음을 거절하더라도, 상대방의 상처 입었을 마음을 상상해보는 일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은 한 뼘 자라 있을 것입니다. 연인과 가슴 아프게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너무도 어렵지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친구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크고 깊은 우정으로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어요 모든 것을 지금 그대로
갑자기 그대 돌아온대도 전혀 낯설지 않도록
언제 어디라도 내겐 좋아요 혹시 나를 찾아준다면
내가 지쳐 변하지 않기를 내 자신에게 부탁해
아무도 날 말리지 않을 거예요 잊지 못할 걸 알기에
그냥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내내 꿈꾸듯 살도록

– 윤종신, <배웅> 중에서
럽젠 Q 우리 가족들은 언젠가부터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는 약속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형이 어린 시절에 교통사고로 죽은 일에 대해서, 누구도 말하려고 하지 않고 형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금기시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어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누나와 부모님들은 저와 달리 그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 같습니다. 제가 언젠가 통팥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보며 “이거 형아가 좋아하던 건데!”라고 반가워하자, 아버지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지셨지요. 그때부터 저는 형의 이야기를 가족 앞에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우리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형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쯤이 되면, 우리 가족이 죽은 형에 대해서 조금씩이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될까요.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것만큼 아픈 이별이 어디 있을까요. 그것도 아직 어른이 되어보지도 못한 채,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족이 있다면 그런 아픔은 견딜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일 겁니다.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이가 아주 어려 기억 자체가 가물가물한 동생과 달리, 누나나 부모님들은 그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기에 다시 떠올리기 싫은 고통일 수밖에 없지요.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경우, 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조심했다면,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엄청난 사고나 질병 앞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초능력으로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꿔보려는 꿈을 꾸게 됩니다. 무서운 질병과 싸우는 가족을 위해, 엄청난 사고를 당한 채 누워 있는 가족을 위해, 우리는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수 있을 것 같지만, 기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 있지요.

우리 막내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저는 아버지의 눈물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봤지요. 부모보다 형을 더 의지하며 자라났던 우리 막내 삼촌을, 역시 자식처럼 사랑했던 우리 아버지는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내가 더 노력했다면 동생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죄책감에 시달리셨습니다. 소아마비와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합병증 때문에 평생 한 번도 제 발로 걷지 못했던 삼촌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어떻게 하면 내 동생을 걷게 할 수 있을까’하고 늘 고민하고 엄청난 대수술도 여러 번 하게 해주셨지요. 하지만 당시 수준으로는 최고의 의술로도 삼촌을 살릴 수가 없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결혼도 하지 못했고 자식도 없었던 너무나 어린 삼촌의 영정을 제가 가슴에 안고 삼촌의 방을 돌 때는 저 또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가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나이가 많아져 버렸지요. 하지만 저는 삼촌을 자주 기억하고, 삼촌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일기에 써보기도 하고, 남들이 없을 때는 혼자 조용히 ‘삼촌~ 삼촌!’하고 덧없이 불러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 멀리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삼촌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사람의 몸이 죽어도 그 사람과 함께 한 추억까지 죽여버려서는 안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힘들겠지만, 조금씩 형의 기억을,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을 멈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형이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형을 생각하고, 형이 만졌던 장난감을 바라보며 형을 그리워하고, 형이 들려줬던 노래를 불러보며 형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새 내가 형보다 더 형이 되어 있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때쯤이 되면, 내가 ‘형의 형’이 될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오면, 가족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저도 이제 돌아가신 삼촌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지니, 이제야 이 모든 사람들을 등 뒤로 하고 떠나야만 했던 삼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지, 그리고 얼마나 우리를 그리워하고 사랑했을지를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상을 떠나 우리를 아프게 하는 바로 그 사람이 우리를 거꾸로 위로하게 됩니다. 삼촌은 가끔 꿈속에서 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신을 데리고 멀리 소풍을 함께 가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꿈속에서 만나는 삼촌은 이제 저에게 아주 어리고 귀여운 남동생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때는 제가 삼촌의 사랑을 받기만 했지만, 이제 제가 삼촌에게 사랑을 드려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 사람이 세상에 없어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 한, 이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지요.

한 여자가 책상 앞에 앉아 꽃들을 압화하려는 듯 꽃 몇 송이를 흰 종이 위에 올려두고 있다.
누군가가 세상에 없더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는 한, 이별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스틸컷)

이별은 우리가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삶의 흔적들과 살아가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진아 도서관’이라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도서관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곳이지요. 그곳은 스무 살이 되기도 전, 너무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어 기증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진아라는 이름도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의 이름이지요. 저는 그 도서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어도, 그 사람의 따스한 몸을 다시는 안을 수 없어도,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애도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Writer | 정여울
작가.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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