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잊혀질 필요도 있습니다, 디지털 기록 관리자

SNS라는 날개를 달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수한 정보를 인터넷 세상에 쏟아내고 있다. 과연 이 많은 정보들은 득일까, 독일까. 수십억의 사람들이 내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이제는 디지털 기록도 ‘관리’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세 남자가 관을 들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사진. 유럽풍의 성당건물과 초록색 계단, 그리고 화려하고 무거워 보이는 관이 눈에 띈다.
디지털 기록 관리는 ‘SNS 장례식’, ‘디지털 장의사’라는 용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지 출처 : Elvert Barnes @Flickr)

내 기록을 지우는 새로운 방법, 디지털 기록 관리란 무엇인가

옛 선비님들이 말하길 입은 재앙의 문이오, 혀는 목을 베는 칼이라 했다. 말이란 일단 한 번 뱉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후회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사람의 기억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사소한 과오 정도는 금방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컴퓨터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이른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사람이 무심코 뱉은 말과 행동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 시작했다. 이것이 더욱 위험한 것은, 이들이 주워 담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 없는 말보다도 천 배는 멀리 갈 수 있기 때문. 특히 인터넷 이용자들의 무분별한 정보 확산 행위인 ‘네티즌 마녀사냥’, ‘신상털이’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아무리 IT강국이어도 정작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예절이 따라오지 못하는 대표적인 문제로 거론됐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부작용을 안아오다 드디어, 디지털 세상에서 자기기록을 보호하는 능동적 수단 ‘디지털기록 관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렇다면 내 소중한 기록들을 보호하는 디지털 기록 관리란 무엇일까. 디지털 기록 관리란 인터넷 상에 떠돌아다니는 자신이 작성한 기록, 혹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탐색하여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제거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 철모르고 썼던 허세글,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댓글, 나를 향한 악의적인 댓글•게시물 등을 청소해주는 것. 현재는 웹상 평판관리사,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세탁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떠오르는 서비스, 디지털 기록 관리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에 대한 모든 행적•기록을 살필 수 있다는 부작용이 대두되면서, 디지털 기록 제거에 대한 수요도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사법재판소에서 ‘잊혀질 권리’를 합법 판결함에 따라 구글에서는 자신의 인터넷 기록이 제거되는 기능이 실행됐고, 하루 만에 12,000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접수량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예상했듯 디지털 기록관리는 미국의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을 비롯해, 일본의 ‘레푸쿠’ 등 이미 전세계적으로 업체가 형성돼 성황리에 서비스되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현재 10여 개 이상의 디지털 기록 관리 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더불어 고용노동부는 디지털 기록 관리 서비스를 민간 수요 창출 지원 업종으로 공식 선정함에 따라 그 위상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는 실정. 최근 나날이 증가하는 SNS 탈퇴자 양상에 따라 디지털 기록 관리의 수요와 공급 역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Mini Interview
디지털기록 관리업체 ‘뉴스케어’ 김한라 과장

디지털기록 관리업체 ‘뉴스케어’는 이미 2010년부터 꾸준히 고객들의 디지털 기록을 관리해왔으며 최근 ‘잊혀질 권리’ 인정과 ‘SNS 장의사’가 대중에게 알려짐에 따라 한시도 쉴 틈없이 많은 고객들의 기록 관리를 서비스 하고 있다. 뉴스케어의 김한라 과장은 IT관련 업무를 해오다가 우연한 계기로 디지털 기록 관리 서비스에 배치된 케이스다. 아무런 선례가 없는 막막한 상태에서 스스로 디지털 기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낸 셈. 현재는 경영과 실무를 동시에 맡고 있으며 특히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는 여전히 두 팔 걷고 나선다. 디지털 기록관리 서비스를 선도하고 있는 그녀에게 디지털기록 관리자의 일과 삶을 들어보았다.

서밀하씨의 텍스타일이 적용된 스카프, 의자, 쿠션, 액자, 커튼이 담겨있는 사진이다.

럽젠Q 디지털 기록 관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생소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하는 일을 보통 어떻게 소개했었나요?

"지금처럼 디지털 기록관리가 많이 안 알려져 있을 때는 가족이나 지인들이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해도 금방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냥 “악성 글 삭제해주는 일이야.” 정도로 설명하곤 했죠. 그러면 그게 왜 필요한지 되물어 오기도 하고요. 요즘 언론에서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명칭을 주로 쓰는데 그건 고객의 사후관리 서비스에 국한된 개념입니다, 저희 내부에서는 보통 디지털 기록 관리, 또는 디지털 세탁소라고 부르고 있죠."

럽젠Q 고객의 기록을 모두 탐색하고 제거하는 원리를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탐색 원리는 흔히들 말하는 ‘구글링’과 비슷해요. 저희가 제작한 프로그램에 키워드를 치면 키워드와 관련된 웹상 기록들이 모두 탐색되죠. 다만 여기에 우리 업체만의 노하우와 기술을 적용해서 훨씬 더 광범위하면서도 정확하게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구글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자료는 많아요. 아, 기록 제거는 사이트 정책에 의거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절차는 꽤 복잡한 편이지만 업무를 계속 하면서 이 절차를 간소화 시키고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죠. 물론 모든 일이 절차대로 잘 풀리는 건 아니에요. 다양한 변수나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죠"

럽젠Q 몇몇 사람들은 ‘해킹’을 통해 기록을 제거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몇몇 고객 분들은 해킹을 해서라도 지워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럴 때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기록 제거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불법적인 요소 없이 이루어져요. 불법적인 수단을 이용하면 분명히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금방 꼬리가 잡힐 수 밖에 없으니까요."

럽젠Q 각종 사이트에 퍼진 기록을 제거한다는 것, 여러 모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각 매체에 맞는 서류도 준비해야 해요. 디지털 언론사나 대형 사이트는 대부분 승인 절차가 필요하고, 이 승인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항상 을(乙)의 입장일 수 밖에 없죠. 다만 기록이 제거되는 난이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요. 호쾌하게 제거를 해줄 때도 있지만 못 해주겠다는 입장에도 많이 부딪칩니다. 해당 매체에 연락했을 때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서 전화를 끊으면 직원들이 “또 한 소리 들으셨어요?”하고 심심치 않게 위로해 주죠. 물론 매체 입장에서도 기록을 제거하는 것이 행정적•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 있는 김한라 과장의 옆 뒷 모습. 얼굴 정면이 보이지는 않지만 사뭇 심각한 분위기다. 오른손이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다.
디지털 기록 관리자 김한라 과장. 그녀에겐 늘 어려운 기록 제거를 곳곳에 요청하는 단호한 모습, 그리고 고객의 아픔을 보듬는 부드러운 모습이 공존하고 있었다.

럽젠Q 디지털 기록 관리를 하면서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저희에게 일을 의뢰하신 한 고객 분은, 그 고객의 꼬투리를 잡아서 포털 사이트 곳곳에 집요하게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소연해 오셨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악플을 더 이상 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고객에게 금전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아주 깨끗하게, 내 욕을 지운다는 심정으로 글들을 청소했어요. 나중에 우연히 고객 분을 다시 만났는데 아주 반가워하시더라고요.
대체로 디지털 기록 관리 일을 의뢰하는 고객들을 만나 보면, 그들이 굉장히 힘들어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등 어마어마한 심적 고통을 내놓기도 했죠. 이처럼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다 보니 다독이고 위로하는 가족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다 지울 수 있으니 안심하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고요."

럽젠Q 확실히 일을 하면서 여러 모로 보람을 많이 느끼실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향한 비방, 또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시달리던 고객에게 삶을 되찾아준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고객들의 사연과 그들이 처한 곤경을 접하면서 저도 덩달아 마음이 심란했지만, 이제는 수많은 고객과 상황들을 접하다 보니 항상 침착하게 고객들을 상대하고 일할 수 있게 됐죠. 일이 잘 끝난 뒤에는 저녁식사에 초대받거나 기념일마다 기프티콘, 안부 연락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다만 거친 악플이나 비방성 글에도 나름 정당한 구석이 있을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기록을 지우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죠. 이런 경우에는 고객에게 “당장 기록을 제거해도 다른 누군가가 다시 올릴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통보합니다.
"

럽젠Q 본인 정보는 관리가 잘 되어 있으신 편이신가요? 혹시 직업병 같은 건 없으세요?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엔 저도 제 정보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문득 제가 남겼던 기록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손발이 없어질 것만 같은 글들이 백 건 이상을 훌쩍 넘기고 있었죠.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어요. 모조리, 하나도 남김없이,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다 지워버렸습니다. 이후로는 웹상에 불필요한 문장은 잘 안 쓰려고 하죠.
또 카페, 가게, 미용실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으면 한 번씩 관련 기록을 탐색해 봐요. 그러다 무언가 안 좋은 글을 발견하면 이를 알린 다음에 제거해 주죠. 반대로 칭찬 글을 발견하면 캡쳐해서 보내주기도 합니다."

김한라 과장의 업무 중 뒷 모습.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진 듀얼 모니터와 의자 목에 예쁘게 말아둔 담요가 눈에 띈다..

럽젠Q 디지털 기록 관리업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영원한 직업은 아니지만 분명 오래갈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고, 또 누군가는 후회를 하게 될 테니까요. 최근에 ‘잊혀질 권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더 힘을 얻기도 했고요. 아직 남은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잘 마무리된다면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럽젠Q 디지털 기록 관리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사실 이 업무와 관련해서 공부를 따로 한다거나 준비가 필요한 건 없어요. 실무는 어차피 여기서 배우니까요. 하지만 ‘탐색 키워드’를 잡는 센스와 창의성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A양 성형’에 관련된 기록을 탐색해야 할 때는 단순히 A양의 ‘성형’만 검색하는 게 아니라 성괴, 성형괴물, 의혹, 눈, 코 등 약간이라도 관련 고리가 있는 키워드는 모조리 포착할 수 있어야 하죠. 또,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면 좋습니다. 외국 대형매체, 사이트에 게시된 기록물을 제거할 때는 대부분 해외지사에 직접 요청을 해야 하는데 국가 간 법률 차이를 파악하거나 서류를 작성 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죠.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까지 다양하게요.
마지막으로 입이 무겁고, 끈기가 있어야 해요. 고객의 숨기고 싶은 개인사를 다루는 일인 만큼 고객을 보호할 수 있는 신뢰가 필요하겠죠. 또 기록을 제거하려면 매체와 무수히 많은 마찰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는 ‘내가 꼭 지우고 만다.’하고 마음을 굳게 먹는 끈기가 필요하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요청하자 김한라 과장은 “인터넷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의 행동을 조심해라.”라는 서슬 퍼런 충고를 남겼다. 어찌 보면 ‘사람은 착해야 한다’는 말처럼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디지털 기록 관리자의 입장으로서 나온 충고는 그 무게가 훨씬 다르게 느껴졌다. 디지털 시대 안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짐을 덜어주고 새로운 삶을 되찾아주는 디지털 기록 관리자들.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디지털 지우개, 디지털 장의사 등 아주 많지만 이중에서도 ‘디지털 변호사’라는 말 또한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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