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 호통? 소통! 만사소년萬事少年

사진_이유진/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함께 지닌 판사, 소년범들의 아버지 천종호 판사를 만났다.

얼마 전,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SBS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가해자’를 재판하던 담당 판사의 이름이 검색어 1위에 올랐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면, 다음의 연관 검색어도 함께 나타난다. “안돼, 안 바꿔줘!” 소년범들의 죄에 있어서 단호한 판결을 내리던 모습이 일반 사람에게는 꽤나 통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 장면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것은 그가 재판장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그는 소년범들이 건강한 ‘소년’,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밤낮으로 고민한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함께 지닌 판사, 소년범들의 아버지 천종호 판사를 만났다.

판사를 꿈꾸다

“문과는 판검사, 이과는 의사.” 그의 대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왜 판사가 되고 싶으셨어요?” 에 대한 답이었다. ‘원수를 갚기 위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합격하는 과정에서도, 소년범 재판에 몰두하게 된 계기에서도, 우리가 기대한 ‘영웅’적인 면모나 비범함은 없었다.

“대학 들어가서 2학기 후반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했는데, 중간에 군대를 다녀왔어요. 군대 다녀와서는 고시공부를 다시 하는 게 맞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도 굉장히 어려웠고, 그때 대학 동기들은 취직하는 시점이었으니까요. 6개월을 그렇게 보냈어요. 특별히 할 것도 없고, 다시 공부하기도 아득하니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정비 기간이기도 했죠.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94년에 합격을 한 거죠. 1차를 6번, 2차를 2번 만에 통과했어요. 머리 총명한 사람들은 일찍 합격하니까 부럽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 후 몇 년 안에 합격하고 들어오면 제일 좋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이래저래 떨어지기도 많이 떨어지고. (웃음)”

판사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되었을지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의 선택에 극적인 반전, 결정적인 한방은 없었지만 대신 그는 한 번 정한 길을 묵묵히, 끝까지 걸어왔다. 그에게 꿈이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소년 재판

“2010년 2월 창원으로 갔어요. 보통 인사 패턴이 고등법원 마치면 지방법원 내려오고, 2년 후에 부장판사로 나가거든요. 대부분이 그런 패턴을 거쳐왔는데, 저는 느닷없이 2년 빨리 창원지방법원으로 가게 된 거죠. 굉장히 충격이었죠, 충격. 다른 사람들은 위로한다고 전화해서는 ‘좌천 아니냐?’ 약 올리고 그랬어요(웃음). 그래서 소년 사건을 맡게 된 거죠. 보통 1년하고 마치는데, 2년을 하기로 했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더라고요.”

이례적인 인사 패턴으로 시작하게 된 소년 재판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렸다. 천종호 판사는 도시 빈민가에서 자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가난에 허덕였다. 부모에게서 방치되어 꿈을 포기하고, 나쁜 길로 빠지게 된 친구도 많았다. 법정에서 마주하는 소년범들도 그랬다. 때문에 그에게는 한 명 한 명의 소년범이 친구처럼, 아들, 딸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비행세계로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소년 재판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릴 때의 가난한 경험, 4년 6개월간의 가사재판, 그리고 소년부 판사가 되기까지.

“소년 사건에 대해서 사법부 역사가 60년 넘어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제도 자체가 후진적이에요. 대부분의 판사님이 1년 거쳐 지나가고, 지나가고 하니까. 그래서 고쳐보자는 생각에서 3년 해왔고, 이젠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사실 부장판사로서 소년 재판을 맡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저는 작년과 올해, 혼자서 또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

“안돼, 안 바꿔줘!”


그는 소년범 판결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 그리고 학교와 가정을 이탈하여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환경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이다.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도 엄벌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은 정상적인 가정이 있고, 처벌 이후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이다. 이런 경우에, 그는 가해 학생들을 엄하게 처벌하고, 부모에게도 언성을 높여 혼을 낸다. 하지만 환경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비행을 저지르게 된 아이들의 경우는 판결이 조금 더 복잡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성 매매를 하는 것을 보고 자랐는데, 나중에는 버려져 복지원에서 고아처럼 지낸 아이가 있거든요. 그런 아이가 이후에 성폭행범이 됐다는 말입니다. 물론 성폭행은 중하게 처벌합니다만, 그런 상황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일반 절도 사건으로 붙잡혀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릴 때부터 배려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부모의 보호 없이 돌아다니다 절도를 저지른다, 그런 애들까지도 엄하게 처벌한다는 것은 조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엄벌한다고 해도 평생을 교도소에 격리해두는 것이 불가능하잖아요. 경제적인 문제로 학교도 못 다니고 바깥을 전전하던 아이들이 절도했다고 해서 엄벌만을 하면 다시 대부분이 성인범이 되는 겁니다. 어린 소년이니까 무작정 봐주자, 무작정 엄벌 하자가 아닙니다. 전체적인 윤곽 속에서 개별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기회를 주며 접근해야 합니다.”

그는 하루 여섯 시간 동안 백여 명의 아이들을 재판한다. 하나의 재판에 4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 아이의 인생에 있어서 단순한 처벌 이상의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호통치기 시작했다. SNS 상에서 그의 재판 장면이 인기를 끈 것도 바로 이 이유이다. 그의 마음이 담긴 호통에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소년범들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을 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재판을 보고 “통쾌하다”, “속이 시원하다”의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나쁜 짓’을 한 아이들이 그만큼의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종호 판사가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판사님, 감사합니다>

작년 7월 17살 소녀 경진이(가명)가 천종호 판사 앞에 섰다. 친구들과 차량 털이를 하고 다니다 붙잡힌 것이다. 임신 17주 상태이기도 했다. 경진이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르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고, 낙태하겠다”고. 후에 조사해보니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함께 차량 털이를 한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해 임신하게 된 것이었다.

경진이 뿐 아니라 몇몇 아이들은 임신한 상태로 법정에 선다. 현재는 소년원에서 임신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중해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고,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그는 한 달 동안 밤낮으로 고민했다. 소년원에 가야 할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 또 돌려보낸다고 하면 불법 낙태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미혼모로 만드는 일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천종호 판사는 경진이를 소년원에 보냈다. 이후 경진이는 산달이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법관의 양심을 택한 결정이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끊이지 않았다.

“배냇저고리도 사다 주고, 미역국 끓여 먹으라고 돈도 좀 쥐여주고, 그 전에 아이와 아버지를 불러서 고기도 좀 사주고 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기 낳고 통화를 했는데, ‘아직도 판사님 원망하느냐?’ 했더니 ‘아니오,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더라고요.”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부모의 이혼, 사망, 아동학대, 미혼모 아동 등의 이유로 발생되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양육 환경이 건전한 가정에 일정 기간 위탁 보호하는’ 위탁가정 제도가 한국에는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있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전국의 총 정원이 1,000명이 안 된다.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면 아이들은 비행세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다. 제도의 허점을 조금이나마 메우기 위해 천종호 판사가 발로 뛰며 만든 것이 바로 ‘대안 가정’이다.

그는 지금까지 경남, 부산 지역 일곱 군데에 대안 가정을 설치했다. 소년 재판의 일화를 다룬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천종호 저, 우리학교)의 수익도 모두 청소년 회복센터에 기부할 예정이다. 대안 가정의 효과는 크다. 결손가정 아이들의 재비행률은 60%에 육박한다. 하지만 대안 가정의 보호를 받은 소년범들은 대부분이 결손가정의 아이들인데도 재비행률이 18%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차다고 말한다.

“일반 형사 재판 절차에서 어른들을 재판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사후관리는 하지 않습니다. 법무부에서 형을 복역시키든지, 집행유예 판결을 통해 관리하든지, 판사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소년 재판 같은 경우는 판사님들이 사후에 관리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죠. 아이들과 소통도 하고 애정도 주고 하면 편지도 가끔 오고 전화도 하고. 가능한 만큼 아이들과의 끈을 계속 잡아주어야 합니다.“

판결 이후 소년범들의 보복이 두렵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아이들이 판결에 앙심을 품고, 보복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태 그런 일이 없었을뿐더러, 소년범의 대부분이 조그마한 관심과 애정을 기다리는 아이들이라는 믿음에서다.
소년범들의 죄에 대해 화를 내며,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기는 쉽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이 또 다른 죄를 짓지 않도록 붙잡아 주어,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분명 소년범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20대에게>

마지막으로 20대에게 한 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젊은 세대가 맑고 활기차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지 못해 미안하다고.

“기준이 다 공부란 서열 속에서, 학교 탁 정해놓고, 직업도 서열화되어 눈에 보이고.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절망하잖아요. 그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모든 상황상황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조건을 만들어두셔야 합니다. 재산이나 명예, 권력이 없더라도, 내가 원하는 직위에 못 서게 되더라도 묵묵히 살아가면서, 마음에 기쁨을 남겨둘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악기를 한다든가, 취미 생활을 만들고,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둔다든가, 위로를 받고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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