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원 l 꿈 너머 꿈, 그리고 꿈

사진 _ 황경신/16기 학생 기자(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07학번)

편집자 주 _ 온라인상에 이리도 긴 글을 맘 좋게 내보낸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으면 결코 끊을 수 없는 호흡을 보장합니다마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방해될 상황을 고려해 꼭 끝까지 읽어달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읽은 후 하늘을 보게 될 테니까요.

대한민국 3,130,965명의 사람들은 아침마다 설레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바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아침편지의 주인공 고도원 작가는 자신의 저서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처럼 아침마다 꿈을 통한 즐거운 스텝을 밟고 있다.

꿈이 저를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어요. 그래서 가끔 그런 얘기 해요. 그땐 먹을 것이 없으니까 꿈을 먹고 살았다고.

책 한 권으로 맺어진 인연


고도원 작가의 인생은 꿈과 책, 이 두 단어로 수식할 수 있다. 책을 통해 꿈을 꾸었고, 꿈을 원동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다독多讀 인생은 아버지의 회초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아버님은 시골교회 목사님이었는데, 매우 가난했어요. 궁핍한 가운데 아버님은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죠. 온 집안이 책으로 가득할 만큼 우리나라 목사님 가운데서 장서가로 유명하신 분이셨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님은 책을 읽게 하고 검사하셔서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셨어요. 그때 전 도시락도 없었던 가난한 아이였는데, 책까지 읽게 하고 혼내니까 고통스러웠어요. 반항의 시기였죠.


그에게는 인생의 책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 받았던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다. 중학생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책이었지만 이 책으로 그는 자신의 꿈과 더불어 소중한 만남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도 두 권의 책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역사의 한 연구>라는 책이 우연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의 책이었어요. 어느 날 그분이 기자들과 인생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때 이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른 기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요. 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기자생활을 하는 내내 수없이 읽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 미래가 보이고 기사가 써지거든요.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젊은 기자와 노련한 정치인의 재미있는 독서 토론이 벌어졌죠.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죠. 그분께서 ‘아, 젊은 기자 중 이 책을 섭렵한 사람이 있구나!’라고 감동하셨어요. 그 이후부터 저를 동지同志로 생각했죠. 이때의 인연으로 저에게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이처럼 젊은 시절에 인생의 책을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격동의 시대, 펜을 잡다

아버지의 책으로 그는 기자,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 아침편지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원래 그의 삶은 어머니로 인해 목회자를 예정하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쟁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는 비록 목회자가 되지 않았지만, 아침편지를 통해 세상 어느 목회자보다 아름다운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대학에서 <연세춘추(연세대학교 학보 신문사)> 기자를 하면서 긴급조치로 제적당했어요. 민주화 투쟁에 학생으로서 의분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길이 바뀌었죠. 재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접고 기자, 대통령 연설 비서관, 아침편지, 이렇게 목회자와는 다른 길이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정화하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어요.


글 하나로 인해 재적이 되었다니, 꿈까지 접어야 하는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저항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대한민국의 피 끓는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저항은 선택이 아닌 시대가 부여한 의무였다.

<연세춘추>에서 최초로 대학생 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십계명’이라는 기면 칼럼이 있었어요. 그 글이 늘 문제가 되었죠. 의분에 넘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겁 없이 헌법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그것이 늘 문제가 되어 긴급조치에 위배되는 사태를 맞은 거예요. 대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통해 사회 비판적, 미래지향적인 칼럼을 썼어요. 당시는 저항의 시대였어요. 젊은이에게 저항정신이 배어 있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었죠. 저항하면 찍어 누르던 시대, 찍어 누를수록 더욱 발버둥쳤죠.

긴급조치를 위배하면서 군대로 강제징집 되고 학적에서 제적 당하면서, 그는 대학을 졸업할 수 없었다. 졸업장 없이 대학에서 사회로 쫓겨나듯 나오게 된 고도원 작가. 이 때문에 장사부터 시작해 웨딩드레스 판매원의 일을 하면서 온갖 가난과 고통과 함께해야만 했다. 저항정신을 지닌 대학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연세춘추> 기자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한다.

<연세춘추> 기자로 몰입했던 순간이 지금 생각해도 행복했던 순간이에요. 4년 동안 학교 캠퍼스 안에서 잠자고, 밥 먹고, 신문을 만들면서 살았어요.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몰입했던 것인데, 그 시간이 지금도 제겐 굉장히 값진 경험이죠.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잡념을 갖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그걸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때 이것저것 생각하고 그랬으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만남, 세상을 향한 통로

세상은 홀로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만남의 순간을 가진다. 그러나 그 만남이 항상 유쾌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그의 인생 속에도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다만 그는 우리와 달리 불쾌와 유쾌를 떠나 그 모든 만남을 자신의 품으로 보듬어 안았다. 그래서 그의 아침편지가 그토록 따뜻했던 것이다.

모든 만남이 다 소중해요. 부모님, 대학에서 신문 함께 만들던 교수님과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은인들, 그리고 현재 저를 도와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한 선물이에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서로 사랑한다면 다 소중한 존재에요.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죠. 그때는 정말 독소와 같은 사람이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변화시킨 은인이 돼요.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에요. 원수와도 함께 살아야죠.


그가 본격적인 기자로 활동했던 <뿌리 깊은 나무>는 당시 혁신적인 기사로 큰 주목을 받았던 매거진이다. 그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쓴 기사의 제목은 ‘생리대 쓰레기’였다. 80년대라는 시대배경을 고려했을 때 기사의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의 파격적인 기사보다 중요한 것은 ‘반정부 학생’으로 낙인 찍힌 그를 기자로 발탁해준 <뿌리깊은 나무>와 파격적인 만남이었다.

당시 ‘Anti Government Student’라는 낙인이 찍히면 어디서도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취업이 불가능하죠. 이력서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밖에 못해요. 그래서 장사부터 시작했죠. 그러다가 졸업장도 없는 절 기자로 채용해준 분이 <뿌리깊은 나무> 사장님이었고 제 인생의 은인이세요. 그분이 저를 기자로 뽑아줘서 사회 밖으로 나올 수 있었죠.


그가 왜 이토록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은인과의 만남 덕분에 졸업장도 없던 그는 기자가 될 수 있었고 사회로 나설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언제 올지 모르는 이런 만남을 향해 늘 문을 열고 있어야 한다.

살면서 자신을 사회 밖으로 끌어주는 안내자를 만날 때가 있어요. 정말 선물처럼 주어져요.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죠.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도 열심히 장사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가진 글을 쓰는 재능, 글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알아보고 실현하게 해준 거죠. 무대 위로 끌어낸 그런 인연들이 참 감사하죠.

<뿌리깊은 나무>의 폐간은 가까스로 이룬 기자의 꿈이 다시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꿈꾸는 자에게 세상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절망을 이겨내고 기자로 재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 비판적인 기사들 때문에 광주항쟁이 끝나고 폐간이 되었어요. 그렇게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죠. 그때 <뿌리깊은 나무>를 열심히 보던 당시 <중앙일보> 최우석 경제부장이 제가 쓴 기사를 주목해서 보고 ‘아, 이런 좋은 글쟁이를 실험적으로 한 번 신문기자를 시켜보자.’ 했어요. 그래서 중앙일보 기자가 되었죠.


지독한 고통의 시간은 그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덕목을 선물하였다. 유치장에 갇혀있는 억울한 이의 고통을 공감하는 글을 쓰게 하였다. 덕분에 15년의 기자생활 동안 그에게는 ‘특종기자’라는 수식어가 함께 따라다녔다. 실패와 고통의 경험은 그를 특종기자로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손끝에서 나온 모든 글에는 따뜻한 공감을 더해졌다는 점이다.

때로는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더 좋은 글을 쓰게 해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자살 지경에 이르는 밑바닥의 경험이 좋은 글을 만들기도 하죠. 그때는 견뎌내기 힘들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겨내면 그 고통의 경험이 나중에는 선물처럼 되돌아와요. 기자에게는 좋은 취재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사람에게는 민심을 읽게 하는 밑천이 되죠. 고통을 알아야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눈물 흘린 경험이 있어야 눈물 흘리는 사람의 찢어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20대는 성공하는 시기가 아닌 성공을 준비하는 시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성공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갑작스레 닥쳐오는 고통에 너무도 쉽게 좌절한다. 그는 20대 시절 고통의 경험이 담긴 글을 통해 이 시대의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고통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순간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20대에는 고통의 경험도 필요한 시기에요. 가슴이 찢어져 봐야 되요.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겨내야 해요. 그런 경험에서 지금 젊은이들은 잘 무너지죠. ‘젊어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죠. 젊은 시절에 고생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는 많이 어려워요.

고통의 순간에 피어난 아침편지

그는 한 권의 책을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이 되었다. 기사가 아닌 연설문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역사적 사명감이 부여되었다. 5년의 연설 담당 비서관 시절 동안 그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연결하는 견고한 다리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그의 아침편지는 탄생하고 지속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놀라운 혜안을 가지신 분이에요. 좋은 정치 지도자는 미래의 혜안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너무 앞서 가면 국민이 따라가지 못해요. 대통령의 혜안도 읽어내야 하고 당시 사람들의 마음도 읽어내야 하죠.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연설문이에요. 고민이 많죠. 그래서 연설문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큰 훈련이었어요. 아침편지를 11년 동안 지속할 수 있게 했던 훈련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연설 담당 비서관은 그야말로 훈련의 시간이었다.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일하는 동안 그의 모든 촉수는 연설문을 향해 있었다. 단 하루도 연설문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런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은 5년 동안 그의 몸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다. 그러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든 다른 사람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했어요. 그래야 하루가 편했어요.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연설 비서관 5년 동안 딱 사흘 쉬었어요.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대통령 연설문을 썼기 때문에, 일과라고 할 것이 없었어요. 청와대에 틀어박혀서 연설문에 관한 키워드를 구상하고, 다음 연설문 어떻게 쓸 것인가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몰입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잠을 못 자고, 일어나려면 식은땀이 즐비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런데 또 출근해야 하고,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몸이 굳고 건강이 무너져버렸죠.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뛰어난 걸작은 고통의 순간에 탄생한다. 2001년, 건강이 무너져 내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아침편지는 탄생할 수 있었다. 약물로도 회복 불가능했던 그의 몸은 아침편지의 시작과 함께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침편지의 탄생은 굳어진 그의 몸을 살아나게 했으며 황폐해진 사람들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였다. 그래서 아침편지를 걸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1년에 아침편지를 시작했어요. 연설비서관 딱 중간 지점, 청와대에서 몸이 완전히 무너졌을 당시였어요. 그때 이메일 주소가 확산했던 초창기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서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 아침편지였어요. 연설문을 쓰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데, 아침편지는 개인적이고 말랑말랑하잖아요. 아침편지를 시작하면서 내가 살아나기 시작했죠.

아침편지는 고도원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80년대 생리대를 주제로 기사를 썼던 뛰어난 발상과 5년 동안 꾸준히 연설문을 작성했던 성실성, 그리고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이라는 유산을 통해 그의 손에서 아침편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언론사, 친구들, 청와대 직원들에게 썼어요.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메일을 통해 아침편지를 보낸다는 발상 자체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잖아요. 그리고 짤막한 좋은 글을, 축구로 치면 슛 장면만 모아놓은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석이 들어가죠. 같이 일했던 기자가 고도원 기자니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했고, 그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죠.

부족한 영양, 아침편지 한 끼로 해결하다

아침편지를 시작하고 1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3백만 명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그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아침편지는 죽기 직전의 사람을 살려냈으며,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수많은 독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내면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아침편지가 벌써 11년이 되었어요. 변화가 참 많았죠. 11년 사이에 제가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요.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5년 만에 집필을 마치고 “나의 정신세계가 완성되었다.”라고 선언을 했거든요. 제가 아침 편지 11년 정신세계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의 정신세계가 많이 자랐고, 열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미료와 같이 자극적인 글은 처음 섭취하는 순간 열광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금방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의 글은 평생 먹을 수 있는 진실이 담긴 밥, 마음의 비타민을 지향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영양가 있는 그의 글은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마음의 비타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비타민이라는 것이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핍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망가지게 되죠. 마음의 비타민은 감정 조절과 같은 정서적인 면과 연관이 돼요. 마음의 비타민이 사라지면 별거 아닌 일에 막 화를 내고, 흥분하고, 낙심하고, 비탄에 빠지게 되죠. 제가 쓰는 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우리 마음의 비타민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침편지는 오늘도 수많은 독자에게 마음의 양식이자 비타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침편지에 그토록 영양가가 넘치고 자극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침편지를 쓸 때는 나의 글재주에 의존했는데, 지금은 명상을 통해 내 안에서 영감이 솟구치지 않으면 글재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어요. 그래서 걷기 명상을 하면서 내면의 고독을 견뎌내고 많은 영감을 얻어요. 이제는 손끝에서 나오는 글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글을 쓰고 있어요.

20대,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그에게 20대를 위한 아침편지를 부탁했다. “고대 이래로 젊은이들에게 후한 평가를 내린 사람은 없다.” 그가 한 첫 마디였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따끔한 훈계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꿈을 지키라는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지금 형편이 어떻든 꿈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20대를 바라보면서 제일 관심이 가고, 물어보는 것이 꿈이에요. ‘꿈이 있는가’, ‘어떤 꿈을 가졌는가’, ‘그 꿈을 말하고 적어놓아라’, ‘자꾸 좋은 사람을 만나라’,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 이런 기본적인 메시지가 젊은 사람들에게 안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대를 위한 아침편지에는 응원의 메시지와 더불어 꿈을 이루는 위인들의 비결에 대해 살짝 귀띔해주었다.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으나 그가 이야기했기 때문에 왠지 더 신뢰가 간다. 그렇게 아침편지는 우리에게 꿈을 향한 삶의 좌표를 제시해주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의 전기나 저술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길목은 전혀 다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나 삶의 태도는 비슷해요.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우선 도전정신과 남이 가지 않은 길로 가는 용기가 필요해요. 때로는 도처에 장애물이 있어요. 그 앞에서 주저앉으면 꿈을 이루지 못해요. 그 장애물이 오히려 더 많은 길을 내주어요. 장애물을 이겨내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길을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또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용기를 갖게 돼요.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꿈을 이루게 되는 거예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꿈 너머 꿈’이었다. 개인적인 꿈을 이루었다면 공동체를 위한 꿈 너머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겨울 추위 속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와 같이 꿈 너머 꿈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바통을 받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차례다.

꿈은 개인적인 목표에 국한되죠. 그러나 꿈 너머 꿈은 이타적이에요. 위대한 것이죠. 자신의 존재로 인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동체적인 꿈을 말하죠. 링컨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있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지는 것이다.” 이 말처럼 세상을 밝히는 꿈 너머 꿈을 갖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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