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불어넣는 생명의 입김, 유리공예가

인간이 불을 이용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중 유리공예만큼 아름다운 예술이 또 있을까. 강렬히 터지는 불꽃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가 하면 긴 파이프에 입김을 불어넣어 마치 새로운 생명을 재창조하는 듯하니, 유리공예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섬세하고 또 섬세하다

공예에서 ‘유리’라는 소재는 다른 공예 재료와 달리 과학적 지식과 재료 사용의 경험 없이는 창의적인 작업이 힘들다. 또한 열이나 충격에 민감한 재료이기 때문에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으로 준비돼 있어야 한다.

‘유리공예가’라는 직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작품에 따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하루까지 걸리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집중력을 놓는 순간, 작품이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다. 형태를 완성하더라도 가마에 넣고 하루 정도를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가마에서 나오기 전까지 계획대로 작품이 완성되었는지 100% 확신할 수도 없다. 또한 완성된 작품일지라도 소재가 유리이기 때문에 잠시 공예품을 만지거나 이동시키는 과정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져야만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며,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것. 이러한 정교함과 섬세함은 유리공예가가 되기 위한 가장 큰 난관임과 동시에 매력적 요소이기도 하다.

입으로 부는 것만이 유리공예가 아니다

흔히들 유리공예를 생각하면 빨간 유리 덩어리가 달린 긴 파이프를 입으로 ‘훅’ 하고 부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유리공예는 여러 세분된 기법으로 나뉘며, 이에 맞게 수십 가지의 재료를 이용해 눈부신 작품을 빚어낸다.

1. 뜨겁게 녹인 유리를 다듬는 ‘핫 워킹(hot working)’

램프 워킹(lamp working)

램프 워킹은 중세시대 유럽의 연금사들이 유리봉이나 유리관을 알코올램프 불꽃에 달구어가며 실험도구를 만드는 작업에서 유래했다.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십 년 전부터 유리 작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기법이다. 가장 흔한 예로는 토치램프로 유리조각이나 유리막대를 녹여 작은 장난감이나 장신구, 구슬 등을 만드는 것이다. 근래에는 기존의 진부한 표현 소재에서 벗어나 실험적이고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작품들이 작업 되고 있다.

블로잉(blowing)

유리공예의 꽃이라 불리는 블로잉. 블로잉은 1,250℃~1,500℃에서 녹고 있는 액화 상태의 유리를 파이프에 찍어내, 풍선처럼 불며 빠른 손놀림으로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다. 유리가 뜨거우므로 신속하게 작업해야 하며, 파이프를 지속적해서 돌려주면서 유리가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더불어 뜨거운 열에 노출되기 때문에 화상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블로잉의 생생한 작업 과정은 기사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고온의 가마를 이용하는 ‘웜 워킹(worm working)’

샌드 캐스팅(sand casting)

특정 형상의 딱딱한 몰드 안에 가마에서 녹인 유리 덩어리나 유리 가루 등을 넣어 몰드의 형상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캐스팅은 자유로운 형태와 질감, 양감, 색 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유리를 조형적 표현 매체로 가능하게 한다.
오른쪽 사진처럼, 샌드 캐스팅은 모래 거푸집에 녹은 금속을 넣어 모래 몰드 안에서 고형화시키는 기법이다.

퓨징(fusing)

팽창률이 맞는 판유리 혹은 유리 봉을 잘라 원하는 형태로 구성한 후 이를 가열하여 서로 녹여 붙이는 방법으로, 자유롭고 복잡한 문양과 형태를 표현할 수 있다.
이 기법은 과거로부터 소형 장신구나 가구, 건축물 등에 사용됐으며 문양은 사람 얼굴이나, 꽃, 동물모양이 많다. 퓨징은 원리는 간단하지만 팽창률이 맞는 다양한 색상의 유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테스트가 필수적이다.

차가운 상태에서 작업하는 ‘콜드 워킹(cold working)’

콜드 워킹(cold working)

콜드 워킹의 기법 역시 다양하다. 대표적 기법으로는, 유리나 금속 등의 각종 재료를 접합한 후 연마 및 광택 시키는 라미네이팅(laminating), 여러 조각의 색 판유리를 접합한 유리판으로 성당의 창문에 주로 사용되는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작은 연마제의 모래 가루를 유리에 쏘아 표면을 깎아내 모양을 만드는 샌드 블라스팅(sand blasting) 등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콜드 워킹의 작업 중 카빙(carving)의 모습.

아직은 블루오션의 세계

‘유리공예’는 우리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리공예를 깊이 알고 있는 사람도 아직 적다. 대부분 미술의 장르는 대중에게 자주 노출이 되고 있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가 꽤 존재한다. 그러나 ‘유리’라는 소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보통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예술분야를 관람할 때 막연함과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유리공예는 그저 외향만으로도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의 내용과 속 뜻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즐기며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인 것이다.

유리공예의 발전 역사 역시 그리 길지 않다. 서구에서 공예 분야의 하나로 인정받은 건 1960년대 후반, 국내는 80년대 중반이 돼서야 겨우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 국내 유리공예 관련 각종 전시회의 출품 기회가 많아지고 있고, 관람객의 반응 역시 굉장히 호의적인 상황이다. 때문에 유리공예는 눈부신 빛깔만큼이나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MINI INTERVIEW
한국도자재단 세라믹스 창조공방, 이재경 유리예술감독


한 때 공예 작업을 하다가 탈수증상으로 쓰러진 적이 있을 정도로 유리예술에 대한 이재경 감독의 집념은 끈질기다. 20년간의 세월을 1,200℃의 파이프와 싸워 온 것처럼, 그의 인생 역시 달궈져 갓 나온 뜨거운 유리와 같았다.

럽젠Q: 럽젠Q 유리공예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대학에서 전공 분야를 도자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군대 제대 후에 우연히 ‘유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생겼고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죠. 과거에 유리 공장을 견학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받은 느낌과 이미지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정말 여전히 생생하거든요.

당시의 저에겐 ‘유리’ 자체가 너무나 특이한 소재였어요. 그전에는 유리에 대해 오로지 깨끗하고 맑은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미술 분야에서 소재로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제 머리를 ‘띵’ 하게 만들었어요. 그때, ‘아, 이거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죠. 막연히 작업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부분도 당연히 있었지만, 이렇게 ‘유리’가 가진 떨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럽젠Q: 유리공예가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불을 다루면서 출렁거리는 뜨거운 유리를 변형시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유리’하면 약하고 깨지기 쉬운 이미지를 생각하지만, 이면에는 단단한 성질 역시 지니고 있거든요.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의 외관 유리만 봐도 튼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잖아요? 유리만이 가진 ‘양면성’은 목공이나 금속, 도자와는 다른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죠.

럽젠Q: 유리공예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요새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극대화된 이득을 얻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거죠. 자신이 어떠한 것에 2년을 투자해 공부하면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는지, 아니면 이 길이 맞긴 한 것인지. 공예가로서의 자질이나 소질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본인이 좋아서, 정말 놓지 않고 싶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금전이든 명예든 부가적인 것은 알아서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거든요.

저 역시 지금까지의 삶이 평탄했던 것만도 아니었고 어려운 적도 많아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오면서 깨달은 것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극복하기 쉽다’라는 거예요. 공예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항상 하는 말이기도 해요. 그리고 유리공예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럽젠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딱 하나예요. 작업 잘하는 거요. 겸임교수 시절에도 학생들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자주 있었어요. 그때마다 저는 막연한 꿈을 정하지 말라고 말해요. 꿈이 이뤄지면 그 순간 정체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꿈은 끝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저의 작업을 놓는 순간이 제 정체성이 끝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피카소 같은 거장이나 고(故) 백남준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제가 하고 있는 이 유리공예 작업을 힘닿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끈질기게 놓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 저의 목표이자 꿈이에요.

<이재경 & 이우철 유리공예가의 ‘블로잉’을 이용한 와인잔 만들기>


1. 파이프의 앞 부분을 예열하는 ‘파이프 워머’ 단계. 이재경 유리예술감독이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주로 사용하게 될 블로우 파이프를 준비하고 있다.

2. 전날부터 약 1,400℃의 온도에서 녹인 유리를 떠낸 후, 겹겹의 젖은 신문지로 다듬어 유리의 기본 형태를 잡는다. 이 신문지는 젖어 있기 때문에 잘 타지 않을뿐더러 재가 유리 표면에 달라붙지 않게 한다.
3. 가마에서 떠낼 때 유리의 적절한 온도는 1,210℃이고 가마 안의 유리는 매일 일과가 끝나면 다시 채워 놓는다. 유리를 떠낸 파이프는 다른 가마에서 가열시키고, 다시 빼내어 모양의 형태를 다듬는 두 가지 작업을 지속해서 반복한다.

4. 유리를 나선형 모양의 몰드에 맞춰 불어준다. 필요에 따라서는 유리 일부분을 자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는 특히 가마 안에서 유리를 달구거나 빼내서 모양을 다듬을 때 모두 계속 파이프를 360도 회전시켜줘야 한다. 이는 유리가 한 방향으로 쏠려 일부분만 모양이 변형되는 것을 막아 형태의 균형을 이루게 한다.

5. 파이프를 끊임없이 회전하며 유리를 다듬고 있는 이재경 유리공예가와 동시에 블로잉을 하고 있는 이우철 유리공예가의 모습. 때로는 작은 하나의 작품에 두 사람의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6. 와인잔의 몸통 부분과 받침 부분을 결합하면서 점점 완성된 형태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다.

7. 마지막으로 잔 아래 홈 부분을 최종적으로 다듬은 후 가마에 보관하게 된다. 상온에서 유리를 건조하면 깨지기 때문에 500℃ 이상의 가마에 두고 천천히 온도를 떨어뜨리며 보관해야 한다. 이렇게 최소한 하루 이상 보관해야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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