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l 절대 죽지 않을 감독

이 감독, 감독이란 꿈을 이뤘고 꿈이 둔갑한 현실의 잔혹함을 맛보았다. 그래도 계속 영화를 만들 거란다. 영화 찍어서 밥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찍어야만 그가 살 수 있기에.

지난 10월 11일,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주담담 – 비전의 감독2’이라는 행사가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진행되었다. 그 행사는 배우 유지태가 감독으로 초청되어 많은 영화 팬의 이목이 쏠렸다. 수많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유지태 감독 옆에서 두 손 모아 공손히 서 있던 한 청년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영화 <개똥이>의 김병준 감독이다. 베테랑 영화감독의 포스를 물씬 풍기는 모습이지만, 현재 그는 우리와 같은 대학생이다.

작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관객으로 갔죠. 늘 영화제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고 돌아오곤 했어요.(웃음) 그런데 올해는 감독으로 초청받게 되었죠.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 거예요. 관객이 아닌 감독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땐, 일단 대접부터 180도 다르더라고요.(웃음) 옆에 있던 유지태 감독은 정말 커 보였어요. 체격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요.

키는 클지언정 체격에서 절대 밀리지 않던 그다. 감독으로서 김병준은 이 시대의 주목받는 감독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유지태와 나란히 서 있다.

끊임없이 찍고 싶은 열정의 초석, 영화 <제8요일>

그는 현재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비록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경제적 어려움, 인프라 부족 등의 고된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구분 없이, 자신이 몸담는 영화에 대한 큰 의미부여 없이 영화는 단지 영화란 논리.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나누는 것만이 그가 가진 꿈이라면 꿈이다.

독립영화, 상업영화 등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저에게 영화는 그냥 영화에요. 어떠한 영화이든지 계속해서 찍고 싶어요.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계속 무언가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창하게 어떤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기보다 끊임없이 영화를 찍으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죠.

어떻게 영화는 이렇게 그의 삶을 파고들었던 걸까? 대부분 남자아이가 경찰관, 소방관을 꿈이라 생각하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그는 한 편의 비디오를 본 이후 ‘다른’ 꿈을 꾸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많이 소심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때 작은아버지가 <워터월드>라는 비디오를 보여주셨어요. 그때는 영화라는 것도 잘 몰랐고, 그냥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비디오를 하나 사달라고 졸랐고, 중고 비디오 하나 사주셨죠. 비디오가 생기자마자 대여점에 가서 진열 순서대로 빌려보았어요. 그때 <제8요일>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감성을 펑펑 울렸어요.(웃음) 다운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실제로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그냥 저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학창시절, 그는 끊임없이 영화를 보고, 영화를 논했다.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밟지는 못했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며 영화에 대한 끈을 이어서 2004년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실망감을 느끼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본 비디오를 떠올리며 영화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제가 입학할 당시는 필름&비디오 과였어요. 1학년 때부터 카메라 촬영 등 실기 위주의 수업만 이루어졌어요. 원래는 감독이 아닌 작가가 되기 위해 영화의 학문적인 면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입학했는데 그렇지 않아 크게 실망했죠. 그래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바로 군에 입대했어요. 제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우리 학교가 임권택영화예술대학으로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복학했어요. 그렇게 학교에 다니면서 5편의 단편과 2편의 장편 영화를 찍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영화 <개똥이>에요. 영화도 찍고 일도 하다 보니 졸업이 늦춰져서 지금까지 다니게 되었네요.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실은 잔혹하다

꿈은 이뤘지만, 뭔가 이상했다. 영화를 찍기 위한 인프라도, 재정 상황도 너무나 열악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개똥이>를 포함한 총 7편의 작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순탄한 길은 없었다. 이젠 더는 그에게 영화는 설레는 꿈이 아닌 잔혹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된 셈이다.

부산에는 영화 관련 인프라가 굉장히 부족하여서, 작업하려면 서울로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가장 큰 어려움은 금전적인 문제죠. 대학에 다니면서 아버지께 학자금은 물론 용돈을 받아본 적도 없기 때문에, 등록금과 영화촬영을 위해 보조출현이나 편집 아르바이트 등 이것저것 많이 일했어요. 한 번은 보조출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개똥이> 보조 출현했던 분도 만난 적 있죠. 너무 부끄러웠죠. 그래도 감독인데∙∙∙.

어느 책에서는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최고의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김병준 감독은 이를 다르게 해석하였다.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깨닫고 꿈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꿈이라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계산기를 통해 손익분기점을 따져야 했다. 이익조차 낼 수 없었던 때가 더 많기도 했다. 그가 감독이 되었던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참 슬픈 일이죠. 꿈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즐거운 상상만을 하다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 많은 사람이 실망과 좌절을 하죠. 감독으로서 경제적 어려움 등 너무 힘들고 어려운 경험을 하면서 꿈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어요.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는 영화를 포기하려고 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점점 더 깊은 좌절의 늪으로 빠지게 됐다. 어려웠던 매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떠올렸고, 그럴수록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나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에게 영화는 천직이고 영화 이외에 다른 것을 떠올려 본 적도 없었다. 자신만의 다짐을 하고 돌아온 감독 김병준. 결국 영화 <개똥이>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좌우명은 없어요. 올해 1월 1일 일출을 보면서 했던 생각은 단 하나예요.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영화를 만들면서, 그리고 현실을 깨달으면서 너무나 힘들었어요.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물론 용기없어서 죽지도 못해요.(웃음) 그렇지만 절대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반전反轉, 영화 <개똥이>의 탄생, 그리고 그 후

영화 <개똥이>는 그의 어린 시절을 통해 탄생했다. 어떤 신문의 인터뷰에서는 ‘아버지를 원망했던 내 실화를 담았다.’라고 했지만, 김병준 감독은 큰 오해라고 하였다.(아버지가 보면 혼날 소리!) 분명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과 반대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사춘기 시절, 이유 없이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영화가 너무 힘들어 어머니와 다툰 적이 있었거든요. 집을 나가는 등 뒤로 어머니가 “너는 어쩜 네 아버지랑 똑같니?”라고 말씀하셨죠. 문득 그 닮고 싶지 않은 아버지 모습이 모르는 사이 제게 있더라고요. 아버지가 제게 사회적인 영향을 미친 거죠. 이런 경험을 하면서 저와 달리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의 삶이 궁금해졌어요. 그것이 <개똥이> 시나리오 집필의 시작이었죠.

명작은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숱한 고난과 위기를 극복해야만 그 모습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으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영화 <개똥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기억이 나질 않네요. 물론 다 힘든 일뿐이죠.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서울역에서 노숙하기도 하고, 열흘 동안 물만 마셨던 적도 있어요. 촬영이 끝나고는 스태프가 모두 그만둬서 저만 홀로 남기도 했어요. 외롭고 무섭던 시간이었죠.

11월부터 준비했던 영화제작은 우여곡절 끝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었다. 2012년 8월 15일 광복절, 그는 67년 전 함성 그대로 PC방 어느 구석진 자리에서 만세를 외쳤다.

작년 11월부터 촬영준비를 시작했고, 1월 중순부터 열흘간 촬영이 이루어졌어요. 촬영이 끝나고 2월에는 방에 처박혀서 계속 편집만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7월 24일 모든 작업을 끝내고 BIFF에 출품했어요. 그리고 광복절이 되었죠.(웃음) 친구랑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첫 차를 기다리기 위해 PC방에서 있었어요. 메일을 확인했는데, BIFF 초청 메일이 도착했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PC방에서 두 손 들고 소리 지르면서 좋아했어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그는 조명을 받을 이유가 있었다. 2005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7년 만에 BIFF에 초청받은 대학생 감독이기 때문이다. BIFF 기간 그의 영화는 수많은 관객과 언론 앞에서 상영되었으며,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오고 가는 관객과의 대화 속에서 그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돌아왔다.

관객과 대화를 한 뒤 끝나고 많이 혼났어요. 왜 자신을 포장하지 못하느냐고. 제가 별 의미 없이 찍은 장면, 구성한 부분에 대해 관객마다 각자 다른 생각으로 제게 질문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솔직히 답했어요. 관객은 크게 실망했을 거예요. 행사가 끝나고 생각했죠. ‘관객마다 각자의 생각으로 내 영화를 보고 있구나.’ 요즘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영화로 만들어 관객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까지.

BIFF 초청으로 두 손들며 환호했던 그는 이제 왠지 힘없는 독립영화의 대학생 감독으로 복귀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운 좋은 남자라 한다. 자신과 달리 세상에 단 한 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영화인이 아직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영화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전 정말 운이 좋아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저도 지금 당장은 막막해요. 저와 같은 사람, 저보다 힘든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기도 하죠. 그런 사람이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영화계에서 유명한 어떤 분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독립영화가 이곳에 초청받은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영화제가 끝나면 그것도 끝이다. 사실이에요. 영화제가 끝나면 상영도 잘 안되고 그냥 그걸로 끝이에요.

김병준 감독의 인생 제1막이 BIFF 초청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비디오를 보던 초등학생이 BIFF 초청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참으로 모질었던 시간이 흘렀고 나름 의미 있는 결말도 맺었다.

그는 현재 제2막을 준비 중이다. 현재는 기획자로서, 내년엔 감독으로서 차기 작품을 낼 계획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이후 재정 등의 지원이 많이 나아진 게 그의 행운 앞에,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이것이다.
언제나 영화를 ‘만들’ 생각이지만,
이젠 나의 이야기를 관객과 ‘나누고’ 싶다!

Profile
1985년 생
2004년 동서대학교 임권택예술영화대학 입학

Filmography
2008년 영화 <늪>(2008 메이드 인 부산독립영화제 본선 상영)
<마지막 프로포즈>, <마리아>
2011년 <낯선>(2011 모나코 국제영화제 학생단편 경쟁 부분 상영, 2011 메이드 인 부산독립영화제 본선 상영)
2011년 <운수 좋은 날>(2011 메이드 인 부산독립영화제 본선 상영)
<등신들>(동서대 장편옴니버스 프로젝트 공동연출)
2012년 <개똥이>(2012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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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길을 걷는 다는 것, 그거 하나 만으로도 대단하신 분이네요. 앞으로의 미래를 더 응원하고,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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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섭 기자

    응원 많이 해주세요~ 이제 곧 새로 작업을 하신다고 하네요!

  • jm10917

    영화계의 현실이, 그 고달픔이 느껴지는 기사네요.. 저도 전공상 주위에서 영화인을 꿈꾸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는데 새삼 그들이 얼마나 큰 노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ㅠ.ㅠ 그래도 자신만의 길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정말 보기 좋고 존경스러워요!!! 기사 잘읽었슴다!!
    댓글 달기

    안지섭 기자

    감사합니다~ 무척이나 힘든 길을 걷고 있으시지만 분명 훌륭한 감독님이 될 거라 믿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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