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나의 아름다운 재봉틀

사진_전영은/제19기 학생기자 전영은(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어쩌면 삶의 양식과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다 같은 터널을 지나는 것이 아닐까? 재봉틀을 통해 돌고 도는 순환의 삶을 재봉하는 청년이 있다. 재봉틀이라는 삶의 양식으로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깁는, 아티스트 정민기다.
재봉틀 아티스트 정민기의 사진. 오른쪽 뒤로 빨간색 양복 입은 사내의 그림의 걸려있고 그림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오른쪽에 앉아 카메라는 바라보고 있다. 왼쪽에는 “재봉틀 아티스트 정민기”라는 문구와 함께, 글_서현동 사진_전영은 “나의 아름다운 재봉틀”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일본 공업용 재봉틀 업체 ‘JUKI’의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재봉틀. 흰색 테이블 위에 희색 재봉틀이 놓여있다.

“재봉틀이라는 기계 자체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재봉틀을 그대로 두고, 화지를 움직이잖아요. 그리고 페달을 밟고요. 그게 마치 운전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핸들링하고 액셀을 밟는 것처럼요.”

소년은 집에서 재봉틀을 사용하던 어머니를 본다. 소년에게 재봉틀이란 그저 집에서 늘 보던 도구였다. 어느 날, 재봉틀 소리가 재미있게 들렸고, 소년은 작업대에 앉아 재봉틀을 만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청년 정민기, 재봉틀 아티스트 정민기가 재봉틀과 삶을 동행하게 된 시작점이 된다.

소년의 시절 속에 재봉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삶에서도 특별히 튀는 아이도 아니었다. 사람의 평범한 기준이 있을 때, 때때로 한 가지 자아로 그 기준에 굳어가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원하는, 사회가 원하는 그런 것에 맞춰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미운 일곱 살처럼, 그는 청개구리처럼 일상의 틀에서 빗겨나갔다.
정민기의 인터뷰 컷 3장을 차례로 연결한 사진. 질문에 답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처음엔 눈높이를 향했다가 차례로 아래로 떨어지며 감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어려서 생각이 달랐던 것 중의 하나가, 남들의 요구에 의해서 사는 삶을 싫어했어요. 뒤엔 광활한 초원이 있는데 먹잇감만 보고 달려드는 그런 삶 자체에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 염증을 가진 것이 굉장히 어릴 때였고. 내가 무언가를 잘해냈는데 타인이 만족할 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부단히 많은 질문을 던졌죠.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런 소년은 자라서 재봉틀 아티스트가 된다. 재봉틀을 통해서 새로운 작업을 만들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재봉틀은 그에게 ‘접착제’와 같은 중간 지대로 자리 잡는다. 자기 자신과 관련 없던 것들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재봉틀은 그의 예술과 자아, 그리고 드넓은 세계의 접점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왼쪽 그림은 노란색 보름달이 뜬 저녁(또는 새벽)을 배경으로 건물을 등지고 서 있는 강아지의 모습이다. 건물과 강아지는 붉은색으로 표현돼 색채의 대비를 이룬다. 오른쪽 사진은 황토색 톤의 물결 모양의 배경에 상체를 드러낸 사내가 서 있는 모습. 사내는 흡사 X-Ray 촬영을 한 듯 속 안이 훤히 비친다.

“서로 다른 헝겊 조각을 짜깁기하는 퀼트 작업처럼, 제 안에 있는 다양한 자아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정민기라는 사람 안에 무수한 조각이 있는 조각 모음 상태 같아요. 그것들이 병렬적 구조로 있는 집합체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도 하고 새로운 자아를 낳기도 하죠. 그래서 자아를 나눠서 작업하게 되었고 자아마다 새로운 이름이 생긴 것 같아요.”

그가 재봉틀로 펼치는 드로잉 쇼는 많은 관중으로부터 참신하다는 반응을 얻어냈다. 재봉틀은 원래, 골방에서 무언가를 꿰매고 박음질하는 뒤편의 사물이 아니었을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아름다운 옷이 있다면 뒤에는 항상 재봉틀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주목받지 못했던 재봉틀로 자신의 작업을 ‘생중계’하듯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하는 주인공의 사진이 세로로 3장 연결된 모습. 흑백의 사진 속에는 주인공이 고개를 떨구거나 손으로 입술을 만지거나, 질문의 답을 떠올리려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패션도 만들어진 옷이 주목받고, 그림도 그려진 그림에만 집중하지 작업 과정이나 작업에 쓰인 재료엔 정작 집중하지 않죠. 재봉틀이라는 기계가 집중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퍼포먼스 자체도 작업 자체의 과정을 즐기기 때문에 하게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실황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패션도 만들어진 옷이 주목받고, 그림도 그려진 그림에만 집중하지 작업 과정이나 작업에 쓰인 재료엔 정작 집중하지 않죠. 재봉틀이라는 기계가 집중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퍼포먼스 자체도 작업 자체의 과정을 즐기기 때문에 하게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실황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면, 다른 관중도 이해시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연 기획의 절반 인력을 주변 친구들에게 부탁했어요. 용기를 줬죠. 이건 너랑 하고 싶다, 하면서 다같이 열심히 준비했어요. 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과 작업해서 더 도움이 되었어요. 그 후로는 친구들이 더욱 응원해줬어요.”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더 미쳐라.” 더 미치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그의 아름다운 영향력 때문이다.
그에게도 ‘취업’ 이 두 글자에 숨이 탁 막혀오던 시절이 있었을까? 반듯한 직장과 안정적인 삶을 꿈꾸는 부모님의 마음까지 헤아렸을까? 그렇게 찾아온 고민들을 마주하는 그의 태도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아예 안 해버리죠. 고민 자체를 아예 소거해버려요. 저는 여러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매커니즘을 좋아해요. 마음의 평안 같은 것. 내가 편해야 주변인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그러셨어요. 그러고 있을 바에야 취업이나 하라고. 어른들 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죠. 하지만 저는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를 대진 않아요. 제가 진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귀를 기울였어요.”

왼쪽 벽에는 메인 컷을 촬영했던 배경인 붉은옷의 사내 그림이 걸려있다. 그 앞에 작업대를 두고 재봉질에 전념하는 정민기의 모습. 오른쪽 뒤로는 아치형의 문이 있고, 작업대 위에는 천이며, 스케치며, 실 따위의 작업 준비물이 널려있다.
그는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가 지상주의에 빠지는 것도 싫고, 지나친 상업성에 빠지는 것도 싫어한다. 이러한 균형의 차가 곧 개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재봉틀을 벗어나 또다시 새로운 도구를 찾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삶을 추구한다. 정착은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에게는 즉흥성이 있다. 계획성도 없고 깊이도 없다며 오해할 수 있지만, 즉흥만큼 또 힘든 것은 없다. 즉흥만의 쾌감이 있어 그는 즉흥적인 것을 좋아한다. 재즈도 형식을 기반으로 즉흥적인 연주를 한다. 그는 작업에 조금 실수가 나더라도 그 역시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유연해지고 가끔 자기도 알 수 없는 노랫말을 멜로디를 흥얼거린다고.
재봉틀 작업을 하는 정민기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재봉들을 잡고 있는 그, 재봉틀 바늘이 클로즈업된 장면, 발을 구르는 모습, 재봉질에 집중하는 옆모습이 나열돼 있다.

“저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요. 예를 들자면, 낡은 것이나 버려진 것들, 오래된 것들, 빈민국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건물이나, 허물어진 상태로 남겨진 폐허 같은 곳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세월의 흔적이나 시간을 견뎌낸 흔적들이 특히 그래요.”

드로잉 작업 중인 정민기의 모습. 작업대에 신문지를 깔고 밑그림이 된 캔버스에 흰색 물감을 칠하고 있다.그는 정해진 것이 없다. 재봉틀이라는 단어에서 ‘틀’이 의미하는 어떤 관습이나 관행을 깨부수려고 한다. 틀이 만들어내는 똑같은 작업 말고, 그가 하는 작업이 하나의 새로운 장르가 되는 걸 추구한다. 그리고 하는 일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 그는 ‘의미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냥 하는 것’이라는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는 국적성이 없는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대중성을 지향하지만 때론 대중성을 등지고 아주 실험적인 걸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예측이 불허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를 촘촘하게 수놓은 모험심과 주체성, 자기 것의 삶을 사는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름다운 재봉틀’은 그가 누리고 있는 세계를 위해 돌아간다.

그는 타인에게 에너지를 전한다. 자신의 깊이 만큼 비례하는 에너지가 뻗는다고 믿는다. 그 에너지가 닿으면 충분히 공감으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재봉질을 하는 손에 다친 흔적이 없다는 것. 그는 말한다. “재봉틀로 단순노동을 하는 것이었다면 다쳤을 것”이라고. 동선 하나하나를 다 생각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다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장의 산물이었던 재봉틀이 기계에서 탈피해 그의 운전대가 되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재봉틀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빌려 ‘재봉틀’이라는 ‘틀’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분업화되고 부품화되어가면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이 벽에 가려진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새로움을 찾기 어려워진 시대에, 새로움을 보려는 열정의 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새로운 것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모험심은 앞으로의 탄력적인 행보에 있어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

예고편이 없는 영화처럼,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모르는 입술처럼, 알면서 모르는 것들보다 모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더 값지다. 그가 또다시 재봉틀 앞에 선다. 그다음 앞에 서게 될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아본다.

재봉틀 아티스트 정민기가 럽젠에게

정민기가 재봉틀로 수놓은 메시지. 제일 위에 검은색의 큰 글씨로, “LG럽젠 독자여러분”이라고 적혀 있고, 바로 아래 빨간 심장 안에 하트를 새겨 넣었다.

“럽젠 사이트에 접속하시는 독자분들은, 능동적인 청춘을 위해서 이미 노력을 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내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가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니까. 또래의 삶도 궁금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원하는 능동적인 분들이 아닐까요? 하나만 조언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들과의 비교로 자기 속도를 잃어버릴 수 있거든요. 자기 호흡과 자기 템포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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