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게임발전소, 놀공

게임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이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다. 어쩐지 망설여지고 어리둥절한 당신을 위해, 친절히 게임을 만들고 판을 벌리는 사람들이 있다. 놀공, 이들과 게임을 한 판 시작하자. 준비물, 그냥 당신이다.
놀공발전소의 어느 책장에 꽂혀 있는 ‘노력금지’라는 책. 노란색 표지에 ‘노력금지- 재미있는게 이기는 거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같은 책이 여러 권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

진짜 소년이 되고 싶은 피노키오를 위해

피노키오는 길을 잃는다. 친절한 존 씨의 유혹에 빠져 쾌락의 나라를 헤매고 고래 뱃속에서 절망을 만난다. 파란 요정님의 도움도, 양심 지미니 크리켓의 충고도 가볍게 무시한 채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피노키오가 되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세상의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만나면 늘 숫자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 집과 자동차, 주식이 그들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놀공발전소의 대표 피터공의 모습. 테이블 앞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 도중 촬영한 것으로, 초록색 티셔츠에 붉은색 넥워머를 두른 그가 이야기 도중 생각에 잠기듯 옆쪽을 바라보거나 손을 움직이는 등의 연속 사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 자신이 쳐 놓은 벽을 스스로 허문다. 평소엔 차분하고 조용했던 사람도 게임이 시작되면 목소리를 높이고 흥분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게임판 위에서 경계를 거두고 진정한 내가 된다. 일명 매직 서클, 그 안에 들어서면 당신은 게임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온전히 몰입한다. 사람들을 본연의 자신에게로 이끄는 것, 그것이 지금 놀공이 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놀공이 뭔데?

놀공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굳이 경계짓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모든 형태의 것들을 취급한다. 길을 걷다가, 혹은 책을 뒤적이거나 휴식을 취하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자유롭게 나눈다. 그러는 가운데 게임은 만들어지고 수없이 많은 회의를 거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피터공이 자신의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다. 검은색 만년필로 수첩에 글씨를 써내려가고 있는 모습.
럽젠Q 놀공이 하는 일이 정확히 뭐죠?

“놀공은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들을 정의하는 곳’이에요. 그냥 우리처럼 설명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일하면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꼭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거나, 하고 싶은 걸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아요. 다만 그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만족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봐요.”

재작년 어느 늦은 여름 밤, 서적들로 가득한 강남 K문고는 ‘21C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한 사랑의 무대’로 탈바꿈했다. 남녀 각 6명이 서로 짝이 되어 K문고 구석구석을 누비며 데이트를 즐긴다. 음란소년의 음악회를 보기도 하고 연극을 보기도 하고 성당에서 혼인을 서약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근원적으로 앙숙일 수밖에 없는 운명. 때로 이들은 자신의 가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자신의 반쪽이 속한 가문과 싸워 이겨야 했다. 가문이냐 사랑이냐를 두고 벌이는 이 게임은, 두 커플이 게임을 하며 모은 이야기 카드로 그들만의 새로운 로맨스를 탄생시키며 마무리된다.
놀공발전소의 프로젝트 당시 촬영한 사진들. 위 사진은 어느 남녀 한 쌍이 어두운 서점 안에서 테이블 위에 놓인 포스트잇 메모를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서점 안에서 열린 음악회로, 불꺼진 서점 안에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고, 두 명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 노래하고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
누가 상상이나 할까, 불 꺼진 서점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한 금기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을. 게임에 참여했던 이들은 로미오가 되고 줄리엣이 되고, 심지어 셰익스피어가 돼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느꼈을 복잡한 갈등 상황에 내던져지기도 하고 그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놀공,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일까?

놀공에서는 이름 뒤에 ‘공’을 붙여 부른다. ‘씨’가 주는 경박함과 어딘지 모르게 하대하는 듯한 불쾌함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별명이나 영어 이름이 주는 어색함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피터공의 설명이 덧붙었다. ‘공’을 붙이면 마치 유럽의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레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자라게 된다는 것. 또한 팀원들은 각자 ‘1호기’, ‘3호기’ 등 발전소로 불린다. 게임에 대한 능력과 열정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1호기_잠재력 담당 피터공
노란색 박스 안에 01이라는 숫자와 함께 피터공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한국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게임을 만들며 만났던 인연들과 함께 놀공을 만들었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인연 지상주의자’이기도 하다.
8호기_추징력 담당 애련공
분홍색 박스 안에 08이라는 숫자와 함께 애련공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놀공에 들어 서면 그녀가 밥 짓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보게 될 것이다. 대기업 교육 담당자로 근무하다 사업을 차리고, 같은 건물 2층에 있던 피터공을 만난 계기로 놀공의 멤버가 되어 놀공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3호기_관찰력 담당 지인공
하늘색 박스 안에 03이라는 숫자와 함께 지인공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피터공의 수업을 듣는 제자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놀공에서 열리는 ‘흑역사 청산의 밤’이라는 작은 음악회에서 직접 음악을 만들고 부르며, 복잡한 감정의 배출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88호기_통찰력 담당 은현공
회색 박스 안에 88이라는 숫자와 함께 은현공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무한대를 세워놓은 듯한 ‘8’이 좋아 88호기가되었다.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피터공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한국에 돌아와 놀공의 멤버가 되었다. 놀공의 게임 기획과 비주얼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놀공과 함께 하길 원한다고? 파란 요정님께 소원을 빌어 봐!

파란 요정님이 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런 소원을 빌 것이다. ‘요정님, 올해는 제발 취직하게 해주세요!’ 현재를 즐기며 세상에 없는 것들을 만들어가는 놀공. 그렇기에 많은 청년들이 놀공의 새로운 신성장 동력이 되길 희망한다. 놀공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필요할까?
놀공발전소의 어느 칠판 위에 그러진 그림들. 검은색 칠판 위에 누군가가 그렸다 지운 듯 보이는 일러스트들이 그려져 있다. 지워지곤 해서 확실치는 않지만 각 팀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그린 듯
럽젠Q 놀공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요?

“역량으로 본다면 디자인이든 게임이든,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인상인 것 같아요. 저희끼리는 누군가를 새로 멤버로 받아들일 때 그가 ‘짐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곤 하는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왠지 대하기 껄끄럽고 불편한 경우가 있어요. 결국 놀공의 성향과 맞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죠.(웃음)”

놀공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만큼 그들에게 힘든 곳이기도 하다. 상명하달식의 일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영감을 찾고 일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자신만의 취향이 있어야 한다. 함께 성장하겠다는 의지도 중요하다. 피터공은 놀공이 채용에 있어서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판’을 짜보길 원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만날 사람은 만나는 것 같아요. 꼭 채용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페이스북으로 대화를 하다가 만나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경로로 만났지만 시간이 오래 지난 후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고요. 매 방학마다 인턴을 뽑는데 그게 하나의 인연이 될 수도 있겠고요. 다만 놀공과 함께 하길 원한다면 적어도 놀공이 했던 프로젝트 하나쯤은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피노키오는 양심 지미니 크리켓의 충고를 무시하고 친절한 존 씨와 함께 극단으로 향한다. 스트럼볼리의 서커스단에 들어가, 줄 없이 움직이는 신기한 나무인형으로 이름을 알리며 한 순간에 부와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점점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놀공발전소의 어느 선반 위에 놓여 있는 피규어. 후레쉬맨 같지만 다른 캐릭터로, 헬멧처럼 보이는 가면을 쓴 다섯 남자가 몸에 붙는 변신복을 입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럽젠Q ‘삼포세대’, ‘88만원 세대’ 등 지금 청년들을 일컫는 단어들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은데, 놀공이 그런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 ‘스펙 전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스펙이 중요해진 순간 이미 그건 차별성을 잃게 돼요. 누구나 스펙을 만들어 버리니까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지금 세대들이 많이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 해볼까요?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이런 걸 이뤘다’고 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위기를 기회로 삼는 거죠.”

피터공은 자신이 미국에서 회사를 차렸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당시는 벤처 붐과 함께 회사를 세우기만 하면 수십 억씩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던 때였다. 친구와 함께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판매하며 꽤 짭짤한 수입을 얻기도 했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경기가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투자를 받지 않아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흘러 회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 9.11테러가 발생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5분 거리에 있던 그의 사무실은 초토화되었고 1년 간 제대로 된 업무를 볼 수 없었다.
인터뷰 중 9.11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 피터공. 테이블 앞에 앉아서 수첩 위에 무언가를 쓰면서 살짝 웃고 있다.

“준비를 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요. 항상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말로 도전하기를 꺼려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불안감은 평생 가는 거죠. 모든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 불안을 안고 가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벌려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준비에 목숨 걸지 마세요. 우리 오래 살 거잖아요. 계속 준비만 하실 건가요?”

지금의 놀공을 말하다

가난하고 외로운 제페토는 현실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놀공 역시 하루하루 순간을 즐기며 나아간다는 점에서 제페토와 닮았다. 그런 놀공의 지금, 현재 모습은 어떠할까.
놀공발전소의 사무실 모습. 왼쪽 벽에는 ‘노력금지’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고 갖은 낙서가 되어 있는 작은 칠판이 하나 서 있다. 오른쪽에는 바닥에 종이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논의하는 여직원 두 명이 보인다.
럽젠Q 놀공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없어요. 놀공은 세상에 없는 것들을 만드는 곳이니까요. 다만 저에게 있어서 놀공은 ‘지금 현재의 나,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놀공 식구들도 그렇고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놀이이자, 휴식이자, 삶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놀공발전소의 점심 시간을 촬영한 사진들. 왼쪽 위 사진은 부엌에서 여직원 두 명이 밥을 차리는 모습, 오른쪽 위 사진은 밥을 하는 애련공이 재료를 나르고 있는 모습이고, 왼쪽 아래 사진은 남직원 한 명이 식탁 위에 밥을 놓고 있는 모습, 오른쪽 아래 사진은 피터공이 큰 접시를 들고 누군가에게 이를 전달하는 모습이다.

“게임을 만드니까 우리가 ‘베짱이’ 같을 거라고 오해를 하세요. 하지만 우린 누구보다도 개미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베짱이들이 더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니까요. 달리 생각해 보자면, ‘지속 가능한 베짱이’일 수도 있겠네요. 베짱이는 한 철만 놀지만 우린 사계절 내내 놀 궁리를 하니까요.(웃음)”

게임은 계속된다

놀공발전소의 직원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촬영한 기념사진. 뒤에는 피규어와 책들이 놓여 있는 책장이 보이고, 그 앞에 임직원들이 모두 모여 의자 하나에 나란히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숱한 유혹에 빠져 고생하고 배신감에 좌절하면서도 피노키오는 결국 고래 뱃속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한다. 거짓과 위선에서 벗어나 진실한 자신을 찾는다. 그리고 그는 진짜 소년이 되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이끄는 뚜렷한 비전과 가까이에서 그를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 아이디어 발전소 놀공. 그들의 게임은 언제나 진행 중이다. 그리고 당신의 게임 역시 그러하다. 한치 앞을 알 수 없어 불안한가?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게임의 묘미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불안감은 저 멀리 집어 던진 채 다음 패를 기대하며 흥미진진한 이 게임을 계속해 보자.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AM6시를 사는 사람들│아름원예 지웅식

서울식물원

내 마음대로 게임을 시작해볼까? 커스터마이징

쌍계사 템플 스테이 체험기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겨울나기!

명탐정 챌록홈즈

나를 남기는 방법, 증명영상

티끌 모아 목돈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