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이 돌아왔다

복학생을 나타내는 듯한 사람의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다. 그가 검지와 중지를 펼쳐 이마에 갖다대는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가 말한 듯한 대화가 허공에 쓰여 있다. “여어- 신입생!” “선배는 무슨~ ㅎ” “오빠라고 불러 ㅋ” 등이 쓰여 있고, 그 아래 제목으로 ‘복학생이 돌아왔다’라고 쓰여 있다.

“울 애긔 혹시 오빠가 연락하는 거 부담슬어워? ㅋ 그냥 친오빠라고 생각하면 대눈대~ ㅎㅎ 설마 오빠를 남자로 보는 거야? ㅎ 기분 좋운대? ㅋㅋ”

긴 방학을 보내고, 혹은 더 긴 수험 기간을 지내고 맞이한 개강. 눈부신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던 당신 앞에 말로만 듣던 복학생이 나타났다! 매일같이 보내는 메시지, 만날 때마다 부담스러운 인사법까지. 인터넷에서 회자되던 복학생의 모습 그대로다. 정녕 송중기, 유연석 같은 훈훈한 복학생은 없는 것인가?

서툰 복학생의 등장

‘연애에 서툰 복학생’ 트위터 계정의 멘션들을 캡쳐한 사진. ‘애기야 점심 먹었어? 안 먹엇으면 오빠랑 같이 먹… 먹엇다구?ㅜ 애기는 정말 밥을 일찍 먹는군아…’ ‘ㅎㅎ머얌 무슨얘기를 글케 잼있게 해 ㅋ 오빠도 좀 껴주랑~~’ ‘너 번호 바껏어? 왜카톡확인안해…ㅋ 설마 오빠 톡이라서 일부로 씹은거야? 확 한대 때리고싶내 ㅎ 농담이야 ㅋ 오빠 여자 안때리자나 ㅋㅋ’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지난 겨울, 갑작스레 유행을 타기 시작한 말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복학생 말투’다. 이따금 틀리는 맞춤법에 적절한 ‘ㅎ’ 하나, 그리고 지나친 농담까지. 눈치 없고 센스 없기가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온 고학번 선배와 꼭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말투가 유행할수록 대학생들은 공감했고, 트위터에는 ‘복학생 봇’까지 나타났다. 복학생 말투와 복학생 특유의 표정을 그린 이모티콘은 이제 하나의 개그 코드로 자리 잡았다.

모두가 인정한 복학생의 특징은 이러했다. 먼저 그들은 특유의 느끼한 표정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그들 자신은 어떤 불편함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당당하다. 또한 그들은 신입생, 어린 동생들에게 친절을 빙자한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 그 관심이 부담스러워 피하면 선배임을 내세우며 정색하거나 삐치기 일쑤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받아 주자니 갈수록 도가 지나쳐, 끝내는 농담을 빙자한 음담패설로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쿨하고 멋진 줄 알고, 인기가 많은 줄 아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복학생, 있다?! 없다?!

그런데 이러한 복학생의 특징 중에도 가장 큰 것이 있었으니, 그들은 모두 남자다. 웃음과 공감의 중심에 선 최근의 복학생은 모두 복학생 오빠만을 이야기한다. 그 어디에서도 눈치 없이 집적대는 복학생 누나는 찾아볼 수 없다. 하필이면 여대생과 복학생 오빠의 관계가, 이토록 미묘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신입생이 된 김럽젠(여, 20)의 마음은 부담스럽다. 머릿속은 터질 듯 빠르게 돌아간다. 입학 전부터 읽어온 대학 새내기를 위한 글들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되 여자 선배들에게는 여우로 찍히지 않도록 조심할 것. 동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둘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같은 과에서 CC가 되지 말고, 끊임없이 들이대는 고학번 남자 선배들을 경계할 것!

응답하라 1994의 메인 포스터. 94년 당시 유행하던 의상들, 아이스진과 힙합 바지, 체크무늬 셔츠 등을 입은 주인공들이 일렬로 서 있으며, ‘촌놈들의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우리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훈훈한 선배, 예쁨 받는 신입생, 고등학생 티를 벗고 화려하게 변신한 자신의 모습. <논스톱>, <응답하라 1994> 등 TV 시트콤, 드라마를 통해 차곡차곡 쌓인 환상 속 대학 생활과 아름다운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그 환상만큼이나 우리에게 대학은 어렵고 두려운 편견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입학 전 새내기들을 위한 충고라며 올라오는 인터넷 글들을 정독한다. ‘이대로만 하면 대학 생활 성공한다’ 따위의 말에 속아 그 내용을 캠퍼스 라이프의 원칙으로 삼는다. 완벽한 미래를 위해서는 알아둬야 할 것도, 명심해야 할 것도 많다. 그 과정에서 접하는 정보들에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를 무장한다.

이것은 특히 여학생들에게 심하다. 인터넷의 ‘대학 충고글’은 대개 여자들이 쓰고, 여학생들이 본다. ‘나 같은 여자 후배’들을 위해 쓰는 염려의 말들에는 피곤하게 집적대는 남자 선배들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따뜻한 마음은 때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보면 웃기고 현실에 있을 것도 같은데, 막상 실제로 학교에서 만난 적은 없어요. 그런 것 때문에 괜히 편견만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제가 먼저 거리를 두고 경계했죠. 이제는 진짜 좋은 선배들이고 친한 오빠들이 됐는데, 그 땐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나 ‘서툰 복학생’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미 유행하는 복학생 말투가, 그리고 그를 공감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이를 증명한다.

“신입생 때 그런 선배가 있었어요. 저한테만 그랬는지, 다른 동기들한테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유독 수업 끝나는 시간, 시험 끝나는 날마다 연락해 밥을 먹자고 하더라고요. ‘전형적인 복학생이구나’ 싶었죠.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복학생 말투도 남일 같지 않고 더 재밌었어요.”

복학생, 과연 어디까지가 편견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그 경계는 꽤 애매하고 불분명하다. 결국 열쇠는 우리가 쥐고 있다. 복학생, 적절한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가? 순수하게 선배로만 대할 것인가?

전지적 복학생 시점에서는…

그리고 여기, 할 말 다 못해 억울한 진짜 복학생들이 있다. 군대, 여행, 공부 등 제각기 다른 이유로 휴학을 결정하고 학교와 멀어져 외로운 생활을 했다. 누구보다 학교가 그리웠고 파릇한 새내기들이 부러웠다.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라는 생각에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고, 동기들이 다들 흩어져 함께할 친구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입생들의 기류는 이상하다. 복학생이라면 은근히 따돌리고, 메시지마저 무시한다. 하다 하다 뒤에서 복학생을 욕하는 일도 허다하다.

막연한 편견의 중심에 자리하던 복학생이 바로 자신이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다. 새내기 시절 자신이 느꼈던 복학생에 대한 감정을 되새기며 태연히 웃을 수도 있다. ‘나만큼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스스로를 가다듬기도 한다. 이제 졸업, 취업을 앞둔 복학생들은 남을 돌아볼 여유도, 편견을 이해할 시간도 없다. 그저 내 살길 찾아가기 바쁘니 남들 시선은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한 어린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책상 위에는 종이와 함께 여러 색의 색연필이 놓여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듯한 이미지이다.   편견에 상처 입은 복학생에게도 좋은 점은 있다. 일명 ‘복학생 버프’가 바로 그것. 휴학으로 충전 기간을 가진 이들은 누구보다 학교 생활이 즐겁고 공부가 재미있다. 대학 시험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제법 눈에 보이고, 수업을 먼저 들은 동기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학사 행정은 물론이고 학교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교수님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수월하게 해나간다.
대학, 뿔뿔이 흩어져 살다 돌아오면 너도 나도 복학생이다. 지금 빛나는 새내기도 언젠가는 헌내기, 복학생이 되어 후배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복학생을 너무 어려워도 말고, 두려워도 말 것. 복학생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생각보다 괜찮으며, 때론 생각보다 훨씬 좋기도 하니까.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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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는 기사네요 ~ 잘보고 갑니다 ㅎㅎ
  • 꿈장수오토리

    김럽젠? 이름이 예쁘네...ㅎ 오빠랑 같이 밥 먹을까?.. ㅎ
    아 밥맛이 없어?? 기다려방 오빠가 죽 사다줄게 같이 먹자 ㅎㅎ
  • 김종오

    눈물이 날 것 같은 복학생 1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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