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엽│ 깔깔이로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나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방한용 상의 내피, 일명 깔깔이. 공효진이 입으면 이 깔깔이도 F/W 패션이 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거리에서 깔깔이 패션을 찾기는 어렵다. 집에서 입거나 혹은 옷장 어딘가에 놔두거나, 어쨌든 집에서 잘 쉬고 있는 ‘휴면 깔깔이’의 재탄생을 돕기 위해 ‘깔깔이 모으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권오엽 씨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보자.

사진_ 정민하/제19기 학생기자(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깔깔이의 재탄생


권 씨는 현재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6명과 함께 전국에서 깔깔이를 모아 인도 북부로 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생 신분으로 가치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모인 이들은 그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묵묵히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그가 추운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깔깔이를 모으기로 결심한 때는 지난해 초. 같은 학교 친구인 장동현 씨(부산대학교 디자인학과 08학번), 박혜영 씨(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10학번)와 함께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서이다. 그곳의 열악한 교육 여건과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을 목격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남는 자원으로 가방이나 필통을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현지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선물할 때는 그 모양이 똑같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안 그러면 차별이라 생각한다고. 그래서 똑같은 모양의 잉여 자원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깔깔이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때 마침 집에서 깔깔이를 입고 있기도 했고. (웃음) 생긴 것도 똑같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깔깔이가 물건을 대량으로 준비하기엔 제격이었죠.”

하지만 프로젝트의 시작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가방과 필통을 디자인해 줄 의류학과 학생들도 만나고, 공방에서 물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인력도 구하고, 깔깔이를 이용해 물건을 만들어도 된다는 국방부의 허락도 받았지만 물건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문제였다. 깔깔이가 두께는 얇지만 옷 겹이 많은 옷인지라 하나의 원단을 분해하고 만드는데 약 1시간 40분이 걸렸다. 그 속도로는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었다.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기 직전, 공방에서 우연히 선교사 한 분을 만났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뻔 했어요. 정말 절망적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인도 북부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 한 분을 만났죠. 그분이 깔깔이로 뭘 만들려 하지 말고 깔깔이 자체를 인도에 보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처음엔 인도는 더운 나라인데 깔깔이가 필요할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이 가시는 인도 북부 지방은 일교차가 심해 추위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지역이었어요.”

그리하여 그를 포함한 7명의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깔깔이 모으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변 지인들에게는 물론 ‘깔깔이 모으기’ 페이스북을 개설해 홍보에 힘썼다. 장동현 씨는 깔깔이 홍보 동영상도 직접 만들어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나 처음 예상과 달리 깔깔이는 쉽게 모이지 않았다.

“다들 집에서 은근히 많이 입더라고요. 깔깔이에 군생활의 모든 추억이 담겨있어서 도저히 못 주겠다는 사람도 꽤 있고. 저도 사실 그래서 선뜻 내주기가 그랬어요. 차라리 다른 옷을 준다며. (웃음) 그렇지만 깔깔이 기부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잖아요. 과거 추억을 이젠 놓아줘야 할 때 아닐까요? 아, 깔깔이를 기증했다가 전쟁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진지하게 비판한 분도 계셨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깔깔이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죠.”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0월~11월 두 달여간 전국에서 총 21개의 깔깔이를 기증받았다. 이렇게 모인 깔깔이는 12월 초 활동을 떠나는 선교사를 통해 인도 북부로 전달되었다. 대한민국 군인들의 옷, 깔깔이가 처음으로 인도 땅을 밟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주로 인도 북부 지방의 빈민촌에 사는 분들에게 전달되었고, 거의 농사를 짓고 사는 분들이라 깔깔이를 매우 반겼다는 후문이다. 현재 열심히 모이고 있는 깔깔이는 올 연말 다시 인도 북부로 보내질 예정이다.

좋은 생각에서 따뜻한 실천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작은 생각에서 시작해 실제로 바다 건너 좋은 곳에 쓰이고 있다. 이제 깔깔이가 많이 모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홍보가 관건이었다. ‘깔깔이 모으기’ 프로젝트의 주된 홍보 채널은 ‘페이스북’이다.

“저희가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돈 많이 안 들이고 효율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렇게 선택한 채널이 페이스북입니다. 그만큼 파급력도 크고요. ‘시사인’ 기사가 나간 후로는 갑자기 우리 캠페인이 유명해져서 페이스북으로 많은 사람의 응원 메시지가 왔어요. 정말 뿌듯하고 기분 좋았어요. 많은 힘이 됐고요.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도 꼭 깔깔이를 기증하지 않으시더라도 저희 페이스북에 오셔서 이 캠페인을 많이 퍼뜨려주시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에서 깔깔이를 이용한 삼행시를 지으면 추첨을 통해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음료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페이스북 이벤트에 드는 돈은 100% 권 씨의 사비라고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대학생들 스스로 하는 캠페인이다. 그에게 다음 계획을 물었다.

“언제까지 이 활동을 하겠다는 기약은 없어요. 저희가 다 지금 4학년 재학 중이라 다른 활동을 구상하기도 사실상 어렵고요. 다만 올겨울엔 꼭 최대한 많이 깔깔이를 모아서 책임지고 인도에 보내고 싶습니다. 목표는 100개지만 현실적으로 100개는 힘들 것 같고 최대한 많이 모으려고 해요. 페이스북을 통해 깔깔이를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분들은 꽤 있지만 실제로 참여율은 저조해요. 지금 인도도 더워지고 있기 때문에 연중 수시로 열심히 모으고 있다가 올겨울이 다가오면 보낼 예정이에요. 꼭 목표대로 깔깔이를 100개 가까이 모아 인도 현지에 나눔을 실천하고 싶어요!”

자세한 주소는 ‘깔깔이 모으기’ 페이스북 참고 (https://www.facebook.com/77z77z2)
깔깔이로 추운 이웃을 감싸 안은 ‘선한’ 청춘들

현재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고 경영자가 되는 게 꿈이지만, 경영자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도전적이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할거라는 권오엽 씨. 역시 전공을 살려 디자인 쪽으로 나가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더 나아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장동현 씨. 소박한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박혜영 씨. 깔깔이를 갖고 있는 예비역들에게 ‘깔깔이 모으기’를 어필을 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기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기부하시지 않더라도 이 글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요즘 대학생들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으실 텐데 그런 생각보다는 뭐든 꼭 실천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제 생활신조가 ‘Idea is nothing, Doing is everything’이거든요. 저 역시도 매 순간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 어렵고 해볼까 말까 고민도 많이 해요. 그렇지만 고민을 해도 답이 안 나올 때는 과감히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이 프로젝트를 할까 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너무 재미있고 하면서 느낀 점도 많고 그래요. 생각만 하지 말고 도전할 수 있는 20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미 그는 자신의 삶의 방향대로 ‘생각’이 아닌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화려한 명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실천하면서 남을 돕는 이들이야말로 세상에 꼭 필요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도전하고 실천하려는 그들의 젊음이 아름답다. 깔깔이가 추운 곳을 덮어주듯, 이들의 도전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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