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 영화, 그리고 삶을 감독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성소수자’들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드라마,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동성애 인물들이 활약하기 시작했고 거리 또는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다. 지난 6월 성황리에 마친 신촌 퀴어문화축제는 전 국민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켰다.

사진_서수현(제20기 학생기자/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양 손을 기도하듯이 모으고 얘기하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 패셔너블한 모자와 노란티, 귀걸이가 눈에 띈다.

김조광수, 그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분홍신>,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 수많은 흥행작품을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최신작 <원나잇 온리>로 참신성과 작품성을 재조명 받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로 동성결혼을 선언한 성소수자이자, 성소수자 인권 확립을 위해 시간과 노고를 아끼지 않은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영화감독, 김조광수

김조광수 감독의 두 작품 포스터. 좌측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포스터에는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들이 서로 엇갈려 누워 손을 잡고 있고, 우측 ‘원나잇 온리’ 포스터에는 상반신 나체의 두 남자가 귓속말을 하듯 가까이 붙어 있다.  대한민국 퀴어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왼쪽), 김조광수 감독의 탁월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최신작 <원나잇 온리>(오른쪽).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식전환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 감히 그를 모르고는 현재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성소수자 바람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성소수자 영화감독 김조광수가 세상에 당당히 알려지기까지는 어떠한 배경이 있었을지 궁금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형을 따라 난생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됐어요. 당시로서는 큰 규모의 극장이었는데 불이 꺼지고 영사기에 화면이 투사되는 순간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고 저도 그랬죠.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가 수많은 사람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이끄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남들과 다르다는 걸 깨달은 건 15살 때였어요. 당시 같은 반에 눈이 정말 예쁜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계속 그 아이를 생각하곤 했죠. 처음에는 ‘그냥 그 친구가 좋은가 보다’, ‘설마 내가 남자를 좋아하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그 친구가 계속 보고 싶고, 생각나고 하니 비로소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죠. 다른 친구들이 옆집누나를 훔쳐볼 때 혼자 어리둥절해하기도 했고요.“

인터뷰 중의 김조광수 감독 사진. 입을 닫은 채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듯 하다. 그의 앞으로 반쯤 남은 테이크아웃 커피가 놓여져 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처음으로 직면하는 고통은 ‘타인’으로부터의 편견과 멸시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편견과 멸시였다. “우리도 스스로를 혐오했던 순간이 있어요.”라고 서두를 시작한 김조광수 감독은 곧 가슴 아팠던 당시를 회상했다.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이 아이는 성소수자다’라고 얼굴에 쓰여 있으면 ‘내가 소수자구나’라고 인지한 뒤에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갈지 준비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이 성소수자인지도 모르고 어릴 때 “동성애자들은 더럽다, 징그럽다”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전전긍긍하며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죠. 이처럼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에 직면해요. 다른 성소수자들도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죠. 저는 15년이 지난 서른 살에야 비로소 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무려 1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본 모습을 받아들였다는 김조광수 감독. 그가 말한 자신의 본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내가 나를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사회가 나를 혐오한다.’ ‘편견이 나를 힘들게 한다.’라고 남 탓만 했지만,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어떻게 남들이 나를 받아들이길 바랄 수 있는지를 깨닫는 거죠. 영화적으로 표현하면 ‘웅크려 있던 나를 다가가서 부드럽게 안아준다’고 할까요. 그렇게 처음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인 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동시에 해방감도 느꼈죠.”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선택, 커밍아웃

김조광수 감독 작품 ‘후회하지 않아’의 포스터. 상반신 나체의 두 남자가 웃으면서 귓속말을 건네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1996년부터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하다가 2006년, 퀴어 영화 <후회하지 않아>를 발표하면서 대중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이성애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커밍아웃이란 상당히 쉽지 않은 결정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한 데 이어, 이제는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다. 김조광수 감독의 커밍아웃은 단순한 자기고백을 넘어 일종의 사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는 커밍아웃을 하면 행복하게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원인은 단지 선행 사례가 없었다는 것뿐이었죠. 누군가가 성소수자로 살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면 ‘저 사람도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나도 저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빨리 커밍아웃을 했을지도 몰라요. 내 뒤의 후배들이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부정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커밍아웃을 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죠.”

지인을 넘어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김조광수 감독. ‘성소수자’라는 타이틀로 인해 그의 일상, 직업에 지장이 발생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의외로 시원했다.

“영화인으로서 어려운 건 없었어요. 다행히 예술계는 사고가 유연한 편이니까요. “그 회사 대표는 호모래”하고 숙덕이며 투자자, 배우들이 끊겨 회사에 지장이 발생할까 봐 걱정되기는 했지만 <분홍신>이라는 영화를 마치고 나서 “그래 뭐, 나가려면 나가시던가.” 하는 자신감이 붙었고 이때부터 영화에도 동성애 코드를 넣기 시작했죠.
오히려 커밍아웃 전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2001년도에 영화를 개봉하고 기자 시사회를 했는데 어떤 기자가 “작중 인물 중에 게이 캐릭터가 있는데 혹시 감독님을 모델로 한 것 아니냐”라고 불쑥 물었죠. 그때 저는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아니라고 답변은 했지만 기분이 너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이후로 그 기자가 저한테 두 번이나 전화를 해서 정말 성소수자가 아닌지 또 물어봤고 그것도 두 번 다 아니라고 대답했죠. 마치 예수를 부정했던 베드로가 떠오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이대로는 못 살겠다, 꼭 커밍아웃을 해야지 결심했고 결국 5년 후에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됐네요.”

인터뷰중의 김조광수 감독 사진,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다. 장면 전체가 45도 정도 기울어있다

모든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각 개인마다 처한 상황과 환경은 상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조광수 감독은 가능하면 꼭 커밍아웃을 하라고 권한다. 자기 스스로한테 당당해지고, 이어서 타인에게 당당해지는 것만큼 삶에서 행복한 일은 없노라고 김조광수 감독은 말했다.

“커밍아웃을 안 했으면 아직까지도 저 자신을 숨기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을 거예요. 15살에 정체성을 깨닫고 곧 50살이 되는 35년 동안 두려움에 빠져 살았다면 당연히 행복할 수 없겠죠. 저도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우울한 스타일이었어요. 물론 겉으로 밝은 척이야 했지만 집에 오면 ‘난 또 나와 다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였구나.’ 하고 자책하기 일쑤였죠. 제가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보니 속죄의 의미로 자기 전에 주기도문을 천 번씩 외우기도 했고요. 만약 커밍아웃을 안 했으면 35년 동안 계속 그렇게 살아왔을 거예요.
또, 성소수자들은 예민한 시기에 자기 자신을 계속 되묻기 때문에 그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다양한 예술적 방향으로 발현시킬 수 있어요. 어쩌면 이성애자들보다 성소수자들이 철학적인 사고도 더 발달하지 않았을까요?(웃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시작하니까요. 이러한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도 역시 커밍아웃이 필요하죠.”

대한민국에서 한 번뿐인,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결혼식

인터뷰중의 김조광수 감독 사진,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다. 장면 전체가 45도 정도 기울어있다2013년 9월 7일, 김조광수 감독은 배우자 김승환 씨와 대한민국 최초로 동성결혼을 선포했다.

김조광수 감독 하면 그의 영원한 동반자 김승환 씨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터. 지켜볼수록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을지 궁금했다.

“김승환 군은 <친구 사이>라는 게이 인권운동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사랑하게 됐어요. 서로 남들이 기피하는 굳은 일들을 먼저 나서서 하는 성격이다 보니 함께 지내는데 특히 잘 맞았죠. 그리고 오래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하루에 잠들기 전에 짧으면 30~40분, 길면 1~2시간을 꼭 이야기를 하고 자요. 덕분에 서로 불만도 안 쌓이고 숨기는 것도 없어서 관계에 아주 도움이 되죠.”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동성결혼을 선포한 것에는 두 사람 모두의 강한 결심이 필요했을 것. 그리고 그 결심의 배경에는 한편의 로맨틱한 이야기가 몰래 자리잡고 있었다.

“서로 사귀기 시작한 지 2년째에 김승환 군이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어요.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오히려 애틋함을 느끼고 관계도 더 깊어졌죠. 그리고 다음해 밸런타인 데이에 서로 파리에서 만났어요. 4박 5일 동안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파리 공항에서 헤어질 준비를 하는데, 사람들이 보든 말든 목 놓아 엉엉 울다 비행기를 탔죠. 그 다음엔 제가 미국으로 가서 다시 만났는데 우리 커플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면서 ‘아, 우리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죠.”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식 지지 사전운동. 광화문 광장에서 김조광수 감독이 마이크를 쥐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 뒤로 동성애 지지자들이 분홍색 풍선,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결혼식 지지 사전운동을 하던 당시의 김조광수 감독. 곁에 있는 지지자들은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인식적•법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완전한 수용은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사회•문화적 부분에 빠른 전환을 보여준 대한민국의 선례에 미루면 동성애 역시 의외로 빠르게 수용될 것이라 김조광수 감독은 낙관했다.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동성애에 반하는 감정이 많아요. 특히 교회에서 성경을 토대로 이를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하는 발언은 손가락에 꼽히고 맥락상으로도 큰 비중은 아니에요. 성경이 쓰인 시대엔 노예제가 존재했고 실제로 성경에도 노예제를 인정하는 듯한 부분이 있어요. 그렇다고 오늘날 노예제가 용납되는 건 아니잖아요? 이처럼 성경도 시대성에 맞는 해석이 필요한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동성애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정작 자신의 주변에서 그 일이 발생하면 받아들이지 못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확산이 필요한 것이죠.”

머지않은 날, 이루어지기를

인터뷰중의 김조광수 감독 세로사진. 시선을 아래로 향한 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꾸준한 작품 활동과 더불어 성소수자 인권신장을 위해 항상 발로 뛰고 있는 김조광수 감독. 앞으로 그의 목표와 행보는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영화 <엑스맨>의 감독 브라이언 싱어도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영화를 보면 한 인물이 부모에게 자신이 조심스럽게 돌연변이임을 밝히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하는 모든 감정을 녹여낸 부분이죠. 그야말로 브라이언 싱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장면이었는데요. 저 역시 저와 성소수자들의 감성을 작품에 담되 노골적인 표현이 아니라 극적 상황을 통해 표현하는 더욱 의미 깊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차기작은 ‘암행어사와 흡혈선비’라는 큰 틀이 잡혀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의 모습을 잘 그리도록 노력할 예정이죠.
또 정당 활동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구조’를 바꾸는 데 힘쓰려고 해요. 오랜 구조와 편견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구조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도록 하면 언젠가는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김조광수 감독 사진. 입을 한 손으로 살짝 가린 채 웃고 있다.

김조광수 감독은 여전히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자기 자신을 혐오하거나 부정하지 말 것. 미래를 너무 암담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희망을 가질 것. 동성애가 인정받는 순간은 의외로 빨리 다가올 수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자신을 혐오하거나 부정하지 말라는 충고는 비단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콤플렉스와 걱정, 고민을 안고 사는 ‘이성애자’들에게도 충분히 해당하는 문제 아닐까?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에너지를 얻고, 내면의 고통들을 능력으로 승화시키라는 것! 이는 성소수자 김조광수가 남긴 말이 아니라 ‘삶의 감독’ 김조광수가 남긴 말이었다.

진정한 자신,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만만치 않았던 삶의 여정!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김조광수 감독이라면 어느 영화처럼 멋진 결말을 완성할 것이라고, 더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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