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청년 진단서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겨울은 계속 된다. 이 겨울, 청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삶을 마주한 그들,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한 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다이어리의 첫 장에 글자를 꾹꾹 눌러 쓴다. 학점, 토익, 컴활, 면접 스터디, 졸업, 취업. 당장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장기적인 ‘목표’들로 가득 채워진다. 배낭여행 가기, 기타 배우기, 번지점프 하기 같은 꿈 같은 소리는 접어둔 지 오래. 지금의 청년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돌팔이 럽제니가 멋대로, 스스로 진단을 내려보았다.
청진기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에 ‘2014 청년 진단서 – 청년들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스펙 강박증(Specification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 장애란 불안장애의 하나로,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obsession)와 강박적 행동(compulsion)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 스펙 강박증이란 학력, 학점, 영어 점수 등의 취업 자격 요건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스펙’이라는 반갑지 않은 신조어에 이어 ‘스펙 강박증’이 생겨났다. 끝날 줄 모르는 경기불황에 취업난까지 가중되면서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나은, 혹은 밀리지 않을 정도의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증이다. 취업에 맞닿아있는 고학년 학생일수록 그 정도나 비율이 더 높기는 하지만,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스펙은 이제 단순한 취업요건이 아니다. 어찌 보면 스펙 자체가 그 목적이 된 듯 보일 때도 있다. 주위의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더 높은 점수에 목을 매고, 이미 고(高)스펙을 갖춘 사람들도 또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휴식, 여행, 재충전의 기회로 사용되던 ‘휴학’도 이젠 온전히 스펙 쌓기에 열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이들에게 더 큰 문제는, 완벽에 가까운 스펙으로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왼쪽 사진은 어느 서점에서 사람들이 책장 앞에 마련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어느 서점의 한 책장, 공무원 수험서 코너를 촬영한 사진.

뉴스피드 강박증(News fee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SNS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것. 스마트폰 중독과도 이어지는데, 확인이 불가한 경우 불안감을 느끼기도 함.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4’의 책 표지. ‘트렌드 코리아 2014’라는 제목이 쓰여 있고, ‘시대의 장애물을 뛰어넘는 ‘우승마’의 전략은 무엇인가’라는 글귀와 함께 김난도 교수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다.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4>에서 ‘스몰 브라더(small brothe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개개인의 모든 족적들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빅브라더와 상반되는 의미를 가진 개념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다를 뿐, ‘감시’의 목적은 동일하다. ‘보이지 않는 눈이 도처에서 지켜본다’는 의미다. 이는 ‘뉴스피드 강박증’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비유이자 설명으로 이어진다.

SNS의 대표주자 격인 페이스북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시공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감시의 주체이자 객체가 된다. 강박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1분 전, 1초 전에 업로드 된 새로운 소식을 확인한다. 반대로, 뉴스피드 위에 자신을 올려두고 수많은 눈에 노출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왜일까? 김난도 교수는 이를 ‘정체성’으로 설명한다. 소외감에서 벗어나 성취감과 존재감을 느끼기 위함이다. 페이스북 로고. 푸른색 사각형 안에 f라고 쓰여 있다.SNS를 통해 타인을 살펴보고,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나름의 소통을 이루어낸다. 과거에 노동이 차지하고 있던 성취감, 존재감의 영역을 SNS상에서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호흡 장애(dyspnea)
호흡 곤란이라고도 말하며, 힘을 쓰지 않으면 숨쉬기가 어렵거나 숨쉬는데 고통을 느끼는 상태.


모든 20대가 그랬겠지만 지금의 20대는 이전보다 심화된 부담감에 시달린다. 가끔은 숨이 턱, 턱 막힌다.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지? 어떤 것을 해야 하지? 지금 나는 잘 하고 있는 건가? 앞으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길을 걸어가다,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다, 침대에 누워 잠을 설치다가, 갑자기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숨통을 조여온다.

이 ‘호흡 곤란’의 주요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부모에 대한 책임감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리 세대는 부모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은 세대다. 원치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된 사교육, 대학 등록금, 어학연수 등 계속해서 ‘부모’라는 든든한 지원군의 투자를 받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조금 철이 들었을 때에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디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투자자들은 우리를 찾아 환급을 재촉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짊어진 부채감에 계속해서 시달린다. 투자에 대한 성과물, 혹은 ‘보은’을 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은 어느 서점에서 사람들이 책장 앞에 마련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어느 서점의 한 책장, 공무원 수험서 코너를 촬영한 사진.

실패 공포증(fear of failure)
공포증의 일종으로, 자신이 무언가에 실패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증상.


대학생이 되어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다른 어떠한 것들보다도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능력이자 기술이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라는 새로운 입학을 준비하는 입시생이 된다. 학점을 올리고, 갖가지 자격증에 영어 점수까지. 전공 지식에는 빠삭해도 교양은 쌓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학습도 부족하다. 스펙에 몰두하다 보니 도리어 더 중요한 가치를 도외시하고 마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대학생들은 어려움이나 실패에 당면했을 때의 대처에 익숙하지 못하다. 이는 원하는 직장에 들어간 이후에도 문제가 된다. 자신이 기대한 업무가 아닐 때, 혹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당황하며 좌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20대라면 당연히 겪을 만한 ‘실패’,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못하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두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연두색의 십자가 모양 그림이 그려져 있다.돌팔이이기 때문에, 그리고 함께 겪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럽젠이 마땅한 처방까지는 내릴 수 없겠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민간 요법 하나쯤 추천해보려고 한다. 바로 주위 사람의 ‘위로’다. 아프고, 힘들 때는 벌떡 일어나 친구를 만나자.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나, SNS를 기웃대지 말고, 눈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자. 혼자 짊어지기에 벅찬 것들이라면 주위의 힘을 빌려 해결해도 좋다.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뒤쳐진 것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다. 이는 분명 가장 좋은 신경위안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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