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종대왕, 한글 폰트 디자이너

사람의 성격과 생김새가 제각기 다르듯이, 저마다의 손 글씨도 다르다. 비단 손 글씨뿐 아니라 매체에서 어떤 글씨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글이 다르게 전달될 수 있는 법. 세종대왕이 창시했던 한글의 외형을 디자인하는 21세기 창조자, 한글 폰트 디자이너다.

글자에 개성을 입히는 사람

폰트 디자이너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생겨난 직업 중 하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컴퓨터로 문서를 작업하는 일이 잦아졌고, 각종 광고와 인쇄매체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폰트를 필요하게 되었다. 실제로 폰트가 쓰이는 곳을 생각해보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웹사이트의 글자들, 휴대폰 화면 안에 선택된 글자들, 책의 개성을 반영하는 글자들, TV, 신문 광고들 속의 글자들에 이르기까지 주위를 둘러보면 폰트의 쓰임새는 모든 것에 반영되어 있다. 폰트는 쓰는 사람의 목적과 개성을 반영해주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새로운 창조가 필요하다.

폰트 디자이너는 폰트 디자인 전문 회사에 소속되어 활동하거나, 혹은 1인 기업인 소호SOHO 형태로 회사를 설립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한글 폰트 디자이너들은 약 2백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유명한 한글 폰트 디자인 회사들은 산돌커뮤니케이션, 윤디자인, 헤움 등. 이 회사들은 기업의 의뢰를 받아 기업 전용 서체를 제작하거나 새로운 폰트를 기획하고 개발한다. 기업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은 일반 회사원들과 일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폰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 끈기

국내에는 따로 폰트 디자인 관련 학과가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주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학생이 이 분야로 진출하는 편이다. 하지만 꼭 미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어도,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꽤 많다. 대부분 회사에서 인턴 과정 교육 동안 실무 능력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 무엇보다 평소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중요하다.
폰트 디자인에는 예상되듯 정확성과 조형감각,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끈기가 필요하다. 디자인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긴 작업이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보통 하루에 20자에서 50자 정도 만들면서,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까지 소요된다. 폰트는 한 번에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하고 다듬는 작업이 수반된다. 흑과 백, 면적과 배경을 보고 작업하기 때문이다. 때문이다. 내게 장기적인 작업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근성이 있을까? 폰트 디자이너에 도전하기 전에, 반드시 스스로 의문해야 하는 부분이다.
폰트 디자이너만의 장점은 역시 자신이 만든 폰트가 실제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 하나의 작품인 폰트가 길거리나 다른 매체에서 보게 된다면 더없이 뿌듯할 게 당연하다. 폰트는 다른 디자인에 2차적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예술 작품으로 재생산될 수 있고, 헬베티카 서체처럼 반영구적으로 쓰인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반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다. 디자이너로서 왠지 모를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이들은 실망하기 일쑤다.

한글 폰트의 진귀한 탄생 과정


폰트를 제작하는 이 모든 과정은 최소 3개월은 걸리는 장기 작업이다. 처음에는 콘셉트와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기본자를 만들고 나서 테스트를 한다. 한글은 영문과 다르게 모아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초성, 중성, 종성을 고려해서 모듈(구조)을 짠다. 그 모듈은 약 24가지 정도 된다. 이후 빈출자를 먼저 제작한다. 빈출자는 자주 사용되는 중요한 글자로 약 2백10자 정도다. 이 과정에서 중간 점검을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서체는 하나하나의 조형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계속 숲인 문장을 봐야 한다는 점을 말아야 한다. 빈출자를 만들고 나면 조판 테스트를 한다. 의도했던 콘셉트와 맞는지 등을 잘 점검한다. 다음은 파생하는 단계. 이전까지의 단계는 기획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이 단계부터는 실제적인 디자인 업무다. 파생에는 여러 원리가 있는데, 그 중 가획의 원리는 가장 단순한 글자에서부터 획을 더해가는 것이다. 1만1천1백70자를 다 일일이 만들기는 힘드니, 나라에서 정한 2천3백50자 정도를 우선 만든다. 만들고 나면 조합의 규칙이 생기는데, 그 패턴에 생긴 규칙을 가지고 나머지 글자를 자동으로 만든다. 여기까지 하면 드디어 하나의 서체 디자인이 끝난다. 이후에는 또 테스트를 해보고, 이걸 엔지니어가 글자별로 코드를 입력해서 각 서체에 맞는 주소들을 만든다. 이외에 자동으로 폰트를 깔게 하는 것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엔지니어가 담당한다. 폰트 이름은 디자이너들끼리 아이디어를 내서 기획 단계나 마지막 단계에서 붙여진다. 이렇게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단계까지, 디자이너가 전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디자이너들과 크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MINI INTERVIEW
산돌커뮤니케이션 폰트개발부 권경석 이사의 폰트 디자이너 탐구

산돌커뮤니케이션은 1984년 국내 최초 한글 폰트 디자인 회사로 출발했다. 과거에는 우리 글인 한글 폰트를 일본에서 수입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한글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일에 산돌커뮤니케이션이 뛰어든 것. 이곳은 글자 디자인을 그 국가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보고, 한글의 문화적 가치 향상과 국민의 자존심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권경석 이사는 약 17년간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재직하며 다양한 폰트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럽젠Q. 폰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교 3학년 때, 글꼴디자인전이 처음 열렸어요. 그때 폰트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처음 알게 되었고, 폰트 회사에서 3개월 정도 인턴을 했어요. 제가 첫 직장을 구할 당시만 해도, 광고 회사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어요. 저도 그쪽으로 준비했고, 광고 회사에 처음으로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광고 이면의 일들이 저에겐 잘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인턴을 했었던 폰트 업계를 생각했고, 취직 리스트에 뽑아놓았던 곳 중 첫 번째였던 산돌커뮤니케이션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럽젠Q. 시각디자인과나 미대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직업을 가질 수 있나요?

폰트라는 것이 책과 관련이 깊어서, 인문학 전공자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분들은 타이포그래피나 시각 디자인을 따로 어느 정도 공부하고 오는 편이죠. 신입 사원을 뽑을 때는 포트폴리오도 중요하지만, 기본 소양이나 태도를 더 많이 봅니다. 폰트 디자인은 지루함이 많이 느껴지는 작업이어서 하고자 하는 의지나 비전이 중요해요. 이런 소양이 갖춰졌다고 판단되면, 조형 감각이나 센스를 봅니다. 이런 디자인 감각은 충분히 포트폴리오로 알 수 있죠. 그리고 폰트도 하나의 제품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품답게 어떻게 만들 것인지 합리적으로 만들어내는 능력과 추진력도 봐요. 입사하면 교육을 받고, 한 3년 정도 배워야 한 서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럽젠Q. 작업했던 폰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폰트는 무엇인가요?

‘붐’ 서체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전체를 다 디자인한 폰트이기 때문이죠. 처음으로 전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럽젠Q. 폰트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삼성 서체 프로젝트를 할 때였는데, 장기 작업이기도 했지만, 굉장히 큰 프로젝트였어요. 서체 검수위원도 일본의 폰트 대가였고요. 일본으로 연수도 갔는데, 자유공방(지유고보)에 가서 서체도, 기술도 배웠습니다. 당시 2003년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폰트 기술력 차이가 크게 났기 때문에 일본의 선진 폰트 디자인을 배우자 한 거죠. 이미 일본은 이 분야에서 굉장히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에 회사가 아니고 공방체제로 사사가 있는 도지식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적인 차이도 보게 되었죠. 또한, 한자 디자인의 방향을 잡기 위한 것도 일본으로 간 이유 중 하나였어요. 그곳에서 평생 폰트 디자이너의 삶을 산 사토 연구소의 코미야마 선생님을 만났고, 나폴레옹 시대 때 동양에서 처음으로 넘어왔던 한자 교본 등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서체의 역사 자료들도 보어요. 일본은 그때부터 기술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던 거죠. 제 기술력을 증진했던 일로 기억이 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감동을 많이 받았던 경험입니다.

럽젠Q. 어떤 때에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제가 만든 폰트가 중요한 곳에 쓰이면 보람을 느끼죠. 그리고 제 아이들이 폰트를 보고 제가 만든 폰트라고 자랑하거나 알아보면 뿌듯합니다. 제가 만든 폰트를 직접 쓸 때에도 재미있어요. 옛날만 하더라도 한글 폰트가 외국에 소유권이 있었는데, 이제는 저희가 만들면서 한글을 지키고 있다는 자존심도 갖게 되더라고요.

럽젠Q. 한글 폰트 디자이너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요?

폰트 디자인은 굉장히 기초 분야입니다. 따라서 디자인의 근간에 힘을 쏟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어요. 그리고 폰트 디자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른 분야로도 발전할 수 있고요. 하지만 근성이 있고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겠죠. 대학생 여러분은 지금부터 기본적인 조형 감각에 대해 연습을 하고,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계속 접근한다면 이 분야에 입문하기 쉽습니다.

럽젠Q.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이 분야는 아직 포화 상태가 아니에요. 그래서 헤쳐나갈 부분이 많죠. 우리나라는 서체 발전 속도가 늦었던 편입니다. 소비자 중심시대에 걸맞게, 앞으로는 사용자를 좀 더 생각하는 서체들을 만들고 싶고 지금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또한, 후배들도 양성하고 싶습니다.

미니 상식, 일반인이 자신의 폰트를 만들어 등록하려면?

방법 1. 대신 만들어 주는 회사에 의뢰한다
문자동맹(http://munjanet.com)과 같은 회사에서 약 5만원을 주고 자신의 손글씨를 폰트로 제작할 수 있다.

방법 2.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워크숍, 외부 프로그램 강좌를 수강한다
한글 워크숍(산돌 투어링)은 1주일에 1번씩, 3개월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다. 한글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 수 있고, 폰트 디자인 지식 및 제작 실무 과정을 직접 참관할 수도 있다.

방법 3. 폰트 프로그램(Fontlab)을 이용한다
‘ㄱ’, ‘ㄴ’ 등을 하나씩 만드는 것과 같은 조합의 원리를 이용하여 보다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직접 손으로 레터링한 후에 스캔을 받아서 일러스트 등에서 깔끔하게 다듬은 후 다시 폰트랩으로 가져오는 방법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다룰 수 있다. 폰트 제작은 디자인 작업 외에도 네이밍, 코딩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타이포그래피 관련 책자를 찾아보면 좋다. 혹은 기존 폰트를 폰트랩Fontlab에서 열어보면 기본적인 구성을 알 수 있다. 이를 참고하여 만들 수 있다. 상품으로 팔고 싶다면, 폰트클럽(http://www.fontclub.co.kr)에 가서 서체를 등록하면 된다. 개인 작가로 활동할 수 있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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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이만드신걸종종썼다고생각하니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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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원 기자

    폰트 만드는 과정이 더 신기하더라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 작업인데 정말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요새는 다양한 폰트들이 많이 나와서 골라쓰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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