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 청춘은 변화했고, 잉여는 진화했다

경쟁에서 뒤쳐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그 체제로 진입하지 못하고 낙오되어 쓸모없이 남아도는 상태가 된다는 뜻의 ‘잉여’. 카메라 한 대와 80만원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던 네 명의 잉여 청춘들이 무일푼으로 1년 동안 유럽을 방랑하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잉여들의 반란’이라는 평을 얻으며 작년 영화계의 새로운 획을 그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감독 이호재가 있다.
푸른 나뭇잎들을 배경으로 이호재를 촬영한 사진. 비니에 남방을 입은 이호재가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기사의 제목인 ‘청춘은 변화했고, 잉여는 진화했다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감독 이호재’라고 쓰여 있다.

잉여라도 괜찮아

“문제는 우린 항상 게을러서 매번 일을 미루고 가만히 누워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행동은 하지 않고, 생각만 많은 ‘잉여인간’이었다. 그 결과, 우린 다음 학기 등록금을 절반도 마련하지 못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우린 그냥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학교에 있어 봐야 등록금은 물론이고 졸업작품 비용 때문에 또 허덕일 게 뻔했고, 그다음엔 남들처럼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해야 하고…. ”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중

첫 번째 사진은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인 이호재와 이현학이 서로를 베고 누워는 사진이다. 두 번째 사진은 승진, 사회생활, 스펙, 토익, 연봉, 취업이라는 단어 아래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의 일러스트가 보인다.
‘잉여’라는 단어는 흔히 사회라는 틀 안에서 낙오되어 있는 사람들을 분류할 때 쓰이곤 한다. 하지만 여기,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라는 영화로 ‘잉여’라는 청춘을 그려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별일 없이 잘 살고 있는 ‘잉여청춘’ 이호재. 그는 스스로를 잉여라 칭하며,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잉여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잉여예요. 지금도 잉여잖아요. 아무것도 안 해요, 백수예요. 대학도 그만두고.(웃음) 그래도 흔히 둘러보면 그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학교 졸업하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이나 저나 별 다를 게 없거든요. 저희 영화가 주목을 받게 돼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딱히 제가 성공했다거나 유명해졌다거나 하진 않아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같은 경우는 애들이 좀 모자라고(웃음) 옆집 형, 동생같은 느낌이라 보는 사람들이 좀 더 캐릭터에 대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 같아요.”

그는 공동체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잉여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고, 그것에 대한 밸런스를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말했다.

“스스로 잉여라고 부르게 된 이유요? 어떻게 보면 저를 합리화하는 거죠. 하지만 저나 저와 비슷한 사람들은 분명 다른 것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보편적인 가치관이나 성격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잉여’라 분류하는 건 사회가 이들을 쓸모없다고 배척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산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고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이는 이호재 감독을 포함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제작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다. 처음 생각했었던 유럽은 그들의 생각과는 굉장히 달랐다. 영상을 만들 줄 아는 능력 하나만 믿고 ‘숙박업소 홍보 영상을 찍어주고 물물교환으로 무료 숙식을 받겠다’고 결심했지만, 유럽에 도착한 이후 계획과는 달리 이들을 찾아주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히치하이킹이나 야영에 대한 준비를 전혀 안했어요. 일단 도착하면 당연히 영상을 원할 것이라 확신에 차 있었죠. 1년간의 유럽 생활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도 일이 없어 프랑스 종단을 했을 때의 추위였어요. 너무 추웠거든요. 들고 간 80만원은 한달도 안돼 바닥이 났고요. 한국으로 떠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국 민박집에서 기적같이 연락이 왔고, 거기서부터 시작된거죠.”

시작은 무모했지만 그 끝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독특한 영상은 유럽 호스텔계를 휩쓸었고, 쓸모없다고 배척당하던 잉여 4인방은 유럽의 수천 개의 숙소들이 탐내는 인재로 떠올랐다. 감독 이호재는 유럽이라는 낯선 곳에 가서 부딪혔고, 부딪쳐 보니 환경이 그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만의 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출발했던 유럽이었지만, 더 많은 것을 얻어왔어요. 우선 현지에서는 저희 스스로가 뭐든지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책임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어요. 한국에 있을 땐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 포기하기가 정말 쉬웠다면, 유럽에서는 실제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걸린 일이니까 정말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러브콜이 왔고, 특히나 돌아오기 몇 주 전 ARCO의 뮤직비디오의 작업을 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꿈만 같았죠.”

위쪽 사진에는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주인공들이 손을 크게 뻗고있으며 각 인물 위에는 왼쪽부터 HOJAE, HWI, HABBY, HAK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아래 사진에는 주인공 하비가히치하이킹을 하는 영화 속 모습이 담겨있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후드 모자를 덮어 쓴 그가 도로 옆에 서서 ‘ST-Etienne’이라 쓰인 종이를 들고 있다.

시대는 바뀌고 있고, 청춘은 진화하고 있다

작년에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물론이고 <잉투기>, <코알라> 등 잉여에 관한 영화들이 거의 동시에 개봉했다. 보통 청춘들의 이야기라 하면 암울하고 어려운 세대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던 예전과는 달리 긍정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대가 바뀌고 있는 조짐인 것이다.

이전의 ‘청춘’이라는 키워드는 대부분 암울하거나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달라요.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들 또한 많아졌죠. 청춘들은 더이상 위로가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특히 작년에는‘잉여 청춘’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해 위로하기보단 그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왼쪽부터 영화 ‘잉여들의히치하이킹’, ‘잉투기’, ‘코알라’의 포스터가 있다.‘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네 주인공이 어느 유럽의 도로 위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고, ‘잉투기’는 세 주인공의 일러스트 그림이 각자 싸우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코알라’는 세 남녀가 소파에 앉거나 누워 앞 테이블의 소주, 맥주병과 안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영화제까지 생길 정도로 장비들은 경량화되었고, 1억원대를 넘보던 카메라들도 200~300만원대로 보급화되었다. 문화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의 폭 또한 확대되었다. 제작을 할 수 있는 비용이 절감되니 돈 때문에 못한다는 말은 자기합리화일 뿐인 시대가 된 것이다.

“영화에 있어서 개봉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굉장히 커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영화를 개인의 힘으로 개봉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장비들의 경량화가 이뤄지면서 콘텐츠를 개발 할 수 있는 환경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아졌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이템과 이를 기획할 수 있는 능력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무언가를 찍을 수 있어요. 비용을 수급하는 것도 쉬워지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정말 운이 좋은 세대죠. 이제 세대 교체가 될 타이밍인 거에요. 2~3년 내로 완전히 바뀔거예요. 그만큼 기성세대나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하고 싶은 거 하고, 아니면 말고

지인이나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연락처 하나 없이 시작한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개봉은 네 군데의 영화사에 택배를 보낸것으로 시작되었다. 택배로 1차 완성본을 받은 배급사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고, 영화는 완성되었다. 언뜻 보면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확신과 신념은 녹록치 않았다. 흥행까지 성공한 그이지만,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완성하고 나서부턴 영화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아요. 제 손을 떠났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제는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거죠. 모든 작업들은 그런 연장선 상에서 진행되는 것 같아요. 재미있어서 시작한 작업이고,잘 끝났으니까 이제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죠.”

모든 일들은 그에게 성공이나 돈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저 재미있었던 일이었을 뿐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다른 길을 찾아서 가는 그이지만, 이호재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새롭다는 생각 자체를 잘 안 해요.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는 거고, 그걸 하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 기회 비용은 없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아니면 말고. 하지만 사실 자신을 위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기는 힘들어요.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욕심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주변 환경에서의 자신의 위치나 입지를 너무 많이 고려하는데, 어떻게든 남들만큼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이호재의 인터뷰 모습.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득하다.
누구나 대부분 꿈을 갖고 무언가를 시작한다. 어떤 것이 되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에 맞춰 달려가다 보면 꿈을 펼칠 수 있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이호재는 모든 것은 스스로가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희는 자가적으로 진단했을 때 ‘우리는 안 될거야’ 라고 생각했기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막상 해봤더니 뭔가 새로운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도 많이 느껴요. 다양한 길로 뻗어가는 사람들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고요. 주변에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죠. 많이 힘들어 하니까요. 하지만 소위 말하는 ‘흔한 길’을 가게 되더라도 행복한 친구들이 있어요. 성향의 차이인거죠. 맞지 않는 사람들이 힘들고 불만을 가지는 거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을 스스로 잘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는 올 4월, 영상스튜디오를 오픈한다고 한다. 2015년에 있을<잉여들의 히치하이킹>멤버들의 제대에 맞춰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은 이제까지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주 재미있는 계획이었다.

“여태까지는 홍보 영상,뮤직비디오 위주로 작업했다면,이제는 영상이 필요 없었던 것들을 찾아서 프로젝트성 작업을 하려고 기획 중이에요. 두 번째 프로젝트는 정말 다방면의 사람들을 섭외해서 버스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할 생각입니다. 작업실도 있고,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큰 버스를 만들어서 분야별 전문가들을 선정한 다음에 문화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지역을 찾아가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프로젝트들을 계속 할 거예요. 어떻게 보면 국가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개념이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요. 마치 부루마블 게임처럼요.(웃음) 생산적인 많은 것들이 결합이 된다면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다. 욕심도 없다. 그저 자신이 재미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 ‘행복’을 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청춘들에게 그러한 행복을 말하기보다는 그저 끊임없이 달려가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물론 그러한 사회에서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사실은 다른 시도를 할 수도 있는 ‘잉여’들을 공동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잉여’가 아닌 훨씬 더 멋진 단어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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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여라는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ㅎ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남들에게도 인정받으면서 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워요! 저한테도 그런 강단과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ㅠㅎㅎ
  • 김율화

    이서우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 인트로에 올라온 영상이 정말 깜찍하네요! 그리고 이호재씨 인터뷰를 읽다보니 스스로 '잉여'라고 일컫지만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멋진 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 멋잇는 잉여 인것같아요.
    이제는 더이상 잉여가 아닐것같은데요,
    이젠 더이상 낙오되지 않을거니깐요 !ㅎ
    전 고등학생이지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같은
    영화를 찍고 말거에요!!
  • 케피

    새로 기획하는 프로젝트는 듣기만 해도 막 즐거워지네요.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하기 싫은 공부하고 돌아왔는데, 어쩐지 가슴이 뚫리는 인터뷰! 역시 한번 사는 인생 하고싶은거 하고 살아야겠죠ㅋㅋ 그 하고싶은걸 하기 위해 지금 잠깐은 참아야겠다고 다시 생각해봅니당
  • 송종혁

    잉여! 하지만 더이상 낙오자는 아닌 현실에 맞게 진화한 잉여, 정말 멋있네용
  • 러블리럽순이

    멋있어요...저도 잉여가 되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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