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디자인하다, 조명 디자이너

모든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늦은 밤, 피부로 스며드는 적당히 쌀쌀한 밤의 공기와 함께 한강대교를 아름답게 수놓은 빛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잠시 멈칫 해 본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명이란, 한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여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존재이다.

어두운 밤 한강을 수놓는 한강대교의 야경이 담겨있다.한강대교의 야경

아주 까만 밤에 한강대교를 비추는 빛은 주황색
영화만큼 멋진 drive 아니지만 분위기 나잖아 그까짓 거 바람도 딱 적당히 차가운 저녁
– 슈프림팀, <Drive> 中

이처럼 우리의 삶을 밝혀주는 조명은 공간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사람의 기분까지 조절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불을 밝혀준다는 기능을 넘어 우리에게 기억되는 어떠한 장소의 인상을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남겨주는 조명. 빛이라는 무형의 물질을 아름다운 형태로 빚어내는 조명 디자이너에 대해 탐구해보자.

건국대학교 스타시티의 조명디자인이다. 왼쪽 사진은 꽃들이 수놓은 조명이며, 오른쪽 사진은 유리외벽의 조명 모습이다.건국대학교 스타시티의 조명 디자인(passway lighting design of konkuk star city)

조명 디자인, 빛을 빚다

조명 디자인이란 빛을 이용해 공간의 성격에 적합한 조명을 디자인하여 한층 더 기능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쉬운 예를 찾아보자. 레스토랑의 빛과 병원의 빛은 확연히 다르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따라 최적의 조건을 가질 수 있는 조명을 디자인하는 것이 바로 조명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다. 빛이라는 무형의 재료로 어떠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은 램프의 종류나 색온도, 그림자 등이 있다. 이처럼 형태를 가지지 않은 빛이라는 재료로 공간을 연출하는 조명 디자인 분야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분야와는 확연히 다르다.

좌측 사진에는 불그스름한 레스토랑의 조명이 보이고, 우측 사진에는 푸르스름한 병원 조명의 사진이 있다.레스토랑의 조명과 병원의 조명. 공간의 용도에 따라 램프의 종류가 달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TIP
용도별 램프의 종류
– 백열램프 :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하며, 다양한 조명 디자인 연출이 가능하다.
– 할로겐램프 : 일반 백열램프보다 밝고 하얀 빛을 나타내며 대부분 의료용, 전시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 컴팩트 형광램프 : 백열램프의 편리함과 형광램프의 장점을 결합하여 일반 가정집에서 많이 사용한다.
– 형광램프 :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전반적인 조명이나 간접조명으로 폭넓게 사용된다.
– 방전램프 : 공공시설 및 도시의 경관조명 등 대단위 공간엔 효과적이다.

색온도별 용도
전구의 색온도별 램프를 알려주는 인포그래픽이다. 2700K~3200K : 전구색, 4000K : 주백색 , 5600~6500K : 주광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Mini Interview
한국조명디자이너협회 회장 정강화 교수

그렇다면 빛을 디자인하는 조명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며 조명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전공 교수이자, 한국조명디자이너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정강화 교수에게 조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강화 교수가 자신이 만든 조명을 뒤로 하고 서서 카메라를 보고 있다. 뒤에 보이는 조명은 청장에 매달려 있는데, 깃털 같은 장식이 달려 있다.정강화 교수의 모습. 그의 디지털라이팅랩 Zagmachi에서 진행한 인터뷰다.

럽젠 Q 조명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조명 디자이너는 전 세계적으로 그 숫자가 굉장히 적어요. 아주 특수한 분야라고 할 수 있죠. 일반적인 분야는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조명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미술관이나 병원 등 굉장히 정밀한 빛의 환경을 필요로 하는 공간들의 경우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손대기에는 어려운 곳이거든요. 그런 부분을 조명 디자이너들이 채워주는 거죠.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어떤 리조트나 호텔에 방문했을 때, 좀 더 좋은 조명과 분위기가 있다면 더 편안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겠죠? 야경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예요. 바쁜 도심 속 도시 교량이나 건축물에 아름다운 조명이 있다면 사람들이 길을 걷더라도 잠시 멈춰 서서 조명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어요. 만약 100만 명이 그곳을 바라보고, 한 사람이 100원씩만 이득을 본다 해도 그 경제적인 가치는 엄청나게 커요. 조명은 낭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훌륭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 오늘날 조명디자이너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선유도공원의 야경. 여기저기에 둥근 원통 모양의 빛들이 보이며 어두운 공원을 밝게 비추어주는 조명들들의 사진이다. 아름다운 조명들을 자랑하는 선유도공원

럽젠 Q 조명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게 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교 3학년이었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기업에 속한 디자이너보다는 내 이름을 브랜드로 가지고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도시의 야경이나 건축물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하는 조명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매력을 느꼈고, 계속해서 조명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럽젠 Q 조명디자인을 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신다면요?

"일반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와 같아요. 우선 누구를 위해 이 빛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요. 조명의 용도가 환자를 위한 건지 밥을 먹는 사람들을 위한 건지, 그리고 이용자의 나잇대나 성별이 어떻게 되는지 고려한 후 충분히 생각해 보는 것이 첫 번째죠. 그 후엔 그 사람들이 필요한 빛에 대해 연출을 해주죠. 기능적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요. 요리로 치면 예쁘면서 맛이 있는, 맛이 있으면서 영양가도 있는 것 말이죠.(웃음)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조명에 대한 전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한 후, 그것을 구체화시켜 형상을 만들고 그 형상이 생각했던 연출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실험단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럽젠 Q 실험을 한다는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을 만들어내는 광원이에요. 백열전구, 할로겐, 형광등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용도에 가장 적합한 광원을 정한 후 여러 가지 모형을 만들어서 빛을 실험해요. 램프 위에 종이나 플라스틱, 금속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생각했던 연출 효과가 나오는지 실험해본 후 만족하게 되면 그걸 가지고 실제 제품을 제작하여 공간에 설치를 하는 거죠."

정강화 교수가 자신이 만든 조명을 바라보고 있다.

럽젠 Q 실험을 한다는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숭례문이 도심 한가운데 불을 밝히며 서 있다.

"여러 가지가 기억에 남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2000년에 진행했던 서울시 야경 계획 프로젝트에요.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에 귀국해서 바로 맡았던 프로젝트였는데, 당시 서울시에는 야경 계획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산타워도 밝히고 한강다리도, 숭례문도, 서울 곳곳의 빛을 밝히는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했고, 아직까지도 계속 하고 있어요. 전체 기획을 맡고 디자인도 직접 했던 일이기에 보람을 느끼죠. 제가 작업한 일이라 그런지 몰라도 요즘 서울의 밤은 당시와 비교하여 굉장히 아름다워졌어요. 사람들이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아요."

 

어스름한 저녁, N서울타워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은 멀리서 서울타워를 바라본 모습, 오른쪽 사진은 바로 아래에서 빛나는 서울타워를 바라본 모습이다. N서울타워의 야경. 형형색색으로 색이 변한다.

럽젠 Q 조명 디자인을 할 때 요구되는 능력은 무엇인가요?

"자기가 원하면 될 수 있겠죠. 조명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뭐든지 관찰을 해야 해요. 사물을 주의 깊게 보고 관찰을 하다 보면 무언가 아이디어를 얻게 돼요. 일반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물이 있는지를 보잖아요. 의자면 의자, 산이면 산, 집이면 집. 하지만 조명 디자이너라면 모든 사물뿐만 아니라 빛을 관찰하고, 여러 가지 그림자와 반짝이는 것, 움직이는 것 등 조형적인 모든 것들을 많이 관찰하면 아이디어가 풍부해져요. 또한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적절한 단어나 어휘를 익힘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고요."

Mini Gallery
라이팅갤러리 Zagmachi

정강화 교수를 취재한 곳은 성수동에 위치한 라이팅갤러리 ‘자그마치’였다. 조명 디자인계의 거장인 그의 갤러리답게 곳곳에서 감각적인 조명들을 볼 수 있었다. 함께 자그마치를 둘러보며 이색조명들을 감상해보자.

갤러리 내부의 모습이다. 감각적인 조명들이 갤러리를 채우고 있다.

자그마치의 이색 조명들을 나열한 사진이다. 눈송이, 꽃송이모양 등 다양한 조형미를 가진 조명들을 볼 수 있다.라이팅갤러리 Zagmachi의 이색 조명들.

북유럽 국가 덴마크의 경우 약 60% 이상의 인구가 부족한 일조량으로 인해 매해 우울증을 앓는다고 한다. 그에 따라 빛 치료용 조명까지 발명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심리까지 조절할 수 있는 조명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기능적 용도적 기능을 넘어 인간의 심리까지 조절할 수 있는 조명, 그리고 그것을 디자인하는 조명 디자이너.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 꼭 필요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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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료용 조명은 처음 들어봐요. 신기하네요. 전혀 관심없다가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조명얘기가 나와서 조금 궁금했는데 참 멋지네요.
  • 김율화

    빛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네요! :) 기사도 사진도 잘 보고 갑니다!
  • 케피

    중학생 때 잠깐 조명 디자이너를 꿈꾼적이 있어서 그런지 기사 제목보고 바로 읽었어요:) 워낙 어렸을 때라 아직도 저한텐 로망과 같은 일이지만 다시 봐도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오늘은 집에 가는길에 조명 디자인 관련 책이라도 하나 읽어야겠네요.
  • 윤수진

    우와... 사진이 어쩜 이렇게 예뻐요 서우 기자님 !?! 역시 20기의 영상기자답게, 사진 실력이 정말 부럽네용 >< 유익하고 예쁜 기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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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준

    저 역시 똑같은 걸 느꼈습니다. 서우기자님, 항상 인터뷰도 잘하시고 특히 사진촬영기술이 너무나 좋으신 거 같습니다!! 부러워요!!!!ㅎㅎ 저도 많이 배워야 겠습니다. 저에게는 조금은 생소했던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게 됐어요~ 감사합니다!!!

  • 송종혁

    빛이 빚어낸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기사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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