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성 | 도시와 사람 사이에 텃밭을 수놓다

텃밭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러 간 옥상 텃밭은 생각만큼 파릇하지 않았다. 기대와 상상이 만들어낸 푸른 텃밭은 지난한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아직은 늦은 겨울, 생명이 피어나기엔 바람이 차다. 인간이 할 일은 다시 따뜻해질 자연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는 것. 작년보다 더 푸른 옥상 만들기를 희망하며 텃밭을 지키는 그녀를 만났다.

사진_이휘주/제20기 학생 기자(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사진제공_ 파릇한 절믄이, 박문수

서울 6호선 광흥창역 주변 건물 옥상 텃밭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예성 씨. 검은색 코트와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로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파절이가 될 때까지, 농사짓는 젊은이들

‘파릇한 절믄이’(이하 파절이)는 도시에서 농사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다. 현재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주변 ‘옥상 텃밭’과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노들 텃밭’에서 도시 농사를 실천하고 있다.
파절이의 옥상 텃밭의 입구 주변을 찍은 사진이다. 입구인 철문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고 그 왼쪽으로 파절이의 공식 로고가 보인다. 그 옆에 경작을 마친 회원과 조합원들이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있다. 입구 주변에는 흙과 삽 등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었어요. 당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한 친구가 도시 농사를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사실 농사라고 하면 시골, 귀농 등을 떠올리기 쉽잖아요? 디자이너로서 농사에 대한 인식을 재밌고 유쾌하게 바꾸고 싶었어요.”

2010년 도시에서 농사하겠다고 모인 젊은이 3명을 중심으로 시작된 파절이. 2014년 1월 파절이는 어엿한 ‘협동조합’으로 공식 등록을 하고 조합원 16명과 회원 260여 명을 이끄는 거대 조직(?)이 되었다.

“협동조합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단체에요. 현재 파절이 회원 중에는 농사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아서 온 분도 계세요. 회원은 페이스북 페이지나 온라인 카페를 통해 모집해요. 회원이 되면 옥상 텃밭과 파절이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요. 3개월 이상 회원으로 활동하면 내부 결정에 따라 조합원이 될 수 있어요. 조합원은 조직 운영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을 말해요.”

협동조합과 같이 대안 경제의 실천을 희망하는 지역 단위의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이를 지속하는데 일정한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파절이는 어떻게 활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지 물었다.

“규모가 작았을 때는 옥상에서 생산한 작물을 자전거로 배달해서 수익을 얻었는데, 지금은 조합원과 회원이 동등하게 농사를 하고 작물을 나누어 먹는 실천에 집중하고 있어요. 납품은 종종 친환경 카페나 베이커리에 하고요. 수익은 조합의 공동 소유로 이용하죠. “

가깝고도 먼 그대, 농사

도시 농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이슈가 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농사가 생소한 건 도시의 삶에서 멀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몸소 도시 농사를 실천해 온 그녀에게 농사는 어떤 의미일까.

“처음에는 농사를 단순히 ‘물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 보니까 정말 너무 어려운 거예요. 작물의 특성과 작물끼리의 궁합이 정말 다 다르거든요. 상호작용을 해서 서로 살리는 작물이 있고 반대로 서로 죽이는 작물도 있어요. 이런 점에서 옥상 텃밭 안의 생태계가 우리 사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작물을 기르고 보살피고 먹는 과정 자체가 삶에 대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농사는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죠.“

함께 있으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득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손바닥 한 번 제대로 마주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나와 죽이 맞는 관계를 소위 좋은 궁합이라고 한다. 흙의 세계에도 찰떡같은 궁합을 자랑하는 작물이 있다.

“가장 궁합이 좋은 작물은 토마토와 바질이에요. 바질은 햇볕을 과하게 쬐는 것이 좋지 않은데 토마토가 이를 막아서 보호해줘요. 또 바질에 있는 양분들이 토마토에 좋은 영향을 줘서 토마토가 더 달아지죠. 저희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식물 간 궁합을 고려해 자생적으로 성장시키는 방법을 항상 고민해요. 작년에 옥상 텃밭에서 실험을 많이 했죠.(웃음)“

파절이의 공중 텃밭에 다양한 작물들이 푸르게 핀 모습이다.

시멘트와 흙의 공존은? 당신이 있어 가능하다

농사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도시에서 농사한다는 건 열악한 환경뿐 아니라 도시의 편리함에 길든 관성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절이의 옥상 텃밭에서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경작하고 있다. 아직 밭이 무성하지는 않다. 파절이 멤버들이 각자의 업무를 도맡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이 농사가 자본과 분리됐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실험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가치관에 공통점이 있어요. ‘농사의 기쁨’, ‘대안적인 삶‘, ‘그린 라이프’ 같은 것 말이죠. 공통의 가치관을 농사로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해요. “

결국, 사람이었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한여름 뙤약볕 아래 밭을 갈면서도 웃을 수 있던 것이다. 파절이는 이 연대가 더욱 끈끈해지도록 농사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실천한다.
2013년 여름, 파절이 옥상 텃밭에서 심야 시장이 열렸다. 파절이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야간의 플리마켓을 즐기듯 즐겁게 웃고 있다.

“회원분들을 위해 ‘공중 놀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에요. 옥상에서 영화를 보거나 농사 관련 특강을 진행하는 거죠. 또 매일 저녁 수확한 작물로 만든 요리를 같이 먹어요. 회원분들 중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거든요? 요리, 아로마 테라피, 사진촬영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꽤 있어요. 각자의 재능으로 파절이 클래스를 열어볼 생각도 하고 있어요. 가장 최근엔 컵 받침을 만들어봤네요. 회원분들과 차라도 한 잔 더 마시려는 노력이죠.“

한여름밤 옥상에 모여 텃밭의 생기와 나눔을 공유하는 ‘공중 야(夜)시장’과 파절이 회원이 아닌 사람도 자유롭게 텃밭에 놀러올 수 있는 ‘Be 파절이 Day’도 진행 중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파절이의 문을 두드릴수록 그녀의 확신은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도시 농사를 계속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치’예요. 회원 분들 중에는 저보다 도시 농사에 관심과 지식이 많은 분이 계세요. 제가 그분들만큼 농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도 도시 농사를 실천하고, 그들이 모일 장(場)을 마련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계속 하는 거죠.“

파절이는 공중 텃밭 외에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노들 텃밭’에서 경작을 하기도 한다. 15명 정도의 파절이 멤버들이 공중 텃밭보다 넓게 트인 노들 텃밭에서 열심히 농사하고 있다.

단 한 발짝의 움직임이라도

이예성 씨가 인터뷰에 답변하며 손으로 공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수줍게 웃기도 하는 모습을 연속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 농사는 도시의 매혹적인 혜택을 뒤로하는 우직함과 고고함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결론 말이다. 농사를 시작한 지 3년이 흐른 지금 그녀의 삶은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도시의 삶과 농사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 사이에서 어느 곳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솔직히 농사를 하고 있지만, 귀농은 자신 없거든요? 도시에 살면서 물건도 구매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패스트 푸드를 먹는 삶을 완전히 거부하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데 예전엔 더 나은 선택에 대한 인식 없이 나의 욕망만 따랐다면 이제는 의식적으로 절제하려고 노력하죠. 현재 도시에 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음식물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되, 발생한 쓰레기는 텃밭의 퇴비로 돌리는 거죠. 결론적으로 도시에서 ‘대안적인 삶’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것 같아요. 실천이 완벽하지 못해서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말이에요.(웃음)
초기에는 농사에 이입이 많이 안 됐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옥상 텃밭을 만들고 운영진이 되어 주체적으로 관리하면서 점점 이입되더라고요. 내가 기른 식물을 뜯어서 샐러드 해먹고, 다시 그 자리에 씨앗을 뿌리고, 뿌린 씨가 올라오는 것을 직접 느꼈을 때 정말 ‘확’ 이입이 됐어요. 다른 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은 말은 내가 직접 뿌리고 기르고 먹는 과정을 한번 체험해보시라는 거예요.”

도시 농사를 하는데 막대한 정신적 무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안적인 도시의 삶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딱 한 발짝만 떼어보자. 그 걸음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지는 모른다. 만약 그곳이 파절이의 공중 텃밭이라면 봄볕보다 따뜻하게 당신을 맞이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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