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어야 재미가 두 배, 게임 음악 작곡가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아니, 어쩌면 기억하진 못해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즐겨하던 비디오 게임 ‘슈퍼 마리오’를 할 때면 흘러나오던 그 음악을. 따라하기 쉬운 멜로디에 통통 튀는 박자가 게임의 흥을 한껏 더해주지 않았던가. 이제는 추억이 된 게임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피아노, 기타 등 각종 악기로 음악을 편곡해 즐기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음악이 만인의 음악이 된 것이다.

흰 테이블 위에 하얀색의 아이팟 클래식이 올려져 있고, 이 MP3 플레이어에 꽂혀 있는 검은색 선을 따라가면 테이블 왼쪽에 귀에 거는 형태의 이어폰이 놓여 있다. 검은 선 가운데는 빨간색 토끼 모양의 이어폰 선감개에 이어폰 선이 감겨 있다.

비단 고전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번 하면 헤어 나오지 못해 ‘문명 하셨습니다’라는 유행어까지 만든 CD게임 ‘문명4’의 OST ‘Baba yetu’나, ‘고퀄리티’ 게임 음악으로 유명한 테일즈 위버의 ‘Reminiscence’, ‘Second run’ 등은 많은 이들의 MP3 플레이어에 자리를 잡은 명곡들이다. 게임 흥행의 새로운 주역이 된 게임 음악. 그리고 그 게임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바로 게임 음악 작곡가다.

음악, 게임을 지휘하다

요즘 게임 음악은 화려한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곡이나 유명 가수가 부른 보컬 곡 등으로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자칫 뉴에이지나 가요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인 차이는 음악을 듣는 사람에 있다. 게임 음악은 일반 음악과 달리 음악만 듣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게임을 할 때 듣게 되는 음악이고,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영화나 드라마의 OST와 게임 음악 표지를 나열한 사진. 가장 왼쪽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 표지로, 남자 주인공 현빈이 어느 카페 테이블에 앉아 두 손을 턱에 갖다댄 모습이다. 가운데 사진은 영화 '광해'의 OST 표지로, 광해 역의 이병헌과 한효주, 류승룡이 앉거나 서 있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게임 '테일즈위버' OST 표지로, 애니메이션 게임 장르의 특성상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 컷 안에 담겨 있다.

이런 특징은 게임 음악만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가요, 영화 음악, 드라마 OST 등은 장르마다 특색이 명확하다. 영화 음악이 웅장한 스케일이라면 드라마 OST는 보다 대중적인 느낌이다. 때문에 영화 음악을 드라마에 쓰거나, 드라마 OST를 영화에 쓰게 되면 어딘지 어색하고 이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게임 음악은 다르다. 게임은 그 안의 장르와 타깃, 콘셉트에 따라 모든 스타일의 음악이 필요하다. 작곡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음악이 다양하고, 정해진 틀이 없이 자유로운 셈이다. 때문에 게임이 제시하는 대로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대단히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임을 벗어난 게임 음악

게임 음악의 작곡 과정은 일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 멜로디를 작곡해 게임 제작사의 픽스(fix)를 받으면, 그 멜로디를 편곡(arrange)하여 조금 더 발전시킨다. 그 음악을 믹스(mix)하는 과정을 거쳐 녹음하면 우리가 듣는 게임 음악 한 곡이 완성된다.

곡 하나 당 걸리는 시간은 용도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게임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BGM(Back-Ground-Music)의 경우, 게임의 업데이트 시스템인 ‘패치’에 따라 새로운 곡이 필요하다. 신규 패치가 갑자기 잡히는 경우에는 제작 기간이 일 주일 정도로 아주 짧게 주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OST(Original-Sound-Track)는 그 중요도가 일반 BGM보다 높다. 에피소드에 따라 주제와 분위기를 잡아야 하고, 음악과 함께할 게임 영상과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OST는 서너 곡을 만드는 데에만 6개월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게임을 주도하는 음악인 만큼, 게임 콘셉트와 스토리에 따른 곡들 간의 연결성이 중시 된다.

카트라이더와 테일즈위버의 캐릭터 모습들. 왼쪽 사진은 카트라이더 캐릭터의 모습으로, 귀엽고 동글동글한 캐릭터들이 원형으로 둘러서 있다. 오른쪽 사진은 테일즈위버 캐릭터 사진으로, 순정만화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것 같은 캐릭터들이 나란히 서 있다.
게임은 그 장르가 다양한 만큼 음악도 다양하다. 넥슨의 ‘카트라이더’와 ‘테일즈위버’를 비교해보자. 캐주얼 게임 장르인 ‘카트라이더’에서 음악은 게임을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음악이 없어도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음악이 있으면 더 흥겹고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반면 ‘테일즈위버’는 RPG(Role Playing Game)로 비주얼 노블(Visual Novel, 소설을 읽는 느낌을 게임으로 재현한 장르)이다. 게임 플레이 상의 즐거움을 주는 음악보다는, 게임의 스토리, 세계관, 작품성 등을 고려해 유저(user)들의 몰입을 돕는 음악이 필요하다. 때문에 ‘카트라이더’의 음악은 게임과 같이 들을 때는 의미가 있지만 음악 만을 MP3에 넣어 다른 음악과 함께 즐기기는 어렵다. 반면 ‘테일즈위버’의 음악은 게임과 별도로 음악 만을 즐기기에도 무리가 없다.

게임 음악, 특수한 만큼 필요한 특별함

게임 음악 작곡가는 기본적으로 게임 회사에 속해 있다. 회사마다 ‘사운드’ 관련 지원 분야가 있고, 주로 그동안 작곡한 곡들의 포트폴리오로 심사가 이루어진다. 작곡 능력과는 별개로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게임에 대한 애정이다. 다양한 게임을 많이 해보고, 이해할수록 유리하다.

어느 연습실 안에 놓여 있는 피아노와, 그 위에 올려진 바이올린. 피아노 위에는 악보 하나가 펼쳐져 있다.

그에 더불어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예술가적인 감각이다. 가요 작곡가는 보다 상업적인 감각이 뛰어나야 트렌드에 맞는 인기 가요를 만들 수 있다. 반면 게임 음악은 게임 속에 녹아 들어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아울러야 한다. 때문에 보다 장기적인 안목과 능력이 필요하다. 또 게임에 따라 다양한 음악 장르를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음악 전공의 학생들이라면 크게 유리할 것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게임 음악은 각광을 받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곡이 나와도 “게임 음악 주제에 꽤 좋네?”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문화 산업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반응이 줄어들고 게임 음악 자체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 게임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작품으로 존경하고 인정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보다 게임 콘텐츠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게임 OST가 인기 차트의 1위에 오를 만큼 진짜 ‘음악’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간을 때우는 심심풀이 용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게임을 그 자체로 즐기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나 전문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게임 음악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MINI INTERVIEW – 테일즈위버를 들려주다, 넥스토릭 박지훈 작곡가

작년 여름 세 번째 에피소드와 함께 출시된 5곡의 OST로 주목 받은 게임이 있으니, 그 유명한 테일즈위버다. 피아노 선율이 돋보이는 메인 테마 곡 ‘Third run’을 비롯하여 유명 가수들이 참여한 ‘U+Me’, ‘Gravitation’, ‘Memories’ 등의 보컬 곡이 출시와 동시에 큰 사랑을 얻고 있다.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테일즈위버는 수많은 게임 속 명곡들로 게임 팬들 사이에서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하다. 게임 음악 최강자, 테일즈위버의 음악을 담당하는 넥스토릭의 박지훈 작곡가를 만났다.

럽젠Q.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셨고, 정교사 자격증까지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음악을 선택하신 건가요?

“어려서부터 음악, 그 중에서도 게임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어요. 초등학생 때 ‘파이널 판타지’라는 일본 게임을 하고 나서였죠. 음악을 하는 데에 대학이나 학과는 관계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나마 말하고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학을 선택했습니다.”

박지훈 작곡가가 어느 회의실 앞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어로 짐작되는 상대방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럽젠Q. 그렇다면 음악 공부는 어떻게 해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본 전공의 졸업 요건이 되는 최소 학점을 빨리 이수하고 나서 나머지 학점은 모두 음악 대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복수 전공이나 부전공 같은 치밀한 계획은 없었어요. 학위와는 아무 상관 없이 화성학, 전자 음악, 작곡 등 관심 있는 수업을 두루 두루 많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10년 정도 쳤던 경험이 기반이 되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럽젠 Q 게임 음악 작곡 중에서도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가요?

“저는 작곡 작업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 나가서 하는 보컬링과 믹스 작업까지도 직접 해요. 현장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작업하는 과정은 항상 힘들죠. 아직 게임 음악에 대한 이해가 낮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충돌이 잦아요. 기존 가요에선 무조건 보컬이 잘 들리게 잡는다면, 저희 작곡가들은 음악의 전개, 스트링 선율, 악기 소리 등 믹스를 중요시하거든요. 그런 차이점을 가진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충돌이 생기죠.”

럽젠 Q 그럼에도 게임 음악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2006년도에 테일즈위버 에피소드 2의 오프닝 곡인 ‘빛 속에서’를 제가 작곡했어요. 그 곡은 일본어 버전으로도 만들어 출시됐는데 일본의 게임 유저가 편지를 보내줬더라고요. 인터넷 번역기까지 이용해 어렵게 읽었어요. ‘오늘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을 봤는데 망해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때 정말 감동 받았죠.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이 서로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그때 처음 그 감동을 느끼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어떤 사람들의 어떤 부분을 감동시킬까’ 고민하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통해서 슬픈 감정이나 성숙한 느낌까지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유저들이 그렇게 느껴주시면 정말 감사해요. 그 교감이 바로 제 원동력인 것 같아요.”

럽젠 Q 작곡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으세요?

“제가 게임을 정말 좋아해요. 취미 정도도 넘어서, 회사에서도 저보다 게임 많이 하는 사람은 한 두 명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좋아해요.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하는 게 엄청난 자산인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일본 비디오 게임을 많이 했는데 그 때 들었던 음악이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죠. 그것을 자료로 삼아, 모티브로 삼아 작곡을 해요. 무에서, 모티브 없이 생기는 창작은 없기 때문에 이런 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박지훈 작곡가가 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어느 테이블 앞에 앉아 인터뷰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럽젠 Q 그동안 많은 곡을 작곡하셨는데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테일즈위버 팀에 들어와서 처음 만든 곡이 ‘화이트 판타지아(White Fantasia)’였어요.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만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요. 그런데 그 때는 처음이라 아무 부담 없이 곡을 만들었죠. 힘을 빼고 만든 곡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화이트 판타지아’가 에피소드 2의 음악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거든요.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에서 애착을 가지고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럽젠 Q 마지막으로, 게임 음악 작곡가를 희망하는 20대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목적으로 이 일이 하고 싶은지를 분명히 하세요. 음악 쪽 일을 하고 싶긴 한데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안정된 회사에 소속되고 싶어서 게임 음악을 원한다면, 원하는 음악 스타일에 연연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추구하는 게임 음악 스타일이 분명히 있다면 신념을 지켜가며 활동을 하게 됩니다. 둘 중 어떤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목적을 정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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