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l 리코더 부는 19세 소녀

누구나 초등학교 때 한 번쯤은 다뤄본 리코더로, 오스트리아 내 음대에 입학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19세 피리 부는 소녀 허영진 씨. 실재 인물이다. 농담이 아니다.

리코더와의 잘된 만남

허영진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신문의 짧은 기사였다. 작은 기사였지만,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벨기에 리코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것. 콩쿠르는 올해 6월에 있었고,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람은 내년에 벨기에에서 단독 공연을 할 수 있는 특전을 받는다. 이런 어마어마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녀의 나이는 19세. 어떤 느낌이었을까?

사실 엄청나게 놀랐어요. 1등 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했거든요. 그 대회에는 우리 과에서 저와 대만 출신인 두 명의 친구가 함께 준비했고, 모두 열심히 연습했죠. 그런데 저 혼자 상을 받아서 사실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더라고요. 하지만, 같이 출전한 대만 친구뿐 아니라 우리 과 친구들이 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기사의 내용이 놀라운 것은 우승보다 그 우승 종목이 ‘리코더’란 사실이란 점. 사실 리코더의 존재감은 값싼 초등학생용 악기 정도인 게 아니던가. 허영진 씨도 다르지 않았다. 리코더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때였다.

초등학교 때 리코더를 배웠어요. 그러다가 리코더 중주단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사실 부모님께서 저와 언니에게도 콘트라베이스나 피아노 같은 다른 악기를 배울 기회를 주셔서 배운 적이 있는데, 이와 확연히 다르게 리코더에 큰 흥미를 느꼈죠.

흥미가 생겨도, 언제나 실행이 문제다. 게다가 유학이라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 본인이 그 대학에 합격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실력을 떠나 타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조건에서 발생하는 학비 등의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허영진 씨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중학교 때. 어린 나이에 홀로 외국으로 간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사실 제가 먼저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릴 정도로, 전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리고 리코더는 바로크 시대(고 음악) 악기이고, 아무래도 외국에서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히려 부모님께서 많이 반대하셨어요. 너무 어렸으니까요.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겨우 허락을 받아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다행인 것은 현지인의 학비가 한 학기당 2~3만원 정도로, 외국인인 저는 한 학기당 60만원 정도 내면 되었죠. 학비보다 생활비가 더 드는 편이지만, 학비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히 적은 편이었어요.

그녀가 정식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았다. 그 후 2~3개월 정도 독일로 떠나 여러 대학교를 순례하며, 선생님을 만났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현재 대학의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부터다.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국립음대로 진학하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생긴 것은.

스승인 도로테 오베를링거Dorothee Oberlinger 교수의 영상

오스트리아는 한국처럼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지 않아요. 대학 간판을 보고 진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을 보고 보통 결정하죠. 제가 이 대학을 결정한 것도 도로테 오베를링거Dorothee Oberlinger 교수님께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원하는 대학을 목표로, 그녀는 더욱더 시험 준비에 열중했다. 실기는 물론 필기시험도 치렀다. 결과는 합격! 하지만, 이상하게 허영진 씨의 허탈감은 극에 달했다. 이렇게 당차게 유학을 결정한 그녀에게 고난이 온 순간이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 오히려 허무하더라고요. 대학 합격만 보고 달렸는데, 합격 후에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 거죠. 저는 타국생활에 대해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외로워지더군요. 부모님 없이 혼자 처리해야 하는 생활적인 부분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독일어도 아주 서툴 때였죠. 그래서 ‘아, 그냥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갈까?’라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서 부모님께 처음으로 말씀드렸더니 많이 놀라셨어요. 그런데 하나둘씩 힘든 점을 얘기하다 보니, 조금씩 마음의 짐이 덜어지더라고요.

이후 그녀는 작년 10월, 꿈에도 그리던 대학에 입학했다.

동화 같은 잘츠부르크, 동화 같은 대학 생활

원하는 대학에서, 원하는 교수님께 수업을 받는 그녀가 행복 그 자체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수도 빈과는 기차로 약 3시간여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곳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하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전 세계적인 관광지다. 이틀이면 웬만한 관광 명소는 다 볼 정도로, 도시 자체는 그리 크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 심지어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는 아름다운 관광명소인 ‘미라벨 정원’에 가까이 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저희 과는 약 3~40명 정도 되고요, 교수님 두 분과 여러 강사분이 계세요. 저희 교수님 반에는 약 14명 정도 있어요.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 국적, 나이 등 다른 점이 정말 많은데도 친구끼리 참 친하게 지낸답니다. 저는 19세여서 거의 막내이고, 처음에는 독일어도 서툴러서 많이 걱정했어요. 그래도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잘 적응할 수 있었죠.

오스트리아 대학교의 수업 방식은 어떨까? 왠지 야외 수업도 하고, 한국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만큼은 아니에요. 수업 방식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고요. 실기 시간에는 1:1 레슨도 있고, 여러 명이 앙상블로 연주하는 수업도 있어요. 그런데 힘들었던 점이라면 다른 수업 내용이에요. 한국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곡을 위주로 많이 연습했는데, 여기선 르네상스 시대나 현대 음악 등 바로크 시대 이외의 음악을 많이 다루더라고요. 곡의 특성상 시대별로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서 새로운 음악을 배우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그녀가 우승했던 ‘벨기에 리코더 국제 콩쿠르’ 때 준비한 것은 ‘Arcangelo Corelli, Sonata nr.11 G-major’란 현대 곡과 바로크 시대의 곡으로 총 두 곡. 입학 후 배운 수업을 바탕으로, 바로크 시대와 다른 복잡한 기교가 있는 현대곡까지 준비한 결과였다. 그 외 음악학 시간은 한국의 대학 수업과 비슷하다. 다른 과 친구도 함께 듣기도 하고, 음악사 같은 과목은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것을 토대로 필기와 암기 과정을 통해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부족한 독일어 실력 때문에, 음악학 과목은 그녀에게 고통이자 동시에 도전 상대이기도 했다.

제가 유학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공연할 기회가 많다는 점이에요. 저희는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앙상블로 연주도 많이 하지만, 게시판에서 다른 과의 친구를 구해서 연주하기도 하죠. 전에는 잘츠부르크의 헬브룬 궁전에서 연주했는데,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아요. 우리 곡에 맞춰 춤추기도 했거든요. 정말 인상 깊었죠.

허영진 씨도 함께한 헬부른 궁전 영상

그렇다면 오스트리아의 음대생은 수업 외 여가를 어찌 보낼까? 보통 친구끼리 놀러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연습실에서 개인 연습을 한다. 모차르테움 국립 음악 대학교의 장점 중 하나가 연습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 덕분에 자생적으로 친구들과 열심히 연습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학교는 잘츠부르크 내에 있지 않던가. 자연환경이 좋아서 쉬고 싶을 때 산책만 해도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제가 아쉬운 것이 딱 하나 있는데요. 한국처럼 동아리가 잘 발달하지 않다는 거예요. 좀 더 개인주의적인 문화인 거죠. 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친구들과 파티를 한답니다.


앞으로 그녀의 다른 목표는 충실한 연주다. 재학 중 많은 연주를 하고 졸업해 세계적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도로테 오베를링거 교수처럼 학생을 가르치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끝이 없어서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일단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뭘 하려고 생각하기보다 여기서 열심히 하려고요.

그녀의 포부는 리코더 소리만큼이나 청량하고 울림이 있었다.

리코더 문외한에게 올리는, 허영진 씨의 추천 음악

조진희의 <Affetuoso>
조진희 교수의 리코더 앨범 <아페투오소>는 전통 바로크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신이 직접 제작한 바로크 리코더로 연주, 녹음했다. 바로크 음악은 인간 감정의 묘사나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강원대학교에 출강 중이며, 원전 악기로만 구성된 古앙상블 타펠무지크의 창단 멤버로서 리코더와 바로크 음악의 각종 심사, 세미나, KJ(Korea-Japan) 리코더 앙상블 멤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춘천 고음악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참고 _ 네이버 뮤직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alluptosseul

    우왓, 정말 대단하시네요! ㅎㅎ 리코더 소리만큼이나 청량하고 울림이 있는 그녀의 포부가 전달됩니다! ㅎㅎ
    댓글 달기

    이채원 기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분입니다!ㅎㅎ 하지만 정말 연습량이 엄청나신 것 같더라고요~ 우리도 화이팅>.

    이채원 기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분입니다!ㅎㅎ 하지만 정말 연습량이 엄청나신 것 같더라고요~ 우리도 화이팅>.

  • 우와...정말 입이 다물어지지않을정도로 와..정말..대단하다는 말밖에는.....할말이 없네요..
    정말 꿈을 이룬것보다 부러운게.. 확고하게 하고자하는일 하고싶은일이 뭔줄 알았다는게..그것도 중학교3학년때.... 와 정말... 대단하고... 멋지네요..! 와 정말ㅋㅋㅋㅋ 잘 댓글 안다는 스타일인데 와진짜...리코더 라는말에 이끌려서 들어왔는데 저도 고등학교때까지는 음악을했었거든요.. 리코더 사진보니까 ㅋㅋ뭔가 반갑고 그러네요 우와
    댓글 달기

    이채원 기자

    네 실제로 만나뵈니 정말 자신의 꿈, 길에 대한 확신이 굳으신 분이었어요^^ 긍정님도 저도 대학생이니까 저희도 아직 늦지 않았답니다!ㅎㅎ 긍정님도 하고 싶은 길을 꼭 찾길 바래요^*^

소챌 스토리 더보기

이색 전공, 마이웨이

곤충학자 이승현ㅣ 곤충으로 인생 직진

가수 Fromm | 슬며시 차오르는 위로의 달

교환학생, 가려고요? – 3탄 중국 교환학생 정현진

교환학생, 가려고요? – 2탄 미국 교환학생 김신비

교환학생, 가려고요? – 1탄 덴마크 교환학생 조홍근

LG 톤플러스 프리 생활 리뷰

스타필드 하남 완.전.정.복.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