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 1루를 향한 전력질주


포토그래퍼_이도영(Studio D)
사진_이유진/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야구인 양준혁,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해 그보다 훨씬 훌륭한 ‘성실함’과 ‘꾸준함’이 드러나지 못한 비운(?)의 스타이다.

“저는 항상 저 자신이 스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에게 묻고 해답을 구해요. 무엇이든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로서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뻔히 보이는 아웃카운트 상황에서도 항상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으며, 그 꾸준함은 수많은 야구인에게 귀감이 되었다. 이러한 모습 뒤에는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묻고 답한 고민과 결단이 있었다. 그렇게 치열한 프로야구 세계에서 18년의 세월 동안 최고로 올라섰다. 그리고 지금은 있던 자리에서 내려와 세상 속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조그만 사랑과 커다란 꿈을 나누어주고 있다.

양준혁과 야구, 그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양신梁神, 프로야구선수로 보냈던 1993년부터 2010년까지 그의 모습을 회상해본다면 야구장에서만큼은 최고 그 이상이었다. 마치 야구를 하고자 천상에서 내려온 신神처럼. 하지만 그에게는 야구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감동적인 스토리도 없었다. 그에게 야구는 곧 가족이자 삶이었다. 그렇게 그는 스스럼없이 야구와 만나게 되었다.

“야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어요. 저희 집안이 야구 집안이었어요. 사촌 형도 야구를 하셨고 삼촌도 야구를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야구에 입문하게 되었죠. 어렸을 때부터 사촌 형 경기를 구경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삼촌은 1960년대 투수로 활약했던 한정철 선수이고, 사촌 형은 삼성 라이온즈 양일환 투수코치예요.”

1993년, 데뷔하자마자 최우수 신인상과 타격왕, 골든글러브 8회 수상,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타자로서 가장 많은 신기록을 일구어냈다. 2002년에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로 첫 우승도 이루었다. 2010년, 그의 은퇴가 발표되었을 때 팬들은 구장 앞에서 텐트를 치면서 은퇴 반대 시위(?)를 벌였으며, 은퇴를 만류하는 수많은 팬의 환호 속에서 어떠한 선수보다 아쉬움을 남기며 경기장을 떠났다. 그는 야구를 통해 이룰 수 있는 모든 것,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한 축복받은 선수였다. 또한 은퇴 이후 지금도 여전히 해설위원, 양준혁 야구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야구를 제외하고 그의 삶을 수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 인생에 있어 야구가 가지는 의미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했으니 동반자라고 봐야죠. 처음에 야구를 시작하고 프로선수로 뛸 때까지는 야구가 삶의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인 같은 존재죠.”


야구인생 35년, 애인 같은 야구를 그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다. 배트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그가 야구를 아직도 모른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까?(모르는 것을 보니 애인이 맞는 듯싶다.) 그의 말처럼 평생을 해도 알 수 없는,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그런 점이 바로 야구의 매력이 아닐까?

“야구는 상황에 따른 경우의 수가 굉장히 많아요. 수만 가지 상황이 있다 보니, 제가 야구를 30년 넘게 했지만 아직까지도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지요. 어렵거나 때로는 헷갈리는 상황도 있죠. 오래 야구를 했지만 지금도 야구에 대해서는 반 정도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그게 아무래도 야구의 매력이겠죠.”

다사다난했던 18년 야구인생, 그리고 남겨진 기록들

물론 그에게도 야구가 항상 매력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뛰어난 야구선수인 그에게도 패배와 부상, 슬럼프는 항상 주변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부상은 선수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다. 이때 그는 은퇴가 아닌 재기를 선택했고, 부상에서 도태되는 법이 아닌 부상을 이겨내는 법을 끊임없이 좇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만세타법’이다.

“선수 시절에 슬럼프도 많이 겪었고 부상도 오고 그랬어요. 특히 2002년에는 양쪽 어깨에 물이 차서 다 끊어졌어요. 선수생활을 그만둘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죠. 은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어요. 스윙할 때 팔이 완전히 뒤로 넘어가지가 않았죠. 팔이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타법에 대해 계속 고민, 연구, 연습을 거듭했는데, 그때 ‘만세타법’을 개발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10년이 되었죠. 어찌 보면 부상 때문에 만세타법을 개발할 수 있었고, 그해 팀이 우승하는 쾌거까지 이룰 수 있었어요. 이렇게 위기가 닥쳐오면 항상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었죠.”


운동선수에게 있어 부상만큼 두려운 것은 바로 슬럼프이다. 2002년, 부상으로 인해 그의 타율은 2할대로 떨어졌지만 이듬해 바로 3할대의 타율을 기록했다. 2005년에 찾아온 두 번째 슬럼프 역시 깨끗하게 이겨내고 이듬해는 출루율 1위를 기록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슬럼프에 누구보다 강한 선수이다. 비결은 단 하나이다. “추락하는 자, 그 바닥을 쳐라!”이다.

“슬럼프가 오면 저는 오히려 페이스를 더 떨어뜨려서 완전히 바닥을 칩니다. 그렇게 바닥을 치면 결국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안될 때는 죽어도 안될 때가 있어요. 그때는 조금 피하는 게 좋죠. 그 시기만 지나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슬럼프에 빠졌다 싶으면 오히려 마음을 편안히 먹어요. 어차피 해도 안 되니까요. 그때는 다른 방법으로 팀에 공헌해야죠. 벤치에서 파이팅 외치고 주전자 물도 나르고 배팅볼 던져주고 그랬어요.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어요. 물에 빠졌는데 살기 위해 허우적거리면 더 빠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잠수해서 밑으로 들어가면 땅을 치고 다시 위로 올라올 수 있지요.”

부상도, 슬럼프도 이겨낸 그도 은퇴는 피할 수 없었다. 2010년 9월 19일에 열린 SK 와이번스와 은퇴경기 예약좌석 7,000석은 25분 만에 매진되었으며, 전날부터 경기장 앞에는 텐트를 치며 기다린 팬들도 많았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듯이 그는 송은범 선수와 마지막 대결에서 내야 땅볼로 아웃될 상황에도 1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마지막까지도 정말 ‘양준혁’다운 모습이었다. 쏟아지는 비와 그의 눈물로 가득했던 은퇴식 경기. 야구팬이라면 누구도 잊을 수 없는 단연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게 끝인가 싶기도 했죠. 굉장히 암담했고 여러 가지가 생각났어요. 야구만 하며 살았는데 야구를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30년 동안 야구생활이 끝난다는 생각에 눈물도 많이 났어요. 다른 팀에서 이적 제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고향 팀에서 그만두는 게 맞겠다고 싶어서 은퇴했죠. 연어가 알을 낳고 죽을 때가 되면 자기 고향 찾아서 가는 것처럼. 다른 팀에 가면 선수생활을 더 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팬들이 기억해주는 곳에서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1993년 데뷔부터 2010년 은퇴까지 그는 한국프로야구 타자 부문의 거의 모든 기록을 자신의 이름으로 장식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록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통산 최다 홈런(351개), 안타(2,318개), 득점(1,299점), 타점(1,389점), 볼넷(1,278개). ‘남들보다 뛰어난’이 아닌 ‘남들보다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기록은 최고가 될 수 있었고,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최고의 선수로 남을 수 있었다.

“열정? 야구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야구를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야구를 18년 동안 하겠다고 목표를 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루 한순간 다른 선수보다 잘하고 싶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그것이 쌓이다 보니까 18년이 된 것이죠. 목표를 세워서 어떻게 해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루, 한순간, 한 타석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기록의 사나이보다 ‘1루까지 전력질주’한 선수로 남고 싶다

그의 트위터에 적혀있는 문구이다. 그가 얼마나 성실함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세운 통산 최다 홈런 기록 역시 그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시즌 최다 홈런왕에 등극한 적이 없다. 그의 앞에는 항상 장종훈, 이승엽 등 홈런으로 이름을 날리던 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18시즌 동안 꾸준함을 통해 한 시즌이 아닌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다 홈런왕에 등극할 수 있었다.

“항상 1루까지 열심히 뛰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홈런 1위, 안타 1위 같은 숫자로 나타나는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는 야구선수 시절 그렇게 살아왔어요. 팬들의 기억에는 항상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과거에도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예요.”

그는 야구에서 만큼은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1루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 데뷔부터 은퇴하는 마지막 타석에서까지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한 것이다. 뻔한 아웃카운트 상황에서도 전력 질주하는 그의 모습이 남들 눈에는 무모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1루를 향한 집념이 수비수를 긴장시켰으며, 결국 이것이 실책으로 이어지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1루에 안착할 수 있었다. 1루를 향한 전력질주는 그의 브랜드이자 성공비결,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모습일 것이다.

“야구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무언가 하나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계속 붙잡고 파고들면서 될 때까지 실패도, 좌절도 겪어 봐야 해요. 결국 야구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끈질기게 노력한다면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거든요.”


그는 ‘포기’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1루를 차지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던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포기가 빠르다. 1루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뒤돌아서는 것이 다반사이다. 복잡한 규칙 속에서 1루부터 홈까지 차례차례 밟아야 1점을 얻을 수 있는 야구,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작은 목표를 하나씩 밟아 나가야 커다란 꿈을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인생. 이처럼 야구와 인생은 자세히 살펴보면 꽤 닮아있다. 그의 말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야구든 인생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야구든 뭐든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안 되는 것은 없어요. 한 번 성공하기 위해서 수십 번 수백 번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당연해요. 실패하더라도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분석하고 또다시 실패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거지요. 물론 과정은 누구나 고통스럽죠. 하지만 목표가 있다면 끝까지 파고들어야 해요. ‘만세타법’도 그냥 생각한 것이 아니잖아요. 실패의 원인을 통해 고민하고 노력했을 때 자신의 색깔, 자산이 되는 것이죠.”

야구 인생 제2막, 양준혁 야구재단과 멘토리 야구단


은퇴 이후 그의 첫 번째 일정은 ‘양준혁 전국 청소년 야구 대회 개최’였다. 은퇴경기 입장 수익금 3천만원 전액이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는 청소년에게 사용됐다. 그는 이미 예정된 미국 코치연수를 돌연 취소하고 2011년 청소년 야구 지원을 위한 ‘양준혁 야구재단’과 국내 최초 다문화 가정 유소년으로 구성된 ‘멘토리 야구단’을 출범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양준혁 야구 인생 제2막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제가 많은 팬의 사랑을 받은 선수였기 때문에 다시 돌려드리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야구를 하면서 누구에게도 전혀 도움받지 못했거든요.”

“또 다른 이유는 야구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우리나라는 너무 학교에서 공부만 가르치잖아요. 매일 학교, 집에서 나오지 않고 공부만 하는 아이는 건전하게 자랄 수 없어요. 그러나 야구를 통해서는 희생정신, 봉사, 팀워크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지요. 그래서 ‘멘토리 야구단’은 훌륭한 선수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박찬호, 이승엽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훌륭한 인물을 키우고 싶어요.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아이들보다는 이곳에서 야구를 하면서 남을 배려하고 인성을 배우는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가서도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지난달, 3번째 ‘멘토리 야구단’이 창단되었다. 하나의 야구재단과 3개의 야구팀, 그리고 올 시즌 8개의 야구팀 창단 계획까지. 성공한 야구 선수이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인력이나 재원 면에서 벅차기만 하다. 이런 어려움 속에도 소중한 깨달음과 기쁨으로 아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다.

“저도 아이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죠. 사실 야구재단을 처음 시작할 때는 재정적인 문제부터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보니까 오히려 내가 얻는 게 더 많더라고요. 역시 나누면 기쁨이 두 배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 일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고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건전한 문화를 형성하고 더 나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스포츠가 발전해야 해요. 스포츠를 통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있지만, 스포츠로 인성교육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뛰어놀 곳조차 없어요. 특히 청소년에게 계속 공부만 강요한다면 아이의 생각이 자꾸 음지화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폭력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거예요. 젊고 피 끓는 친구들을 뛰어놀 수 있게 해야죠. 운동장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야 잘못된 길로 이탈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 수많은 사람이 이제는 ‘보는’ 스포츠에만 열광한다. ‘하는’ 스포츠는 생활이 아닌 생계가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는 체육 과목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며 운동장의 규모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그의 야구재단과 ‘멘토리 야구단’ 역시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이 부족하다.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현재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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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e

    기사 한편에서 정말 배워가는게 많은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슬럼프가 왔을때 벗어나려고 버둥거렸었는데,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는것도 좋은방법같아요!!
    저도 제 목표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실패에서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 잘하는거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실함으로 살아가고있습니다
  • 이유진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이 너무 와닿아요.
    저도 양준혁 해설위원님처럼 독립적이고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과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들을 보고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고 위하시는 분 같다고 많이 느꼈어요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야구인들을 위한 관심과 후원이 많아져서 우리나라 야구가 더욱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 고은혜

    추락할 땐 차라리 바닥을 친다. 고개가 끄덕여져요. 안 되는 시기가 있어요. 전 그랬거든요. 뭘 해도 어차피 올라가지 못 할 거라면 차라리 힘을 쭉 빼고 중력에 몸을 맡기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뭐 살다 보면 떨어질 때도 있고 그러다가 올라가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구요. 얼마 살진 않았지만 스물 삼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겪었던 일들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저한테는. 양신을 만나시다니!
  • 카토이치

    은퇴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뵙었는되 맴버가 바뀌고 나서 안보여서 해설하시나 했었는되 여러가지 일을 하고 계셨네요 1루까지 전력으로 뛰시던 모습이 참 인상 깊었었죠 저도 거기에서 참 용기를 많이 받았고요 열심히 뛰려고 노력을 하였고요 기사보니 더욱 더 기분이 좋아지네요 ^^
  •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시작된 야구에서 그자리에 최고가 되기 까지 양준혁 선수의 야구 인생을 볼 수 있었네요
    슬럼프를 두려워하지 않고 , 꾸준한 노력과 끈기로 최고가 되신 양준혁씨에게 인생을 배우네요~~
  • 야구 은퇴 이후, 예능에서 무한한 활역을 보여준 양준혁 선수! 그런데 만세타법 뒤에는 엄청산 노력과 성실함이 숨어 있었네요. '실패하더라도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분석하고 또다시 실패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거지요.' 라는 말을 통해서 저도 하루 하루 포기하지 말고 큰 결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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