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첫 번째 이야기

학문이 추구하는 이론적 개선은 사랑이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뒤집을 수 없다.
상대를 감동시키는 힘은 잘 단련된 어휘가 아니라 그를 대신해 고통을 감수하는 형태에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바라는 그것을 타인을 위해 먼저 실행하도록 하자. 존재가 실존하는 언어가 될 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되어 그의 곁에 영원토록 남는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아미엘의 일기>(바움, 2004) 中

참 이상하다. 사랑에 대한 글을 부탁받을 때마다 나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선 100미터 주자 같은 심정이 된다. 달리기를 정말 지지리도 못하는데, 반드시 누군가에게 달리기의 모범을 보여야만 할 것 같은 막막한 심정. 더욱 이상한 것은 매번 그 진땀나는 달리기 경기를 은근히 즐긴다는 것이다. 사실 난 잘해내지 못하는데,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그 누군가 때문에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을, 내가 아는 것 이상을 나도 모르게 보여주는 느낌이다. 나는 사랑에 소질이 없지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지극히 사랑한다. 사랑에는 늘 실패했지만, 내 사랑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사랑이라는 그 감정’ 자체에 대해서는 목마르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그 속에 빠져 있을 때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나, 전부 ‘내가 아는 나’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를 상상하고, 보여주고, 해내게 만든다. 사랑은 매번 우리를 낯선 질문 앞에 홀로 서게 만든다. 요즘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으로 이 난처한 달리기 경기를 또 한 번 시작해볼까 한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데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요?’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또 다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100미터 달리기 경주의 스타트라인에 선다. 나는 모범답안을 모른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나만의 대답을 준비한다.

럽젠 Q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긴 머리를 자르지 못했습니다. 그가 내 긴 생머리를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독립심이 없다’고, ‘그 사람에게 의존적이다’라고 비난합니다. 저는 정말 사랑 때문에 자아를 잃어버린 걸까요?

우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도 당신이 싫어하는 일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나요? 그럴 거라 믿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결국 하지 않게 되고, 그 사람 또한 나에게 그렇게 대해줍니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복종하는 순간적인 결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나의 익숙한 욕망이나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는 ‘나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 때문에 익숙한 나를 버릴 수도 있는 나’와 ‘나 때문에 가장 원하는 것을 버릴 수도 있는 당신’ 사이에 사랑이 가로놓여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긴 생머리를 고수하는 당신 덕분에 오늘도 행복해 하고 있을 그 사람의 미소가 두 사람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지요.

사랑과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독립이나 의존 같은 일방적인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물론 사랑은 권력의 일종입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권력이 아니라 서로의 힘겨운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상호 배려의 권력입니다. A가 B에게 행사하는 일방적인 지배의 권력이 아니라, A와 B 커플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에너지의 자장이 주변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만드는 소통의 권력입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며, 그들의 뒷모습과 맞잡은 손이 보인다.우리는 사랑이 ‘권력 관계’가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관계’임을 너무 쉽게 잊고는 한다.

진짜 멋진 커플들은 지나친 애정행각으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지 않습니다. 진정 아름다운 커플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니 두 사람이 따로 있을 때조차도,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역사가 타인의 삶에도 창조적인 영감을 줍니다. 서로에게만 지겹도록 배타적으로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고 싶은 연대의 장을 만들 줄 아는 커플이 진정으로 멋진 커플들이지요. 처음에 사랑은 ‘이제 너만 바라볼게!’라는 식의 배타적 공감으로 시작되지만 ‘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어!’라는 식의 더 커다란 공존의 에너지로 퍼져나갑니다.

럽젠 Q 우리는 분명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과 결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충돌합니다. 사랑하는데도 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는 걸까요. 사랑하는 데도 왜 ‘오직 그 사람과 나’만의 미래를 그리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요?

그 다음 단계가 반드시 ‘결혼’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결혼이겠지요. 결혼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마치 늘 함께 있는 것처럼 든든해 보이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결혼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로의 속마음을 모른 채 갈등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커플이 있습니다. 결혼이 중대사이긴 하지만 모든 커플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결혼하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속속 출현하는 것은 ‘결혼의 부작용’이 아니라 ‘결혼 자체가 안고 있는 속성’입니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이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랑을 가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이죠. 상대방이 왜 프러포즈를 안 할까, 나는 왜 결혼을 결심 못하는 것일까, 이런 것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사랑하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은 사랑의 이상 징후가 아니라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강박 때문이지요. 사랑이 본능이나 진심의 문제라면, 결혼은 제도와 문명의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커플들은 ‘너무 오래 고민을 하다가 정말 늦게 결혼했는데, 진작 결혼해버릴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어떤 커플들은 ‘너무 사랑해서 일찍 결혼해버렸는데, 좀 더 연애시간을 오래 가질 걸 후회가 밀려온다.’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서로 나이가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 그만 결혼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커플들도, 정작 두 사람은 아무 문제없이 미혼인 채로 즐겁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화 ‘500일의 썸머’ 중 한 장면. 남자와 여자 주인공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웃고 있다. 여자는 손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있다. 함께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해 이별했다고 해서, 이를 슬퍼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500일의 썸머>)

어찌 보면 연애, 결혼, 인연, 그리고 사랑은 서로 다 다른 개념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차이들을 품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같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리고 평생의 짝인 소울메이트의 인연을 맺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쟁취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지요. 사랑은 마음의 차원에서, 연애는 생활의 차원에서, 결혼은 제도의 차원에서, 그리고 인연은 알 수 없는 운명의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그 누가 마음과 생활과 제도와 운명을 완전히 일치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지독한 행운아이거나,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오만방자한 사람이겠지요.

당신의 두려움은 정당합니다. 그 두려움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누세요. 두려움을 함께 짊어지고 서로를 토닥이며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보다 더 진한 동지애니까요. 사랑과 연애와 결혼과 인연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망상은 집어던지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바로 이 순간이 지상에 하나뿐인 낙원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럽젠 Q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지 않는 길, 말리고 싶은 길로 걸어가려 합니다. 그 길로 가면 분명 힘들고 외롭고 고생스러울 것이 빤한데도, 그는 그 길로 기어이 달려갈 태세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 빼고는, 장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길이지요. 내 눈에는 그 길이 고생길인 것이 훤한데, 왜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너무 현실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나는 그의 이상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왜 당신보다도 그 사람이 더 걱정될까요. 당신은 지상에 발 딛고 있습니다. 당신의 두 발은 육지 위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수평선 저 너머로 기어이 발길을 옮기겠다는 그 사람의 의지가 못 미더운 것입니다. 먼저 그 사람의 이상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그가 걸어가려는 길이 ‘장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길’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장점과 맞바꿀 수 있는 장점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지요. 많은 사람들이 현실 때문에 이상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이상을 저버린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도, 누구도 밟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모험도, 불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공무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저는 항상 ‘세상 사람들의 갑론을박 속에서 마지막 순위’로 밀리는 순수한 이상의 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저라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부모님의 끈질긴 반대를 무릅쓰고, ‘아무런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글을 쓰는 삶’을 택했으니까요. 힘드냐고요? 당연히 힘들지요. 행복하냐고요? 아주 가끔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힘들다거나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인생에 책임을 진다는 완전한 충족감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보장되거나 결정된 것이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감’은 제 자부심의 근거입니다. 누군가 나를 칭찬해주거나 특별히 좋은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에 완전히 책임을 진다는 기쁨이, 현실의 끈에만 안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상에 가까운 삶을 선택했다는 희열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영화 ‘그랑블루’의 한 이미지. 바다 속에서 돌고래와 여자 한 명이 서로를 향해 눈을 맞추고 있다.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이상과 열정은 이제 너무도 ‘옛것’처럼 취급받곤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랑블루>)

고통과 행복의 질량을 비교하거나 따질 수 있다면 아마 고통에 훨씬 더 가까운 길이겠지요. 하지만 행복과 고통을 뛰어넘은 자기충족감은 누구의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쁨을 넘어서는 더욱 차원 높은 희열이지요. 그런데 이 희열에는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릅니다. 이상을 택한다는 것은 ‘오직 이상만을’ 택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는 이상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돌봐야 할 가족이나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이상을 택한다는 것은 항상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한다는 뜻입니다. 이상을 택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선택도 결코 마음 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아직도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면, 이상을 바라보면서 현실의 밧줄도 놓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꾸밈없는 이상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응원해주는 사람, 그가 나의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아닐까요.

얼마 전 영화 <그랑블루>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 당신을 사지로 내모는 것일지라도, 그 길을 택하는 것. 그것 또한 지극한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요. 지독하게 가슴 아프지만 우리를 끝내 하나로 묶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니까요.

두 개인이 짝이 되면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자아의 경계가 확장되어 상대까지 감싸 안음으로써 ‘나’는 ‘우리’가 된다. 정신뿐 아니라 신체의 일부도 그렇게 된다. 우리의 면역 체계는 우리와 다른 (낯선) 것을 구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키스를 할 때, 나아가 섹스를 할 때는 신체의 성분들이 서로 교환된다. 향후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상대, 우리가 우리 안에 그 일부를 담게 될 상대에 대한 작은 기억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 그 이상이다. 우리는 확장된다.
―<감정을 읽는 시간>(어크로스, 2014) 中

Writer | 정여울
작가. 저서로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시네필 다이어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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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가는 글이네요. 사랑에 대한 토론 수업을 한 학기 내내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잘 하고 싶지만 어려운 게 사랑이겠지요.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저절로 최선을 다하며 즐거운 일만을 함께하고플거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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