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책 읽어주는 뜨끈한 DJ

처음 만나는 사람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이다. <책 읽는 라디오>의 안주인, 한지훈 DJ가 좋아하는 책은 무엇일까?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병률 작가의 <끌림>을 책이 닳도록 읽었고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만남의 서두를 감미롭게 끊었다. “오늘 이 시간, 따뜻한 이야기로 물들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의 말 한마디는 시이자 봄이었다.

<책 읽는 라디오>의 청춘, 한 DJ


한지훈 씨는 현재 대학생이자 <책 읽는 라디오(www.bookradio.com)> 방송의 DJ로 활동 중이다. <책 읽는 라디오>는 현재 팟 캐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인터넷과 스마트 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0분씩 방송된다. 팟 캐스트 인기 순위 상위권에 등극할 정도로 인기 있는 라디오 방송의 주인공인 그는, 청취자가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읽게끔 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30분이라는 적다면 적은 시간 동안 책을 소재로 한 각양각색의 코너를 팔색조처럼 선보이는 게 놀라울 정도. 북 카페를 소개하거나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소설 속의 인물이 지니고 있는 고민을 현실세계의 고민으로 각본화시켜 상담하는 코너, 아직 영화화하지 않은 소설을 영화화시키는 코너 또한 그의 입심으로 꾸려진다. 짐짓 왜 음성 매체인 라디오를 선택했을 지가 궁금해진다. 분명히 영상 매체를 택했다면,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 거란 강한 믿음 때문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양치질하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죠. 어떻게 해서라도 지루함을 떨치고 싶어해요. 그래서 ‘라디오’라는 매체가 오히려 적합한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라디오를 좋아했던 이유가 가장 크지만요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서일까. <책 읽는 라디오>는 단순히 방송만 하는 게 아니라 인디 밴드와 라디오 드라마극 공연을 하기도 하고, ‘꿈 담은 책’이라는 이름으로 책 기부 캠페인을 펼치기도 한다. 방송을 계기로 젊은 세대의 책 문화를 새로이 만들고 소통할 수 있게끔 노력하는 모습이 가히 예찬할 만하다.

전자전기공학도의 ‘소통’이라는 키워드 추가


사실 그의 방송을 들어본 이라면 누구나 그가 국어국문학과 학생이라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엄연한 공학도다. 여느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해 대학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줄 알았던 그는,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의 성화와 성적에 맞춰 전자전기공학과에 진학했다. 물론 방황이라는 괴로움의 나날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저는 전공을 공부하면서 자유롭다거나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물론, 교수님이나 강의의 문제가 아니었죠. 대학교 1, 2학년 때의 공부는 마치 ‘짝사랑’의 순간과 비슷했어요. 우리는 짝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위해서 정말 온갖 정성과 노력을 쏟아 붓잖아요. 그런데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못 알아주면 어느 순간 맥이 빠져버리곤 하죠. 저 역시 전자전기공학을 위해서 적극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그런 그에게도 삶의 터닝포인트의 순간이 찾아왔다. 날은 지난 2010년 10월 28일이었다. 문학책만을 손에 쥐고 살았던 그는 난생처음 실용서적이라는 것을 손에 쥐었다. 그 실용서적은 다름 아닌 <청음聽音>, 소리에 관한 책이었다. 평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그는, 방황하던 차에 자신의 강점인 목소리에 대해서 깊게 공부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학교에서는 복수전공을 의무화하고 있던 터라 그는 국어국문학을 또 다른 전공으로 선택했다.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게 된 그는 토론 등의 강의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행복감에 기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드디어 그가 짝사랑의 시련에서 벗어난 것이다.

방황,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다


짝사랑의 시련이 그에게 해만 입힌 것은 물론 아니다. 당시의 방황은 오히려 DJ이자 스물여덟 살 청춘인 그의 현재에 양분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남들이 하는 것은 웬만해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신조는, 그가 방황을 ‘사서’ 하게 했다. 그는 단돈 30만원을 들고 호주로 떠나보기도 하고, 서울에 본가가 있음에도 학교 앞에서 자취생활을 해보는 등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스스로 부딪혔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실패하거나, 멀어진 상태에서 이런 생각을 하죠. ‘난 어디로 가야 하지?’라고 말이에요. 이렇듯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로 떠나려고 하고, 안정된 곳에 안착하기 위해 애를 쓰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마치 내 집을 잃은 것 같았어요. 정답을 모르겠고, 방황하게 된 거죠. 그때 저는 이런저런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보자고 생각한 거죠

당시 그는 인도로, 호주로 떠나게 됐다. 특히 호주에서는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했다. 홀로 배낭을 메고 호주 사막에서 잠을 청했고, 사막 위로 떠있는 별을 보면서 자신 삶의 이유를 찾았던 것.

별은 누군가에게 반짝하기 위해서, 혼자 외롭게 떠있어요. 나 홀로 있는 것이 외롭고, 불안하더라도 자신을 보고 있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빛나고 있죠. 저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내가 라디오를 하는 것도 단 한 명의 청취자를 위해서라도 하는 것이고, 여태까지 단 한 번의 방송 펑크가 없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는 잠시 20대라는 위치에서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했다. 본인의 이름으로 낸 <청춘에게>라는 에세이에서도 그런 아련함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페이지를 잔잔하게 읽기 시작했다.

늙어버린 소녀.
음식을 떼어 나눠주는 그 마음이 소녀 같았어.
어디에서 한 걸까. 한 움큼 빨래를 가져온 그녀는 정성스레 벤치를 닦은 후 햇볕을 마중한다.
소녀의 먹을거리는, 아니 너무나 외로웠던 그녀는 자신의 몫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에게 나누어준다.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두려웠던 그녀는 결국 소녀로 하늘을 난다.

-<청춘에게> 중에서 /한지훈

이 페이지는 그가 호주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낼 당시, 햇볕이 너무 좋아 그저 쉬러 들른 시드니 공원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을 글로 옮긴 것이다. 그는 노숙인이 자신에게도 모자란 식량을 새들에게 모이로 주는 것을 보며,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이 누군가에게 지독한 외로움을 선사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행하면서 어떤 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뭐지?’라는 고민할 찰나, 한 친구가 묻더군요. ‘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줄 알고 있어?’라고. 전 그때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깨달았죠. 인생은 내 마음속에 하는 말을 존중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늘 귀 기울이며 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가 단돈 30만원으로 호주를 떠날 때도, 지금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을 업으로 삼는 과정에도 모두가 박수를 치고 응원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단 한 사람은 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나 자신 말이다.

저는 많은 청년이 취업난 등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 절망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하나 있죠. 제가 본 20대 치고 재능 없는 친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본인이 가진 재능이 너무 많아서 어떤 재능을 선택하여 업을 삼을 것인지 어려워한다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전 20대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바로 실행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과감하게요!

인생은 어떻게 살아도 기쁨과 두려움, 그리고 절망까지 모두 다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라디오 방송 진행자를 넘어서 라디오 앱북에 도전하는 그를 보면서 청춘이란 단어의 대변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모든 도전은, 그가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 속에서 답을 찾는 일을 좋아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도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청춘은 거기, 마이크 앞에 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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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어주는 공대생이라.. 뭔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엄청 재미있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안지섭

    저도 이병률 작가의 끌림을 군대에서 처음 접했는데 아마 이 책으로 인해 제 자신이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책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책이 너무 좋았어요. 지금도 자주자주 아름다운 글을 읽고 가끔은 글을 무시하고 사진만 보기도 하고 그러는데. 나중에 한번 이분 방송을 들어보고 싶네요 ^^ 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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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아름 기자

    끌림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한 권이고, 두 권이고 자꾸 선물하게 되는 책이기도 하죠 :-) 책읽는라디오 스마트폰 어플도 있으니 꼭 한번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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