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 이것은 우리의 끝인가, 시작인가

편의점에 가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양각색의 차림새, 다양한 나이. 무언가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는 점 외에는 그곳을 찾는 사람의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편의점, 그곳에서 그와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바코드 찍는 소리, 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는 방울 소리, 물건을 고르며 오고 가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고, 이러한 편의점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 김경묵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편의점에서 찍은 김경묵 감독의 사진. 편의점에 진열된 여러 물건들이 보이고, 그 앞 테이블에 김경묵 감독이 앉아 있다.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편의점 안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자 편의점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무대인 편의점에서 김경묵 감독을 만났다.

편의점 안의 우리, 그리고 우리 안의 편의점

우리는 매일같이 편의점을 오간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 비슷한 이유로 편의점을 찾은 다른 사람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을까. 편의점은 서로 적당한 무관심을 유지한 채 빠르게 각자의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인 공간이다. 편의점 안에서는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하나의 풍경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김경묵 감독의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이하 <이우끝>)를 본 이후에 완전히 바뀌었다. 그곳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풍경이 속 일부가 아닌 하나의 주체로 다가왔다. 그가 편의점을 영화 속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지금의 한국사회를 대변해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편의점에서 못 하는 게 없잖아요. 온갖 사회의 기능을 다 끌어들인 것 같아요. 슈퍼마켓 역할은 기본이고 테이블이 생기면서 카페나 술집처럼 이용할 수도 있게 됐고, 휴대폰 충전도 가능하고, 택배도 접수하고, 공과금 수납까지 가능해요. 편의점이 정말 많은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게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이러한 특징을 하나의 사회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여기에 지금 시대의 20대,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의 영화 <이우끝>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 대부분이 20대라는 점. 편의점에서 그가 바라본 청춘의 모습이 궁금했다.

"특별한 인물 구상을 떠올렸던 건 아니고 일반적인 현재의 전형적인 20대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취업에 계속 실패하는 사람, 영어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이 전형적인 20대죠.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라면 탈북자, 게이 레즈비언, 인디 뮤지션, 그런 사람들은 이 시대의 특별한 인물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과거에 비해 그들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시화되었고요. 그 둘을 적절히 섞어서 배치했어요."

영화 ‘이우끝’에 인물이 등장하는 스틸컷. 왼쪽 위는 초록색 배경 안에 여러 인물의 사진이 나열된 영화 포스터다. 오른쪽 위는 편의점 카운터 앞에서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드는 남자의 모습, 왼쪽 아래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남자, 오른쪽 아래는 어딘가 밖을 내다보는 표정의 여자 한 명이 서 있는 모습이다.
영화 <이우끝>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이다. 등장인물의 다양한 사연이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영화의 주 배경이자 또 하나의 등장인물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편의점. 영화를 만들기 전 편의점에 대해 많은 사전조사를 했다는 김경묵 감독은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보며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영화 제작을 위해 편의점을 사전조사하면서 가장 놀란 건 점주와 본사와의 관계였어요.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던 점주의 고충이라고 할까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물론 힘들죠. 그런데 의외로 경제적인 압박이 가장 심한 사람은 점주더라고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흔히 편의점 하나를 갖고 있으면 어느 정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장사가 정말 잘 되는 경우가 아닌 경우라면 수익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본사와의 계약 문제, 24시간 영업, 많은 인건비 등 편의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점주들은 많은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그게 겉보기와는 많이 다른 현실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영화에도 많이 드러나도록 노력했어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라는 영화 제목 자체가 영화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우울한 느낌의 제목인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이 영화를 통해 저는 취업에 힘들어하는 20대, 소외된 사람들, 자본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지금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20대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벼운 터치로 접근하지만 메시지는 가볍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제목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시는데,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라는 제목은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자주 듣던 밴드 ‘쾅프로그램’의 노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을 참고했어요. 사실 어떤 게 끝이고 어떤 게 시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뻔한 말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저예산의 독립영화는 아닐까 생각했던 <이우끝>에는 전문배우뿐만 아니라 아나운서, 아이돌 가수까지 함께 등장한다. 그들의 섭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어보았다.

"배우 섭외의 과정은 각각 조금씩 다른데, 기존에 알고 있거나 같이 작업했던 사람, 다른 영화를 보고 제가 연락을 드렸던 분, 그리고 오디션을 보신 분들 정도로 나뉘어요. 아르바이트 생 중에서 김새롬, 이바울 씨는 전에 같이 작업을 해서 연락을 드렸고요. 헬로비너스의 유영 씨, 공명 씨도 출연했어요. 영화의 출연진이 다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머지 분은 오디션을 통해서 같이 하게 되었어요. 윤영미 아나운서는 전부터 알고 있었고요. 담배 사러 온 철학도는 이종필 감독님이신데, 그분이 전에도 연기를 많이 하셨어요. 영화제에서 만나게 되어 말씀을 드렸죠."

영화,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김경묵이 있기까지

김경묵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지금 사회의 단면을 그려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며 ‘남는 시간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와 만나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는 사실 영화보다는 컴퓨터와 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대안문화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도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그건 보통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던 또래 친구들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학교를 안 다니면 시간이 되게 많이 남잖아요. 그 시간에 도서관에 자주 갔어요.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영화상영을 했거든요. 책만 보기에는 지루하니까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이 하루에 한 편씩 감상하게 되면서 ‘영화가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단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갔고 삶에 대해 고민했던 주제에 대해 영화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죠. 감정적으로 많은 울림이 있었어요."

편의점 안에 서 있는 김경묵 감독의 모습. 왼쪽 사진은 음료 냉장고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테이블 옆에 서 있는 모습이다.

영화에 대한 관심만 있다고 하여 모두가 영화감독이 되진 않지만, 김경묵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감독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데뷔작 <나와 인형놀이>를 비롯해 <줄탁동시> 등 그의 작품들을 통해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어두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탈북 소년, 조선족 소녀, 게이 소년, 바람을 피우는 중년의 남자까지. <줄탁동시>의 파격에 대해 질문했더니 그는 의아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줄탁동시>가 그렇게 파격적인가요? 파격적이라기보다는 영화 자체가 어두우니까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그 전에 찍었던 영화 때문에 이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물들이 다 혼란을 겪고 있고 형식적으로도 다소 난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의 작품보다 분위기가 밝으면서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우끝>을 만들면서 스스로 약간 의문이 들었어요. 기존의 소재와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이전에는 어두운 면을 팠다고 하면 새롭게 다른 쪽으로 초점을 맞춰서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젊을 때 조금이라도 다르고 다양한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면죄부를 준다는 생각을 갖고 안 해본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우끝>을 만들게 되었어요. 기본적으로 코미디적 요소를 많이 넣었다는 것도 새로운 시도예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2013), <잉투기>(2013) 등 최근 20대에 관한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 김경묵 감독 또한 갓 30대가 된 청춘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면서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이다. ‘루저’, ‘삼포세대’, 등 20대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회의 문제를 개인화시켜서 반성하게 하고 모든 게 자신의 잘못, 개인의 책임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지금 힘들어도 네가 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으로요. 자기계발서가 사실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은데, 상황이 이렇게 힘들어진 데는 사회 체제라든지 사회의 틀이 많은 영향을 끼친 거잖아요. 하지만 그런 인식을 하지 못한 채 모든 게 개인의 탓이 되어버렸고 그게 자기 착취로 이어지는 시대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탓으로 돌려 자신을 평가절하하거나, 또는 반대로 우월감을 느끼는 대신 보다 넓은 차원에서 사회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으면 해요. 보다 시각을 넓혀서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큰 그림에서 자신의 위치를 봐야, 그래야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경묵 감독은 보다 넓은 차원에서 사회와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못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 시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동시에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상황에 있는지 생각해보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아서 밀러의 희곡의 한 장면 중, 린다는 두 아들 앞에서 자신의 남편 윌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아버지도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김경묵 감독은 영화로 보여주고 있다. 유명하지도 않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특출난 능력을 갖지도 못한 사람, 실제 우리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전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늘상 마주치는 사람, 하지만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지나쳤던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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