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ㅣ감성을 치유하는 놀이학개론

사진_이유진/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편을 가르지도, 선을 긋지도 않는다. 틀림이 아닌 다름이며, 동정이 아닌 평등이라 말한다. 장애와 비장애, 그 나눔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그녀, 홍승희가 그렇다.
감성노리 대표 홍승희씨가 카메라 옆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향해 웃고 있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자주색 니트를 입고 있으며, 그녀의 뒤로는 감성노리의 사람들이 그린 듯한 엽서 크기에서부터 A4용지 크기의 다양한 작품들이 유리 선반에 올려져 있다.

어설픈 그녀를 위한 놀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랬다. 그녀는 항상 정해진 틀에 갇혀있는 걸 싫어했다. 학창시절 매일 똑같은 시간표에 움직이는 생활에 그녀는 답답함을 느꼈고,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도 과감히 포기했다. 보통 사람들에겐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 그녀에겐 구속과 속박이자 자신을 꽁꽁 묶어놓은 쇠사슬과도 같았다. 그렇게 갇혀버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그녀는 방황을 시작했다.

“내가 살아있긴 한 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책하고 되물었어요. 변하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함과 회의감이 들었죠. 그렇게 한동안 제 스스로에게 싫증이 나다 번뜩, 답 하나가 우연히 떠올랐어요. ‘다른 사람들 돕는 것, 이것이 조금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었죠.”

새로운 목표가 정해지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의 목적지와 맞닿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고 사회학과 대학원 과정까지 밟게 되었다. 그러나 그 힘찬 발걸음도 잠시, 금세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대학도 결국은 입시교육보다 조금 더 잘 다듬어진 공간일 뿐, 그녀에겐 마찬가지로 철저히 진부한 공간이었다. 마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이란 이름의 뜻하지 않은 기적을 만나게 됐다.
홍승희 대표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왼쪽 사진은 그녀가 테이블 앞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 손을 깍지낀 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그녀가 고개를 약간 숙이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다.

“지난 학기였어요. 아이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장애인 청소년을 위한 특수교실에서 일하기로 했죠. 당시 아이들과 같이 지내며 느꼈던 감정들이 저에겐 굉장히 큰 힘이 돼 주었어요. 어느새 그 아이들의 순수함이 저를 치유하고 있더라고요. 바로 그때부터였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허물없이 소통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세우게 된 것이요.”

외유내강이라 했던가. 여린 겉모습과 다르게 그녀의 속은 단단했다. 몸소 부딪치며 깨우치는 것이 그녀가 생각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본래 깊게 고민하지 않고 일을 벌여놓는 고질적인 성격은 그렇게 감성노리의 시발점이 됐다. 홍승희 대표가 감성노리에 있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위쪽 사진은 감성노리에 있는, 유리 선반 위에 올려진 다양한 작품들을 홍승희 대표가 설명하기 위해 카메라 옆 인터뷰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홍승희 대표가 선반 위 한 작품을 만져보며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이 선천적인 우직함 때문인지 난생처음 해보는 창업임에도 한 점 두려움조차 없었단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놀이 중 하필 ‘그림’을 통한 놀이를 택했을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간결했다.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그림에 대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건 없건 상관없어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갖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생각도 머릿속에서만 맴돌면 틀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이걸 그림으로 풀어내고 서로 나눌 수 있어야지만 의미가 있는 거죠.”

열정은 많은데 때때로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며 분노하곤 했다는 그녀.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항상 그림을 그렸다. 당장 생각나는 것, 상상하는 것, 느끼는 것을 그림으로 풀면 마치 자아가 실현되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고 한다. 마치 모든 불안감을 떨쳐버리는, 자신만의 한풀이처럼.

불편한 그들을 위한 놀이

그녀는 그림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들을 사람의 관계 속에 투영시키려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사람들 간의 신선한 소통과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저 그런 평범한 관계가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 속에서의 특별한 연결을 꿈꿨다. 그리고 지난 5월, 그녀를 비롯한 4명의 청년들이 함께 만든 사회적 기업 ‘감성노리’가 탄생하게 됐다. 그녀의 강인한 바람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

“문화예술을 통해, 그리고 사회적 기업의 힘을 빌려서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동정 어린 시선을 떠나서, 그들을 그저 평범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죠. 그러기 위해선 사람들의 ‘감성의 회복’에 중심을 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성노리의 활동 모습. 왼쪽 사진은 감성노리의 한 회의실과 같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테이블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그림도구가 잔뜩 어질러져 있고, 사람들은 남자 네 명과 여자 두 명이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회의실에서 여자 네 명과 남자 한 명이 둘러앉아 남자가 연주하는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는 버려진 LP판이나 타일, 벽돌과 같은, 완성품이지만 쓸모없어져 버린 물건 위에 자신의 속마음을 덧대는 걸 좋아한다. 특히, 사람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하기 위해선, 자연에 대한 상상력과 배려심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그녀는 더불어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꿴 첫 단추는 낡은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전시회인 ‘나무야 나무야’였다.

“찌그러지고 흠집이 생겨 못쓰게 된 나무의 결을 직접 만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치 지금 자신의 모습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 촉감을 느끼면서, 그리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 억누른 감정이나 다른 사람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힘든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모두 털어놓게 돼요.”

어느 아동센터에 감성노리 직원들이 교육프로그램을 위해 방문했을 때의 모습. 좌식 테이블 앞에 아이들과 감성노리 직원들이 모여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물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놀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의 원천은 ‘자유로움’이었다. 형식적인 프레임의 구도에서 벗어난 감성노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것도, 카페와 같은 유연한 생활공간에서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것도, 감성노리 운영진들의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도 모두 그녀의 이해심과 자유분방함이 그 원천이었다.

현재 그녀는 장애인의 재능을 일반인이 소비자 차원에서 구매, 응원할 수 있는 플랫폼인 ‘장애인 재능마켓’을 구상 중이다. 비장애인과의 접촉 공간의 부재를 해결함과 동시에 모든 장애인이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것, 이것이 그녀가 설립한 새로운 이상향이기도 하다.

감성노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클로즈업한 사진. 위 왼쪽 사진은 동그란 원형의 나무판에 그림을 그려넣고 시계바늘을 붙인 시계, 위 가운데 사진은 네모난 나무판에 장미꽃 그림과 사람의 눈 그림을 그리고 시 구절을 써 둔 작품, 위 오른쪽 사진은 원형 나무판을 하나의 바다처럼 표현해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을 그려넣은 작품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작은 인형들로, 유리선반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아래 가운데 사진은 사용하지 않는 LP판에 그림을 그려넣은 작품이고, 아래 오른쪽 사진 역시 납작한 직사각형의 나무판에 그림과 시 구절을 써 둔 작품이다.
아직은 장애인들이 편견의 알을 깨고 나와 편히 거닐 수 있는 분위기가 완전히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공개적인 홍보를 하더라도 장애인들의 참여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더불어 감성노리 자체도 사회적 목적을 지녔지만 어쨌든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에 온전히 수익에 상관없이 즐길 수만은 없다는 애로점 또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필연적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오늘도 그녀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에 집중하면서도 높은 이익까지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설계 중이다. 보통 사람들이 얽매여있는 시각과 청각의 허상에서 벗어난, 더욱 자유로운 소통의 청사진을.

불안한 우리를 위한 놀이

그녀는 현재의 자신이 방황하고 있는 제2의 사춘기에 놓여있고 했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다가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금세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행, 글, 영상, 심리상담 등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기분 좋은 푸념을 늘어놨다. 좀전의 소녀다움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녀에게선 활기와 꿈으로 충만한 청춘의 모습이 보였다. 20대는 불안한 외줄 타기와 같다고 했던가. 그녀 역시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충분히 안정적인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그녀의 당찬 뒷모습도 동시에 보였다.
어느 아동센터에 감성노리 직원들이 교육프로그램을 위해 방문했을 때의 모습. 좌식 테이블 앞에 아이들과 감성노리 직원들이 모여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물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놀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실의 굴레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능력과 잠재력을 절제시키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충분히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든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헤엄쳐 가세요. 어쩌면 그게 삶의 실체가 아닐까요? 내 인생의 등장인물들은 내가 정하는 거잖아요. 내가 찾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꿈이 실현될 가능성도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그녀는 인터뷰 내내 ‘이상’이란 단어를 되풀이했다. 세상을 밝게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그녀의 궁극적인 이상이며, 지금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끈을 잡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선 감히 이룩할 수 없는 꿈을 잡으려 노력하는 돈키호테의 우직함마저 느껴졌다. 현실에 오래 안주하며 씁쓸한 공허함에 물드는 것보다, 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오롯이 손을 뻗는 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답고도 눈부신 청춘의 이상일 테다. 그리고 그 청춘의 표본이 어쩌면 그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며 ‘언제나 환영’이란 말을 덧붙였다. 힘들고 외로워 지친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언제든 반겨줄 그녀의 진심 어린 따스함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아마 그녀가 말한,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 빛나는 순간을 함께할,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는 그 누군가와의 설레는 만남을 기다리며 오늘도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녀가 나무판 위에 쓴 그녀의 좌우명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킵니다. – 모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하여… 감성노리 흥승희”라고 연필로 쓴 문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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