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우 | 혹독한 즐거움의 미학

사진_석창우 제공
사진_이유진/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1984년 11월, 고압 전류에 감전된 29세의 한 남자가 1주일만에 병원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두 팔과 두 발가락은 사라졌고, 1년 반 동안의 투병생활 후 그에게 남겨진 것은 두 어깨에 어색하게 달린 두 의수뿐이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았던 이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마치 이미 정해져 버린 듯한 운명에 무릎 꿇고 싶지 않았던 그의 단단한 의지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절망에서 희망으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는 다시 두 팔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수 화가로 잘 알려진 석창우 화백이 검은색 반팔 셔츠에 고동색 개량한복 바지를 입고 넓은 화선지 위에 서 있다. 그의 양쪽 팔은 관절인형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의수로, 오른쪽 의수로는 붓을 잡은 채 발 아래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넣고 있다. 이러한 석창우 화백을 뒤에서 정장을 입은 많은 외국인들이 지켜보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를 돕는다

“두 팔이 없는 건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두 손이 있다면 그리려고 생각했던 이미지가 손목에서 한 번 걸러지잖아요. 그런데 전 두 손이 없으니까 몸의 힘을 그대로 전달해서 기교 없이 그림을 그릴수가 있죠.”

‘대한민국 1호 의수화가’로 알려져 있는 석창우 화백. 사실, 그는 과거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던 평범한 전기관리원이었다. 불의의 감전 사고로 인해 두 팔을 잃었던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9살이었고 그에겐 그의 아내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 하나가 있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고 답답했을까. 그렇게 막막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어린 아들의 뜻하지 않은 부탁을 들어 주다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됐다.
석창우 화백이 그의 방으로 보이는 어느 공간에 앉아서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의 연속 컷이다. 짙은 분홍색 조끼 안에 베이지식 셔츠, 푸른색의 개량한복 바지를 입은 그가 방의 벽에 기대어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낮은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석창우 화백은 왼쪽 사진에서는 이야기를 하듯 입을 살짝 벌리고 있고, 오른쪽 사진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다.

“4살짜리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더군요. 뭐라도 할 수 있는 아빠로 보여지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집중을 해서 그렸었어요. 의수에 펜을 끼우고 노트 위에 하루 종일 매달려서 그림을 그렸죠. 그런데 그 그림을 본 아내와 처형이 그러는 거에요. 두 손이 있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고요. 저도 몰랐던 재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됐죠.”

그림에 희망이 있음을 그는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바로 다음 날 화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됐다. 양 손이 없기 때문에 물감을 다루는 것이 힘들어 그를 가르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처럼 느낀 뿌듯함이 잊혀지지 않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던 중 그의 머릿속을 우연히 스쳐 지나간 것이 사군자였다. 오로지 먹물 하나만을 사용하는 서예라면 자신도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 때부터 그는 붓을 들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석창우 화백의 작품 중 하나. 가로로 긴 화선지 위에 붓으로 여러 사람의 실루엣을 그린 작품이다.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기도 하고 여럿이 엉켜 싸움을 벌이는 듯도 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군데군데 빨간색 물감으로 사람들의 몸통에 컬러가 입혀져 있기도 하다. 화선지 왼쪽에는 세로로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석창우’라고 쓰여 있다.

“처음엔 익숙해지느라 정말 힘들었었죠. 붓이 계속 바닥에 떨어져 도망가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계속 연습했어요. 발로 먹을 갈고 물집이 터져도 계속 또 갈았죠. 몸살과 통증을 약으로 삭히면서 끝까지 그림에 몰입했었어요.”

그는 처음 일반 화가가 5년 배운 수준을 목표로 세웠기에 보통 사람보다 5배 정도 노력하면 그들을 따라잡기에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빠지지 않고 하루에 약 10시간씩 붓질에 매달렸다. 그렇게 3년 후, 마침내 그는 서예대전에서 입상을 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석창우란 이름 석자 뒤에 ‘화가’라는 단어가 당당히 붙는 순간이었다.

수묵 크로키의 발견, 화가 석창우의 대서사시를 알리다

첫 입상 후 계속해서 그림에 매진하던 중 그는 우연히 누드크로키를 접하게 된다. 누드모델의 포즈가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것 같아 금세 누드크로키에 빠지게 된 그는 이를 서예와 접목시키는 실험에 곧바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서양의 크로키와 동양의 서예, 이 섞임의 결과가 바로 그가 개척한 ‘수묵 크로키’라는 장르다. 그는 이 수묵 크로키를 이용하여 주로 인간의 삶과 죽음, 고뇌, 희로애락을 화폭에 옮겼다. 몸 안에 갇힌 자유를 분출하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 그려진 인체의 움직임은 생생하다. 더불어 온 몸을 사용해 보여주는 그의 퍼포먼스 또한 의수화가라 할 수 없을 만큼 언제 봐도 놀랄 만큼 역동적이다.
석석창우 화백이 첫 사진에서 본 것처럼 검은색 티셔츠에 고동색 개량한복 바지를 입고 맨발로 화선지 위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반쯤 앉아 있다. 펼쳐진 화선지 위에 매우 굵은 붓으로 진한 선을 그려넣고 있으며, 위와 마찬가지로 화백의 뒤에는 정장을 입은 많은 외국인들이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는 누드 크로키를 통한 작품을 세상 밖에 펼쳐 놓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현재 그는 35회의 개인전시회와 수백 번의 그룹 전시전, 그리고 런던올림픽과 같은 국내외 주요 행사에서 120여 회의 작품을 시연했다. 이런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단연 그의 두 의수이다. 그에게 있어 이 의수는 행복을 안겨준 존재와도 같다. 때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양 팔을 잃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그 순간이 되려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석창우 화백이 위 사진에서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던 모습을 위에서 촬영한 사진. 석창우 화백이 의수로 붓을 들고 허리를 굽힌 채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화선지 위에는 한 사람이 뛰어올랐다가 착지하는 듯한 연속 동작을 그려놓은 모습이 보인다. 화백은 화선지 오른쪽에 무엇인가 글귀를 세로로 써 넣고 있다.

“제약이란 존재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애라는 울타리를 쳐 놓으면 그것이 또 다른 장애가 되기 마련이거든요. 저 역시도 이 두 팔이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오히려 손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그림에 더욱 열중할 수 있었죠.”

그는 현재 자신의 상태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상으로 두 손이 생겼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그는 상상하지도, 바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쾌한 지금의 삶 때문에 사고를 당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의 즐거움을 찾아서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의수를 착용하고 있는 석창우 화백의 모습. 의수는 어깨에 백팩을 맨 듯 흰 천으로 동여매어져 있다.  그는 과거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현 상황에 수긍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주어진 여건에 불평하고 불만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 끝없이 정진해 왔다.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것,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충분히 행동할 가치가 있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철저히 투자했다. 맨 뒤에서 출발한 경기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끝까지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그렇게 질기게 레이스를 달린 끝에, 그는 어느덧 가장 행복한 예술가가 되어있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론 충분히 풍족한 상황과 멀쩡한 몸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향조차 찾지 못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대비되어 떠오르는 듯 했다. 그런 20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지 그에게 물어 보았다.

“나 때만 하더라도 20대들이 돈이나 명예만을 좇아가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적성을 찾는 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일들이,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만히 있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젊으니까 손발이 고생하도록 찾아보세요. 그리고 마침내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면 정말 혹독하게 매진해보세요. 재미있으니까 고통스럽진 않을 겁니다.”

석창우 화백의 작품 중 한 부분을 클로즈업해 촬영한 사진. 화선지 위에 붓으로 투박한 그만의 그림체로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낙관 부분을 클로즈업한 것이라 어떤 그림인지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오른쪽 끝부분에는 붉은 물감으로 그의 발을 직접 찍은 그만의 낙관이 보인다. 그는 과거 몸이 팔팔하던 20대보다 50대에 접어든 지금 이 순간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당시의 젊은 날에 그는 단순히 경제적 수단을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자기 계발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진짜 청춘을 찾은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쩌면 이렇게나 소박한 그의 자세 때문일까. 그는 구태여 작품을 통해 심오하거나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생각을 비우고 힘과 마음이 닿는 대로 그림을 그리다 이 세상을 조용히 떠나는 것이 그의 소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대의 나침반이 방향을 잃어 끝없이 뱅뱅 돌고 있다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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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좋은 기사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석창우 화가님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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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그림그리는 모습은 더더더욱 멋지신분이죠 ㅎㅎ

  • 유이정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드는 기사군요. 석창우 씨에게는 손이 없다는 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또 그가 지금 삶이 행복해서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아직 20대 초중반(!), 건강한 제가 그동안 핑계만 대며 산 건 아닐는지... 음, 저를 즐겁게 하는 것! 계속해서 찾고 있는 중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더 열정적으로 찾아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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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근

    이정기자두 두손과 두발이 아프도록 고생하며 찾아보길 바래요! ㅋㅋ 그래서 꼭 아무리 힘들어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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