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유 | 소년과 남자의 사이에서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듯한 목소리, 작은 체구에서 어딘가 원숙한 청년의 얼굴이 비친다. 살짝 건드리면 눈물을 툭 떨굴 것 같은 눈망울이 아이 같다가도, 이따금씩 내비치는 강한 눈빛에서 연기에 미친 남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이 소년이 눈물을 닦고 도달하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서 있는 23살의 배우 김시유의 연기 그리고 꿈에 관한 이야기.

배우 김시유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남색 티셔츠와 스냅백을 뒤로 썼다. 짙은 눈썹과 까만 머리 그리고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서있는 듯한 배우, 김시유

2014년 여름, 두산 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연극 <배수의 고도>는 3ㆍ11 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인간성의 상실을 말하고 사회 정의에 대해 물었다. 이 연극의 메시지는 올해 우리나라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배우와 연출가가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뭉쳤다. 이 가운데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젊은 배우 김시유가 있다.

김시유, 배우가 된 소년

연극 <배수의 고도>에서 쓰나미에 집과 가족을 잃은 타이요 역을 맡은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거친 야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을 달리하는 홀로그램처럼, 그의 연기에 비치는 두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저는 원래 평범하게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영화감독님께서 우리 반만 단편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학교 축젯날 친구들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박수를 쳐 주더라고요.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도 올라가고요. 그때 이전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굉장한 큰 행복감이 올라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때부터 장래 희망에 배우라고 쓰기 시작했어요.”

배우의 꿈을 갖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기까지는 여러 굴곡이 있었다. 주변인의 칭찬에 눈을 가리고 자만했던 시기도 있었고, 의도치 않은 사기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직은 미숙한 어린 소년을 보듬어주던 주변 사람들의 애정과 때로는 격한 꾸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게 좋은 영향을 준 사람은 사실 너무 많아요. 먼저 입시 학원에서 만난 두 선생님이 계신데요. 제가 나태하고 자만할 때 정말 호되게 혼내셨어요. 나중에 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가진 술자리에서 그 이유를 여쭤봤어요. 좋은 연기를 하겠다고 온 녀석이 나태하고 머리 쓰는 게 미워서 그러셨대요.
또 최근에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분은 연극배우 지현준 선배님이에요. 저한테 개인적으로 힘든 게 이해, 배려, 겸손이었거든요. 하는 척이 아닌, 진심으로 우러나는 배려와 이해가 잘 안 돼요. 솔직히 아직 연기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게 현준 선배님이 그래요. 그래서 그분을 닮으려고 하죠. 매번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또 겸손하려고 노력하죠.”

연극 <에쿠우스>에 이어 올 여름 <배수의 고도>에 참여했다. 꽤 굵직굵직한 작품을 최고의 선배들과 함께했다. 연극계 신인으로 힘 있는 필모그래피를 써 내려갈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연기의 어떤 면이 그에게 큰 기회를 선물하는지 궁금했다.

“지금까지는 ‘진심’이었어요. ‘내 연기의 모든 게 진심이면 관객들과 소통하는 날이 오겠지. 꾸며낼 수 없잖아.’라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배수의 고도> 연출가 김재엽 연출님께서 “연기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감정을 꾸며내라’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선 감정을 표현하는데 진심을 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들어 관객이 제 연기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도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현재는 연기에 있어 진심, 그리고 남들에게 표현되는 방법, 두 가지를 가장 신경 쓰고 있어요.”

연극 ‘배수의 고도’의 한 장면이다. 쓰나미에 엄마를 잃은 상처받은 소년을 연기한 김시유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는 장면이다. 그의 표정은 곧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위태롭다.
<배수의 고도>에서 상처받은 소년 타이요를 연기한 김시유(왼쪽) (이미지 제공 : 두산 아트센터)

연극 <배수의 고도>에서 타이요 역할을 맡았을 때는 그도 사실 진심을 역할에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진심으로 감정을 표현할 만큼 몰입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타이요는 쓰나미에 가족을 잃고, 헛간에 살면서 극단적으로 어려운 삶을 사는 사춘기 소년이에요. 타이요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제가 그걸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타이요의 진짜 마음은 뭘까? 내가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공연 2주부터 강하게 몰입했어요. 허겁지겁 무대로 들어오는 모습이 필요하면 무대 뒤에서 진짜 뛰다가 숨을 헉헉대며 들어가기도 했거든요. 어떻게든 타이요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연극이 끝난 지금도 연기를 더 잘했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단 타이요에게 더 가까이 가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요.”

매 순간 캐릭터에게 최대한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는 김시유. 그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원할까. 또 그가 더 깊게 몰입해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는 어떤 것일까.

“제가 정말 잘할 수 있겠다 싶은 건 청춘 연애물이에요. 여자친구와 순수하게 사랑하다가도 내일이 없을 것처럼 싸우는 모습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웃음) 아마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제 또래의 이야기, 그들의 일상, 흘러가는 이야기일 것 같네요.”

아직 떠나지 못한 소년을 품고

“제가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거든요. 친구들한테 “나 근육 나왔다~”고 자랑했는데, 제 근육을 보고 ‘아기 근육’이래요. <배수의 고도> 2막에 키스신이 있는데요. 그걸 보신 연기 선생님께서 키스 신을 하는 ‘키즈’가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를 보면 소년이 떠오른다. 우선 그는 체구가 작고 말랐다. 목소리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가느다란 게 독특하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 차마 다 드러날 수 없는 그 안의 소년은 어떤 모습일까.

“저는 사람을 매우 잘 믿어요.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아요. 그리고 되게 단순해요. 그래서 아무리 심하게 배신을 당해도 곧잘 잊어버려요. 아이처럼요. 남들은 이걸 ‘쿨하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엔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하루는 영화를 보는데 한 배우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모습이 정말 멋있는 거예요. 공연 끝나자마자 보드를 주문했어요. 그게 좋아서 껴안고 텔레비전을 볼 정도예요.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고 감동을 잘 받거든요. 그런 점에서 아직은 스스로도 소년 같아요.”

배우 김시유가 오른쪽 눈을 찡그리고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고 있다.(왼쪽) 역시 오른쪽 눈을 찡그리고 카메라를 보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오른쪽)
익살스런 표정 요청에 응수한 그의 모습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한다는 그. 배우 특유의 섬세한 성격일 수도 있다. 원래 좀 섬세한 편이냐고 묻자 그가 반색을 하고 말을 잇는다.

“제가 어느 정도로 섬세하냐면요. 사람들이 여럿 있는 자리에서 선배님이 말씀하실 때 주변인들의 표정을 다 읽어요. 많은 걸 봐요. 그래서 사실 피곤해요. 학교에서도 수업을 마치고 그냥 정리하고 나가면 될 것을 그러질 못하죠.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이 보여서요. 사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여자친구랑 대화할 때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서 ‘아까 왜 그랬어?’라면서 일일이 지적하는 경우도 많죠.(웃음)”

그리고 김시유, 그 안의 남자

들판 위의 사자는 원하는 먹잇감을 위해 온 에너지를 쏟는다. 때론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의 짙은 눈썹과 미간에서 강단이 느껴졌다. 정확한 발음과 끝마무리에서 그의 단단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가 말하는 그 안의 사자의 야성은 무엇일까.

“전 도전을 좋아해요. 일단 꽂히는 게 있으면 지르고 봐요. 특히 연기에 들어가는 순간 그래요. <배수의 고도> 첫 공연 때 사실 너무 떨렸는데, 무대 위에서 선배님들과 대사를 치면서 극에 확 몰입했어요. 겁날 게 없어지더라고요. 원하는 게 있으면 생각이 없어져요. “난 꼭 해야 돼, 그리고 할 거야.”라는 마인드가 강해요. 때론 주변 사람들이 제게 ‘무슨 자신감이냐?’고 묻기도 해요. 언젠가 한 선배님께서 당당함이 제 매력일 수 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청춘에게 당당함은 더 이상 오만이 아니다. 외려 당당한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또한 의도치 않게 다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촬영장에서 건방지다고 욕도 먹었어요. 한번은 지인 소개로 미팅자리에 가서 저의 평소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미팅이 끝나고 관계자가 지인에게 ‘쟤는 뭐가 저렇게 당당하냐’고 하셨대요. ‘쟤 어깨에 힘이 왜 이리 들었어’라는 말도 들어봤어요. 이런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과 대화가 안 됐던 적도 있었어요. 친구가 무언가를 말하면 ‘그거 아니야, 이거야.’ 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죠. 원래는 굉장히 날이 선 성격이었는데요. 학교에서 후배들도 만나고, 주변에 좋은 분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둥글둥글해졌어요.”

배우 김시유가 오른손으로 입가에 살짝 손을 댄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곤색 티셔츠와 스냅백을 뒤로 눌러썼다. 무표정하면서 어딘가 슬픈 눈빛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달려들게 돼요. 그러다 상처를 내기도, 받기도 해요.”

23살의 소년이 꾸는 꿈

“전 꿈이 엄청 커요. 연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연기 학원을 차리고 싶어서예요. 연기를 정말 하고 싶어도 사정상 못하는 경우, 재능이 있는데 외모 때문에 기회를 갖지 못한 경우를 보면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제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꿈이 나중에 이순재 선생님 나이가 되면 연기 학원 하나 차리고, 옆에 극장도 두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곳에서 앞서 언급한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죠.”

그가 밝힌 앞으로의 꿈이다. 이제 막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단계의 배우가 꾸는 꿈 치고는 아직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시유는 그 꿈을 향해 한 발짝을 딛고 있으며, 조금씩 그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그런 그가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안석환 선생님이 <에쿠우스> 공연 때 하신 말씀인데요. ‘자유로워라’라고 하셨어요. 배우는 자유로워야 한대요. 그리고 자유로움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행복할 수 있대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고 봐요. ‘자유로워라, 그럼 행복해진다.’라고 볼 수 있을까요. 연기도 똑같은 것 같아요. 배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표현하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꿈을 꾸더라도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그걸 펼치지 못하는 청춘들도 많잖아요. 그건 생각의 차이라고 봐요. 생각만 바꾸면 자유로워져요. 저도 개인적으로 어려웠을 때가 있었거든요. 대학교 1학년 때 금전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언젠가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야.’라며 그 상황을 웃어 넘기려고 노력했어요. 외모도 생각만 바꾸면 돼요. 전 키가 작아요. 키가 작아서 배우가 못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큰 사람들은 줄일 수 없잖아요. 전 깔창을 깔면 돼요.(웃음).”

배우 김시유의 오른쪽 얼굴이다. 볕이 드는 창가의 빛을 받았다.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입가에 미소를 살짝 머금고 있다.
때론 깨지며 자신의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듯 보였다.

거침이 없고, 강단 있으며,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김시유. 소년 김시유는 그렇게 남자 김시유가 되고 있었고, 또 배우 김시유가 되어가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김시유가 말하는 김시유’에 대해 물었다. 단어, 문장, 몸짓 등 무엇으로든 설명해 달라고 말이다.

“첫 번째는 ‘유니크하다.’ 전 어릴 때부터 남들이 하던 걸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나만의 것을 찾고 싶어 했고요. <배수의 고도> 연출님이 저를 캐스팅할 때도 저만의 유니크한 매력을 느끼셨대요. 두 번째는 ‘행복하다’인데요. 특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행복감을 많이 느껴요. <배수의 고도>를 할 때도 이런 연극에 뽑힌 것도 좋았지만 좋은 선배들과 한 자리에 있다는 게 행복했어요. 그리고 주변 친구, 형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 같아서 요즘 행복해요.”

배우 김시유가 럽젠 독자들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그의 이름 ‘시유’와 발음이 같은 SEE YOU를 활용해 감각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SEE YOU AGAIN!
배우 김시유가 럽젠 독자에게 남기는 한 마디! 시유, 어게인!

소년은 나름의 성인식을 거치며 성장하고 있었다. 큰 꿈을 품고, 그곳에 도달하는데 상처를 주기도, 입기도 하며 말이다. 이 소년의 여정의 끝에서 만날 얼굴은 성숙해 마지않는 남자의 모습이길 바란다. 시유,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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